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능 수액 -2- >
이능력자들이 놀란 눈으로 시혁을 보았다.
급속 치료가 약 조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이능력자들의 이능도 약 조제에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능으로 부족한 에테르를 보충해준다면?
시혁의 눈이 번뜩였다.
이능을 캡슐 제형처럼 쓰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바디소 카다웨르에는 줘도 무방한 기운만 흡수하게 만들고, 그걸 지나쳐 심장에 직접 에테르를 보충해 주자는 것이다.
이게 된다면 굳이 홍옥화를 채취해 와서 자르고 볶고 끓이는 작업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능의 힘만 적당한 약에 부여해서 복용시키면 끝이니까.
시혁은 김진태에게 질문을 했다.
“김 과장님. 혹시 과장님 이능을 어디 부여할 수도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물이나 음식, 약 같은 것에 이능을 부여하면 그게 그대로 작용하는지 여쭙는 겁니다.”
“물론 작용합니다. 제가 직접 할 때보단 효율이 많이 떨어져서 선호하지는 않고요. 그래도 때때로 만들어서 응급 상황에 쓰곤 했는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이능력자 분들의 이능을 그렇게 조합해서, 바디소 카다웨르의 약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김진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이능을 사용하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요?”
“사람이 사용해서는 이능이 심장으로 바로 가지가 않으니까요. 그 전에 바디소 카다웨르에 몽땅 잡아먹히니, 그런 식으로 우회하려는 겁니다.”
그래도 구상한 처방의 약재에 대해서는 알려주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니까.
박주성이 금방 구해오겠다고 했다. 마침 5가지 중 3가지가 정연대학교에서 연구 중인 품목이라는 것이다. 다른 2가지도 아주 희귀한 식물은 아니니 대한민국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던가.
시혁은 이능력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구상을 밝히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바디소 카다웨르를 자극하면 어쩌려고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듯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이능을 조합하는 게 가능할까요? 저도 증폭 이능이랑은 조합해 본 적이 있는데, 시혁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복잡하게 해본 적은 없어요.”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요. 지금까지 시도한 적이 없는 방식이니까요. 하지만 일단 성공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앞으로 인류의 건강 증진에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단지 바디소 카다웨르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괴수 질병에 쓸 수 있어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은 시혁의 의견대로 되었다.
이능력자들이 대안을 제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 위험할 수도 있으니 환자에게 직접 쓰기 전 동물 실험을 하든 어쩌든 해서 최소한의 안전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뒤이어 어디에 이능을 부여할지 토론이 벌어졌다.
플라시보 약으로 흔히 쓰이는 녹말 정제에 부여하자, 그러느니 비타민제가 나을 거다, 시혁이 만들 약에 부여하여 복용시키는 건 어떠냐, 등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시혁도 한 가지 의견을 냈다.
“멸균생리식염수에 부여하는 건 어떻습니까?”
“환자가 복용하기 힘들 텐데요? 부피가 작은 게 좋을 거라고 봅니다.”
“굳이 입으로 복용해야 할 필요는 없지요. 우리 중 의사 선생님도 계신데, 정맥 주사하면 됩니다.”
“아!”
김진태가 무릎을 쳤다.
“기가 막힌 방법입니다! 혈관을 통해 주입하면 심장으로 직접 갈 거 아닙니까? 여차하면 가트(guttae, 1분당 떨어지는 방울 수) 조절해서 주입되는 걸 줄이거나 늘릴 수도 있고요. 그게 좋겠습니다!”
이훈영도 적극적인 지지를 표했다.
입으로 복용하면 부작용이 일어나도 즉각적인 대처가 힘들다. 배를 갈라 꺼낼 수도 없고, 이능을 발현해서 어떻게 하기도 어려우니까. 반면 정맥으로 주입하면 바로 멈출 수가 있으니 여러모로 장점이 있었다.
바로 이능 부여에 들어갔다.
멸균생리식염수는 리조트에 많이 있었다. 정연대학교와 상임대학교 의료진이 챙겨왔기 때문이었다.
부여된 이능은 다섯 가지.
강화, 포착, 분리, 확산. 무속성.
무속성 이능이 캡슐의 껍질 역할을 한다. 바디소 카다웨르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바디소 카다웨르의 핵은 마나의 방향성을 거꾸로 틀어 버린다. 헌데 무속성 이능은 이러한 방향성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無)를 유(有)로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고.
강화가 핵심. 포착은 강화 이능을 심장에만 작용하게 할 것이다. 분리가 무속성 이능과 강화 이능을 구분할 테고, 확산이 무속성 이능을 전신으로 뿜어 바디소 카다웨르를 자극한다.
확산 대신 저주나 약화를 넣는 것도 고려했지만 기각. 바디소 카다웨르만 아니라 전신으로도 퍼지니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테니까.
밖에 머물러 있는 이능력자들을 몇 명 더 데려왔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다섯 개의 이능이 제대로 섞이지 않고 서로 다투다 소멸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수십 번에 걸친 시도 끝에 겨우 적당한 비율을 찾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박주성이 홍옥화를 비롯한 다섯 가지 약재를 가져왔다. 시혁은 시범 삼아 그걸 약으로 달여 봤는데, 이능력자들이 그걸 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처음부터 복용시켰다면 모를까, 지금은 안 돼요.”
“이능을 부여하면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심장에 도착하기 전에 바디소 카다웨르에 흡수될 걸요?”
시혁도 같은 생각이었다.
역시 멸균생리식염수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 이미 다 완성되었고 투여만 남아 있으니까.
늦은 밤.
모두 501호에 모였다.
완성된 이능 수액을 환자에게 투여하기 전, 간단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괜찮겠습니까?”
침대에 누운 시혁에게, 김진태가 질문을 했다.
옆에는 수액대가 서 있고, 수액대에 걸린 수액 팩에서 영롱한 빛이 반짝였다.
시혁이 이능 수액 실험에 지원한 것이다.
원래는 동물 실험부터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불과 몇 분 전 504호 환자가 심실조동을 일으켜서, 김진태가 제세동기를 사용하여 겨우 치료를 했다. 다른 방 환자들도 상황이 가히 좋지 않았다.
시혁은 씩 웃어 보였다.
“위험하지도 않은데요, 뭘. 조합된 이능 중 사람에게 유해한 건 없지 않습니까? 또 훌륭한 이능력자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겁니다.”
“하하, 그야 그렇지요.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이능력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김진태가 느긋하게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동맥 채혈도 아니고 기껏해야 요골 정맥 주사였다.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었다.
주사기가 시혁의 요골 정맥을 찔렀다. 바늘만 남겨놓고 주사기를 제거한 후, 수액과 바늘을 연결했다. 수액팩 아래 동그랗게 생긴 조절기를 조작하자, 수액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진성이 시혁을 주시하다가 말했다.
“성공입니다. 강화 이능이 시혁 씨 심장에 작용하고 있습니다. 무속성 이능은 전신으로 퍼졌고요. 시혁 씨, 기분이 어떻습니까?”
“글쎄요. 이거 좀 요상하네요.”
시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참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주사 바늘이 꽂힌 왼쪽 손목부터 뭔가 이질적인 감각이 전해졌다. 그게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뜨듯하면서도 서늘하고, 간지러우면서도 묵직한 어떤 액체가 혈관 안을 돌아다니는 듯했다.
그 액체는 이내 가슴으로 모여들었다. 심장 쪽에 잠깐 머물더니, 심장에 흡수되며 청량한 느낌이 시혁의 가슴을 가득 매웠다.
반면 몸 전체에 옷을 몇 겹 껴입은 것처럼 거북한 감각이 들었다. 아마 무속성 에테르가 시혁의 몸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것도 너무 많이 쌓이면 좋지 않을 것 같다. 치료하는 틈틈이 중화 이능을 발휘하게 해서 조금씩 없애주는 게 좋겠다.
시혁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괜찮겠는데요? 부작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시죠. 중간에 무속성 에테르가 과도해지면 그것만 좀 중화시키면 되겠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지요.”
필요한 이능 수액은 준비되어 있다.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5층 환자들부터 정맥 주사를 놨다. 환자 한 명마다 이능력자가 붙어서, 체내에서 일어나는 에테르 반응을 자세히 관찰했다.
순조로웠다.
환자들의 상태가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응급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심장이 충분히 자기 기능을 하고 있었다. 기존의 이능 치료에 더해, 중화 이능을 가끔 사용해주면 그만이었다.
더구나 전국에서 이능력자들이 지원을 왔다. 대부분 치유 계열 이능력자였는데, 덕분에 기존 이능력자들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시혁도 압박감을 크게 덜어냈다.
새로 온 이능력자 중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꽤 많았다. 당연히 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실수를 하는 일 없이 이능 치료를 충실히 시행했다.
그런데 이들이 리조트에 도착하면 꼭 거쳐 가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시혁.
외부에서 대체 어떻게 시혁에 대해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시혁의 얼굴에 금칠을 하기 바빴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태평 대학교 이능과 김경조라고 합니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바디소 카다웨르의 치료 방법을 알아내셨다고요?”
“운이 좋았지요.”
“하하, 운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나중에 시간 나시면 연락 한 번 주십시오.”
받은 명함만 벌써 수십 장이었다.
부안 군수와 전라북도 도지사, 김제․부안군 국회의원까지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지금은 환자들 때문에 바빠 거절했지만, 이 일이 끝나면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 될 것 같았다.
스마트폰은 충전시키지 않았다. 충전시키는 순간 밀려 있던 연락 때문에 환자 치료에 차질이 생길 게 뻔해서였다.
이틀이 더 지나고, 화요일 아침이 되었다.
기쁜 일이 생겼다.
최초로 완치된 환자가 나온 것이다.
조금 초췌하긴 했지만 아주 건강했다. 가슴의 해골 문양은 완전히 사라졌다. 정신도 또렷했고, 이능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은 탓에 기존에 있던 병도 모두 치료되었다.
환자가 시혁을 비롯한 이능력자들에게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인사를 했다.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좀비한테 물렸을 때는 영락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들 덕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환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시혁도 가슴이 뭉클했다.
“조심히 가세요. 다시는 이런 병 걸리지 마시고, 병원 가지 않게 건강하게 사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봉사 활동 오셨다고 했지요? 전 나주 삽니다. 언제 광주로 문안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에이, 문안 인사는요. 저기 가족 분들이 오신 것 같네요.”
시혁은 말을 돌렸다.
출입 금지된 리조트의 유리문 밖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통통한 중년의 여인과 중고등학생 남자애 두 명.
환자가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예. 제 가족들입니다. 감염된 거 알고 마누라가 전화하면서 어찌나 울던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어서 가보세요. 오래 기다리신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편히 계십시오.”
환자가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리조트를 벗어났다.
중년 여인이 통곡하며 환자를 끌어안았다.
환자는 짐짓 괜찮은 듯 웃어 보이지만,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김진태가 시혁의 어깨를 툭 쳤다.
어째서인지, 나직이 말을 거는 김진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시혁 씨가 여기 오셔서 참 다행입니다. 선생님의 봉사 덕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시혁은 민망한 얼굴을 했다.
“별 거 아닙니다. 집에서 노느니 좀 돕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선생님 능력이 환자들 치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 장담하건대 선생님이 없었으면 감염됐던 사람들 모두가 죽었을 겁니다.”
“과찬이십니다. 과장님도 계시고 이 과장님도 오셨으니 분명히 다른 답을 찾으셨을 거예요.”
시혁은 겸양의 말을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김진태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은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알았다.
아니, 이들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매일 같이 떠들어 댔으니까. TV에 시혁의 얼굴이 안 나오는 때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혁은 주말이 넘도록 리조트에 머물렀다.
그 사이 대부분의 환자가 완치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영상을 찍고, 인터뷰를 따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것도 월요일 저녁에 모두 끝이 났다.
대한민국 전체가 주목하는 가운데, 마지막 환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 이능 수액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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