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96화 (96/250)

< 쌍둥이 -2- >

회색 피부가 건강한 갈색으로 바뀌었다. 머리칼은 검어지고, 눈동자도 황갈색으로 변했다. 딱딱하던 얼굴도 풀려서, 이제 비로소 사람을 보는 듯했다.

박주호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기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더듬더니, 힘껏 만세를 불렀다.

“만세! 살았다!”

그러더니 시혁에게 달려들어 와락 껴안았다.

질겁하여 밀어내려 했지만, 박주호가 펑펑 우는 통에 그러지도 못했다.

하긴 얼마나 무서웠겠나.

잘 자고 일어났더니 몸은 괴상하게 변해 있고, 동료들이 자신에게 총을 겨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엉뚱한 곳에 끌려나와 제압 당해야 했다.

시혁은 겨우 박주호를 진정시켰다.

“박주호 님,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쌍둥이가 있다면서요? 그 분도 해결을 해야 됩니다.”

“아, 수호 이 녀석!”

박주호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둘을 만나게 하면 좋지 않을 듯했다. 박주호는 막사에 앉혀놓고, 이능력자들고 함께 다른 막사로 이동했다.

이미라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장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인간형 괴수는 원래대로 못 돌아오는 거 아니었어요?”

시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인간형 괴수가 아니라, 발현자입니다.”

“발현자라고요?”

그 말에 이미라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 놀랐다.

시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변신 능력을 가진 발현자입니다. 천왕봉의 에테르에 자극을 받아 능력이 발현된 것 같습니다.”

“진짜요?”

“말도 안 돼.”

“그럼 우리가 생사람을 잡을 뻔한 겁니까?”

이능력자들이 몸서리를 쳤다.

가장 강경하게 나왔던 장현도 얼굴을 굳혔다. 슬그머니 단검을 집어넣고, 괜히 딴청을 부렸다.

김중걸이 이마에 난 땀을 훔쳤다.

“으으, 사살 명령을 내렸으면 난……”

잠자코 그들이 냉정을 되찾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진정하자, 그들을 재촉하여 다음 막사로 갔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르니까.

다행히 박수호는 얌전히 제압되어 있었다.

박주호에게 그러했듯, 모든 힘을 땅으로 흘려보내게 했다.

효과가 있었다.

원래 상태로 돌아오자, 박수호를 결박하고 있던 군 소속 이능력자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늙수레한 원사 하나가 박수호의 등짝을 때렸다.

“이놈아! 새벽 댓바람부터 깜짝 놀랐잖아!”

격의 없는 어조.

하긴 같은 연대 소속이니 안면이 있을 것이다.

박수호가 어깨를 움츠렸다.

“제가 어디 그러고 싶어서 그랬습니까? 원사님 못 주무신 건 저 위에 계신 분한테 가서 따지십시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더니 능글맞게 웃기까지 한다.

쌍둥이라더니, 성격은 좀 다른가 보다.

일단 이것으로 큰 문제는 해결을 했다.

박수호를 이끌고 박주호가 있는 막사로 돌아왔다. 둘이 만나면 한 가지 현상이 일어날 텐데, 그것까지 확인하면 대강 끝이 난다.

이윽고 둘이 마주했다.

박주호와 박수호, 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표정이 사라졌다.

쌍둥이의 눈동자가 회색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원래대로 돌아가고, 또 회색으로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했다.

지켜보던 이능력자들이 웅성거렸다.

쌍둥이들도 몸을 벌벌 떠는 게 꽤 놀란 듯했다.

시혁은 박수를 쳐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서로를 외면하고, 다른 곳에 정신을 집중하세요.”

쉽지는 않았다.

둘은 영적으로 연결된 상태.

쌍둥이이기에 그 결합이 공고했다. 막 능력이 발현한 상태라 더욱 그렇고.

궁리를 하다가 좋은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이미라와 채현애를 불러다가 막사 양쪽에 세웠다. 둘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시혁이 이끄는 데로 따라왔다.

시혁은 쌍둥이에게 말했다.

“박주호 님은 여기 키 큰 여자분 보시고, 박수호 님은 저기 안경 낀 여자분 보세요. 어때요, 미인이시죠?”

“네, 정말 미인이십니다.”

“혹시 남자친구 없으세요? 잘 해드릴 수 있는데.”

둘은 금방 관심을 보였다.

얼굴에 표정이 살아나고, 눈동자도 갈색이 되었다.

역시 군인은 군인이다.

치마만 둘렀어도 눈을 못 뗄 판이다. 그런데 어지간한 연예인 뺨 칠 이능력자들이 앞에 서 있으니 정신 못 차리고 집중하는 게 당연했다.

이미라와 채현애가 어이없어 했다.

“이런 걸로 변신이 풀려요?”

“무슨 미인계도 아니고……”

어쨌든 확인이 끝났다.

시혁은 쌍둥이를 등을 돌린 채 앉게 했다. 그들의 앞에 서서, 지금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제가 볼 때, 두 분은 변신 계열 발현자가 된 것 같습니다.”

“발현자요?”

“발현자요?”

쌍둥이가 똑같이 대답을 했다.

그러자 또 눈동자가 회색으로 변해서, 시혁은 혀를 쯧쯧 찼다.

아예 둘을 분리했다.

박수호는 직속 상관 중 대대장과 같은 막사에 들여놓았다. 박주호에게만 먼저 설명을 해주기로 했다. 동일한 내용을 들으면 둘의 영이 통해서, 계속 변신하는 것 같았으니까.

“본인이 느꼈다시피, 어떤 계기를 통해 변신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천왕봉에 있는 종류의 에테르를 흡수하거나, 동생분과 의식을 일치시키는 게 방법이 되겠지요.”

“변신하면 괴수가 되는 겁니까?”

“아뇨. 이능력자라고 생각하시는 게 맞겠습니다. 발현자는 발현잔데, 이능력자로 변신할 수 있는 발현자지요.”

“이야.”

“대단하네요.”

듣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감탄했다.

이미라가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까 제가 느끼기에는 대충 B급 이능력자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아무 때나 변신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단, 변신에 필요한 에테르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아까 눈동자만 변하는 거 보셨죠? 에테르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충전을 해야 되나 보네요?”

“맞습니다.”

“선생님, 그럼 전 평소에는 괜찮은 겁니까?”

박주호가 그런 질문을 했다.

변신이나 능력은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

하기야 방금 전 목숨의 위협을 느꼈던 처지다. 그게 가장 궁금할 것이다.

“글쎄요? 그건 제가 아니라 현애 씨가 대답하는 게 낫겠네요. 현애 씨. 어떻습니까?”

“네? 잠깐만요.”

갑작스런 호명에 채현애가 깜짝 놀랐다.

그것도 잠깐. 곧 눈을 푸르게 빛내며 박주호를 응시했다.

방금 전만 해도 이미라와 채현애를 훔쳐보던 박주호였는데, 그 기괴한 광경에 슬며시 머리를 틀어 외면했다.

곧 채현애의 눈에서 청색 광채가 사라졌다.

“신기하네요. 아주 미약한 에테르 파동이 보이긴 하는데 그것 말고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어요.”

“에테르 파동이라, 발현자들에게 보이는 것 말씀이시죠?”

“예. 그런데 좀 특이하네요. 파동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하루 정도 지나면 B급 이능력자 정도가 되겠는데요?”

“에테르가 저절로 충전되나 봅니다. 한 번 변신하고 얼마나 지속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상당히 유용한 능력이네요.”

확실한 것은 쌍둥이가 인간형 괴수가 아니라는 점.

채현애까지 확인을 해주었으니 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중걸이 박주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박주호 일병이라고 했지? 발현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박주호를 내보내고, 박수호를 안에 들어오게 했다.

똑같은 설명을 다시 할 필요는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박수호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하는 것이다.

“선생님, 저 발현자 된 거 확실하죠? 하루에 1번 변신할 수 있고요?”

영혼이 연결되어 있으니 밖에서도 다 들었나 보다.

시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확실합니다.”

그러자 박수호가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고생 끝, 행복 시작이구나!”

시혁은 그저 웃고 말았다.

이능력자만은 못 해도, 변신 계열 발현자라면 할 일이 많았다. 게다가 둘은 영혼이 연결된 쌍둥이 아닌가. 서로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으니, 발현자 중에서는 최상급이라고 봐야 했다.

장현이 김중걸을 보며 말했다.

“연대장님. 두 발현자의 신병을 인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모든 상황이 밝혀진 게 아니니, 날이 밝는 대로 이능력자 관리청으로 데리고 가서 발현자 검증을 하고 싶습니다.”

변신 계열이면서 강화 계열이니, 그냥 놔두기는 걱정이 되었나 보다.

김중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두 장병도 발현자 검증을 빨리 받는 게 좋겠지요. 지금 데려가실 겁니까?”

“예, 일단 주둔지로 데려가는 게 좋겠습니다. 협회장님께도 보고를 드리고요.”

“그렇게 하십시오. 아, 저희 쪽에서도 이능력자 한 명을 참관시키겠습니다. 괜찮지요?”

“물론입니다.”

황문식 대위라고, C급 이능력자가 따라붙었다.

결론을 짓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공기가 바뀌었다.

도착할 때만 해도 터질 듯한 긴장감이 부대 전체에 내려앉아 있었다. 이제는 180도로 반전되었다.

군인들이 쌍둥이의 머리를 두들겼다.

“얌마, 축하한다!”

“발현자 됐다며?”

“이 새끼, 새벽부터 놀라게 하고 말이야!”

“대역죄다, 대역죄! 선임을 놔두고 발현자가 돼? 죗값은 소개팅으로 갚아라!”

쌍둥이는 그들이 구박하는 걸 웃으며 받아들였다.

헬기에 올랐다.

주둔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손문철이 이들을 맞이했다. 충장 부대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듣고, 쌍둥이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발현자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지요? 일단 좀 쉬시고, 몇 시간 후 이능력자 관리청에 가서 발현자 검증을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둘은 감격한 얼굴로 손문철의 제안을 따랐다.

시혁은 입을 가리고 하품을 쩍쩍 했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능력자들을 치료하고, 군부대에 다녀오는 동안 하룻밤을 꼴딱 샌 것이다.

손문철이 그런 시혁을 불렀다.

“원장님?”

“네? 무슨 일이세요?”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많이 피곤하십니까?”

솔직히 꽤 피곤했다.

이능력자들이야 생생하지만, 시혁은 어쨌든 일반인이니까.

하지만 잔뜩 굳어 있는 손문철의 얼굴을 보니, 나는 지금 피곤하니 쉬겠노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품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바로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럼 잠시 걸을까요?”

“좋지요.”

다른 사람들은 주둔지로 들어가고, 시혁과 손문철만 밖을 거닐었다.

천왕봉이 가까이 보이는 쪽으로 왔다.

여전히 회색의 빛을 점점이 뿌리고 있었다.

손문철이 걸음을 멈췄다.

도대체 뭘 말하려고 여기까지 온 걸까?

“원장님. 천왕봉을 부셔야 프네우마 디스파라투스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예, 맞습니다.”

“난감하네요.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손문철은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어째서인지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손문철이 신중하게 주머니를 개봉했다.

회색의 가루가 보였다.

훅, 하고 에테르가 진하게 흘러나왔다.

이능 보호 반지를 끼고 있지 않았더라면 위험했을 정도의 양.

금방 그 정체를 깨달았다.

“이거 천왕봉에서 나온 겁니까?”

“예. 시험 삼아 제 이능으로 으깨 봤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능력자들도 마찬가지고요. 불로 태워도, 전기로 지져도, 소멸 이능으로 없애도 이런 식으로 다량의 에테르를 함유한 회색 가루는 남았습니다.”

난감한 일이다.

에테르가 남으면 천왕봉을 부수는 보람이 없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지금처럼 출입 통제를 하는 것만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기가 불가능하니까. 지리산 근처 지역으로 에테르가 퍼져 나와, 정말로 인간형 괴수가 출현할 수도 있었다.

손문철이 주머니를 회수하며 말했다.

“지금 참 곤란한 상태입니다.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무턱대고 부술 수도 없고…… 혹시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시혁이라고 해도 별 수 없는 문제였다.

아르거스에서는 영혼 구덩이를 부수기만 하면 끝이다. 에테르가 퍼지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상황이 다르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말없이 천왕봉만 쳐다보았다.

그러고 있으려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탄성을 지르자, 손문철이 급히 시혁을 돌아보았다.

“좋은 생각이 나신 겁니까?”

“잠시만요. 생각 좀 정리하고요.”

시혁은 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모호하던 것이 점차 뚜렷해졌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한 가지 계획을 그릴 수 있었다.

발을 멈췄다.

손문철과 눈을 맞췄다.

기대에 찬 시선이 쏟아졌다.

입을 벌려, 그 기대를 한껏 채워주었다.

< 쌍둥이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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