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누스 콜라보르 -2- >
보호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만든 치료법은 비단 소누스 콜라보르 환자에게만이 아닌, 다양한 환자들에게 쓸 수 있겠다는 것.
영혼이 완전히 떠난 상태라면 소용없겠지만, 전 세계의 모든 식물인간 환자들이 다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겠나.
새삼 어깨가 무거워졌다.
준비해 온 것들을 빈 침상에 내려놓았다.
보호자들은 어딜 가지 않고 다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북적거려서, 시혁은 그들에게 잠시 나가 있을 것을 요청했다.
“지금부터 치료 시작할 테니 한 분만 남고 나가주세요.”
잠시 웅성거렸지만, 이내 시혁의 말에 응했다.
장남만 남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원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버지 좀 꼭 살려주세요.”
“휴게실에서 커피라도 한 잔씩 하고 오세요.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제 조용해졌다.
시혁은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굉장히 긴장이 되었다.
아르거스에서 검증해 본 것도 아니니까.
오늘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르거스에서 재도전을 해봐야 할 것이다. 지식의 전당이 아닌 진리의 탑으로 들어가서, 생체 실험이라도 해야겠지.
“시작하지요.”
“네, 원장님. 뭐든지 시켜주세요.”
“선생님은 이거 환자 귀에 대고 불어주시고요. 한 번 불면 3분 정도는 자기 혼자 소리를 내니까, 계속 부실 필요는 없어요. 이건 코에다 대서, 계속 맡을 수 있게 해주시고요.”
“네, 알았어요.”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혹시라도 가볍게 생각할까 싶어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쉽다고 실수하진 마세요. 작은 실수 하나가 치명적입니다.”
“조심할게요. 걱정 마세요.”
먼저 향부터 댔다.
아주 옅은 향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맡아야 간신히 분간할 수 있었다. 다만 종잇조각을 길게 말아 꽂아놓아서, 언제든 불을 붙이는 게 가능했다. 나중에 혹시 뜨거워질까 봐 작은 바구니를 이용했다.
다음은 소라 고동.
막내 간호사가 환자의 귀에 소라 고동을 대고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아주 낮은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효과가 있는 걸까?
환자의 눈썹이 움찔하고 떨렸다.
아무 반응도 없던 때보다는 고무적인 움직임.
시혁도 나섰다.
사금파리를 넣은 펜라이트를 환자의 눈에 비췄다. 양쪽 눈에 번갈아 비추는데, 그저 동공만 커졌다 작아졌다 할 뿐이었다.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시혁은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영혼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소경 밤길 걷듯 무턱대고 손만 휘저어대는 것이다.
어쩌겠나.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준비해 온 것을 모두 해봐야지.
금박에 싼 환을 환자의 입에 넣었다.
자칫 기도로 들어가지 않게 환자의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그 상태에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차이가 있다면 향을 넣은 병에 넣어둔 종이를 이용, 불을 피워 향을 더 강하게 했다는 것 정도이다.
시혁의 계산에 따르면 작은 플라스틱 병 3개를 다 태울 동안 환자가 일어나지 않으면 무소용.
그때는 아르거스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이미 닷새가 지난 시점일 테니 가능성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별 수 있나.
2개를 태우고 3개째로 접어들었다.
김유하가 남은 가루의 양을 가늠하더니 시혁을 보았다.
“원장님, 이게 마지막일 것 같아요.”
“예. 알고 있습니다.”
고준택의 장남이 보고 있었다. 시혁은 말을 아꼈다.
실패를 각오했다.
여태껏 깨어나지 못했다는 건 실패했다는 말 아니겠나.
뭘 놓친 걸까?
시혁이 곰곰이 생각에 잠길 무렵, 기다리던 반응이 일어났다.
눈동자가 움직였다.
얼굴을 찌푸리더니, 빛을 피해 눈동자가 움직이는 현상을 보였다.
시혁은 잠깐 손을 멈칫했다.
잘못 본 것 아니지?
분명했다.
다시 펜라이트를 눈 가까이 들이댔다.
확연히 눈동자가 움직였다. 단순히 동공 반사가 아니었다. 얼굴 근육까지 꿈틀거려서, 옆에 있던 김유하도 그것을 목격했다.
김유하가 짧게 소리를 질렀다.
“효과가 있나 봐요!”
시혁은 왼쪽 손을 불쑥 환자 입에 집어넣었다.
보고 있던 장남이 화들짝 놀랐다.
무시하고,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입에 물린 환을 깨뜨렸다.
그 안에서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지독하게 쓰고 강렬한 맛을 자랑하는 액체다.
환자가 몸을 떨더니 캑캑거렸다.
“우엑, 이게 뭐야! 켁! 켁켁!”
잠든 영혼을 깨울 정도로 맛이 굉장했나 보다.
장남이 급히 달려들었다.
“아버지! 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끄응, 경준이냐? 여기 어디냐?”
“아버지 노파 산삼 캐다가 기절하셨어요. 그게 벌써 이틀 전이라고요. 기억 안 나세요?”
“으음…… 맞아, 그랬었지. 여긴 어디냐?”
“병원이에요.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고요!”
장남이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시혁은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감추느라, 고개를 살짝 돌렸다.
치료에 썼던 물건들을 가지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장남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보호자들이 초조한 얼굴로 병실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원장님, 어떻게 됐나요?”
시혁은 웃으며 손짓을 했다.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그 말이 뜻하는 바는 아주 자명했다.
보호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곧 통곡이 터져 나왔다.
슬픔과 절망이 아닌, 기쁨과 희망으로 범벅이 된 외침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자던 다른 병실 환자들까지 고개를 내밀고 601호를 살폈다.
시혁은 간호사 스테이션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확 풀렸다. 덩달아 잊고 있던 피로가 몰려왔다. 지금껏 의식하지 못했는데, 몸이 아주 천근만근이었다.
김유하가 시혁의 어깨를 주물렀다.
“원장님, 고생하셨어요. 많이 힘드시죠?”
“힘들기는요. 선생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쉬지는 못했다.
601호 문이 열리며 고준택 환자의 보호자들이 쏟아져 나온 까닭이었다.
시혁을 둘러싸고 저마다 감사인사를 했다.
특히 전동휠체어를 탄 보호자까지 고통을 참아가며 고개를 숙였다. 시혁은 그러지 말라고 급히 손사래를 쳤다.
한 바탕 소란이 지나갔다.
벌써 밤 12시.
시혁은 보호자들을 진정시켰다. 다른 환자들은 이미 수면을 취할 시간이었으니까.
앞으로 계획을 설명했다.
“고준택 님은 당분간 정양하셔야 합니다. 내일 아침만 되도 몸이 멀쩡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절대 퇴원은 안 됩니다. 최소한 2주 동안은 입원해 계셔야 합니다.”
고준택이 뭔가 말을 하려는데, 장녀가 얼른 그걸 가로막았다.
“예, 원장님. 원장님 하라는 대로 할게요. 아버지도 다른 생각하지 말고 치료 잘 받아요.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흠,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몸은 괜찮아도 영혼이 안 괜찮습니다. 이제 절대 노파 산삼 비명에 노출되시면 안 됩니다. 다음에는 저도 치료하지 못합니다.”
듣고 있던 시혁이 참견을 했다.
고준택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결합되었으니까. 사실 일상생활도 가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양이 필요했다. 노파 산삼만이 아니라, 여타 영혼 계열 괴수들에게 취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에 악몽의 재와 황금 풀, 노파 산삼을 섞어 만든 향을 피워놓는 게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퇴원시켰을 때 또 노파 산삼을 캐려 들지 않을까염려스러웠다.
시혁은 환자 본인은 물론, 보호자들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앞으로는 무방비한 상태로 노파 산삼 캐지 마세요. 그러다 정말 큰일 납니다. 오늘은 운 좋게 치료에 성공했습니다만, 앞으로도 항상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보호 계열 이능력자 찾아가서 보호 이능 받고 노파 산삼을 캐세요. C급이어도 괜찮습니다.”
“보호 이능이요?”
“예. 그거 받으면 하루에 노파 산삼 수백 뿌리를 캐든, 수천 뿌리를 캐든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위험하고 번거롭게 한두 뿌리씩 캐지 마시고, 차라리 날 잡아서 보호 이능을 받은 다음 가지고 계신 인삼밭에 노파 산삼을 싹 뽑으세요.”
“아, 그러면 됩니까?”
“그런 줄 어쩐 줄도 모르고 생으로 뽑았으니……”
괴수 질병의 가장 큰 문제점이 그거다.
무지.
이능력자들은 무턱대고 이능부터 쓰고 본다. 일반인들은 괴수 질병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는다.
생각해 보면 단순히 치료법만 알아내 알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괴수 질병,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다음날, 시혁은 교룡대학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서도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전화를 받은 서혜리 과장이 크게 놀랐다.
[고준택 님이 깨어나셨다고요?]
[예. 늦지 않게 보내주신 덕에 치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네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괜히 유명하신 게 아니에요.]
[하하, 그렇습니까? 하여튼 앞으로 이런 경우가 또 있으면 제 한의원으로 보내주세요. 백이면 백 다 낫는다고 장담은 못 합니다만, 다른 곳보다는 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환자 몇 명이 더 있는데, 얼른 원장님 한의원으로 보내야겠습니다.]
시혁은 말 안에 담긴 내용을 놓치지 않았다.
[더 있다고요?]
[예. 아무래도 금산에 노파 산삼 자생지가 있는 모양입니다. 무턱대고 캐지 말라고 홍보는 하고 있는데, 이거 힘드네요.]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캘 때마다 쏠쏠하게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시혁은 보호 이능을 받고 캐라고 홍보할 것을 주문했다. 이능과장이 알았다곤 했지만 회의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관공서도 아니고, 일개 대학병원의 홍보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금산 보건소에 공문이라도 보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 강찬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찾았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강찬이 소리를 질렀다.
시혁은 금방 말뜻을 알아들었다.
[역병 늪이 있던가요?]
[예. 진악산 계곡에 숨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협회에는 이미 보고했고, 곧 임시 공격대 연합을 구성해서 공격할 예정입니다.]
[조심하세요. 쉬운 놈이 아닙니다.]
[예. 멀리서 보기에도 무시무시하던데요? 그래도 협회장님도 직접 오신다고 하셨으니, 무난하게 성공할 거라고 봅니다.]
[협회장님이 G급이셨죠? 그럼 쉽겠네요. 그렇다고 방심하진 마세요.]
[어휴, 당연하죠. 가장 약한 괴수를 잡을 때도 까딱하면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절대 방심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며칠 후, 뉴스를 통해 충청남도 금산군에 잠복해 있던 거대 부정형 괴수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는 소누스 콜라보르 환자가 더 오지도 않았다. 처음에 몇 명 온 게 다였다.
아무래도 교룡대학교 병원에서 잘 대처를 하는 듯했다. 금산 보건소에 소누스 콜라보르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서 보냈더니, 농민들에게 보건 교육을 해서 발병율도 줄어들었고.
시혁은 적잖이 마음을 놓았다.
처음 걱정했던 것보다 피해가 적었기 때문이다.
고준택도 퇴원을 했다.
하지만 한의원을 떠나지는 않았다. 시혁의 권유 때문이었다.
“막내 아드님이 괴수 질병을 앓고 계신 것 같은데, 저희 한의원에서 치료하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이쿠, 원장님. 절 치료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저희 막둥이까지……”
거절하지 않았다. 고준택의 가족들도 그랬다. 시혁의 권유를 듣는 순간 반색하며 고준택의 막내, 고창수를 입원시켰다.
치료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최근 노파 산삼을 팔아 번 돈이 꽤 되어, 충분히 감당했기 때문이다.
치료는 시간이 좀 걸렸다.
약 한 달.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아졌다.
뒤틀렸던 관절들이 정상에 가깝게 돌아갔다. 아직 근력이 부족해 부축을 받아야 하지만 걷기도 할 수 있었다. 혼자 밥도 먹고, 화장실도 다녀오는 등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그걸 보고 고준택과 그 부인이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합니까?”
“이제는 정말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어휴, 죽기는요. 좋은 날만 남았는데요. 조심히 가시고, 2주에 한 번씩 오시는 거 잊지 마세요. 고준택 님은 괜찮은데, 고창수 님은 꼭 외래 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시혁은 고준택 일가를 떠나보냈다.
가면서 시혁에게 몇 번이나 절을 했다. 고창수도 아직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절을 하려고 해서 겨우 말렸다.
한의원 문이 닫혔다.
고준택 일가가 그 너머로 사라졌다.
시혁은 부드러운 얼굴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소누스 콜라보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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