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38화 (38/250)

< 좀비 사태 -3- >

“구경만 해야 하나?”

“가슴 쪽에만 손 안 대면 돼요. 다른 곳에 분산시켜서 치료하면 되던데요?”

“그렇게 하면 진행 억제밖에 안 되잖아요.”

그렇게 소란하던 중, 한 이능력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치료 방법은 없나요?”

김진태는 얼굴을 굳혔다.

그 이능력자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는 밝혀진 치료법이 없습니다.”

“어, 그럼 어떻게 해요?”

“존스 아츠나 판유유도 불가능합니까?”

“그 사람들은 가능합니다. 존스 아츠도 캘리포니아 좀비 사태를 해결하면서 유명해졌으니까요. 바디소 카다웨르라는 이름도 존스 아츠가 직접 붙인 겁니다.”

G급 이능력자만이 치료가 가능하다는 뜻.

윤명호, 시혁에게 막말을 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럼 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우리만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외국에서라도 불러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 둘이 과연 와줄지 모르는 일입니다. 너무 늦으면 소용이 없고요.”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회의를 하며 체계를 잡아나갔다.

일단은 좀비화의 진행을 막는데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좀비화가 확인된 피해자는 최상층으로 옮기고, 아래층은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이들로 채웠다. 만약의 경우 리조트의 상층부를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책임자도 정하고, 교대해서 이능 치료를 할 순서도 결정했다. 정연대학교 이능과장 김진태와 상임대학교 이능과장 이훈영이 A급 이능력자라 자연히 그 둘이 주도하게 되었다.

회의가 끝나기 전, 시혁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여태껏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던 참이었다. 회의에 참가한 유일한 비 이능력자라 온통 시선이 집중되었다.

김진태는 시혁을 지목했다.

“아, 발현자분, 뭔가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방금 전에는 선생님이라 불렀는데, 시혁의 정체를 알려주려고 일부러 발현자라고 부른 것이다.

시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국 이능력자들을 초빙하는 거야 당연히 해야 하겠지만, 우리도 두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분이 오시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따로 치료 방법을 찾는 게 좋겠습니다.”

“그야 그렇습니다만, 어떻게요?”

“S급 이능력자도 치료를 못 하는데……”

대부분의 이능력자가 불신을 드러냈다. 김진태도 그게 되겠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오직 한세훈만 신뢰에 찬 얼굴을 했다.

그들을 마주 보며, 시혁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바디소 카다웨르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인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능을, 그 반대로 작용시킨다는 점이지요.”

“반대라고요?”

“예. 치유하면 악화시키고, 보호하면 손상시키고, 정화하면 오염시킵니다. 여러분들이 익히 경험하신 것처럼요. 하지만 이게 바디소 카다웨르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따로 있지요.”

“그게 뭡니까?”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즉, 저주를 걸면 축복으로 작용하고, 감쇠를 걸면 증폭됩니다.”

이능력자들이 웅성거렸다.

지금 시혁이 말한 내용은 지구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바디소 카다웨르 자체가 희귀할뿐더러, 좀비들을 죽여 없애고 피해자들을 격리하기 바빠 자료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것이다.

김진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반대도 가능하다? 그럼 치료가 아니라, 병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디소 카다웨르의 핵에 저주 계열 이능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환자의 육신이 약해지지 않게 치유 계열 이능을 주의 깊게 쓰는 게 바디소 카다웨르의 치료 방법입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회의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능력자들이 듣기에도 상당히 그럴 듯했던 것이다.

상임대학교 이훈영이 손을 들었다.

“일 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치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누가 만든 겁니까? 전 모든 괴수 질병 관련 학술지를 구독하고 있지만, 그 방법은 금시초문입니다.”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시혁은 이훈영을 보며 말했다.

“제가 알아낸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 발현자입니다. 꿈을 통해 괴수 질병에 대해 알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 능력으로 알아냈습니다. 제 자랑 같긴 하지만, 최근에 글루마 코푸스의 치료 방법을 공개한 게 접니다.”

“아! 관리청에서 심사 중이라는 그 발현자!”

이훈영이 탄성을 질렀다.

관리청에서 개인 정보 보호 중이라더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모양이었다.

하긴 전라도의 이능력자는 수가 많지 않으니까. 괴수 질병을 일선에서 대하는 치유 계열 이능력자만 따지면 더더욱 그러했고.

못 믿는 사람이 있을까 봐, 한세훈이 한 마디 거들었다.

“최시혁 선생님의 신원은 누리 공격대에서 보증합니다. 저희 공격대의 간부 한 명이 최시혁 선생님께 치료를 받았고, 발현자 심사 받는 것을 직접 참관했습니다. 아직 승인만 안 났다 뿐이지, 최시혁 선생님은 발현자가 확실합니다.”

시혁은 한세훈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시기적절한 도움 덕에, 이능력자들이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존스 아츠와 판유유를 초빙하는 한편 시혁이 제시한 방법대로 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물론 모든 이능력자들이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윤명호가 불퉁한 얼굴로 말했다.

“바디소 카다웨르의 핵에 직접 저주 이능을 사용한다고요? 미친 거 아닙니까? 그러다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게요? 검증되지도 않은 치료법을 무턱대고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시혁은 간단히 그 의견을 일축했다.

“탐지 계열 이능력자가 한 명 붙으면 됩니다. 저주 계열 이능력자가 이능을 최대한 약하게 발휘한 후, 정말 축복으로 바뀌는 지 확인하세요. 본격적인 치료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치유 계열 이능력자도 체내를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래도 탐지 계열 이능력자보다는 못 한다.

논의 끝에 시혁이 제시한 치료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능력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밖에서 사태를 수습하던 이능력자 중 몇 명을 리조트 안으로 데려왔다. 탐지 계열과 저주 계열, 약화 계열 이능력자였는데, 하나같이 A급이었다. S급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데려오지 못했지만 이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존스 아츠와 판유유 초빙도 건의를 했다. 이건 이능력자들끼리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정부와 협회에게 맡겼다.

급한 일을 처리한 후, 최상층의 방 중 하나에 모였다.

스위트룸이었다. 침실과 거실을 구분하는 벽이 없어 상당히 넓었다. 덕분에 이능력자 수십 명이 모두 들어올 수 있었다.

“시작하지요.”

탐지 계열 이능력자, 연진성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특이하게도 적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나타났다.

연진성이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두 눈이 번뜩이며, 붉은 광채가 섬전처럼 환자의 가슴에 박힌 해골 문양으로 쏘아졌다.

“그르륵, 그르륵.”

환자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좀비에게 물린 피해자 중 가장 중한 상태였다.

아까 시혁이 보고 치료를 제지했던 환자.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신체 곳곳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이성을 잃었고, 침대에 묶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니까, 최대한 약하게 이능을 걸어야 된다는 거죠?”

약화 계열 이능력자, 문희지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시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금씩 강도를 올려보는 게 좋겠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사람한텐 한 번도 써본 적 없는데……”

“걱정 마세요. 일이 잘못 되어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치잇, 아직 검증도 못 받으셨다면서……”

말은 그렇게 해도 할 마음은 있는 모양이었다.

환자 앞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가볍게 손뼉을 쳤다.

팡!

경쾌한 소리가 터졌다.

어떤 힘이 음파를 타고 환자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힘은 정확히 심장을 타격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심장을 감싼 어떤 기운을 때렸다.

기운이 작동했다.

약화 이능을 흡수하더니 그 성질을 반대로 돌렸다. 그리고 심장의 힘을 빌려 변화된 이능을 전신으로 뿜었다.

강화의 힘이 환자의 몸을 씻었다.

별로 효과는 없었다.

투여된 저주 이능이 워낙 미약했으니까. 그저 가슴 부분을 좀 맴돌다가 사라졌다.

연진성이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성공입니다. 정말 강화 이능으로 바뀌는데요?”

“강도를 올려 봅시다. 희지 씨? 조금 더 강하게 이능을 써보시겠습니까?”

“알았어요.”

문희지가 연속해서 이능을 발현했다.

금방 최고 강도에 도달했다. 옆에 있는 시혁까지 그 영향을 받아 속이 메슥거렸다.

시혁은 냉정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너무 부담을 줘서도 안 된다. 그러다 바디소 카다웨르의 핵이 깨질 경우, 좀비화 자체는 취소되어도 반작용으로 인해 환자가 죽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지금은 더 부담을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성정현 씨. 부탁드립니다.”

“그럽시다.”

저주 계열 이능력자도 합류했다.

문희지와 성정현이 나란히 서서 이능을 발현하자, 환자의 상태가 빠르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혁은 치유 계열 이능력자들에게 말했다.

“순조롭네요. 정화도 시작하지요. 치유는 그 다음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지요.”

치료 방법을 시혁이 제시한 탓에, 치료 과정 조절도 시혁이 하게 되었다.

쉽지는 않았다.

아르거스에서는 혼자서 알아서 하면 됐는데, 여기선 일일이 말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능의 근간을 이루는 힘, 에테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연진성의 보고를 들으며 치료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

환자가 상당히 회복되었을 때, 시혁은 손을 들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예?”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시혁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다 심장에 무리가 갑니다. 바디소 카다웨르의 핵이 환자 심장을 둘러싸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어레스트(심정지) 나면, 할 수 있는 게 CPR(심폐소생술) 밖에 없어요.”

“아, 그래요?”

“그럼 천천히 하는 게 좋겠네요.”

“굳이 무리할 필요 없죠.”

이능력자들은 순순히 시혁의 말에 따랐다.

시혁의 치료 방법이 통한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다음이었다. 시혁의 지시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증상이 심각한 순으로 치료를 해나갔다.

참여한 이능력자들이 힘들어 하면 다른 이능력자를 불렀다. 지금 채석강에 모인 이능력자만 수백 명이어서 대체할 인력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연히 시혁은 많은 이능력자와 얼굴을 익혔다.

대부분의 이능력자가 시혁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그리고 왜 다른 쟁쟁한 치유 계열 이능력자 대신 치료 현장을 지휘하는지 궁금해 했다.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그러느라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 되는지 어쩌는지도 몰랐다.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있었다.

환자들 대부분이 호전을 보였다. 막 감염됐던 이는 가슴의 해골 문양이 아주 흐릿하게 변했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 치료하는 거라 그런지, 아르거스 보다 호전 속도가 빨랐다.

나쁜 소식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G급 치유 계열 이능력자인 존스 아츠와 판유유가 대한민국 방문을 거절했다는 것.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다. 그들은 엄청나게 바쁠 테니까.

문제는 둘째 소식.

몇몇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아졌다.

바디소 카다웨르 자체는 답보 상태다. 최소한 몇 시간 내에 좀비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심장에 무리가 갔는지, 서맥과 함께 부정맥이 함께 나타나고 있었다.

원래 불사의 역병은 심장에 부담이 많이 간다. 여기에 각종 부정적 이능까지 투사되었으니 오죽할까.

한 환자는 심장이 아예 멈추기까지 했다. 시혁과 김진태, 이훈영이 달라붙어 심폐소생술을 하여 겨우 살려냈다.

일단 몸에는 문제가 없다. 치유 계열 이능으로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으니까.

문제는 심장.

약해진 환자들의 심장을 보호할 방법이 절실했다.

< 좀비 사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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