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유 -2- >
“진리 진영이 마법 무구 제작에는 일가견이 있다더니……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이런 건 생전 처음 봐요.”
별자리 스승이 주의를 주었다.
[이 두 검은 내가 아끼는 물건들이다. 유용하게 쓰되, 부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해라.]
“흥, 알았어요.”
이미라는 냉랭하게 콧방귀만 뀌었다.
별자리 스승은 마법 양탄자도 하나 소환해 주었다. 이걸 타고 다니면서 싸우라는 것이다. 자체적인 전투력이 없어서 그렇지, 투명화 능력이 붙은 아주 좋은 물건이었다.
이미라는 비행 탈것으로 비룡을 한 마리 가지고 있지만, 이 마법 양탄자가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시혁이 질문을 했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다. 군대가 결집하고 있다. 재정비 중인데, 조만간 다시 공격해 올 것 같다.]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둘러야겠다.
이미라와 함께 마법 양탄자에 올랐다. 워낙 널찍해서 둘이 동시에 타도 문제가 없었다.
“출발할게요.”
“네, 마법 양탄자 타는 건 처음이에요!”
이미라는 엉뚱한 곳에서 신을 냈다.
시혁은 마법 양탄자를 출발시켰다.
마법 양탄자가 쌩하고 날아올랐다. 자체적인 방어막이 내장된 까닭에, 승차감이 쾌적했다.
이미라가 등 뒤에서 시혁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후방 교란 말고는 답이 없지요. 합류하는 신규 소환자들을 공격할 겁니다.”
“아하, 따로따로 오니까요?”
“네. 뭉쳐서 오면 골치 아플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봐야 1레벨 아닙니까? 미라 씨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야 그렇죠. 거장이나 대가라면 모를까, 그 이하 1레벨은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안 무서워요.”
이미라가 위험하게 눈을 빛냈다.
허리에 찬 붉고 푸른 검에 손을 가져가는 게 어서 검을 써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금세 인세 군주의 본성 가까이 도착했다.
첫 번째 사냥감을 발견했다.
중급 병종과 기본 병종으로 이뤄진 무리였다. 중장보병 다섯 명에 창병 열 명, 궁병 열 명이어서 수가 제법 되었다.
시혁은 이미라를 쳐다보며 눈으로 물었다.
저 정도는 괜찮겠느냐고.
이미라는 자신 있는 웃음을 지었다.
“충분하겠는데요? 원장님이 힘을 쓸 필요도 없겠어요.”
“좋습니다. 그럼 통상적인 지원만 하겠습니다.”
시혁은 그 동안 보충한 귀속 오행 순환체를 이미라에게 보냈다.
오행 순환체가 이미라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광폭화 대신 급속 치료를 부여했다. 당분간 이미라는 트롤과 비슷한 재생력을 자랑할 것이다.
시혁은 숲에 숨고, 이미라만 용암 송곳니와 빙하 궤적을 든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인간 병력들이 이미라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적이라고 생각을 못 했다. 이미라가 워낙 태연한 기색이었으니까. 어떤 창병은 아군 영웅이라고 생각했는지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미라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번진 건 바로 그때였다.
땅을 박찼다.
거리가 순식간에 단축되었다.
인간 병력들이 뭔가 대비를 하기 전, 이미라가 한 마리 호랑이처럼 그들을 덮쳤다.
“으악!”
“적이다!”
피 보라가 일었다.
이미라는 춤을 추듯 그들을 공격했다. 불꽃이 터지고 얼음 칼날이 허공을 날았다.
시혁이 도와줄 필요도 없었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인간 병력들이 시체가 되어 땅에 몸을 뉘였다.
딱 한 명, 도망가는 자가 있어 시혁이 처리했다.
덩굴 마법으로 발목을 묶고, 쇠 속성을 담은 단검을 소환했다. 예리함 마법까지 건 뒤, 단검을 던졌다.
“그르륵!”
창병의 심장이 꿰뚫렸다.
그것으로 끝.
뒤처리를 하고 돌아오는데, 이미라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서 있는 게 보였다.
“미라 씨?”
이름을 부르자, 이미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원장님. 방금 계약이 해제됐어요.”
인세 군주가 이미라의 전향 사실을 알아차렸나 보다.
시혁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전투가 끝나는 날, 분명히 잘 선택했다고 느끼실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이미라는 웃기만 했다.
또 양탄자를 타고 날아올랐다.
한 차례 더 인세 군주의 병력을 끊어먹었다. 그러자 인세 군주도 대비책을 마련했다. 소수 병력만 보내지 않고, 백 이상 모였을 때만 출발시킨 것이다.
그 정도 덩치면 건드리기가 부담스럽다.
슬슬 광폭화를 써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미라 씨. 지금부터는 광폭화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휴, 알았어요.”
이미라는 긴장한 듯 짧은 한숨을 쉬었다.
오행 순환체에 부여된 특기를 바꾸었다.
당장 이미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차갑던 얼굴이 뒤틀리며 광기가 흐르고, 벌어진 입에서 달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흐흐, 으흐흐흐.”
시혁은 광폭화를 약하게만 사용했다.
이미라에게 흡수된 오행 순환체가 신체 변화를 자세히 전해주고 있었다. 그 덕에 얼마나 강해지는지, 또 어느 정도 분량을 쓰면 위험할지 아는 게 가능했다.
“미라 씨, 가죠.”
시혁은 이미라에게 속삭였다.
120명이나 되는 병력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부분 기본 병종과 중급 병종이지만, 고급 병종과 상급 병종도 사이사이 보였다.
이미라는 거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가볍게 몸을 날려 인간 군대를 향해 덤벼들었다.
인간 군대가 이미라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
“배신자다!”
“저년을 죽여!”
비록 영웅은 없지만, 사전에 인세 군주에게 주의를 들은 참이었다. 전문 계급 광휘 기사의 지휘에 따라, 이미라의 공격에 대처했다.
온갖 약화 마법이 날아들었다. 불덩이가 갑옷 위를 강타하고, 커다란 화살이 머리칼을 스쳤다.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시혁은 때맞추어 온갖 보호 마법을 이미라에게 부여했다. 그러면서 통찰 마법을 이용, 적 병력의 약점을 살폈다.
간단했다.
모두 1레벨이라는 것.
1레벨과 10레벨의 차이는 크다. 단순히 능력치의 차이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마법 성공 확률에도 영향이 있다.
무슨 말이냐고?
상태 이상 마법이 쉽게 먹힌다는 뜻이다.
시혁은 놀고 있는 오행 순환체에 각각 다른 정신 마법을 부여했다. 그리고 안개처럼 만들어 은밀히 땅을 통해 인간 군대에게 보냈다.
빛나는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자, 인간 소환자가 경계하며 소리를 쳤다.
“조심해!”
“뭔가 이상하다!”
“마법사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 봐!”
마법사들이 마법 해제를 뿌리고, 사제들이 정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오행 순환체는 충분하게 인간 소환자들의 두뇌에 스며들었다.
기본 병종들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이미라를 노려보던 창병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었다. 창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더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으, 죽고 싶지 않아!”
뒤쪽에 있던 궁병의 눈이 벌게졌다. 이미라가 아니라 자기 앞의 성기사를 겨누더니, 히죽 웃으며 화살을 쏘았다.
성기사가 깜짝 놀라 방패로 화살을 쳐냈다. 검을 들어 궁병을 가리키며 일갈했다.
“미쳤나?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런 일이 사방에서 벌어졌다.
시혁이 오행 순환체에 부여한 두 가지의 마법.
공포와 증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마법이었다. 인간 군대의 진형이 빠르게 무너졌다. 그 틈 사이로 이미라가 파고들자, 어느덧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순조로웠지만, 시혁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언제 인세 군주가 개입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대회복 이적 하나면 모든 혼란이 가라앉는다. 강화 이적을 사용하여 이미라를 잡으려 들 수도 있었다. 그럴 기미가 보이면 즉시 개입하여 탈출해야 한다.
그런데 인세 군주는 이적을 사용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미라가 소환자들을 모두 정리하도록 개입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지?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설마……”
시혁은 이미라를 데리고 얼른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미라가 머리를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머리야. 무슨 일 있어요?”
시혁은 얼굴을 굳혔다.
하늘 위에서 보니 인세 군주의 노림수가 눈에 들어왔다.
마나 집중점마다 요새화 작업이 한참이었다. 두꺼운 성벽을 둘러치는 것은 물론, 온갖 방어 시설을 설치했다. 병력들이 주위를 삼엄하게 경계하는 게, 접근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이번에는 본성을 살폈다.
병력 소환 작업이 중지되었다. 마나 저장고를 짓는 것도 보였다. 군대 확충이 아닌 뭔가 큰 것을 노리는 듯했다.
이미라도 그것을 눈치 챘다.
“인세 군주는 장기전으로 가려나 본데요? 장기전은 진리 진영에 가장 유리한데,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네요.”
“뻔하지요. 최종 병기나 영웅을 추가로 소환하려는 겁니다. 음, 제가 보기에는 최종 병기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아, 진짜요? 그럼 안 돼요. 제가 50레벨을 찍어도 화신이랑 일대일로 싸울 수는 없어요.”
“그 전에 끝장을 봐야지요. 자, 일단 레벨부터 올립시다.”
“레벨요?”
“네. 미라 씨가 지금 17레벨이죠? 현재 상태로는 인세 군주의 주력군과 싸울 수는 없어요. 최소 30레벨 정도는 만들어야죠. 전장에는 미라 씨밖에 영웅이 없으니까 지금이 기횝니다.”
대담하게도, 시혁은 인세 군주의 본성에서 가까운 산에 들어갔다.
올빼미 산.
이름처럼 올빼미 괴물들이 많았다. 딱 둘이서 사냥을 하는 까닭에 위험하고 힘들었지만, 대신 이미라가 쑥쑥 성장했다. 몇 마리 잡지도 않았는데 벌써 20레벨을 넘어 25레벨을 넘보고 있었다.
30레벨까지는 금방이었다. 생각 같아선 50레벨까지 찍고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전에 권세 진영의 최종 병기, 화신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바로 마나 집중점을 덮쳤다.
인세 군주의 본성에서 가까운 곳.
먼저 오행 순환체를 들여보내 독을 풀었다. 방어 장치가 그걸 감지하여 경보를 울렸다. 당장 사제와 마법사들이 달려들어 독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이미라가 달려든 것은 바로 그때.
광폭화가 최고도로 발휘되고 있었다. 비록 순수한 50레벨 보다는 못해도, 얼추 비슷한 위력을 뽐냈다.
이미라가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모두 죽어!”
성벽을 박차고 뛰어오르더니, 겨우 한 번 도약으로 성벽을 뛰어넘었다.
소환자들이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
“피해! 30레벨이다!”
“젠장! 안 보인다 했더니!”
“도망가지만 말고 싸워! 아직 50레벨은 아냐! 우리 요새에는 5백 명이나 있다고! 충분히 싸울 수 있어!”
이성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판단인 것은 아니다.
광폭화를 주입 받은 이미라는 미치도록 강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였다. 시혁의 지원을 받으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자, 인간 군대는 거의 농락당하다시피 했다.
결국 시혁은 이미라와 함께 두 개의 마나 집중점 요새를 아예 박살내 버렸다.
아무 도움을 받지 않고 둘만 나서서 이뤄낸 쾌거.
그러는 동안 이미라도 50레벨을 달성했다. 두 요새를 공격하면서도 사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대단하구나!]
별자리 스승이 기다렸다는 듯 군대를 전진시켰다.
마나 집중점 두 개를 동시에 차지했다. 마나 추출탑을 세우자 막대한 양의 마나가 본성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좀 성급한 것 같았지만, 시혁은 굳이 말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별자리 스승의 승리가 굳어질 터.
승부를 걸 생각이라면 지금 숨겨 놓은 패를 내야 한다.
과연 그러했다.
인세 군주의 본성에서 눈부신 흰 섬광이 터졌다.
빛나는 갑옷을 입고 빛의 검을 든 거인이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최종 병기, 화신이 등장했다.
보이지 않던 두 영웅도 모습을 드러냈다.
시혁은 그들을 보고 신음을 삼켰다.
인세 군주가 독하게 준비했나 보다. 두 영웅 모두 50레벨을 달성한 상태였다.
최종 병기와 50레벨 영웅의 조합.
아르거스에서는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전술이었다.
< 회유 -2- > 끝
ⓒ 산호초
작가의 말
일반 소환자는 신입-수습-전문-숙련-대가-거장, 이렇게 6단계
영웅 소환자는 입문-수신-능란-상위-군주-초월-준신, 이렇게 7단계로 나뉩니다.
이미라는 권세 진영 중장보병, 야만 진영 오크 혈투사, 파괴 진영 오우거 폭군을 거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