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60화 (60/250)

< 상귀네우스 웨사니아 –1- >

이번 방문은 참 다사다난했다.

초록용의 소환을 보고, 야만 진영에 잡혀가고, 마약을 만들고, 야만 괴수로 야만 군주의 본성을 휩쓸고……

시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하라면 못할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했을까 싶었다. 생각해 보면 호랑이 위에 올라타 곡예를 벌인 것과 같은 일이니까.

어쨌든 좋다.

지금은 현실의 일에 충실해야 할 때다.

오늘은 2016년 7월 1일.

바로 시혁의 한의원이 개원하는 날이니까.

개원식은 오후 2시였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작은 파티만 열고, 진료는 월요일부터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결국 이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1시간은 일찍 한의원에 도착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벌써 한의원 문이 열려 있었다. 간호사와 두 직원은 물론, 박희정 부원장까지 한의원 안을 서성였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원장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다들 일찍 오셨네요?”

모두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단체로 맞춘 한의원 가운. 흰색 바탕에 녹색 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직군마다 형태가 조금씩 달랐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비슷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가운마다 박힌 글귀가 시혁의 시선을 끌었다.

[괴수 질병 전문]

[최시혁 한의원]

위 여섯 글자는 작게, 아래 여섯 글자는 크게.

시혁도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커피라도 한 잔 하려고 할 때, 한의원 앞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커다란 화환이 배달되었다.

누리 공격대에서 보낸 거였다.

그게 시작.

화환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대한이능협회 광주광역시 지부, 전라북도 지부, 부안 군수, 전라북도 도지사, 국회의원 이승규, 이능력자 관리청, 한의사 협회 광주광역시 지부, 국립중앙의료원, 시혁의 모교인 창천대학교 한의학과, 심지어 창천대학교 광주 병원에서도 보냈다.

순식간에 한의원 앞이 화환으로 가득 찼다.

직원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화환이 많이 들어오네요?”

“국회의원한테도 화환이 왔어요!”

“이야, 이렇게 많이 들어온 건 처음 봐요!”

1시 반이 되자, 미리 예약해 둔 다과가 도착했다. 곧 방문할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한 음식이었다.

첫 손님은 누리 공격대의 네 명.

시혁은 넷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오시느라 힘드시지 않았습니까?”

“아, 저희 사무실 바로 이 근처잖아요. 평화공원 쪽이어서,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안 걸려요.”

“가깝네요. 자주 오세요. 잘 해드릴게요.”

“호호, 알았어요.”

직접 한의원 내부를 보여주었다.

5층은 원장실 2개, 치료실, 대기실, 탕전실, 약제실, 처치실, 물리치료실 등으로 나눠져 있었다. 6층은 순수 병동이고, 간호사실과 처치실, 휴게실 등이 위치했다.

구경이 끝난 뒤에는 다과를 대접했다. 예쁜 디저트가 많아서, 신아영과 김미애가 특히 좋아했다.

한세훈이 직원들을 한 번 살펴보곤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 직원들은 무슨 기준으로 뽑으신 거예요?”

“네? 왜요?”

“전부 미녀들만 계셔서요. 전 선생님이 얼굴 보고 뽑으셨나 했죠.”

시혁은 피식 웃었다.

어쩌다 보니 외모가 상당한 이들을 뽑긴 했지만, 그래봐야 이능력자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으니까.

이능력자는 미남 미녀가 많다. 특히 지금 시혁 앞에 앉은 넷은 연예인도 뺨칠 정도였다.

사실 당연하다.

이능력자로 각성할 때 전신이 재구성되니까. 좌우 골격이 완벽히 대칭을 이루고, 피부가 아기처럼 고와지는 것이다. 자연히 대부분은 미남 미녀로 거듭난다.

무협 식으로 말하면 환골탈태한다고 할까.

듣고 있던 민수진이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시혁을 쳐다보았다.

“원장님, 정말 얼굴 보고 뽑으신 거 아니에요? 가끔 남자 원장님 중에 예쁜 간호사들 뽑아놓고 이상한 생각 하시는 분이 계신다던데……”

“그런 거 아닙니다.”

“호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시혁이 정색하자, 민수진이 여우처럼 웃었다.

대학 병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사람답게 능글맞은 구석이 있었다.

하긴 이런 사람도 필요하지. 지나치면 내쳐야겠지만.

계속해서 손님들이 방문했다.

동문 선후배는 물론이고, 대한이능협회의 주요 인사들도 다녀갔다. 4시 무렵에는 광주광역시 시장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이 찾아와서 깜짝 놀랐다.

테이프도 잘랐다.

워낙 많은 사람이 찾아온 탓에 가위가 모자랐다. 덕분에 주위 식당에서 잠깐 가위를 빌려오는 촌극을 벌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좋은 징조라고 모두들 활짝 웃고 있었다.

개원식이 끝난 것은 오후 6시.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회식을 할까 하다가 금요일인 것을 감안해 다음으로 미뤘다. 각자 개인 일정이 있을 테니까.

월요일에는 정식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사전에 박희정과 진료 방식에 대해 의논했다.

“저는 괴수 질병을 전문으로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일반 환자들은 박 원장님이 맡아주세요.”

정확한 직책은 부원장이지만, 한의원에서는 그냥 원장이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

박희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제가 보기 힘든 병이면 원장님께 넘겨도 될까요?”

“그야 상관없습니다만 저도 올해 졸업한 것은 마찬가집니다. 한의학적으로는 박 원장님이나 저나 별 차이 없어요.”

“그래도요.”

“박 원장님이 보시기에 그게 낫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알려지지 않은 괴수 질병일 수도 있으니까요.”

“네, 원장님.”

간호과장 민수진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간호과장님은 병동 간호사 근무표 만들어서 저한테 보여주세요. 지금은 입원 환자가 없으니 3교대 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언제 입원을 시킬지 모르니까요.”

“예, 원장님.”

민수진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원 첫 날이라 그럴까.

환자들이 상당히 많이 왔다.

대기실은 꽉 찼고, 치료실 침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입원 환자가 없어 다행이었다. 출근한 간호사들 모두가 5층에 투입되어 있으니, 외래가 큰 문제없이 돌아갔다.

다들 바쁜데 시혁만 혼자 한가했다. 가장 목 좋은 원장실을 차지하고 앉아 하품을 쩍쩍 했다. 아직 홍보가 덜 되었는지, 일반적인 환자들만 찾아왔기 때문이다.

간혹 시혁에게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도 있었다. 그런 환자만 직접 봤다. 덕분에 아예 무료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전이 지났다.

오후 3시, 원장실에 앉아 있는데 밖이 좀 소란스러워졌다.

“아, 싫다니까! 집에 가자고!”

갓 변성기가 지난 듯 굵으면서도 앳된 목소리다.

기껏해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 될까.

누군가 달래는 소리도 언뜻 들렸다. 어머니쯤 되는 듯, 중년 여인의 목소리 같았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도 잠깐씩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원장실 문을 열고 민수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원장님. 환자 한 분 계세요.”

“네, 들여보내세요. 어? 15살이에요?”

시혁은 모니터를 보고 묘한 얼굴을 했다.

전산에 환자 한 명이 접수되어 있는데, 이제 겨우 15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국 나이로 따져도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얘기.

민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어디가 안 좋대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원장님만 찾고 계세요. 그런데 좀 이상해요.”

“뭐가요?”

“지금 여름이잖아요? 그런데 환자가 전신을 꽁꽁 싸매고 있어요. 엄청 더울 텐데……”

그건 확실히 이상하다.

민수진을 시켜 환자를 들여보내게 했다.

잠시 후, 민수진의 안내를 받으며 세 사람이 원장실 안으로 입장했다.

중년 부부와 다소 통통한 체구의 남학생이었다.

민수진의 말대로다.

남학생은 전신을 가린 상태였다. 후드를 덮어쓰고 마스크를 써서 얼굴도 가렸다. 심지어 목도리까지 해서 살갗을 아예 드러내지 않았다.

한여름이라 한참 더울 땐데 왜 저러는 걸까?

보호자들은 멀쩡했다. 둘 다 가볍게 차려 입었다. 다만 아들을 걱정하느라 그런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째서인지 얼굴에 상처가 나 있었다. 아버지는 오른쪽 광대가 시퍼렇게 물들었고, 어머니는 이마에 작은 밴드를 붙여 놓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광경.

굳이 그걸 묻지 않았다. 그저 책상 옆에 있는 보조 의자를 가리켰다.

“김규현 님이시죠? 여기 앉으세요. 보호자 분들도 앉으시고요.”

“예, 원장님.”

셋이 조심스럽게 앉았다.

환자, 김규현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아까 전부터 계속 씩씩대고 있었다.

김규현을 주의 깊게 살폈다.

“어디 안 좋으셔서 오셨습니까?”

그러자 대답은 안 하고 자기들끼리 눈치만 보았다.

왜 저러는 거지?

시혁이 의아해할 때, 김규현의 어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우리 규현이가 요새 좀 이상해요.”

“이상하다고요?”

“네. 지금까지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는 아인데, 갑자기 짜증도 늘고 자꾸 화를 내잖아요. 그리고 어제는……”

“여보!”

김규현의 아버지가 짧게 소리를 질러 제지했다.

어머니가 잠깐 몸을 멈칫하더니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어머, 말이 그만 헛 나왔네요. 아무튼 그래서 원장님 찾아왔어요. 원장님은 좀비도 치료하시고, 용하기로 소문 나셨잖아요?”

“음……”

짜증이 늘고 자꾸 화를 낸다?

일단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것부터 질문했다.

“김규현 님이 지금 고 1인데, 사춘기 같지는 않았습니까?”

“사춘기는 아닌 것 같아요.”

보호자들이 김규현을 보며 말했다.

시혁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단순히 사춘기라면, 지금 저렇게 피부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힘드니까.

시혁은 김규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김규현이 움찔하며 놀랐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김규현 님, 잠깐 얼굴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싫어요.”

김규현이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좋은 말로 타일렀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소리를 빽 하고 질러서, 보호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한참 예민합니다.”

“규혁아, 마스크 벗어볼래? 여기 선생님한테만 살짝 보여드리자. 유명하신 분이니까, 금방 치료해 주실 거야.”

김규현이 망설이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나마 보호자들의 말은 먹히는 것 같았다.

보호자들이 계속 설득을 하자 자신의 손을 천천히 마스크로 가져갔다.

마스크를 벗자 맨 얼굴이 드러났다.

시혁의 눈이 꿈틀거렸다.

괴상한 얼굴이었다.

피부 전체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화가 난 듯했다. 어떻게 보면 적색 선혈을 발라 놓은 것 같기도 했다. 얼굴에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퍼런 정맥이 돌출되어 있어, 그러한 느낌을 부채질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증상.

김규현은 급히 마스크를 다시 썼다. 한 번 봤으니 됐다는 태도였다.

“얼굴만 그런 겁니까? 아니면 몸 전체가 그런 겁니까?”

“왔다 갔다 해요. 규현이가 화를 내면 얼굴이랑 몸 전체가 저렇게 됐다가, 진정하고 나면 가라앉아서 다음날에는 정상으로 되돌아가더라고요.”

“예전에는 안 그랬고요?”

“네, 토요일부터 갑자기 그래요. 여태 화 한 번 낸 적 없는 순둥이인데……”

화내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사춘기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에 성격이 변하는 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니까.

문제는 방금 봤던 얼굴이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도무지 떨칠 수가 없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최소한 수백 번.

병력 청취를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느낌에 집중하자, 한 가지 영상이 불현 듯 떠올랐다.

불과 얼마 전, 아르거스에서 벌였던 일이 떠올랐다.

야만 군주에게 붙잡혀 갔었고, 독과 마약을 이용하여 결국 패배시켰지.

그때 시혁이 썼던 것 중 핏빛 광기라는 물약이 있었다.

근력을 폭주시키고, 광기에 휩싸이게 하는 마약.

혹시?

어떤 생각이 시혁의 뇌리를 스쳤다.

< 상귀네우스 웨사니아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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