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아영 -2- >
그 동안 시혁은 신아영을 책임지고 치료했다. 침과 약은 물론, 뜸이나 부항도 필요한 것을 시행했다.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역시 뜸.
하복부에 왕뜸을 거푸 뜨게 했다. 하도 많이 떴더니 나중에는 신아영의 아랫배에 노랗게 물이 들었다.
“선생님. 이거 없어지긴 하죠?”
“걱정 마세요. 목욕 몇 번 하면 싹 사라집니다.”
신아영이 걱정을 하자, 시혁은 씩 웃으며 대답을 했다.
이윽고 시혁이 얘기했던 마지막 날이 되었다.
2016년 5월 18일 수요일.
아침 일찍, 시혁은 신아영의 팔다리를 확인했다.
깨끗했다.
포진은 몽땅 사라졌다. 피부에 잡티 하나 없이 백옥 같은 윤기가 흘렀다.
근력 측정을 해보니 정상. 강화 계열 이능력자라 시혁의 손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감각도 완전히 돌아왔다. 더 이상 따끔거리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둔감해졌을까 싶어 자세히 검사를 했는데, 이능력자답게 아주 민감하다는 것만 확인했다.
시혁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정말이시죠?”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신아영은 물론 동료 이능력자 모두 기뻐했다.
강찬이 코가 바닥에 닿을 듯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해야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한세훈과 김미애도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선생님. 함부로 의심해서 죄송했습니다. 아영이를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죄송해요. 아영이가 나빠지는 것만 봐서, 제 정신이 잠깐 어떻게 됐었나 봐요.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선생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게요. 감사해요.”
시혁은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 상황 같았으면 저도 그랬을 거에요. 환자분이 다 나았으니 됐습니다. 병원을 나온 보람이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여기 이거…… 약소하지만 저희가 조금씩 모았습니다.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강찬이 작은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돈 봉투.
언뜻 보기에도 두툼했다. 어엿한 공격대의 대장이니, 적은 액수는 아닐 것이다.
시혁은 손을 격하게 저었다.
“안 됩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대가를 받는 건 불법이어서요. 안 그래도 의료법에 걸릴 게 좀 있는데, 대가까지 받는 건 좀 그렇습니다. 나중에 검찰이 기소를 하든 어쩌든 무료 봉사여야 저도 할 말이 생깁니다.”
“뭐 어떻습니까? 누가 알지도 못할 텐데요.”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정 그러시면 나중에 저 한의원 차릴 때 도와주세요. 저 이제 실업자 신세라 발현자 검증도 받아야 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게 많네요. 뭐든지 말씀하세요.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강찬은 봉투를 집어넣었다.
하루 동안 더 경과를 관찰했다.
치료를 종료했지만 글루마 코푸스가 재발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시혁은 정식으로 완치 선언을 했다.
이능력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전 이만 집으로 가보겠습니다.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강찬의 집에서 동고동락을 했는데 헤어지려니 좀 아쉽긴 했다. 몇 번 집에 다녀오긴 했지만, 신아영을 잘 살피기 위해 이곳에서 잠을 잤으니까.
이능력자들이 붙잡았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병원에 가서 짐도 챙겨야 하고, 병역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고, 한의원 개설 절차도 확인해야 했다.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자, 신아영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병원 가신다고요? 저도 따라갈게요!”
“신아영 님이요?”
“네. 거기 간호사 언니들한테 인사도 못 하고 왔거든요.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따라가도 되죠? 짐 들어드릴게요!”
요 근래 병원과 집에만 있었더니 좀 답답한 듯했다.
안 될 것은 없었다.
시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세훈과 김미애는 누리 공격대 일로 출근한 참이었다. 강찬과 시혁, 신아영만 창천대학교 한방병원으로 이동했다.
3층 숙소로 들어갔다.
짐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다.
옷과 속옷이 전부였다. 여기에 책 몇 권과, 오래된 구형 노트북, 세면도구를 챙기면 끝이다.
강찬과 신아영이 인턴 숙소를 구경했다.
“뭐가 좀 없네요?”
“좀 살풍경하지요?”
있는 거라곤 2층 침대 2개가 전부니까. 옷장 일체형이고, 그 외에는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인턴들이 각자 가져온 빨래 건조대만 자리했다.
처음 병원에 올 때 가져왔던 캐리어에 짐을 담았다. 뭔가 추가된 게 없어서, 캐리어 하나에 모든 것이 들어갔다.
시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마음 정리는 다 했지만, 짐을 챙기니 비로소 병원을 떠난다는 실감이 들었던 것이다.
이대로 떠나야 할까?
동기들이랑, 고마웠던 사람들 얼굴은 보고 가야겠지.
지금 시간이면 모두 병동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오전 10시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시혁은 강찬과 신아영을 보고 말했다.
“전 잠시 병동에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두 분은 먼저 가 계세요. 전 바로 집에 가겠습니다.”
“병동에요? 같이 가요. 저도 그러려고 온 거잖아요.”
캐리어는 잠깐 놔두고, 셋이서 6층으로 올라갔다.
한편으로 기대가 되었다.
완전히 나은 신아영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특히 홍기태 원장과 오승훈 과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생각 같아선 신아영을 대동하고 진료실로 쳐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어, 선생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 앞을 지나던 간호팀장과 마주쳤다.
간호팀장이 시혁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급히 다가와 팔을 꽉 붙잡았다.
“선생님, 병원 다시 들어온 거지? 그렇지? 나가는 건 철회한 거지?”
어찌나 급했는지 항상 존대하던 사람이 말까지 놓고 있었다.
시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짐 챙기고, 인사도 하러 온 거예요. 그래도 몇 달 동안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인데 그냥 떠나기는 마음에 걸려서요.”
“정말 다시 생각할 마음이 없어?”
“네. 그럴 것 같았으면 진작 돌아왔겠죠.”
간호팀장의 얼굴이 흐려졌다.
수련의와 병동 간호사는 단순한 협력 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련의가 힘들면 병동 간호사도 힘들고, 병동 간호사가 힘들면 수련의도 힘들다.
안 그래도 적게 뽑은 인턴인데, 가장 일 잘하는 시혁이 나가서 부담이 과중해졌다. 그게 1주일도 아니고, 1년 내내 그렇다면 간호사들의 일도 많아질 터.
인턴 부족으로 인한 환자들의 불만은 모조리 간호사에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간호팀장이 한숨을 내쉴 때, 시혁은 짐짓 몸을 비껴주었다. 자연히 그 뒤에 서 있던 신아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신아영이 간호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계셨어요?”
간호팀장의 눈동자가 신아영에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마지막 봤던 모습과 너무나 차이가 있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간호팀장도 신아영의 원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연히 눈 몇 번 깜빡이고는 신아영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혹시, 신아영 님?”
신아영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간호팀장이 입을 쩍 벌렸다.
“어머! 정말 다 나으셨네요? 축하드려요. 진짜 다행이에요.”
“감사해요.”
간호팀장은 신아영의 손을 잡고 호들갑을 떨었다.
신아영이 불치 판정을 받았을 때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 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람인데, 그런 일을 겪는다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자연히 지금 상태를 보고 순수히 기뻐했다.
그러더니 시혁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그럼 선생님이 진짜 발현자였다는 말이네요?”
소문이 다 퍼졌나 보다.
하긴 숨길 수는 없었겠지. 시혁이 병원을 나갔고, 그 날 안이피 의국에선 큰 소리까지 났으니까.
시혁은 그저 한 번 웃어 보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간호팀장과 몇 마디 말을 더 나눈 후, 신아영과 함께 인사를 하고 돌아다녔다.
막 회진이 끝난 시점이었다. 조희영이 마침 6층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시혁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 옆의 신아영을 보고는 눈을 아예 찢어져라 부릅떴다.
“신아영 님! 이제 괜찮으세요? 정말 좋아졌네요!”
다행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을 느꼈는지, 신아영도 예쁘게 미소 지었다.
“감사해요. 여기 최시혁 선생님께서 치료해주셨어요.”
“휴, 다행이에요. 하긴 최시혁 선생님이 빈말하는 성격은 아니었죠.”
그러더니 시혁을 돌아보았다.
시혁은 살며시 머리를 숙였다.
생각해 보면 참 미안했다. 조희영은 어떻게든 시혁을 도와보려고 원장실에서 약식 회의도 마련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자기 성질대로 하고 나온 거니까.
조희영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때문에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죄송합니다.”
“휴, 신아영 님 치료한 건 잘 했어요. 사람 목숨 하나 구한 거잖아요. 그래도 조금만 융통성 있게 행동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에휴, 이미 지난 일인데 더 말 해봤자 입만 아프죠. 앞으로는 어쩔 거예요?”
“병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한의원을 차리고, 괴수 질병 전문으로 특화시키려고 합니다.”
“그것도 괜찮겠네요. 이능 치료 안 통하는 괴수 질병 위주로 나가면 좋겠어요. 광주만 아니라 전국에서 환자들 몰려들 테니, 망할 걱정은 없으니까요.”
“예,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그래요. 어딜 가서도 잘 살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요. 신아영 님 다 나은 거 보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신아영 님도 건강히 가시고, 결혼식 준비 잘 하세요.”
“네, 선생님. 감사했어요. 선생님도 몸 건강하세요.”
“선생님. 저도 동기들에게만 인사하고 가보겠습니다. 몸 건강하십시오.”
“네, 조심히 가요.”
어느새 소식을 들었는지 동기들이 다 와 있었다.
네 명.
유건정, 이태준, 김상아, 송단비.
그들이 복잡한 얼굴로 시혁을 쳐다보았다.
모두 사정을 아는 모양.
송단비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선생님. 꼭 가셔야 해요? 그냥 병원에 남으시면 안 돼요?”
시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결정한 일입니다. 그리고 교수님들한테 그렇게 하고 왔는데 남는 건 좀 그렇잖습니까? 밉보여서 4년 내내 욕이나 먹겠죠.”
“하긴 그렇죠……”
송단비가 말꼬리를 흐렸다.
이태준이 가까이 다가와 시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어딜 가든 잘 할 거야. 어쩌면 이번 일이 네가 도약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든 파이팅하고, 나중에 또 보자.”
“그래. 너도 열심히 하고 부디 훌륭한 사람이 돼라. 전문의 딸 생각만 하지는 말고. 무슨 말인지 알지?”
“하하, 알았어.”
남은 두 동기와도 인사를 나눴다.
유건정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상아도 그건 마찬가지였지만, 짐짓 짓궂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야, 나중에 나 꼭 소개팅 시켜줘야 돼. 잘 생기고 돈 많은 이능력자로!”
“참나, 알았어.”
“꼭이다, 꼭!”
석별의 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모양이다.
손을 흔들고 물러나왔다.
그 다음으로는 5층 간호사 스테이션과 2층의 1내과 외래만 잠깐 들렀다.
사실 2층에는 내려가지 않으려 했으나 그냥 가기엔 박성화 과장이 마음에 걸렸다. 원래 시혁이 그 밑에서 수련을 받으려고 했었고, 이번에 시혁을 변호하려고 했었으니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홍기태 원장.
시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신아영을 확인하고는, 그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마치 귀신을 본 듯한 표정.
무시했다.
당당하게 발을 옮겨, 1내과 외래로 들어갔다.
박성화 과장은 많이 섭섭해 했다.
“그래, 알았다. 환자분이 나아서 다행이다. 내가 볼 때, 우리 병원이 최 선생을 품기에는 그릇이 모자란 것 같다. 조심해서 가고, 어딜 가서든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돼라. 솔직히 말해서, 최 선생 행동이 조금 과하긴 했어도 옳은 행동이었다고 본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건강하십시오.”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었다.
3층에서 캐리어를 회수하고 병원을 나섰다.
뒤 돌아보지는 않았다.
진작 마음을 정리한 후이니까.
시혁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강찬과 신아영이 나란히 허리를 굽혔다.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해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저, 언젠가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그들이 고마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시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신아영 님을 도울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두 분만 아니라 저도 괴로웠을 겁니다. 앞으로는 이런 흉악한 병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절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도 약속한 것은 꼭 지키겠습니다.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언제든 시키실 일 있으면 불러만 주십시오.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하하,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잠깐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시혁은 집으로 들어가고, 강찬의 차는 상무지구를 향해 미끄러졌다.
거의 5월 말.
시혁은 공식적으로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아르거스에서는 달랐다.
신아영을 치료하면서도 꾸준히 아르거스를 방문했던 시혁이다. 그때마다 몸을 바쳐 일했고, 자연히 상당한 경험이 쌓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계급이 올랐다.
거장.
치료사 병종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 신아영 -2- > 끝
ⓒ 산호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