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라 >
2016년 10월 24일 월요일.
이미라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날이다.
원래는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약속을 잡으려고 했는데 늦어졌다. 이미라가 몽마들을 잡느라 하도 바빴기 때문이다.
정확히 6시에 한의원을 나왔다. 오늘도 환자들이 몰려들어 힘들었다. 최근에는 괴수 질병 환자가 일반 환자보다 더 많이 오는 듯했다.
“원장님 퇴근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했어요. 퇴근들 하세요.”
시혁은 간호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박희정이 따라붙었다.
“원장님, 오늘은 집에 가세요?”
“네. 가야죠.”
“집들이는 안 하세요?”
“에이, 겨우 20평짜리 오피스텔 가지고 무슨 집들이에요. 나중에 아파트 산다면 모를까.”
“그래도요.”
“한의원 직원이 지금 15명인데 절반만 들어와도 꽉 찰 걸요? 힘들어요.”
“쳇, 알았어요.”
박희정이 입을 삐죽였다.
그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하세요? 오늘도 밖에서 드세요?”
“아, 오늘은 약속 있어요.”
“정말요? 누구랑요?”
그건 왜 묻는담?
한 마디 할까 생각하는데, 마침 저 앞에서 이미라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주 쫙 빼 입었다.
붉은 미니스커트에 흰 나시티가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하이힐을 신어서 그런지 각선미가 더욱 도드라졌다. 지나가는 남자들마다 이미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원장님! 여기에요!”
이미라가 시혁에게 손을 흔들었다.
박희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이미라 님이랑 식사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게 됐어요.”
이미라가 둘을 향해 다가왔다.
시혁의 옆에 서 있는 박희정을 보더니, 눈가를 좁히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박 원장님 아니세요? 오늘 박 원장님도 오세요?”
굉장히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희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퇴근하면서 원장님이랑 같이 나왔어요. 두 분이 데이트하시나 봐요?”
그 말에 이미라의 얼굴이 풀렸다.
“호호, 데이트는요. 제가 신세진 것도 있고 해서, 식사 한 끼 대접하려는 거예요.”
“그래요? 그럼 불청객은 빠져드릴게요. 원장님, 데이트 잘 하고 오세요!”
박희정이 잘 해보라고 주먹을 흔들었다.
이제 둘만 남았다.
시혁은 습관처럼 인사를 건네려다 멈칫했다.
실수로 아르거스의 이야기를 할 뻔 했던 것이다. 대신 얼른 표정을 수습하며 일상적인 인사만 했다.
“안녕하세요, 미라 씨.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네요.”
“호호, 그래요? 신경 좀 썼어요.”
이미라가 입을 가리며 조신하게 웃었다.
아르거스에서 보던 모습과는 퍽 다른 모습이었다. 광폭화시키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고, 그렇지 않을 때도 호탕하게 웃곤 했으니까.
근처에 대 놓았던 이미라의 차에 얻어 탔다.
시혁도 면허를 따긴 따야 할 텐데……
차를 운전하면서, 이미라는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래서 어쨌는지 알아요? 글쎄, 야옹거리면서 도망치려는 걸 겨우 잡아서 꺼냈다니까요? 그때는 정말 제 손보다 작았는데, 이젠 완전 돼냥이가 됐어요. 잡아서 안으려고 하면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요.”
자기가 기르는 애완동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고 했다. 넷 다 분양 받은 게 아니라 길거리에서 구조한 동물이라던가.
아르거스에서 열흘 넘게 붙어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면모였다. 시혁은 내심 신기해하면서도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시혁도 동물을 키우는 것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둘은 광주 농성동에 위치한 한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김 모 전 대통령도 식사를 한 적이 있다는 유명한 집이었다.
이미라가 시혁을 보며 싱긋 웃었다.
“저번에는 정말 감사했어요. 원장님 덕분에 무난히 일을 끝낼 수 있었어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건데요.”
“그래도 원장님 덕분에 정말 큰일을 넘겼잖아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배가 부르기라도 했으면 정말 저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저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죠. 이번에 몽마들 추격하면서 안 건데, 피해자 중에 어린애들이 많더라고요.”
“그럴 겁니다. 몽마는 처녀만 공격하니까.”
“맞아요. 주로 중학생이랑 고등학생이고, 많아도 스물 정도였어요. 다들 생리가 늦어지는 것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임신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더라고요.”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나올 거라고 누가 상상하겠습니까? 몽마가 그래서 무섭지요. 그나마 우리나라는 방송과 통신이 발달해서 다행입니다. 일단 알려지니까 금방 잡히잖아요.”
“그건 그래요.”
한동안 몽마 관련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마 후 음식이 나왔다.
화려하고 맛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고급 횟감이 나왔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며 시혁이 부담스러워 하자, 이미라는 이 정도 살 능력은 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회를 다 먹고, 그 다음으로 나온 초밥을 즐겼다.
이미라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참, 원장님. 요새 전라도 지역에 괴수 출현이 줄어든 거 아세요?”
“그래요? 전 병원에만 있다 보니 잘 몰랐습니다.”
“전라도 지역 괴수는 원래 다도해랑 지리산에 주로 출현해요. 다도해도 그렇고, 지리산도 그렇고, 괴수가 출현하는 게 유독 줄어들었어요. 어쩌면 초대형 괴수가 나타날 지도 몰라서 협회에서 예의주시하는 중이에요. 원장님도 미리 알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충청남도 금산에서 최근 노파 산삼이 나왔다거나, 해운대에 상어 괴수가 상륙해서 대피 소동이 벌어졌다거나, 비무장 지대에 괴수 밀도가 높아져 조만간 소탕 작전을 벌일 것 같다거나……
이미라처럼 고위 이능력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밀한 정보들이었다.
시혁은 흥미진진하게 이미라의 말을 들었다.
“별 일이 다 있네요. 대중에게는 잘 공개하지 않나 보죠?”
“모든 걸 다 공개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럼 혼란만 가중되잖아요.”
“그건 그렇지요.”
식사는 즐거웠다.
음식은 맛있었고, 이미라도 말솜씨가 있어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시혁은 주로 듣는 쪽이었는데, 이미라의 성격이 활달한 편이라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이미라가 문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저만 계속 말을 하네요. 제가 원래 이렇게 수다스러운 성격이 아닌데, 원장님이 너무 편하게 느껴져요.”
“그럼 다행이지요. 제가 말이 없는 편이어서, 괜히 미라 씨를 힘들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게 해드려야 하는데……”
“에이, 아니에요. 신세는 제가 졌는걸요. 그리고 충분히 재미있었어요.”
어느새 음식을 거의 다 먹었다.
후식까지 챙겨 먹은 후 일식집을 나섰다.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슬슬 가을이 깊어지는 시점이라 날이 제법 싸늘했다.
이미라가 짐짓 몸을 떨었다.
“꽤 춥네요. 원장님은 괜찮으세요?”
강화 계열 이능력자가 춥다고?
시혁은 이미라를 돌아보았다.
하긴 옷을 나시 하나에 미니스커트만 입고 왔으니 추울 법도 했다.
“옷을 너무 춥게 입고 오신 거 아니에요? 가을인데 따뜻하게 입고 오시지……”
이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표정.
시혁이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내자, 이미라가 고개를 모로 꼬았다.
“원장님. 혹시 연애 안 해 봤어요?”
“연애요? 네, 안 해 봤어요.”
“진짜요? 리얼? 거짓말이죠?”
“정말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여자랑 데이트 해 본 적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적도 없어요.”
이미라가 신기한 동물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시혁은 멀리 하늘을 쳐다보았다.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시혁이지만,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집이든 어디에 박혀서 책 읽는 게 더 좋았다. 그래서인지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교 다닐 때도 동아리 하나 가입하지 않았다. 하숙집과 도서관만 왔다 갔다 했다. 가끔 마음에 드는 게임이 있으면 PC방에 죽치고 있기도 했고.
그러니 연애를 못 해 본 것이다.
시혁이 연예인이나 이능력자처럼 키가 크고 잘 생겼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남들 다 해본다는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20대 중반을 넘겼다.
“어휴, 어쩐지……”
이미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의 연애 경험은 왜 물어본담?
그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이미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제가 괜찮은 사람이라도 한 명 소개시켜드릴까요? 키도 크고, 얼굴도 그만하면 예쁜 것 같은데요. 아! 혹시 키 큰 여자 안 좋아하세요?”
“키는 아무래도 좋은데, 전 별로 연애할 생각 없어요.”
“네? 왜요?”
“그냥요. 이것저것 바빠서요. 나중에 시간 나면 하려고요.”
“연애는 시간 날 때 하는 게 아니라 시간 내서 하는 건데……”
이미라가 꿍얼거렸지만, 시혁은 정말로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르거스와 지구, 두 곳을 오가며 각종 학문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연애도 좋지만, 그 때문에 정신을 분산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거절하긴 했지만, 이미라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했다.
“정말 싫으세요? 나중에 후회해도 전 몰라요. 연예인한테도 그렇고, 이능력자한테도 몇 번이나 고백 받은 여자라고요.”
“진짜 괜찮습니다. 지금은 전혀 생각이 없어요. 나중에 연애하고 싶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흥, 그 전에 남자친구가 생길 걸요?”
이미라가 입을 삐죽였다.
시혁은 왜 그러나 싶어 고개만 갸웃거렸다. 소개시켜 준다는 여자와 많이 친한가 보다 하고, 대충 넘어갔다.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이미라는 냉랭한 기색으로 차를 돌렸다. 시혁이 정중히 작별 인사를 했지만, 못 본 척 도로 위를 달렸다.
뭔가 실수를 한 걸까?
‘설마……’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었지만 아닐 거라고 애써 무시했다.
S급 이능력자에, 외모로 따지면 단연 군계일학인 이미라다. 그런 그녀가 키도 작고 얼굴도 그저 그런 자신에게 호감을 느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남자는 여자가 조금만 잘 해줘도 호감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고 했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시혁은 이미라가 여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당연한 일.
아르거스에서 봤던 모습이 워낙에 충격적이었으니까.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눈앞에 선한데, 어떻게 좋은 감정을 키워갈 수 있겠나.
그나저나 오늘 이미라가 했던 말들이 마음에 걸렸다.
전라도의 괴수 출현 빈도가 줄었다던가.
예전에 울산에서 삼두룡이 나타났을 때도 그랬다. 경상도는 물론 동해안 전역에 괴수들이 출현하는 게 확 줄었다. 그러다 검은 천체가 용틀임하며 삼두룡을 뱉어냈다.
만약 그때 G급 이능력자 손문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울산 전체가 초토화되었을 가능성도 컸다.
설마 또 그런 일이 발생하려는 걸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이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나 보다. 아예 몰랐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시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막 씻고 좀 쉬려는 때, 한의원 입원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원장님, 여기 병동이에요.]
[네, 말씀하세요.]
[외부에서 원장님 찾는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하죠? 교룡대학교 병원이라는데요.]
[교룡대학교 병원에서요? 뭐 때문에요?]
[소누스 콜라보르 환자가 있는데, 상태가 안 좋다고 우리 한의원으로 전원해도 되겠냐고 그러더라고요. 자기들은 치료하기 힘들 것 같대요.]
소누스 콜라보르?
시혁도 아는 괴수 질병이다.
노파 산삼, 아르거스에서는 만드라고라라고 부르는 식물 때문에 생겼다.
만드라고라를 뽑으면 기이한 힘이 담긴 음파가 주위로 퍼진다. 그 음파에 의해 영혼과 육체가 괴리되면서 의식을 상실하는 것이다.
깨어나지 못하면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며칠 정양하면 자연스럽게 깨어날 때가 많았다. 정 뭐하면 이능 치료를 받으면 그만이고.
시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거 별 거 아니에요. 이능 치료 하라고 하세요. 5분이면 낫습니다.]
[그게, 이미 시도했는데 안 된다고 하는데요?]
[네? 그럴 리가요.]
그렇게 말을 하다가, 시혁은 별안간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 그럴 수도 있다. 짧은 시간에 3번 정도 연달아 걸렸거나 하면, 소누스 콜라보르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해지니까.
[거기 과장님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제가 직접 통화해보겠습니다.]
[네, 원장님. 042에……]
간호사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 이미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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