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64화 (64/250)

< 변이 –2- >

시혁은 이능력자의 시선을 따라갔다.

조리 시설 위에, 작고 까만 솥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이능력자가 거길 손가락질했다.

“예! 저기 솥 하나가 변이 됐습니다! 혼탁한 에테르가 느껴져요!”

강찬이 급히 그걸 빼내려고 할 때, 매점 아주머니가 몸으로 그 앞을 막아섰다.

“이 사람들이 남의 가게에서 뭐 하는 거야! 누구 장사를 방해하려고 그래? 누가 시켰어? 관장이 시키든? 이 똥개들아!”

이미 이성을 잃었다.

그나마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있어 욕만 하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더 악다구니를 벌였을 것이다.

이렇듯 괴수 질병이 무서웠다. 그나마 매점에서 일을 계속 한 게 용했다.

시혁은 정화 계열 이능력자에게 눈짓을 했다.

정화 계열 이능력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손을 뻗자, 찬란한 백색 빛 무리가 일어났다.

그 빛이 매점 아주머니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매점 아주머니의 얼굴이 멍해졌다.

피부는 살색으로 돌아오고, 눈 주변에 돋았던 힘줄도 서서히 사라졌다. 다소 흐릿하던 눈빛이 맑아지고, 몸도 조금 줄어들었다.

“어……”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시혁이 급히 부축했다.

“아주머니, 괜찮습니까?”

“어…… 제가 왜 이러죠?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어요.”

그야 당연하지.

상귀네우스 웨사니아를 이능으로 치료하면 반드시 탈진해서 뻗게 되니까.

그 사이, 강찬이 조리 시설 위에 있는 작은 솥들을 가져왔다.

강찬은 그 중 하나를 골라 시혁에게 보여주었다. 스스로의 통찰 이능을 발휘해서 살펴보니, 이게 수상쩍다는 것이다.

“이게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물건 같습니다. 고준 씨, 고준 씨가 보기에 어떻습니까?”

“제가 봐도 그게 맞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별다를 게 없었다.

다만 바닥에 붉은 얼룩 같은 게 대칭적으로 묻어 있는 게 특이했다. 아르거스에서 자주 보는 마법진을 보는 듯했다.

이게 상귀네우스 웨사니아를 유발시켰다니, 참 괴상한 일이다.

시혁은 한 가지 사실을 짐작했다.

야만 군주 진영에서 본인이 썼던 약제 도구들.

엘프의 도구를 구하기 힘들어 대충 아무 거나 가져다 썼다. 그 중에는 이런 형태의 솥이 많았다. 그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했다.

매점 아주머니가 지친 얼굴로 이능력자들을 보았다.

“그게 왜요? 전 또 왜 이러죠?”

대략적인 설명은 해줘야겠지.

먼저 학생들을 내보냈다. 매점 아주머니만 매점 구석으로 데려가 앉힌 후, 그 앞에 앉아 간단히 설명을 했다.

“아주머니도 괴수 질병이 뭔지는 아시지요?”

“암요. 세상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괴수 질병에는 특이한 것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쫓아온 것도 그렇죠. 그 병에 걸리면 가끔씩 발작을 하는데, 꼭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피부는 빨갛게 변하고, 전신에 핏줄이 돋아나고요. 환자 중에는 자기 부모님을 못 알아보고 공격한 사람도 있습니다.”

매점 아주머니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피부가 빨개지고, 핏줄이 돋는다고요?”

“예. 그런데 지금까지 발생한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여기 라면을 먹은 다음에 그랬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국수나 우동을 먹은 환자도 있었고요. 지금 가능성이 높은 건, 저게 음식을 변질시켰을 확률입니다.”

시혁은 강찬이 들고 있는 솥을 가리켰다.

매점 아주머니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최 뭐가 뭔지 원……”

“일단 이건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대한이능협회 지부로 연락하세요. 그리고 몸도 안 좋으신데, 매점 문을 당분간 닫는 게 좋겠습니다.”

“끄응, 알았어요.”

남은 일은 협회 직원이 처리하기로 했다. 도서관 측에 얘기하는 것이나, 뒤처리를 모두 도맡은 것이다.

시혁은 이능력자들에게 말했다.

“병의 발원지를 찾은 것은 다행입니다만, 생각보다 환자들 수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만으로는 한계가 있겠습니다.”

“광주광역시 내의 병원을 다 동원하셔야 할 겁니다. 필요하면 TV나 신문에 광고를 내서 의심되는 증상이 있는 환자는 지정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해야 하고요.”

“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참, 이능으로 치료되는 병이라고 하셨지요?”

“예. 다만 후유증이 좀 남긴 합니다. 그래도 영구적인 것은 아니니 몇 주면 완전히 회복될 거고요. 그리고 제가 발견한 치료법이 있으니, 그걸 완전히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시혁의 선언에, 이능력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예? 완전 공개요?”

“앞으로도 또 언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치유 계열 이능력자 분들이 모두 상귀네우스 웨사니아에 매달릴 수도 없고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대단하십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 기회에 한몫 단단히 잡으려고 할 텐데요.”

“그래서 제가 원장님을 좋아하죠. 원장님, 존경합니다.”

“하하,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세요.”

강찬의 너스레에 시혁은 그저 웃었다.

시혁도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발현자 검증 당시 만들었던 세 치료법은 조건을 달긴 했어도 제약회사에 넘기지 않았나.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하기는 마음에 좀 걸렸다.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쨌든 시혁 본인으로 인해 비롯된 병이니까.

치료법을 완전히 공개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 복잡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했다.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오래 지나지는 않았다. 오후 3시에 나갔는데, 들어와 보니 오후 6시였다.

“어머, 원장님!”

“다녀오셨어요?”

“어떻게 됐어요?”

“아, 잘 됐습니다. 병의 진원지를 찾았어요. 다들 퇴근하세요. 전 탕전실 좀 쓰겠습니다.”

시혁은 탕전실로 쏙 들어갔다.

약이 부족했다. 지금 있는 환자에게도 그런데, 조만간 환자들이 밀려들어오면 하루는커녕 한 나절도 못 버틴다.

남아 있는 재료를 모두 이용해 탕약을 끓였다. 강찬에게 추가 주문도 해놓았으니, 내일이면 재료가 더 도착할 터였다.

다음날 아침,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았다.

상귀네우스 웨사니아에 대한 내용.

병의 발원지가 된 도서관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최근 그곳을 이용했던 사람들, 특히 매점에서 면 요리를 사먹은 이는 빠짐없이 지정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정연대학교 병원, 문인대학교 병원 등 광주광역시에서도 규모가 큰 병원들.

특이하게도 시혁의 한의원이 거기 끼어 있었다. 다른 한방병원들은 이름이 없었는데 그런 걸로 봐선 시혁의 존재를 생각보다 크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당분간 좀 바빠지겠다.

역시 그랬다.

인근의 학생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학부모들을 통해 입소문이 커진 게 컸다. 지정 병원 중 발병한 도서관에서 가장 가깝기도 했고.

그 동안 한가했던 게 꿈만 같았다.

차트를 작성하고, 약도 짓고, 병동에 들러 환자들 상태도 확인하고……

게다가 김규현 정도의 중증 환자도 몇 명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기 힘들었다.

그나마 한의원 규모가 작아 다행이었다. 20 병상이 가득 찬 다음에는 정연대학교나 문인대학교 병원으로 보냈으니까.

박희정이 시혁에게 염려 어린 시선을 던졌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시혁은 힘겹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다 제 업보인 걸요.”

“업보는 무슨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한의원 운영도 중요하지만, 원장님 몸 생각도 하셔야죠.”

“네, 걱정 마세요.”

시간이 지나자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었다.

더 방문하는 환자는 없었다. 반면 퇴원하는 환자가 생겼다. 김규현도 퇴원을 했고, 증상이 경미한 환자 중 몇몇이 외래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뉴스를 보니 다른 병원 환자들도 순조롭게 호전 중이라고 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전염되지가 않는 병이고, 빠르게 대처했으니 금방 처리할 수가 있었다.

그걸 보고 시혁도 적잖이 마음을 놓았다.

치료법을 완전 공개하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사태 해결에 시간이 걸렸을 테고, 시혁의 마음도 더 불편해졌겠지.

오히려 이득을 본 점도 있었다.

시혁의 한의원이 널리 알려졌다는 점이다.

찾아오는 괴수 질병 환자들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광주광역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환자가 찾아오곤 했다. 심지어 실피드 병원 등 대형 병원에서도 불치병 환자에게 시혁의 한의원에 방문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여름이 다 갔다.

8월이 되었다.

제약 회사와의 협상도 마무리 지었다. 계약금으로 도합 1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받았다. 덕분에 대출을 간단히 해결했고, 한의원 운영도 부드러워졌다. 내년 봄부터는 약도 시판한다고 하니, 조만간 막대한 로열티가 들어올 것이다.

어려운 일은 다 지나간 셈이다.

좋은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상귀네우스 웨사니아의 발병 원인에 대해 밝혀냈다고 대한이능협회 광주 지부에서 시혁을 초청한 것이다.

“자, 다들 여길 봐주세요.”

시혁만 아니라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하는 주요 이능력자들은 모두 모인 자리였다. 누리 공격대의 강찬은 물론, 정연대학교 병원의 김진태 과장도 얼굴을 비췄다.

협회 지부 소속의 한 이능력자가 설명을 했다.

“여러분이 지금 보시는 게 이번 사건의 원흉입니다. 작은 솥인데, 이걸로 물을 끓이면 상귀네우스 웨사니아의 원인 물질을 생성해냅니다.”

“어떻게 그러는 겁니까?”

“검은 천체와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은 천체가 주기적으로 강한 파동을 내뿜는다고 합니다. 이 물건도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마치 건전지 충전되는 것처럼 그 파동을 받아들여서, 병원(病原) 물질을 만듭니다. 자, 이걸 보시죠.”

이능력자가 손짓을 했다.

솥에는 작은 감지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감지기와 연결된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더니, 핏빛의 불꽃같은 게 그려졌다.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에테르 파동!”

이능력자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능력자와 괴수들만 에테르 파동을 발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검은 천체가 흘리는 에테르 파동을 능동적으로 흡수한다는 걸 발견했다는 게 고무적입니다.”

“아, 에테르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병의 진원지를 발견할 수 있겠네요.”

“괴수 질병뿐이겠습니까? 어쩌면 괴수가 변이하는 순간을 잡아서 사냥에 나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에테르 파동이라……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기계로 에테르 파동을 관찰하는 것은 초보적인 단계였다. 그리고 이능력자들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하늘에 뜬 검은 천체가 내뿜는 에테르를 생생하게 관찰하려면 G급 탐지 계열 이능력자는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설명을 듣고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상귀네우스 웨사니아는 거의 처리가 된 상황.

시혁은 지구가 아닌 아르거스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거장이 되어서, 2번째 전직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번에는 어느 병종으로 전직해야 할까?

전직 기회는 단 2번.

이게 마지막이다.

앞으로는 전직이 불가능하고, 전향과 진화만 선택할 수가 있다.

당연히 더 신중하게, 시혁 본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병종을 선택해야겠지.

원래는 엘프 신의를 선택하려고 했었다.

마법이든 저주든 척척 고치고, 어떤 대상이든 보기만 하면 현재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병종.

생명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대신 단점도 존재했다.

첫째, 본신의 무력이 약하다. 그 동안은 관심이 없었는데, 슬슬 신경을 써야 할 참이었다. 반신들은 지원형 영웅도 개인적인 전투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을 선호하니까. 야만 군주에게 굴욕을 당한 적도 있고.

둘째, 개인적인 치료 능력은 향상되지만 약 조제 능력은 의학자와 비슷했다. 지구 전체의 보건 의료에 미치는 영향은 의학자나 신의나 그게 그거라는 얘기다.

기왕이면 이 두 가지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병종을 선택하는 게 낫다.

뭐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한 병종을 찾아냈다.

현자.

진리 진영에 속한 고급 병종이었다.

< 변이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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