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귀네우스 웨사니아 -3- >
점차 조용해졌다.
나중에는 괴상한 소리만 냈다. 몸을 가끔 움찔였다가, 서서히 그런 증상도 사라졌다.
이걸로 됐다.
시혁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천천히 침대 위에서 내려오자, 보호자들이 걱정 어린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선생님, 괜찮아진 겁니까?”
“이렇게 심하게 발작한 적은 없었는데……”
“걱정 마세요. 좀 있으면 정신을 차릴 겁니다. 앞으로 하루 이틀 정도는 별 일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김규현의 피부 색깔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한 5분 정도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성싶었다.
진정되는 것을 기다려 입원 절차를 서둘렀다.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입원이야 언제든 가능했지만, 처음 입원시키는 것이니 체계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보호자들과 김규현이 6층으로 올라갔다.
민수진이 시혁에게 다가왔다.
“어휴, 십년감수했네. 원장님, NP 환자에요?”
Neuropsychiatry. 신경정신과.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합니다. 괴수 질병 환자에요.”
“네? 괴수 질병이요? 어쩐지 이상하더라…… 그런데 도대체 무슨 병이에요? 정연대학교 병원 있을 때도 못 본 병인데요.”
“제가 알기로 지구에 처음 나타난 병입니다. 아직 이름이 없어요.”
“진짜요? 그럼 원장님이 이름을 지으셔야겠네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원장님 성함 붙이면 어때요?”
“그건 좀……”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물론 알츠하이머 병이나 윌슨 병처럼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는 병도 있다. 하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지 않나. 안 그래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생긴 병이라 찝찝하던 참인데, 이름까지 자기 이름을 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민수진이 애교스럽게 웃었다.
“원장님 너무 심각하신 얼굴이어서 농담 한 번 해봤어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휴, 알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나 보다.
민수진은 간호사 근무표를 작성해오겠다고 원장실을 떠났다. 그 뒤에서, 시혁은 원장실 의자에 몸을 묻었다.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는 아주 잘 안다.
의학자로서 시혁은 인간과 오크의 생리를 공부했다. 지금도 그 지식은 남아 있었다. 기존 핏빛 광기의 해독약을 조금만 변형시켜도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도 조심해야겠지.
오크가 아니라 인간에게 발현된 것 아닌가. 시혁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컴퓨터 옆에 놔둔 구형 노트북을 켰다. 예전에 박주성에게 받은 외계 생물학 사전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필요한 약재는 대부분 있었다. 몇 가지가 빠지긴 했지만, 다른 약재로 대체할 수 있는 종류였고.
강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필요한 재료는 누리 공격대를 통해 구입하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약재 목록을 들은 강찬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산 곰의 쓸개에 거대 늑대 송곳니와 혀, 달빛 양의 침샘에 바람 들풀 뿌리요? 선생님, 이거 가격이 꽤 되겠는데요?]
[네? 얼마나 되는데요?]
[어디 보자, 총 10가지니까…… 최소 단위로만 구매해도 2천만 원은 넘겠어요.]
[예? 그렇게나 비싸요?]
시혁은 해연히 놀랐다.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야만 군주의 진영에서 만들었던 약들은 대부분 동물성 약재를 주로 이용했다. 자연히 해독약에도 동물성 약재가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식물형 괴수보다 동물형 괴수가 대부분의 경우 사냥하기 어려운 것은 불문가지.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강찬이 변명하듯 말했다.
[원장님이 연구용으로 구입하시는 거면 저희가 그냥 처리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 치료용이잖습니까? 앞으로도 이런 환자가 있을 거고요. 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요. 2천만 원이라, 비싸긴 비싸네요. 보험도 안 되고…… 그렇지, 혹시 황금 풀이랑 톱니 콩 열매, 별빛 미나리 잎, 태산 곰의 피만 구하면 가격대가 얼마나 됩니까?]
[그러면 많이 낮출 수 있겠습니다. 황금 풀이랑 별빛 미나리는 요즘 잡초 수준으로 널려 있지 않습니까? 톱니 콩도 최근 숙주인 요새 도마뱀의 자생지가 알려진 다음에는 시세가 떨어지는 추세고요. 태산 곰도 가죽이 두꺼워서 그렇지 못 잡을 정도는 아니니까…… 대충 50만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 정도면 괜찮네요. 그렇게 해주세요.]
[예. 저도 한 번 더 싸게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들어가세요.]
2천만 원을 50만 원으로 줄였다.
다만 시혁이 포기한 것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치료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점이다. 1주가 아니라 2주는 걸리게 생겼다.
원래 생각했던 약은 복용 즉시 발작이 멈추는데 이 약은 그렇지 않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최소 1주는 복용해야 발작이 멈추니, 그 전까지는 환자가 발작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고, 이능 치료가 필요 없다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병이 시혁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
상황을 보니 김규현이 아르거스에서 일꾼으로 소환된 것 같았다. 야만 군주든, 야만 진영의 다른 반신이든 핏빛 광기를 신나게 써먹고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김규현 말고도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가 있다는 뜻이다.
“어쩐다…‥”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다.
일단 김규현에게는 치료비를 면제해주는 게 좋겠다. 어쨌든 원인이 시혁에게 있는 셈인데, 모른 척 돈을 받기는 좀 찔렸다.
무턱대고 돈을 안 받겠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터.
핑곗거리를 하나 만들었다.
6층으로 올라가서, 김규현을 대상으로 사례 보고 논문을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보호자들이 꺼려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거 기록 남는 거 아니에요?”
시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환자 신상을 노출하지 않을 테니까요. 나이, 성별, 성씨만 논문에 들어갑니다. 대신, 완치가 될 때까지 발생하는 모든 치료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병실도 다인실이 아니라 1인실로 배정해 드리고요.”
적어도 수백만 원의 혜택을 보는 셈이다.
계속 좋은 말로 설득하자, 보호자들도 결국 수락했다. 이미 시혁에게 치료를 받기로 정한 뒤였으니, 한 번 믿어보자는 것이다.
환자 측과 얘기를 끝낸 후, 다시 강찬에게 연락을 취했다.
고맙게도 오늘 밤까지는 약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해독약은 탕약이라 금방 지을 수 있으니, 오늘 밤부터는 김규현에게 복용시키는 게 가능했다.
저녁 무렵 약재가 도착했고, 전산에도 등록이 되었다.
한약재가 아니다 보니 시혁 외에는 쓰지 말라는 경고문이 삽입되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한 약재가 아니니, 한의사가 쓰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약 조제는 시혁이 직접 했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다. 그나마 일반적인 탕약처럼 끓이기만 하면 되니 빨리 끝낼 수 있었다.
9시에 완성된 약을 가지고 갔는데, 약을 보고 김규현이 질색을 했다.
“웩, 이게 뭐에요?”
약에서 실로 끔찍한 냄새가 났다.
실험실 암모니아 냄새 같기도 하고, 어시장 생선 썩는 냄새 같기도 했다.
게다가 그릇에 담긴 약을 보라.
색깔은 무슨 두꺼비 껍질을 보는 듯 탁한 갈색이고, 정체불명의 시꺼먼 기름이 둥둥 떠다니지 않나.
태산 곰의 피가 들어가서 그랬다.
그나마 식물성 약재가 들어가서 이 정도지, 원래 시혁이 만들려던 약은 말 그대로 지옥의 맛을 보여줬을 것이다.
시혁은 짐짓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몸에 좋은 약이 원래 쓰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 쭉 들이키세요.”
“안 먹으면 안 돼요?”
“얼른 낫고 퇴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곧 방학인데, 병원에 갇혀 있으면 억울하잖아요.”
시혁의 말에, 김규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설득이 통한 것 같았다.
잠깐 망설이다가 약사발을 들고 그대로 들이켰다.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어쨌든 삼키기는 삼켰다.
치료는 순조로웠다.
다만 간호사들이 불안해했다. 병동에 입원한 환자는 김규현이 다인데, 간호사 인원이 적어 석간과 야간 당직이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응급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여자 한 명만 당직을 서고 있으니,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러자 시혁은 아예 한의원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어차피 곧 독립할 생각이었다. 출퇴근하기도 귀찮고, 집에 가봐야 할 일이 없으니 원장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다.
민수진이 시혁의 눈치를 살피며 한 마디를 했다.
“원장님, 간호사가 너무 적은 것 같아요.”
“그렇지요?”
시혁도 그 말에 공감했지만, 신규 간호사를 뽑기엔 좀 이른 감이 있었다.
한의원이 안정된 것도 아니고, 현재 병동에 입원 환자라곤 김규현 딱 한 명뿐이었으니까.
그런 말을 하자, 민수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원장님 말씀이 맞아요. 그래도 한의원이 안정되고 입원 환자가 늘어나면 그때는 꼭 고려를 해주세요. 아셨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어쨌든 지금은 시혁이 한의원에서 머무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효과가 있었다.
간호사들이 한결 안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 선생님. 저 신경 쓰지 말고 주무세요.”
다만 신규 간호사들이 밤에 잠을 못 자는 듯해서 그런 말만 해주었다.
야간 당직 때 간호사들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그러다 호출이 있거나 환자가 밖으로 나오면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체력적으로 버티는 게 불가능했다.
시혁도 짧은 병원 생활을 해봐서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밤에 병동에서 간호사들과 마주칠 때마다 그런 얘기를 했다.
괴수 질병의 이름은 상귀네우스 웨사니아라고 지었다.
역시 라틴어.
한글로 지으려다가 기존 대세를 따랐다.
언젠가는 한국 말로 옮겨야겠지. 비단 상귀네우스 웨사니아만이 아니라, 다른 괴수 질병들도 모두.
치료는 순조로웠다.
김규현이 심심하다고 집에 가면 안 되냐고 하소연하는 것 말고는 다 좋았다. 늦지 않게 약만 잘 달여서 복용을 시키면 되었다. 그것도 1주일에 1번씩 몰아서 달였더니 시혁의 손이 덜 갔다.
벌써부터 간호사들이 축하 인사를 했다.
“원장님, 축하해요.”
“우리 한의원 첫 치료 괴수 질병 환자네요.”
“모두 감사합니다.”
시혁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항상 주의 깊게 김규현을 살폈다.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상태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아무 때나 들어가 얘기를 나누곤 했다. 심지어 새벽 4시에 슬쩍 들여다보는 경우도 있었다.
환자의 어머니가 항상 와 있었는데, 시혁이 그러는 걸 고마워하면서도 부담스럽게 여겼다.
“원장님, 이렇게 하시지 않아도 돼요.”
“아닙니다. 제 환자인 걸요. 밤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조심해야지요.”
그렇게 자주 들여다보길 잘했다.
입원하고 열흘째 새벽에 들어갔더니 김규현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급히 항상 갖고 다니던 압박 붕대로 눈을 가려서 진정시켰다.
그것 말고는 특기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묘한 일이 생겼다.
김규현의 퇴원 시점을 조율할 때, 외래를 통해 몇 명의 환자들이 더 방문을 했다.
대부분 어린 학생들.
성별과 나이, 학교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상귀네우스 웨사니아 환자였던 것이다.
< 상귀네우스 웨사니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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