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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01화 (101/250)

< 각성 -1- >

우선 목욕부터 했다.

몸이 너무 더러웠으니까.

더구나 몸이 바뀌면서 밀려나온 피부가 꼭 뱀 껍질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걸 떼어내느라 때밀이 수건으로 몸을 벅벅 문질렀다. 목욕을 하는데 거의 3시간이 걸렸다.

침대보와 이불은 한데 싸서 한쪽에 놔두었다. 언뜻 보기에도 이미 가망이 없었다. 빨아서 쓰는 건 불가능하고, 버려야되지 싶었다.

목욕을 끝낸 후, 거울 속 자신을 확인했다.

“휘유! 멋진데?”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사실 시혁은 외모 면에서는 장점이 없었다.

키는 170센티미터에,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아랫배가 툭 튀어나왔다. 팔과 다리는 가늘기만 했다. 피부도 관리하지 않아 꽤 거칠었고, 얼굴도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고 기껏해야 평균 수준이었다.

그랬는데, 거울 속에 훤칠한 미남이 한 명 서 있었다.

복부에는 왕(王)자가 선명하고, 팔과 다리에는 적당하게 근육이 붙었고, 얼굴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변했다. 키도 커져 182센티미터가 되었다.

하지만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지.

시혁은 벌거벗은 채 욕실을 나섰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아르거스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히 특기가 9개, 특전과 특화가 3개, 속성은 복합 속성이고 궁극기는 환생이었지.

이중 얼마나 발휘할 수가 있을까?

지구에서는 아르거스보다 이능이 훨씬 더 약화되는데.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스스로의 이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대충 10레벨 대가 치료사와 비슷했다. 다만 아르거스보다 치료 효율은 나빴다. 아르거스에서는 침만 꽂아도 없던 팔이 재생되지만, 지구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일단 확실히 궁극기는 쓸 수가 없었다. 특기도 대부분 봉인되고, 영혼 회복 하나만 사용이 가능했다. 아르거스처럼 따로 쓰는 건 아니고, 이능을 발현하면 저절로 영혼 회복 효과가 따라온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했다. 수많은 정신과 질환 환자들은 물론, 의식이 청명하지 않은 환자에게도 쓸 수 있는 특기니까.

세 가지 특전도 적용되었다.

시혁에게는 기쁜 소식.

또 있었다.

무심코 아르거스의 마법을 써봤는데, 모두 이상 없이 시전 되었다. 그저 에테르만 휘두르는 다른 이능력자들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됐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8시였다.

슬슬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옷을 차려 입었는데 좀 짧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울에 전신을 비춰보았는데 역시 좀 어색했다. 몇 살 터울의 동생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 할까.

오늘 저녁에는 백화점에 가서 옷을 몇 벌 사야겠다.

아쉬운 대로 제일 긴 옷들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한의원 입원실로 직행했는데, 근무 중이던 주간 간호사들이 시혁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누구세요?”

“설마…… 원장님?”

하루 만에 인상이 바뀌어서 금방 못 알아본 모양이다.

시혁은 빙긋 웃었다.

“접니다. 벌써 몇 달을 같이 일했는데 못 알아보시면 어떻게 해요?”

“정말 원장님 맞아요?”

“너무 달라지셨는데……”

“혹시, 원장님 간밤에 각성하신 거예요?”

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말이 필요 없다.

간호사들이 금방 진실을 깨달았다.

꺅꺅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원장님 축하드려요!”

“우와, 혜미 쌤. 원장님 피부 좀 봐요. 완전 애기 피부야!”

“부럽다. 저도 이능력자가 되고 싶은데……”

“완전 대박!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얘기해야겠어요!”

간호사들을 진정시키고 회진을 돌았다.

환자들이 놀라면서도 기대하는 기색을 보였다. 발현자일 때도 시혁이 유일한 희망이다시피 했는데, 이능력자가 된 지금은 오죽하겠냐는 것이다.

시혁도 자신의 이능을 썩힐 생각이 없었다.

이능과 지식을 조합하면 환자들을 더 빨리, 더 완벽하게 치료하는 게 가능하다. 지금 입원해 있는 환자들부터 시혁의 손길을 받게 될 것이다.

회진을 마치고 외래로 내려왔다.

펑! 펑!

어디서 구했는지, 한의원 직원들이 폭죽을 터뜨렸다.

“원장님, 축하해요!”

“정말 대단하세요!”

“경사네요, 경사!”

시혁은 멋쩍게 웃었다.

한참 축하 인사를 받다가, 박희정이 궁금한 얼굴을 했다.

“원장님, 그런데 무슨 계열로 각성하셨어요? 강화 계열이나 저격 계열은 아니시죠?”

한편으로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시혁은 가만히 손을 들었다.

힘을 방출하자, 오색 찬연한 광채가 손 전체에 맺혔다.

한의원 직원들이 감탄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대단하네요!”

“색깔이 예쁜데, 무슨 계열이죠?”

“복합 계열인가 본데요?”

“아, 더블이니 트리플이니 하는 그거요?”

“제가 보기에는 치유 계열이나 보호 계열 같아요.”

“우와, 대박이네요!”

“의원급인데 이능력자가 계신 곳은 우리 한의원 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원장님은 무슨 등급이에요? 한 B급 이능력자만 돼도 대박이라던데……”

그들을 진정시켰다.

S급이 확실하지만, 아직 그걸 밝힐 수는 없었다.

대한이능협회 지부에 가서 이능력자 등록을 하는 게 먼저였다. 그 다음에야 S급이라고 밝히는 게 가능했다.

벌써 9시가 넘었다.

진료를 시작하고, 환자를 들어오게 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고창수였다.

예전에 소누스 콜라보르로 의식을 잃고 입원했던 고준택의 막내.

당시에는 전동 휠체어를 탔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혼자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녔다. 다만 전신이 아직도 둥글게 뒤틀려 있어 좀 기괴해 보였다.

오늘은 고준택과 함께 왔다.

둘은 꾸벅 인사를 했다.

“원장님, 이능력자 되셨다지요?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고창수는 아직도 말을 좀 더듬었다.

시혁은 고맙다고 하고 원장실에 놓인 침상을 가리켰다.

“자, 침대 위로 올라가세요.”

둘이 몸을 움찔했다.

지금까진 상태만 확인하고 돌려보내곤 했다. 약은 택배로 보내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누우라고 하니 좀 이상했나 보다.

시혁은 넉넉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제가 각성한 날이라 특별히 이능 치료 서비스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이거 한 방으로 낫진 않겠지만 많이 좋아지실 겁니다.”

“아휴, 그럼 얼른 누워야지요. 창수야, 뭐하냐. 원장님께 얼른 감사하다고 해야지!”

“감사……감사합니다.”

고창수가 천천히 침상으로 올라가 누웠다.

시혁은 밖에 대고 소리쳤다.

“선생님! 여기에 황련해독약침 좀 가져다주세요! 아, 침이랑 뜸도 같이요!”

“네 원장님!”

민수진이 대답하는 게 들렸다.

잠시 후 곡반에 약침 몇 개와 침 몇 봉, 미니뜸과 알코올 솜, 권총 형태 라이터를 담아 가지고 왔다.

누워 있는 고창수에게 눈인사를 보내더니, 의아한 얼굴을 했다.

“원장님, 여기서 치료하시게요? 지금 치료실 비어 있어요.”

“아, 오늘 각성한 기념으로 이능 치료 무료로 해드리려고요. 5분도 안 걸려요.”

“진짜요? 하긴 그것도 좋겠네요. 언제까지 하시려고요?”

“일단 오늘만 하는 것으로 하죠. 내일부터는 비급여로 치료비를 받고요. 내일도 했다간 감당을 못 할 거예요.”

“환자들이 좋아하겠네요. 알겠어요.”

그러면서도 원장실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다. 계속 얼쩡거리는 게, 시혁의 치료 장면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뭐, 용인 못 할 일은 아니다.

시혁은 약침을 세 개 집어 들었다.

힘을 주입했다.

녹색이 아닌 청색 빛이 감돌았다.

그 힘이 약침 안으로 깃들었다. 보호의 힘이 태어나, 약액 자체가 신묘한 빛을 뿌렸다.

보고 있던 민수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혁은 약침을 고창수의 아문(啞門)혈과 양쪽 견정(肩井)혈에 각각 자입했다. 청색 보호의 힘이 발동하자, 고창수가 시원하다며 신음 소리를 냈다.

다음으로 쓴 것은 뜸.

라이터를 쓰지도 않았다. 손에서 불을 뿜었다. 그렇게 한 차례 정화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침을 놓았다.

세 가지 종류의 이능을 쓴 셈.

이능 치료를 해주자, 고창수의 상태가 확연히 좋아졌다.

뒤틀려 있던 관절들이 정상에 가깝게 돌아갔다. 신기한 듯 손을 드는데, 그래도 별로 아프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나도 안 아파요.”

말도 또렷해졌다.

시혁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처방할 약에는 제가 이능을 좀 부여할 겁니다. 다른 분들이 드시지 않게 조심하세요.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예, 원장님.”

“이제 한두 번만 더 오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이능력자가 되어서 치료 기간이 짧아졌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원장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도 치료해주시고, 우리 막둥이도 치료해주시고……”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조심히 가시고, 2주 후에 뵙겠습니다.”

“예, 원장님. 건강하세요.”

둘이 인사를 하고 나갔다.

시혁은 컴퓨터에 처방을 입력했다. 기존 처방과 비슷하긴 한데, 이능을 부여하는 것을 감안해 약간 변형시켰다.

민수진이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시혁을 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고, 민수진을 돌아보았다.

“과장님,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세요?”

“네, 원장님.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말씀하세요.”

“원장님은 색깔별로도 이능을 따로 쓰실 수 있으세요? 아까 보니 청색 힘도 쓰시고, 불도 쓰시던데……”

“네, 전 다섯 가지 종류의 이능을 쓸 수 있어요. 한 번 보실래요?”

시혁은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몸 안의 에테르를 정교하게 조절했다.

아르거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조절 능력 하나는 최고봉이다. 게다가 기억을 잃지 않아 그 능력을 고스란히 쓸 수 있었다.

오색 광채가 뿜어졌다.

엄지는 녹색, 검지는 적색, 중지는 황색, 약지는 백색, 소지는 청색.

민수진이 그걸 보고 입을 벌렸다.

“원장님은 그럼 펜투플 이능력자에요?”

“아닐 걸요? 이능력자 분류는 다루는 에테르 종류로 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등급 측정을 받아봐야 알 겁니다.”

환자들이 계속 들어왔다.

대부분 괴수 질병 환자였다.

이능 치료가 독이 되는 환자 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능 치료를 해주었다.

사실 거의 전부.

다른 치유 계열 이능력자가 치료 못 하는 병도 시혁이 치료할 때가 많았다. 그들처럼 무식하게 에테르를 때려 박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게 아니니까. 다섯 속성을 조합하면, 대부분의 괴수 질병을 치료하는 게 가능했다.

대신 좀 힘들긴 했다.

오전에 환자들을 많이 봤더니 진이 다 빠졌다.

시혁은 원장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후, 힘드네.”

그래도 여력은 남겨두었다. 오전 진료가 끝이 아니고, 오후 진료와 입원 환자 치료도 남아 있으니까.

“원장님, 손님 오셨어요.”

손님?

누군가 했더니 누리 공격대의 이능력자들이었다.

강찬, 신아영, 김미애, 한세훈.

시혁이 따로 말을 하진 않았는데,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선물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원장님 얼굴이 환해지셨네요?”

“다른 것도 아니고 치유 계열 이능력자시라면서요?”

“이능력자에, 발현자에, 한의사에…… 원장님이 너무 많은 걸 갖고 계신 거 아니에요? 재능 좀 나눠주고 그러세요.”

“하하하, 어서들 오세요.”

점심시간이니 밥을 한 끼 대접했다.

식사를 하면서, 강찬이 기대된다는 얼굴로 시혁을 보았다.

“원장님은 언제 등급 측정 받으실 생각입니까? 기왕이면 빨리 받으시는 게 여러모로 좋을 텐데요.”

“글쎄요. 한의원이 6시까지라 근무시간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주말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등급 측정은 간단한데요. 음, 한의원에서 검사하시면 어떻습니까? 저번에 에테르 파동이 2겹 나왔으니까 원장님께서는 A급 이상의 이능력자일 가능성이 높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 이번엔 오송까지 갈 필요가 없나 보죠?”

“이능력자 측정이 발현자 검증보다 더 쉬우니까요. 그냥 이능만 한 번 발휘하면 끝 아닙니까? 그래서 협회에서 전담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손해 볼 것은 없다.

시혁은 당장 승낙했다.

점심시간은 짧았다. 그저 얼굴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한의원 직원들은 간단히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고 했다. 법인 카드로 긁었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자기들끼리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더니 시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원장님, 이능력자도 되셨는데 한 턱 내셔야 하지 않아요?”

“돈도 많이 버시면서!”

어려울 것 없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요. 조만간에 한의원 회식 한 번 합시다. 요 앞에 명성원 있지요? 거기 어떻습니까?”

“찬성!”

“완전 좋아요!”

“선생님들끼리 날짜 한 번 정해보세요. 최대한 많이 참가할 수 있게요. 전 저녁에는 별 일 없으니까 선생님들이 정한 날짜에 참석하겠습니다.”

< 각성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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