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35화 (35/250)

< 검증 -2- >

숲 진영의 중급 병종 중 포자 버섯이 있다. 생기기는 거대한 버섯처럼 생겼고, 머리에 있는 구멍을 통해 포자 덩어리를 날려 공격했다. 그 포자에 의해 여러 질병이 유발되는데, 그 중 가장 악랄한 것이 포자 거름이었다.

사람의 허파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 시체를 거름 삼아 번식했다. 나중에 시체를 확인하면 곰팡이 덩어리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의 풀모 스포리움도 마찬가지였다.

시체 사진이 사전에 담겼다. 따라서 풀모 스포리움으로 확진될 경우, 사망 후 반드시 화장할 것을 권고했다.

‘포자 거름 해독약이 마나 늑대의 피를 증류시킨 물에 생명수 종자 가루를 탄 물이었지?’

의학자 시험에서 외웠던 항목이었다.

일단 의학자로서 주입받는 지식은 지구에서는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의학자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시혁 본인이 직접 외운 지식까지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마나 늑대와 생명수가 지구에 존재하느냐.

없으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글루마 코푸스 때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두 개의 병은 어떤 걸까?

그것들도 찾아보았다.

비고르 임미누티오는 저주나 마법의 일종 같았다. 1달에 걸쳐 전신의 기운이 빠진다. 나중에는 힘이 없어 밥도 못 먹고 소변과 대변도 누운 자리에서 지리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흡근 마비가 찾아오며 숨통이 끊겼다.

세라투스 아르티쿨루스는 인체의 모든 관절이 침습을 당했다. X-ray 상으로 톱니바퀴처럼 관절이 변형되는데, 당연히 통증이 심하고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뭔가 원인이 있을 텐데, 각종 영상의학적 검사나 부검으로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였다.

“어휴.”

시혁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셋 다 실로 지독했다.

왜 심사관이 시혁에게 이 병들을 제시했는지 알 만 했다.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계속 검색했다.

그 결과, 기분이 좋아지는 정보를 얻었다.

마나 늑대와 생명수 모두, 투명 늑대와 치료 나무라는 이름으로 지구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투명 늑대는 마나 늑대와 달리 그 크기가 꽤 컸다. 상당히 강력한 괴수로 통했다. 더구나 피의 휘발성이 강해서, 기껏 잡아도 피를 얼마 얻지 못했다.

치료 나무는 근처에 강한 식물 형태 괴수들이 자생한다는 게 문제였다. 열매를 채집하려고 하면 괴수들이 나타나 공격하곤 했다. 자연히 강력한 이능력자가 아니면 채취가 불가능했다.

자연히 시혁이 아는 대로 치료제를 만들면 그 가격이 엄청나다. 못 해도 수천은 필요할 것 같았다.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국 다 원점이네.’

세 병의 치료법을 찾는 게 쉽지 않겠다.

아르거스에 간다고 그것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반신이 명령하면 따라야 하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약도 만들어야 한다.

약간은 답답함을 느끼며, 침대에 누워 아르거스로 진입했다.

상대는 숲 진영, 아군은 생명 진영.

풀모 스포리움의 치료제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아군 반신이 시혁을 의학 나무에 박아 두고 약만 주구장창 만들게 했다.

환자를 보지도 못했다. 다른 의학자들이 전담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본성이 함락당하여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제대로 된 정보 수집을 못 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글루마 코푸스 때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시혁의 뜻대로 치료소를 운영하면서,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다행히 그 다음날에는 시혁이 전방의 요새에 배치되었다.

의학자 1명에 치료사 3명이었으니 시혁이 대장 노릇을 했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편, 치료제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재현 가능한 약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글로마 코푸스 때와 같았다. 포자 버섯의 시체에서 채취한 몇 가지 부위를 조합하여 만들면 되는 것이다.

심지어 그 중 몇 가지는 곰팡이 덩어리가 된 시체에서 채취하는 것도 가능했다. 혐오스럽긴 하지만, 동물 사체를 이용해 번식시킨 후 약으로 써도 된다는 얘기다.

“휴, 힘들었다.”

시혁은 풀모 스포리움의 치료 방법을 문서로 정리했다. 이제 허미윤에게 이걸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

명함에 박힌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세 병 중 풀모 스포리움의 치료 방법을 알아냈다고 하자, 허미윤이 반색을 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알겠습니다. 제 이메일을 알려드릴 테니 그쪽으로 보내주세요. 다른 두 개는 언제쯤 될까요?]

[글쎄요. 확언은 못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요. 되는 대로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허미윤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좀 예민한 질문인데…… 심사가 끝나고, 치료법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잠깐 대답이 없었다.

뭐 걸리는 게 있는 걸까?

약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은 최시혁 씨와 연결해달라고 하는 제약 회사가 몇 군데 있어요. 지금은 최시혁 씨 개인정보가 기밀 사항이라 직접 접근하는 회사는 없겠지만, 심사가 완료되면 기밀이 풀리니 연락이 많이 올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닌 얘긴데, 왜 이리 조심스럽게 말하는 걸까?

시혁은 허미윤의 의도를 눈치 챘다.

세상에는 눈만 감으면 코를 베어가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제약회사라고 다를 것은 없다. 미리 대비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헐값에 치료법에 대한 권리를 넘기게 될지도 몰랐다.

허미윤은 바로 그런 귀띔을 해주고 있었다. 시혁은 낮은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허미윤이 통화를 끝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일거리가 요즘 계속 늘어서요. 심사가 완료되고, 발현자 등록증을 발급할 때 뵙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풀모 스포리움은 이미 어떤 병인지 알고 시작했다. 덕분에 이틀 만에 재현 가능한 치료법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 나머지 두 개는 아직 아르거스에서의 이름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게 뭔지 알아야 상대 진영을 설정하고, 새로운 처방을 구성할 것 아닌가.

시혁은 짧은 한숨을 불어냈다.

그래도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특허 신청.

직접 하려다가 대한이능협회에 맡기기로 했다. 누리 공격대가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이제 누구도 시혁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검증 절차가 끝나기만 하면 세 치료법으로부터 실질적인 이익이 생겨날 것이다.

시간은 잘도 갔다.

벌써 6월이 되었다.

그 동안 고무적인 일이 있었다.

비고르 임미누티오와 세라투스 아르티쿨루스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이러니 그렇게 찾기 어려웠지……”

시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탄을 했다.

비고르 임미누티오는 피 진영의 뱀파이어들이 쓰는 무력화 저주였다. 특히 하나의 대상에 쓰는 것보다 일정 지역 전체에 거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 밤을 틈 타 잠입하여 피를 빨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시혁이 참가했던 권세 진영이나 생명 진영은 이런 게 잘 안 통한다는 점.

저주가 걸리면 득달같이 사제들이 출동하곤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반신들이 바로 저주 해제 이적을 일으켜 저주를 없앴다. 자연히 시혁이 접하기는 좀 어려웠다.

세라투스 아르티쿨루스도 비슷했다.

이건 바다 진영의 어인 종족이 쓰는 독에서 비롯되었다. 톱날 가시 물고기의 알에 부패의 저주를 걸고, 숙성시킨 후 적에게 복용시키면 관절의 뼈가 톱니바퀴 형상으로 변형된다. 즉각적인 효력은 없지만 고문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라던가.

따라서 포로들에게 자주 쓰였다. 시혁은 포로로 잡혀 본 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주와 독……

비고르 임미누티오 치료는 생각보다 쉬웠다. 아르거스는 물론, 지구에서도 5년 전부터 흔히 보이는 황금 풀의 잎을 달여 차로 마시면 된다.

여기에 불의 마나나 빛의 마나를 풍부하게 함유한 약재를 갈아 넣으면 효과가 더 좋았다. 태양 산삼이나 하늘 풀이 그것인데, 지구의 인삼이나 황기로 충분히 대체 가능했다.

시간은 좀 오래 걸렸다. 무력화 저주에 걸려 있던 시간만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능 치료 없이 깔끔하게 치료가 가능하다는 게 좋았다.

세라투스 아르티쿨루스는 좀 곤란했다. 해독제를 만드는 것은 지구에서도 어렵지 않은데, 해독제를 복용해도 이미 변형된 관절이 복구되지는 않는 것이다.

더 병이 진행되지 않는 건 다행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정도로는 곤란했다. 여전히 똑같은 고통이 남아 있을 테니까.

시혁은 간단하게 해결했다.

약을 두 개 만들었다.

해독제와 회복약.

어인 종족은 자기들끼리도 톱날 가시 물고기 부패 독을 쓰곤 하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어인용 해독제와 회복약은 지식 열람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시혁은 그걸 인간 종족에 맞게 변형시켰다.

이것으로 끝.

관리청에서 제시한 병들의 치료법을 모두 찾아냈다.

당장 정리하여 허미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검토를 끝낸 허미윤이 시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번에 주신 풀모 스포리움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임상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벌써 환자들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고르 임미누티오와 세라투스 아르티쿨루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둘 다 확실한 치료법이니까. 제가 정리한 대로 똑같이 따라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심사 결과가 나오면 연락을 드리지요.]

[얼마나 걸릴까요?]

[못 해도 한두 달은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임상 시험 기간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나겠네요.]

그럼 서너 달 정도로는 잡아야겠다.

약 9월이나 10월.

시혁은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현재 시혁은 아르거스에서 숙련 의학자가 되었다. 아무래도 상급 병종이니 치료사 때보다는 계급 상승이 느렸다. 심사 항목을 연구하느라 치료사 때처럼 활약을 벌이지 못한 까닭도 있었고.

계산 결과 늦어도 그때쯤 또 전직이 가능해질 것 같았다. 각성도 가능하지만, 기왕 전직을 한 김에 세 번까진 하고 가는 게 좋겠지.

“그럼 이제 발현자가 된 거냐?”

아버지가 그렇게 묻자, 시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심사가 끝나려면 몇 달은 더 걸릴 것 같아요.”

“이능력자 심사는 원래 하루면 끝나는 거 아니냐? 저번에 다큐멘터리 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만.”

“에이, 그건 이능력자들이나 그렇죠. 자기 이능을 발현하면 바로 심사 끝이니까요. 제 능력은 좀 특이해서 시간이 꽤 걸려요.”

“그래? 알았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일단 한의원부터 개원하려고요. 자리랑 개원 절차 계속 알아보고 있어요.”

“돈은 있고?”

“사실 그게 문제죠.”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발현자 검증이 빨리 끝난다면 발현자 등록증과 한의사 면허증으로 금방 대출을 받았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 골치가 아팠다.

신아영을 찾아가 손이라도 벌려야 하나?

아니면 부모님에게 기대?

시혁으로서는 둘 다 마뜩치 않은 방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치료법으로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나. 시혁은 한시라도 빨리 한의원을 개원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골머리를 싸맬 무렵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있는데, TV 화면이 바뀌며 속보가 흘러나왔다.

[이곳은 전라북도 부안군의 한 유명 관광지입니다. 연간 관광객 10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인데요, 약 30분 전 1급 괴수 재난 경보가 발효되었습니다. 현지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이승혁 기자?]

[예, 이승혁입니다! 저는 지금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변산반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교통이 통제되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1급 괴수 재난 경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

깜짝 놀라 TV를 쳐다보았다.

자료화면 속에서, 기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추레한 몰골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속도는 느리고, 걸음걸이도 괴상했다. 그래서 잡히는 사람이 드물긴 했어도, 일단 잡히면 처참한 꼴을 당했다.

입을 들이대고 게걸스레 뜯어먹는 것이다.

부모님들이 그걸 보고 기겁을 했다.

“아유, 징그러! 저게 뭐야?”

“좀비 같은데? 저번에 본 영화에 나왔잖아.”

그 말이 맞다.

좀비였다.

그런데 보통 좀비가 아니다.

시혁은 못 박힌 듯 TV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똑똑히 보였다.

풀어헤쳐진 상의 사이, 가슴 정중앙.

검은 해골 형상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익숙하다.

너무 익숙하다.

아르거스에서 시혁의 가슴에 찍혔던 바로 그 문양이었다.

< 검증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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