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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71화 (71/250)

< 처녀 임신 –1- >

어쩐다?

말하는 걸로 봐선 결혼도 안 한 것 같고, 남자친구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내를 어떻게 알겠나.

이미라와 누리 공격대는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저 말을 안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 면전에다 대고 당신 임신한 것 아니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활맥이 나타난다고 해서 꼭 임신인 것도 아니고.

시혁은 그저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흠, 좀 애매하네요. 배 안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더 자세히 진맥해 봐야겠습니다.”

처음에는 여유롭던 이미라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혹시 안 좋은 건가요?”

“아뇨. 그냥 애매한 겁니다. 잠시 밖으로 나오시겠습니까?”

“네, 좋아요. 미애야, 세훈아, 좀 있다 보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커피라도 한 잔 해야지.”

“응, 언니. 잘 듣고 와. 별 일 없을 거야.”

“알겠어. 기다릴게.”

“그래, 고마워.”

시혁은 이미라를 데리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내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마주 앉았다.

이미라가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원장님. 저 어디가 많이 안 좋은 건가요? 안 그래도 요즘 몸이 좀 이상한데……”

“어떻게 이상한데요?”

“그냥 뭐, 화장실을 자주 가요. 변비도 생긴 것 같고요. 소화도 잘 안 되고 가끔 헛구역질도 나요. 이능력자가 되기 전에는 가끔 그랬는데, 각성 후에는 처음이에요.”

좀 의아했다.

전형적인 임신 초기 증상이다.

충분히 자각할 수 있을 텐데, 임신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미라 씨라고 하셨지요? 제 생각에는 산부인과에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미라 씨의 맥에서 임신했을 때 맥이 나타납니다. 말씀하신 증상도 임신 초기 증상과 비슷하고요.”

“헛짚으신 것 같은데요?”

이미라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 전 하늘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임신을 하겠어요?”

추호도 가능성이 없다는 태도.

워낙 단호한 태도라 시혁도 좀 헷갈렸다.

하지만 임신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이미라는 강화 계열 이능력자다. 잔병치레가 아니라, 어지간한 병 자체를 앓지 않는다. 이미라의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괴수 질병에 불과했다.

임신이나 월경이라면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니까 이능력자라 해도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시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말 하늘을 보신 적이 없는 거지요? 정상적인 임신은 불가능한 게 맞지요?”

“아, 그렇다니까요.”

이미라가 신경질을 냈다.

민감한 쪽을 자꾸 파고드니 화가 난 모양이다.

시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체를 이미라에게 기울이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단언하긴 힘듭니다만, 괴수 질병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 괴수 질병이요?”

이미라가 놀란 얼굴로 시혁을 보았다.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화 계열 이능력자라고 하셨지요? 더구나 S급이시고요. 그럼 당연히, 몸이 안 좋으면 괴수 질병부터 의심을 해야지요.”

“그야 그렇지만, 전 두 달에 1번 정기 검진 받고 있어요. 7월 초에 받은 건강검진도 아무 이상 없었는데……”

“9월은 언제 받습니까?”

“이번 주요. 원래 첫 번째 주에 받는데, 육각날개 호랑이 잡느라 좀 늦춰졌어요.”

“최대한 빨리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잘못 짚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강화 계열 이능력자가 이상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위험 신호입니다.”

“그건 그래요. 알았어요. 내일 바로 검진 받아 볼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이미라는 시혁의 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였다.

사실 본인도 이상하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정기 검진이 코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진작 병원에 갔을 것이다.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다들 식사를 끝마치고 있었다. 아까는 꽉꽉 들이찼는데, 빈 자리가 꽤 생긴 것이다.

김미애가 이미라에게 물었다.

“원장님이 뭐라고 하셔?”

“그냥 좀 무리를 많이 해서 그렇대.”

이미라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김미애도 눈치를 채고 더 캐묻지는 않았다. 신아영이 예쁘다느니, 행복하게 잘 살아야 된다느니 하는 말만 늘어놓았다. 옆에서 한세훈이 맞장구를 쳤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이미라의 일은 이미 잊었다. 정기 검진을 받는다고 했으니 알아서 잘 하겠지. 돈도 있겠다, 대개의 경우 이능 치료로 처치가 가능하니까.

월요일은 무척 바빴다.

환자들이 많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괴수 질병 환자가 쉬지 않고 내원해서, 덩달아 시혁도 쉬지 못했다.

외래로 약만 먹여서 치료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입원해야 할 환자는 입원을 시켰다. 결국, 주말 동안 좀 비었던 병상이 꽉 차고 말았다.

정신 없이 오전 진료를 끝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인근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민수진이 조심스럽게 시혁을 불렀다.

“원장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말씀하세요.”

“혹시 신규 간호사 더 뽑을 생각 없으세요?”

“신규 간호사요?”

시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한의원에 고용된 간호사는 간호조무사까지 합쳐 6명이다.

1명은 외래, 5명은 병동을 보고 있었다. 3교대 인원에게는 1달에 9일 정도 오프를 주니까, 업무 강도는 그리 크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민수진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우리 한의원 간호사 쌤들이 이브닝이랑 나이트에는 혼자 있으니까 좀 그런가 봐요. 원장님께서 계속 원장실에 계시긴 한데 곧 오피스텔에서 출퇴근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괴수 질병 환자라 언제 어떻게 발작할지 모르는데 혼자 있으면 대처하기가 힘들어요. 또, 다들 젊은 여자 쌤이어서 불 꺼진 병동에 혼자 있으면 무섭기도 하고요.”

박희정도 찬동했다.

“맞아요. 병동 간호사 쌤들이랑 가끔 커피 마시곤 하는데 그 얘길 하더라고요. 가끔 신규 간호사 충원 계획 없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하긴 그렇겠습니다.”

시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도 잠깐 했던 얘기다. 면접을 보던 때, 민수진이 1명 가지고는 당직을 서기가 어렵다고 문제 제기를 했었지. 한의원이 안정되고 매출이 나오면 고려를 해달라고.

지금 병동 복도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간호사 책상 안쪽에 비상벨도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시혁은 생각을 정리했다.

현재 병동 간호사는 주간 근무만 2명이다. 석간 근무와 야간 근무는 1명이 했다. 그나마 주말에는 주간 근무도 1명으로 줄어든다.

계속 2명씩 근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간호사 서너 명을 더 고용하면 된다. 세 명을 고용하면 좀 힘들더라도 2명 근무가 가능하고, 네 명을 고용하면 1명 당 1달 10일 오프도 가능하겠지.

시혁이 생각에 잠기자, 민수진이 눈치를 살폈다.

“이제 한의원도 안정 됐고 해서요. 매출 대부분이 병동에서 나오는데,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환자들을 더 잘 간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다.

상귀네우스 웨사니아 이후, 시혁의 한의원은 번창 일로를 걷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리 돈을 벌지 못했지만 이름을 크게 알린 것이다. 지금은 괴수 질병에 걸린 환자가 방문하는 게 크게 늘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비급여 치료를 해야 하니 수익률이 높았고.

더구나 한의원은 시혁의 수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니지 않나. 추후 확장 문제까지 생각하면, 지금 미리 간호사들을 뽑아놓는 게 좋겠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신규 간호사를 더 뽑는 걸로 합시다. 간호사들이 잘 다니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거 있죠? 간호과장님이 거기에 구인 공고 올려주세요. 저랑 같이 면접 보고 최종 결정을 합시다.”

환성이 터졌다.

“원장님 최고!”

“멋쟁이!”

“그럼 몇 명 뽑으실 생각이세요?”

“3명은 좀 적고 4명으로 하죠. 그러면 근무일이 좀 남을 텐데, 월요일이나 토요일 같이 바쁜 날 나와서 외래를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세요!”

간호사들이 좋다고 떠들었다.

박희정이나 두 직원도 기쁜 표정이었다. 사람이 늘면 아무래도 일이 더 수월해 질 테니까.

점심을 먹고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민수진이 생글거리며 커피 한 잔을 타서 가져왔다. 생전 하지 않던 짓이라, 한 마디 하려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간호과장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싶었으니까.

이때, 시혁의 스마트폰이 웅웅 하고 진동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이번엔 또 누구지?’

전화를 받자, 뜻밖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점심시간에 죄송해요. 어제 아영이 결혼식에서 봤던 이미라인데요, 혹시 잠깐 통화 괜찮을까요?]

[아, 네 그러시죠. 말씀하세요. 저 원장실에 혼자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쉬셔야 하는데……]

[아니에요. 통화하는 게 뭐 어렵다고요. 괜찮습니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실은 오늘 정기 검진을 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저 임신 6주래요.]

[네?]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나 보다.

이미라가 거짓말을 한 걸까?

하지만 그때 거짓말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임신을 의심하라는 시혁의 말에 굉장히 놀라고 어이없어 하는 기색을 보였으니까.

스마트폰 너머로 이미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말이 돼요? 전 남자 경험도 없다고요! 산부인과 가봤는데, 처녀막은 멀쩡히 살아 있대요. 그런데 초음파에선 뻔히 태아가 보이는데, 이게 말이 돼요?]

듣던 중 황당한 소리였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첫 관계를 가진다고 반드시 처녀막이 찢어져 출혈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1/3 정도는 그 전에 여러 이유로 파열되어 사라지고, 드물게 처녀막의 탄력이 좋아 관계 후에도 온전하게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라가 저렇게 확신을 하는데 분명 성관계를 가졌을 거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시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상하네요. 혹시 이미라 씨가 모르는 사이에 당했을 확률은 없습니까?]

[없어요. 전 이능력자 된 후로 정신을 잃은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잘 때도 감각은 열어놓고 자는 걸요?]

[하긴 강화 계열 이능력자시니…… 산부인과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그 새끼 말은 꺼내지도 마세요.]

이미라가 씩씩댔다.

임신 진단 관련하여 불쾌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이미라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질문했다.

[6주라고 하셨지요? 그럼 최근 두 달, 아니 세 달 사이에 어떤 괴수들을 잡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괴수 때문에 임신을 할 수도 있나요?]

[가능하죠. 몇몇 괴수는 인간의 육체를 숙주 삼아 번식을 하니까요.]

[우웩! 농담이시죠?]

[진짭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당했을 때는 본인이 모를 수가 없어요.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동반하니까. 도무지 짐작이 안 가네요. 일단 말씀해주세요.]

[알았어요. 7월부터 전부 말씀드릴게요. 7월 5일에 비무장 지대에서 육각날개 호랑이, 7월 11일에……]

약 두 달 남짓한 기간 꽤 많이도 잡았다.

일곱 종.

육각날개 호랑이, 어둠 거인, 유령 소대, 불꽃 기러기, 그림자 괴물, 초록 비룡, 거대 괴수목.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이 괴수들의 원형 중에는 인간 여성을 이용해 번식하는 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언할 수는 없다. 아르거스에서 그랬다고 지구에서도 그렇지는 않으니까. 차원을 넘으면서 많은 것이 변형된 걸 이미 목격하지 않았나.

그럼 대체 뭐냐?

성관계도 없었고, 괴수의 영향도 없이 어떻게 임신을 하지?

< 처녀 임신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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