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 사태 -1- >
시혁은 본인의 눈을 의심했다.
왜 불사의 역병이 저기 나타났단 말인가?
상황이 심각했다.
지구에도 가끔 좀비가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기존에 알려졌던 것처럼 전염력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리면 살이 썩어 들어가긴 해도 좀비가 되진 않았다.
문제는 저렇게 해골 문양이 가슴에 있는 좀비들.
이런 좀비들이 나타나면 비상이 걸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 사태가 고스란히 재현되기 때문이다. 군대를 투입하면 결국은 해결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 입는 피해가 너무 컸다.
더 생각하지 않았다.
부안에 가봐야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부모님이 만류했다.
“위험한데 부안에는 왜?”
“이능력자들이 많이 모였다고 하니까 너는 안 가도 될 거다. 차라리 부동산이나 더 알아보는 게 어떠냐?”
시혁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야 돼요. 지금 부안에 나타난 좀비는 전염성이 있고 치료하기 힘들어서, 가만히 놔두면 적어도 수백 명이 죽을 거예요.”
“위험할 텐데……”
“걱정 마세요. 앞장서서 좀비를 잡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뒤에서 이능력자들한테 조언이나 좀 해줄 테니까, 별로 위험하지도 않을 걸요?”
꽤 시간을 들여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독립했다면 그냥 가면 그만이지만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신세라 어쩔 수 없었다.
속옷과 옷 몇 벌, 괴수 질병 사전이 담긴 구형 노트북을 챙겼다. 그저 한꺼번에 작은 서류 가방에 쑤셔 넣은 뒤 길을 나섰다.
먼저 택시를 타고 종합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버스표를 끊자, 매표원이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괜찮으세요? 부안에 괴수 재난 경보 떨어졌다던데요.”
“괜찮으니까 표 얼른 주세요. 10분 후에 출발이죠?”
“네. 조심하세요. 서해안 쪽이라는데, 그쪽으로는 가시지 마시고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버스가 출발했다.
텅텅 비어 있었다.
토요일이니 관광객이 좀 있을 법도 한데, 갑작스러운 괴수 재난 경보에 모두 취소한 듯했다.
시혁은 좌석을 살짝 뒤로 젖혔다.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고, 스마트폰으로 현재 상황을 알아보았다.
SNS를 통해 온갖 괴담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미 피해자가 1만을 넘었다는 둥, 좀비들이 채석강 주변의 호텔과 음식점을 모조리 다 때려 부셨다는 둥, 무덤에서 시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둥……
시혁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아르거스에서 좀비는 죽음 진영의 기본 병종이다. 소환에 필요한 마나는 적고, 유지비도 적게 들지만 그만큼 허약했다. 성인 남자가 쇠파이프만 들어도 상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준전시 국가다. 성인 남자 대부분이 총기를 다룰 줄 알았다. 따라서 초동 대처만 잘 이루어졌다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불사의 역병은 영화처럼 순식간에 사람을 언데드로 바꿔놓지 못한다. 지구에 와서 전염성이 더 강해졌어도 마찬가지였다.
‘피해 규모는 1천 이내일 거야.’
그래도 크다.
고등학교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까.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이들만 해도 못해도 수만은 될 것이다.
수천 명은 가족을 잃고, 수만 명은 친지를 잃는 셈.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시혁이 가서 뭘 할 수 있느냐고?
아직 좀비로 변하지 않은 이들을 구할 수 있다. 피해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셈이다.
버스가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광주에서 부안까지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1시간.
차 안에서 한세훈에게 받은 사전을 확인했다. 불사의 역병에 대해 어떤 점이 알려져 있는지, 어떤 점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미리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내용을 숙지하는 사이 차가 부안에 도착했다.
정말 시골이었다. 터미널 근처에 3층 이상 올라간 건물이라고 해봐야 손을 꼽았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채석강까지 가는 버스를 수배했다.
격포항이라고 하던가.
마침 곧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올라탔는데, 운전석에 앉아 있던 기사가 머리를 흔들었다.
“격포까진 안 가요. 변산까지만 갑니다. 거기 지금 봉쇄됐어요.”
“아, 그래요?”
“있던 사람도 도망쳐 나오는 판국에 거긴 가서 뭐하려고요? 내소사 서쪽은 곧 대피령 내려진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관광하러 오셨나 보던데 정읍에 내장산이나 보고 가세요.”
어쩐다?
택시들도 채석강에 가는 것은 거부했다. 어차피 중간에서 막힌다는 것이다.
중간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해도 거부, 돈을 더 준다고 해도 거부했다. 오히려 젊은 놈이 왜 사지로 들어가려고 하느냐며 역정을 내는 이도 있었다.
악의 없는 거절에 시혁도 주춤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시혁 자신을 걱정하는 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발현자라는 것을 밝혀야 할까?
그래도 변산까지 가는 게 한계였다. 변산과 격포 사이에 봉쇄선이 있는데, 거기 있을 군인들이 시혁의 말만 믿고 통과시켜줄 거라곤 보기 어려워서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열어 강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찬과 신아영은 누리 공격대 소속이다. 누리 공격대는 광주광역시에 거점을 두고, 전라도에 출현하는 괴수들을 사냥하곤 했다. 자연히 이번 사태에도 지원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받지를 않는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채석강에서 바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는데, 시혁의 스마트폰이 웅웅 울음을 토했다.
강찬이었다.
[아, 선생님! 전화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좀 바빠서 늦게 받았습니다.]
[채석강에 계시나 보죠?]
[예? 아, 예. 맞습니다. 뉴스 보신 겁니까?]
[저 지금 부안에 와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좀비화도 일종의 괴수 질병입니다. 이미 좀비가 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만, 감염된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아! 정말 그렇겠습니다. 지금 부안읍에 계신 겁니까?]
[네. 터미널 앞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음…… 미애를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이 근방은 봉쇄되어 있어서, 군인들이 선생님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김미애가 도착했다.
새까만 SUV를 몰고 왔다. 시혁도 아는 독일 유명 자동차 회사의 SUV였는데, 뭘 한 것인지 검붉은 얼룩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시혁이 그걸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짓자, 김미애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최시혁 선생님! 여기에요! 얼른 타세요!”
차에 오르는데, 비릿한 냄새가 시혁이 코끝을 찔렀다.
아르거스에서 많이 맡아본 냄새.
안전띠를 멘 후,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채석강 상황이 안 좋은 겁니까? 차에 피가 좀 묻은 것 같은데요.”
“아, 생존자들 구출하면서 좀비 피가 좀 튀었거든요. 공격대장님이 아끼는 찬데 안 됐어요.”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이제 좀 정리되는 분위기에요. 고희 대대 역할이 컸죠. 마침 휴가 나온 소대장이 있었는데 초동 대처를 제대로 했거든요. 군대에 연락도 넣고, 경찰에 신고도 하고…… 토요일이라 관광객들이 많아서 크게 번질 수도 있었는데,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전라북도는 35 향토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그 중 부안의 해안 경비를 맡은 게 이순신 연대의 고희 대대였다. 원래는 105연대 1대대라고 불렀는데, 2014년 말 새로이 명명한 것이다.
시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하는 것을 보니 최악의 상황은 아닌 듯했다. 정말로 상황이 심각했다면 김미애가 이렇게 웃으며 얘기를 할 수가 없겠지.
“안전벨트 하셨죠? 그럼 출발할게요.”
꾸아아아앙!
김미애가 사정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SUV가 굉음을 터뜨렸다.
화살처럼 앞쪽으로 튀어나갔다. 금세 가속이 붙더니, 잘 포장된 도로 위를 거친 야생마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멋들어진 해안도로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미애도 그렇고 시혁도 그렇고,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으니까.
변산면을 지나쳐 종암 교차로에 이르렀다.
격포로 가는 길목 중 가장 큰 곳.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김미애가 창문을 열고 자신의 이능력자 등록증과 누리 공격대 등록증을 보여주었다. 군인들이 그것을 확인한 후 길을 열어주었다.
종암 교차로에서 격포까지는 지척이다.
채석강 인근, 각종 식당과 숙박 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바다 쪽에서 검은 연기가 몇 줄기 올라오고 있었다. 건물들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화재가 좀 발생한 모양이었다.
김미애가 운전을 하며 말했다.
“좀비가 최초 발생한 곳은 채석강과 면하고 있는 한 호텔이었대요.”
지금도 그 호텔은 좀비가 득실거린다고 했다. 생존자들을 구출하는데 우선순위를 부여한 까닭에, 아직 거기까진 진출하지 못했다던가.
최초 발생 호텔이 언덕 위에 외따로 있어서 피해가 확산되는 게 늦었다. 그 덕에 휴가 나온 소대장이 상황을 빨리 파악하여 신고를 했고, 초동 대처가 잘 이뤄진 것이다.
결국 좀비들은 채석강과 격포 해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근의 거대 리조트를 임시 기지 겸 보호소로 삼고, 당시 좀비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민간인을 모조리 몰아넣고 있었다.
이윽고 격포 삼거리에 도착했다.
리조트로 가자, 강찬을 비롯한 신아영과 한세훈이 나와 시혁을 맞이했다.
다들 피곤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얼굴 하나만큼은 밝았다.
“반갑습니다. 다들 잘 계셨지요?”
시혁은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했다.
강찬이 시혁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저희는 선생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관리청에서 얘기는 들었는데, 발현자 인증도 잘 되고 있다면서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에이, 아직은 모르죠. 그나저나 일은 어떻게 돼 갑니까?”
“아, 방금 토벌을 끝냈습니다. 지금은 35사단 기동대대가 수색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A급 탐지 계열 이능력자가 붙었으니까 별 일은 없을 겁니다.”
“벌써요? 다행이네요.”
“휴우, 그러니 미애를 보냈지요. 강한 놈이 없어서 쉽게 끝났습니다. 좀비는 총이 통하니까 어렵지 않은 녀석이죠. 이번 건 전염성이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최초 발원지가 방어하기 용이한 곳이라 이렇게 끝난 것 같습니다. 호텔이 아니라 수산 시장에서 발원했으면 이 정도로 마무리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겠네요. 참, 혹시 감염된 피해자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상태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아, 맞아. 그것 때문에 오셨지요? 여기 세훈이랑 같이 가시죠. 세훈이도 치유 계열 이능력자니 도움이 될 겁니다.”
한세훈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는 제가 체면을 좀 구겼지만, 이번에는 제가 선생님보다 더 활약할 걸요?”
시혁은 쓰게 웃었다.
한세훈은 B급 이능력자, 즉 아르거스에서는 치료사 영웅이다.
제 아무리 이능력자라도 아르거스보다 지구에서 발휘하는 힘이 훨씬 약하다. 현재 한세훈의 이능 정도로는, 불사의 역병을 치료하기는커녕 악화시킬 뿐이다.
한세훈과 함께 격포 해안 북쪽의 리조트로 이동했다.
군인들이 대거 깔려 있었다.
좀비 사태는 진정 중이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긴 언제 어디서 새로운 좀비가 나타날지 몰랐다. 모든 좀비가 죽고, 감염 확률이 있는 모든 이들의 신병을 확보한 다음에야 마음을 놓을 것이다.
“무슨 일로 오셨지요?”
리조트 안으로 들어가자, 깔끔한 정장을 입은 20대 여성이 둘의 앞에 나타났다.
시혁이 뭔가 대답하기 전, 한세훈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손에서 녹색 투명한 빛이 너울처럼 일렁였다.
“아, 이능력자신가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전 치유 계열 이능력자입니다. 좀비들에게 물린 사람들을 보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3동으로…… 아니, 제가 직접 안내해드릴게요.”
20대 여성이 자길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한세훈이 씩 웃었다. 옆에서 걷는 시혁을 보더니, 턱을 들어 올리며 어떠냐는 표정을 짓는다.
역시 이능력자가 좋긴 하다. 어딜 가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이능을 시현하기만 하면 온갖 편의를 다 봐주려고 하니까.
하지만 별로 부럽지는 않았다.
이능력자가 되려고 했으면 진작 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1개 동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방마다 서너 명이 머무르는데, 언뜻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부터 이미 정신을 잃고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까지 증상이 제각각이었다.
증상이 심한 사람들 위주로 이능력자들이 붙어 있었다. 저마다 이능을 뿜어 치료하곤 있는데 별로 효과는 없었다. 피해자의 얼굴이 빠르게 수척해지고, 머리털이 거칠어지더니 저절로 빠져나갔다.
“크아악!”
피해자가 괴성을 질렀다.
옆에서 상태를 주시하던 이능력자가 경고했다.
“위험해요! 좀비가 되기 직전이에요!”
“이런!”
“아끼지 말고 다 퍼부어요! 이러다 정말 죽겠어요!”
“끄응! 힘냅시다!”
그 귀하다는 치유 계열 이능력자들이다.
녹색, 혹은 백색의 빛을 무지막지하게 뿌려댔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처럼, 모든 힘을 털어 넣고 있었다.
그것을 목격한 시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어떻게 이리도 무지할 수가 있나?
불사의 역병에 생명의 마나나 빛의 마나를 무작정 투여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가?
분노가 들끓었다.
참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 좀비 사태 -1- > 끝
ⓒ 산호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