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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09화 (109/250)

< 적색 고룡 -2- >

낫슈바켈이 으르렁대며 윽박질렀다.

[네놈이 한 말이 대체 무슨 뜻이냐? 네가 죽은 내 아이를 되살리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시혁의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기껏해야 상처나 입혔을 줄 알았더니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나 보다.

그렇다면 믿을 것은 하나밖에 없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제 궁극기는 부활이니까. 그걸 쓰면 누구든 살릴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환생이지만, 그게 그거.

[뭐? 부활?]

그 말에 낫슈바켈이 몸을 움찔했다.

오히려 노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놈! 내가 그 방법을 써보지 않은 줄 아느냐? 기껏 내 아이를 되살려냈건만 너희 비루한 족속이 쓴 독 때문에 내 아이가 고통스러워하기만 했다. 결국 내 손으로 내 아이의 목숨을 끊어야 했지! 이놈들, 이 벌레 같은 놈들! 너희 소환자들을 모두 죽여 없애고 이 저주 받은 행성을 완전히 부술 때까지, 내 분노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낫슈바켈이 손을 들어올렸다.

전신에서 타오르던 지옥불이 거기로 옮겨갔다. 길쭉하게 맺혀, 한 자루 불의 검처럼 변했다.

그것을 내리치기 전, 시혁의 입이 열렸다.

“독이라, 그럼 해독 마법은 안 쓰신 겁니까?”

[애초에 해독 마법이 먹히지 않는 독인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 짧은 혀로 날 어떻게 속여 볼 작정이라면……]

“한 번 제게 보여주시죠. 전 생명 진영 의학자 출신이고, 의학 특화 현자입니다. 해독 마법이 통하지 않는 독쯤, 얼마든지 해독할 수 있습니다.”

시혁은 당당한 얼굴로 낫슈바켈을 쏘아보았다.

낫슈바켈이 침묵했다.

영웅 소환자들이 뭘 할 수 있는지, 뭘 할 수 없는지 잘 아는 적색 고룡 낫슈바켈이었다.

지금 낫슈바켈의 자식이 당한 독도 현자 영웅이 만든 것 아닌가. 반대로 현자 영웅이라면, 해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세가 한 풀 꺾였다.

다소 누그러진 눈으로 시혁을 보더니, 한 가지 으름장을 놓았다.

[좋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단,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날 속인 것이라면, 네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로 만들어 이 행성이 멸망할 때까지 고문하고, 또 고문하겠다.]

“마음대로 하십쇼.”

시혁은 자신이 있었다.

의학자, 현자를 거쳐 아르거스의 의학에 대해 통달한 자신이다. 여차하면 오행 순환체를 동원하는 것도 가능했다. 무슨 독이든 해독하여, 낫슈바켈의 자식을 살려낼 터였다.

낫슈바켈이 불의 검을 거뒀다.

시혁을 한 손에 들더니 한쪽에 웅크려 있던 짝니도 잡아챘다. 짝니가 놀라 발광하는 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공간을 이동했다.

거대한 동굴 안이었다. 한쪽에 용암 호수가 있어,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동굴 안이 훤했다.

덕분에 시체 하나가 아주 잘 보였다.

짝니보다 조금 컸다.

언뜻 보면 커다란 도마뱀 같다.

한 쌍의 날개가 있었다. 꼬리는 길쭉하고, 머리에 뿔이 몇 개 났다.

원래대로라면 광택이 흐르는 선홍색 비늘을 자랑했을 터.

지금은 아니었다.

비늘 전체가 썩어문드러졌다.

입에서는 시커먼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더구나 몸 곳곳에 구멍이 나고, 거길 통해 흰 금속성의 뼈가 공기 중에 노출되었다.

낫슈바켈이 탄식을 토했다.

[내 불쌍한 아가! 어미가 못나서 네가 이렇게 고통을 겪는구나!]

짝니는 들어오자마자 꼬리를 말고 동굴 구석으로 도망쳤다. 바짝 엎드린 채 벌벌 떨지만, 시혁과 낫슈바켈 모두 짝니에겐 관심이 없었다.

시혁은 시체를 살폈다.

비늘과 피부가 모두 썩고, 관절 부위에 구멍이 뚫린 게 특징적이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시체의 입가로 손을 가져갔다. 그걸 손가락에 찍은 후, 입에 가져와 맛을 보았다.

달콤했다.

강렬한 마나의 향취가 느껴졌다.

통찰 마법으로 스스로의 몸을 살피는데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독이 시혁의 몸을 갉아먹기는커녕, 보약처럼 몸 전체를 활성화시켜주는 것이다.

본 적이 있다.

현자 전직 당시, 세계 지식 등재를 위해 참고했던 선배 현자들의 업정 중에서.

시혁은 가만히 그 이름을 읊조렸다.

“멸종하는 용……”

낫슈바켈이 그 이름에 반응했다.

[아는 독이냐? 범인들이 작살을 던지면서, 똑같은 이름을 말했다.]

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분명히 단언하건대, 멸종하는 용을 만든 당사자가 아닌 한 시혁보다 그 독에 대해 더 잘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왜?

오행 순환체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참고했던 게 멸종하는 용이니까.

시혁은 가슴을 펴고 말했다.

“예, 압니다. 야만 진영의 주술사를 거쳐 현자가 됐던 소환자가 만든 독입니다. 일단 육체에 주입만 되면, 스스로 증식하여 힘을 키우지요. 일정 시점이 지나면 반신의 이적으로도 치료하지 못합니다.”

최종 병기 중 초록용, 황금용, 적색용을 겨냥하고 개발된 독이다.

대처 방법은 초기 진화뿐.

아직 힘이 충분히 늘어나지 않았을 때 끝장을 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 말을 듣고, 낫슈바켈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내 아이부터 돌봤어야 했는데……]

눈치를 보니, 작살이 새끼에게 꽂히자 그대로 눈이 돌아가 버린 모양이다. 습격했던 영웅들을 족치고 나니,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고.

시체를 꼼꼼히 확인하며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대체 그 놈들은 왜 낫슈바켈 님의 아이를 공격한 겁니까? 낫슈바켈 님의 분노를 사면 좋은 일이 없을 텐데요.”

낫슈바켈의 눈이 분노로 번뜩였다.

[가당치도 않는 짓을 하려고 했지. 나더러 어떤 반신에게 종속되라고 했다. 그러면 내 아이의 중독을 풀어주고, 부활 마법으로 되살려주겠다는 거다.]

“대체 어떤 반신이랍니까?”

[모른다. 함구했으니까. 내가 제안을 받아들이고 용언으로 맹세해야만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놈들을 붙잡아 고문하려고 했는데, 무슨 수를 썼는지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간도 큰 자들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했다.

소환자에게 죽음은 그리 두려운 일이 아니다. 레벨만 1레벨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만한 대가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의뢰를 한 반신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큰 이득이 있을 것이다. 낫슈바켈 스스로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어쩌면 신위 경쟁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싶었다.

낫슈바켈이 초조한 얼굴로 시혁을 보았다.

[그래, 좀 어떠냐?]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정말이냐?]

시혁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는 쉽다.

멸종하는 용을 해석하여, 그 반대되는 힘을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오행 순환체가 불어나는 만큼 저항력이 강해지고, 종국에는 체내에서 완전히 몰아낼 것이다.

다만 마나가 엄청나게 소모될 텐데, 그건 낫슈바켈이 보조하면 될 문제였다.

시혁은 딱 하나 남은 오행 순환체를 꺼냈다.

낫슈바켈의 공격을 받은 탓에 몇 개체 안 남아 있었다. 그걸 보여주면서 마나를 주입했다.

오행 순환체가 증식했다.

낫슈바켈이 눈을 번뜩였다.

[마나 생명이냐? 마나를 공급하니 수가 늘어나는구나.]

“이걸 주입하겠습니다. 멸종하는 용의 해독 속성을 부여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좋다. 한 번 믿어보마.]

시혁은 오행 순환체를 먼저 한계까지 키웠다. 소멸했던 두 오행 순환체를 다시 만들고, 그것들도 성장시켰다.

낫슈바켈이 답답해하더니 옆에서 마나를 공급했다. 붉고 파괴적인 마나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다. 세 오행 순환체가 금방 한계에 도달했다.

시혁은 시체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이 정도면 세 오행 순환체로 충분하겠다.

전부 다 허공에 꺼내놓고 지팡이를 들었다. 머릿속으로 새로이 구축한 해독 마법을 부여하자, 오행 순환체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낫슈바켈이 얼굴을 찡그렸다.

[차라리 내게 해독 마법을 가르쳐주는 게 어떠냐? 네 소환물이 대단하긴 하다만, 내가 직접 치료하는 것보다는 못 하겠다.]

“멸종하는 용은 특히 용의 마나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조급해 하시는 것은 알겠지만 진득하니 기다리세요. 낫슈바켈 님이 직접 마나를 주입하거나 마법을 쓰시면 될 일도 실패합니다.”

[끄응, 알겠다. 그렇지, 혹시 필요한 것 없느냐? 마나 보석이라도 갖다 줄까? 지팡이는 어떠냐?]

귀가 솔깃했다.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걸로 가져다주십시오. 있으면 자제분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낫슈바켈이 얼른 몸을 날렸다.

지금도 구석에 숨어 있던 짝니가 시혁을 보며 으르렁댔다.

[무섭소. 도망갑세.]

그저 무시했다.

낫슈바켈이 금방 돌아왔다.

오른손에는 화려한 지팡이를, 왼손에는 가죽 주머니를 한 개 들고 있었다.

안기듯 시혁에게 건넸다.

[이거면 충분할 거다.]

둘 다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지팡이 전체가 은은한 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푸른 선과 붉은 선이 종횡으로 났다. 요소요소에 색깔이 다른 보석 일곱 개가 박혔다. 그리고 머리 부분에 황금빛 보석이 달려 찬란한 빛을 뿜었다.

가죽 주머니는 겉으로 보기엔 별 게 아닌데, 실은 강력한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렸다. 흔히 말하는 무한의 주머니였다. 이걸 왜 주나 싶어 살짝 살펴보았는데, 각종 진귀한 마나 보석들이 들어 있었다. 마나가 부족하면 이걸로 보충하라는 듯했다.

낫슈바켈이 지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지팡이는 칠대 위상의 용왕이라고 부른다. 대재앙이 벌어지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물건이지. 전대 용왕의 뼈와 심장, 천사장의 눈물과 악마 군주의 발톱 등 진귀한 일곱 재료를 쓴 보물 중의 보물이다. 내가 알기로 아르거스 역사를 통틀어서 이것과 비견될 지팡이는 손에 꼽을 것이다. 내 아이를 치료하는데 성공하면, 이 지팡이를 너에게 주마.]

“감사합니다. 기필코 살려내겠습니다.”

시혁은 정신을 집중했다.

감각이 확장되고, 강렬한 마나가 휘몰아쳤다. 오행 순환체가 시혁의 의식에 호응하며, 춤을 추듯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기본 장비인 현자의 지팡이와는 비교도 안 된다.

감탄하면서도 신중하게 치료를 시작했다.

우선은 환생부터.

지팡이에서 선명한 황금빛이 쏟아졌다.

시혁의 궁극기가 발현되는 것이다.

하늘이 열렸다.

열린 하늘을 통해 금색 찬연한 빛이 내리쬐었다. 그 빛이 시체를 비추자, 곧 시체에 생명이 돌아오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놔뒀다간 어린 생명이 또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조심스럽게 오행 순환체 하나를 주입했다. 멸종하는 용의 해독이 아니라, 수면 마법을 시전하게 만들었다.

“그르릉……”

새끼용이 금방 잠이 들었다.

아프긴 아픈 것 같았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눈에서도 시커먼 핏물이 자꾸 흘러나왔다.

무턱대고 오행 순환체를 투입하면 멸종하는 용에 밀려 금방 사그라질 것이다.

시혁은 통찰 마법으로 독이 적은 부위를 찾았다.

심장에 특히 집중되어 있었다. 그 밖에 내장과 근육도 완전히 절어 있는데, 상대적으로 뇌는 영향이 적었다.

실로 악독한 독이었다.

멸종하는 용을 만든 현자는 용을 굉장히 증오하는 인물인 듯했다. 뇌가 가장 마지막으로 침습되고 소멸된다는 것은,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죽을 때까지 겪어보라는 뜻 아니겠나.

그렇다면 역으로, 뇌에서 시작해야겠지.

오행 순환체를 집어넣었다. 귀속된 오행 순환체는 목에 배치하여 독의 유입을 막고, 새로 만든 오행 순환체를 뇌에 넣어 해독을 하게 했다.

치료는 순조로웠다.

뇌와 머리의 감각 기관에 있는 모든 독을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급속 치료를 통해 재생까지 시키자, 처참하던 모습이 용 특유의 위엄 있는 외모를 되찾았다.

[오오, 내 새끼……]

낫슈바켈이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땅이 울리자, 시혁이 주의를 주었다.

“낫슈바켈 님, 조용히 해주세요. 집중이 흐트러집니다.”

[알겠다. 가만히 있으마. 치료만 잘 해다오.]

효과를 눈으로 봐서일까.

어투가 꽤 누그러진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혁은 치료에만 전념했다.

바로 심장을 치기는 그렇다. 독이 사방에서 몰려와 오행 순환체를 압박할 수가 있으니까.

앞발로 내려갔다.

귀속 오행 순환체의 역할이 컸다. 다른 부위의 독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독을 해독하니, 독의 전체 농도 자체를 낮추는 역할도 했다.

앞발, 뒷발, 꼬리, 날개 순으로 해독을 했다.

이때쯤에는 귀속 오행 순환체만으로는 모자랐다. 한쪽 방향만 막는 게 아니라 아예 구 형태로 둘러싸야 했으니까.

별 수 없었다.

새끼용을 재우던 오행 순환체까지 동원했다. 그런 다음에야 내장 부위와 발과 날개, 꼬리 부분을 차단할 수 있었다.

“끄으응.”

그러자 새끼용이 깨어났다.

두 눈을 들어 주위를 살피더니, 낫슈바켈을 보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나 너무 아파.]

낫슈바켈이 눈물을 쏟았다.

[아가, 조금만 참으렴. 이제 다 나았어. 자, 여기 발 좀 볼래? 이제 깨끗해졌지? 이 인간이 곧 다 치료해줄 거야. 조금만 참아, 알았지?]

[응, 엄마. 나 참을 수 있어. 아파도 참을게.]

가슴이 울컥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세 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이런 독한 짓을 하다니……

< 적색 고룡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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