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41화 (41/250)

< 축하연 -1- >

대한민국을 강타한 좀비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채석강으로 휴가를 나왔다가 빠르게 신고를 했던 국군 소위, 신고를 받자마자 움직인 고희 대대, 한 몸처럼 움직인 전라도의 이능력자들과 전국에서 지원을 왔던 이능력자들.

그리고 시혁.

아무래도 시혁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가장 컸다. 좀비를 막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좀비화를 막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기자들이 시혁을 향해 두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리조트 로비에서 기자 회견이 열렸다.

시혁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번거로운 자리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2층의 연회장에서 음식들만 축내고 있었다.

바디소 카다웨르에 같이 대처했던 이능력자들이 시혁의 주위에 둘러앉았다.

김진태가 술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자, 건배 합시다! 그 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지난 시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시혁도 기분 좋게 술잔을 들이켰다.

달짝지근한 붉은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갔다.

뽕주라던가?

부안의 대표적인 특산품이 오디인데, 그걸 담가 만든 술이었다. 달면서도 뒤끝 없는 맛이 특징이었다.

안주는 역시 부안에서 유명한 백합(조개의 한 종류)탕과 바지락전 등등. 여기에 각종 젓갈과 생선회, 조개회가 더해지자 참 감칠맛이 났다.

음식을 나르던 아주머니가 수더분한 웃음을 지었다.

“부족하면 말씀 하시구랴. 얼마든지 더 갖다 드릴 테니.”

“감사합니다. 갈치조림 좀 더 가져다 주실래요?”

“갈치? 풀치 말씀이시구만? 당연히 더 드려야지.”

시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좀 작은 갈치조림이 나와서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뭔가 다른 음식이었나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갈치 새끼를 조린 것.

살은 적지만 고소하고 쫀득한 맛이 있었다. 국물이 특히 맛있어서, 풀치 조림과 함께라면 흰 밥 두 공기는 간단히 해치우게 된다.

부안 향토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김진태가 시혁에게 관심을 보였다.

“병원을 그만 두셨다고요?”

“예. 사실 더 배우고 싶긴 했는데 어쩔 수 없었죠. 제가 수련 받던 병원 교수님들이 좀 고루하셔서요.”

“사실 의료계가 좀 그렇지요.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사람 생명을 다루는 곳이니, 살다 보면 자연히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병원 교수님들에게 별로 감정은 없어요. 저도 그 분들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 테니까요. 그래도 섭섭하긴 하죠.”

“그야 그렇겠습니다.”

뭘 생각하는지, 김진태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 틈을 타 이훈영이 시혁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지금은 한의원 개원 준비 중이라고 하셨죠?”

“예. 알아보고 있습니다. 발현자 검증까지 끝나 등록되면 적당한 곳에 개원하려고요.”

“개원이라…… 병원에 취직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취직이요?”

“예. 마침 저희 상임대학교 병원에 이능 3과 자리가 공석인데, 선생님께서 생각 있으시면 한 번 병원장님과 자리를 주선해 보겠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병원장님도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면 바로 달려 나오실 겁니다.”

상임대학교 병원이면 전라북도에서는 가장 큰 병원이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교 부속 병원이니까.

시혁이 수련 받던 창천대학교 한방병원과는 비교가 안 된다. 광주광역시의 정연대학교 병원이나 문인대학교 병원 정도나 비교가 될까.

김진태가 이훈영의 옆구리를 툭 쳤다.

“어허, 이 과장님! 최 선생님과 안 건 제가 먼접니다. 영업을 해도 제가 먼저 해야지, 이 과장님이 먼저 하시면 안 돼죠!”

“사람 스카웃하는데 먼저 안 게 뭔 상관입니까? 선생님, 어떻습니까? 일단 얘기라도 한 번 해보시지요?”

“이 사람 좀 보게? 선생님, 굳이 멀리 전주까지 갈 필요 뭐가 있습니까? 차라리 우리 병원으로 오시죠. 선생님 집이 광주니까 우리 병원이 여러모로 좋을 겁니다.”

“정연대학교 병원 이능과는 꽉 차 있지 않습니까?”

“아 그야 제 자리를 드려도 되고, 아니면 새로 진료실 하나 열면 그만이죠. 바디소 카다웨르를 치료한 장본인인데, 그게 어렵겠습니까?”

“공수표 남발하시기는……”

“뭐요? 공수표? 이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에휴, 그만들 하세요. 전 병원 생각은 없어요. 그냥 마음 편히 한의원 하나 차려놓고 환자들 치료하면서 살랍니다.”

시혁의 대답에 둘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제 제안은 언제든 유효하니까, 마음이 바뀌면 꼭 연락 주시는 겁니다.”

“조건이 좀 모호하긴 했지요? 조만간 병원 차원에서 정식으로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그때 조건 검토해보시고 꼭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진태는 금방 포기했지만 이훈영은 집요한 모습을 보였다. 최고의 조건을 제안하겠다며 의욕에 차 있었다.

시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바디소 카다웨르를 치료한 게 어지간히 인상 깊었나 보다. 전문 경영인도 아니고, 의사이자 치유 계열 이능력자인 사람이 저리 관심을 보일 정도면.

로비에서 열렸던 기자 회견이 끝났다.

거기 참석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2층 식당으로 모여 들었다. 부안 군수와 전라북도 도지사는 물론 대한이능협 전라북도 지부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안 군수가 가장 먼저 시혁을 찾았다.

시혁의 두 손을 잡더니,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었다.

“선생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치료해주신 부안 군민만 50명이 넘습니다. 5만 부안 군민들을 대표하여, 선생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올립니다.”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 혼자 한 것도 아니고, 여기 이능력자 분들의 힘이 컸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한 분도 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 힘이 가장 컸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다시 한 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부안 군수로 끝나지도 않았다.

지역 사회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한 마디씩 했다. 시혁은 음식과 술을 앞에 두고 겸양의 말을 하느라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잠깐 얘기를 한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시혁의 앞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덩달아 다른 높으신 분들도 그 주변을 차지해서,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김진태나 이영훈, 한세훈은 뒤로 밀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게 탐탁치 않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바로 앞에 앉은 국회의원, 이승규 의원이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이승규 의원입니다. 이번에 큰일을 하셨습니다.”

“큰일은요. 별 거 아닙니다. 다른 누가 됐든 저처럼 행동했을 겁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 솔직히 저 같았으면 무료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치료법을 알려주는 대신 돈을 요구했을 겁니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앞으로도 두고두고 큰 돈이 될 텐데, 아깝지 않으셨습니까?”

이승규 의원이 감탄한 듯 말했다.

시혁은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바디소 카다웨르 치료법 또한 자연스럽게 널리 공개되었다.

애초에 바디소 카다웨르는 흔히 발병하는 병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 발생하면 국가적 비상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이런 병으로 금전적 이득을 추구하느니, 그냥 공개하는 게 낫겠다.

“당장 상황이 급한데 그런 생각까진 못 했습니다. 저도 돈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만, 환자들 목숨을 두고 흥정하고 싶지도 않고요.”

“과연 의사 선생님다운 말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의사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겁니다.”

이승규 의원의 말에, 곁에 앉은 이들도 한 마디씩 했다.

모두 시혁을 상찬하는 말들.

너무 금칠을 해대어 듣는 시혁이 불편할 지경이었다. 더 불편한 사실은, 시혁을 보는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어울렸던 이들과는 뭔가 달랐다.

아마도 꿍꿍이가 있는 모양.

한동안 의례적인 말이 오갔다.

시간이 적잖이 지난 다음, 이승규 의원이 본론을 꺼냈다.

“이번 일은 부안 지역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시혁 씨 덕에 그게 해소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혁 씨에게 드리고 싶은 제안이 하나 있는데, 어떻습니까?”

“제안이라니요?”

“우리 당에 입당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시혁 씨는 마침 광주 태생이고, 이번에 우리 지역과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앞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시혁은 눈만 끔뻑였다.

옆에서 군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선생님이 우리 당에 입당하면 제 자리가 위험해지겠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부안 군민들이 몰표를 줄 텐데요.”

“김 군수님 자리만 위험하겠습니까? 당장 제 자리부터 위험해지지요. 경선이든 총선이든, 도저히 이길 엄두가 안 납니다.”

이승규 의원이 군수의 말을 받았다.

냄새를 맡은 것일까.

기자들이 시혁의 주변으로 슬금슬금 접근하고 있었다. 녹음기를 작동시키는 기자도 많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기자도 보였다.

시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입당?

정치 입문?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규 의원의 소속 정당에서야 시혁의 입당이 큰 이득이 되겠지만, 시혁에겐 입당한다고 해서 얻을 게 없으니까.

시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전 정치에는 뜻이 없습니다. 한의학을 더 공부하고, 괴수 질병에 대한 지식을 최대한 알아내어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이승규 의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젊은 나이시니 선생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요. 참,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선생님은 아직 군대 안 다녀오셨죠?”

“예, 아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잊고 있던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면 모두 병역 의무를 마쳐야 하고, 그것은 시혁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살 신체검사 당시, 1급 판정을 받았으니까.

원래는 4년 전문의 과정 후 공중보건의로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데 병원을 뛰쳐나오면서 모든 게 엉클어졌다.

“글쎄요. 한 몇 년 있다가 공중보건의로 갈 생각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혁의 속내는 달랐다.

발현자와 이능력자 모두 다양한 병역 혜택을 받는다. 고위 이능력자는 거의 100% 면제 되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대체 복무 방법이 있었다.

지금의 시혁도 갖은 명목을 붙여 병역 혜택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 정부 입장에서 봤을 때, 시혁이 다른 나라로 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나중에 이능력자가 되면 더더욱 그렇고.

이승규 의원이 자기 턱을 쓰다듬었다.

“공중보건의라…… 선생님 같은 고급 인력을 촌구석 보건소에 배치하는 건 인력 낭비 같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요?”

“원하신다면 제가 아는 병원에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한 몇 년 근무 하시다가, 선생님이 공중보건의로 가실 때가 되면 병원 차원에서 보건복지부에 공중보건의 티오를 요청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같은 병원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에게나 환자들에게나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좋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시혁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다 듣고 나서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대신 제가 귀 당에 가입을 해야겠지요?”

뜻밖에도, 이승규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환자들만 잘 봐주시면 됩니다. 아무런 조건도 걸지 않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런 좋은 제안을 하면서 바라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느니, 장사하면서 밑지고 판다는 소리를 믿겠다.

분명히 뭔가 노림수가 있을 터.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 한의원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승규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음…… 꽤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

“좋은 제안인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도 품은 뜻이 있어서요. 당분간은 제 꿈을 향해 달리고 싶습니다.”

“흠, 꿈이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자리는 계속 비워두겠습니다. 혹시 생각이 바뀌시면 제 비서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승규 의원은 다소 굳은 얼굴을 하고 자리를 떴다.

생각해본다고 할 걸 그랬을까?

아니다.

미리 선을 그어두는 게 좋다.

시혁은 정치를 할 생각도 없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니까.

이승규와 대담을 마친 뒤에는 더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혁의 주변을 맴돌며 눈치만 살폈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갈까 생각할 때였다.

낯 익은 남자 하나가 시혁에게 다가왔다.

“최 선생,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작은 키에 넓은 이마.

바로 창천대학교 한방병원의 송문식 원장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유난히 키가 큰 남자가 그 옆에 서 있었다.

홍기태 원장.

병원을 나오고 채 한 달도 안 되어 그들과 재회한 것이다.

< 축하연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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