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27화 (27/250)

< 문을 닫다 >

무슨 일일까.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조희영이 병원장 송문식을 비롯한 과장들에게 지금 상황을 전한 거겠지.

과연 그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모르겠다.

시혁은 동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긴장 따윈 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라도 병원에서 쫓겨날 뿐이고, 그 정도야 시혁의 인생에 티끌 만큼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테니까.

원장실에는 꽤 많은 교수들이 모여 있었다.

1내과 박성화, 2내과 김강훈, 3내과 성진후, 6내과 송문식, 양방내과 이동명, 재활 1과 오승훈, 재활 2과 최장수, 안이피 홍기태, 부인과 양동조.

그밖에 1년차 장인 조희영, 의국장인 윤병태의 모습도 보였다.

시혁이 안으로 들어서자, 화살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시혁은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있었다.

과장들의 눈빛이라고 해봐야, 아르거스의 괴물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힘차게 인사를 하자, 송문식 원장이 시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래, 최 선생이라고 했지? 거기 앉아라.”

원장실에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낮은 탁자와 소파가 몇 개 비치되어 있다.

시혁은 송문식 원장이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앉기가 무섭게, 송문식 원장이 입을 열었다.

“조 선생한테 얘기는 들었다. 안이피에 괴수 질병 환자, 자네가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며?”

“예. 맞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게 확실해? 자네가 착각한 거 아냐?”

추궁하듯 묻는 말에,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원장님. 전 그냥 객기로 나선 게 아닙니다. 무면허 의료행위로 징역을 받을 수도 있는데, 가능하다는 확신도 없이 말씀을 드렸겠습니까? 원장님과 여러 교수님들께서 우려하시고 걱정하시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다른 건 몰라도 환자를 완치시키는 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흠!”

“험험.”

자신 있는 말에, 여기저기서 헛기침을 했다.

송문식 원장은 그러냐며 말이 없고, 진료부장인 김강훈 과장이 시혁에게 질문을 했다.

“홍 원장님한테 들어보니까 자네가 발현자라고 했다고 하던데, 증거를 보여줄 수가 있나? 중요한 문제야.”

“제 능력은 정보 탐색 종류라 지금 당장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밤에 자는 동안 꿈을 통해 탐색하는 방식이어서요.”

“흐음, 그래?”

과장들의 눈빛이 다양하게 바뀌었다.

혹시나 정말일까 하는 인물, 거짓말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 인물, 반신반의하는 기색을 보이는 인물 등등 다들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홍기태 원장이 코웃음을 쳤다.

“허, 증거도 없이 믿으라고만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잘못하면 병원까지 불똥 튀는 거 몰라? 병원이 영업정지라도 먹으면 자네가 책임지려고?”

“병원에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해? 환자가 낫기만 하면 다 끝인 줄 알아?”

홍기태 원장은 작정한 듯 말을 퍼부었다.

시혁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병원을 나갈 생각을 굳혔지만, 지금 여기서 그 말을 했다간 역효과만 날 테니까.

하지만 자꾸 자신을 몰아세운다면, 아무리 교수들이라 해도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1내과 박성화 과장이 질문을 했다.

“최 선생. 최 선생 이능은 꿈에서 정보를 얻는 거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렇게 얻은 정보는, 다른 사람이 똑같이 따라 해도 재현이 되나?”

“예. 누구든 똑같이 따라 하기만 하면 재현이 가능합니다. 양산도 할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

박성화 과장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최 선생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한 번 기회를 줘보지요. 사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일단 치료만 되면 환자, 최 선생, 병원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최 선생이 이런 일로 허언을 할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홍기태 원장이 혀를 찼다.

“쯧쯧, 어리석기는. 박 교수 자네는 사람 보는 눈을 좀 길러야겠어. 안사람 때문에 괴수 질병에 목을 매는 건 이해를 하는데, 그것도 자리를 보고 발을 뻗대야지 아무 말이나 믿으면 어떻게 해?”

가시 돋친 말에 박성화 과장은 가만히 있는데 김강훈 과장이 오히려 발끈했다.

“홍 원장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박 교수가 우리 병원에서 가장 스마트한 인물인데, 본인이 알아서 잘 생각했겠지요. 거 저번처럼 괜히 괴수 질병 환자 데리고 있다가, 치료도 못 하고 실명하게 하지나 마십쇼.”

“뭐요?”

김강훈 과장은 예전에 박성화 과장의 지도교수였다. 그래서 박성화 과장을 욕하는 소리가 마뜩치 않았나 보다. 참으로 통렬한 일격을 날렸다.

얻어맞은 홍기태 원장이 눈을 부릅떴다.

당시의 일은 홍기태 원장의 경력에 얼룩처럼 남은 실수였다. 그걸 건드리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막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송문식 원장이 중재에 나섰다.

“어허, 두 분 뭐 하시는 겁니까? 수련의들이 보고 있습니다. 자중들 하세요.”

“흠! 흠흠!”

“어험!”

김강훈 과장과 홍기태 원장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덩달아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잠시 아무도 말이 없다가, 홍기태 원장 옆에 앉아 있던 재활 1과 오승훈 과장이 입을 열었다.

“전 반댑니다.”

그렇게 운을 떼며 교수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차가운 눈빛이 언뜻 시혁을 스쳤다.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입니다. 임상 시험을 거친 것도 아니지요.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설령 효과가 있다 한들 환자에게 바로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생체 실험 아닙니까? 이건 치료 이전에, 의료 윤리의 문제입니다. 지금 저 인턴 선생은, 공명심에 들떠서 환자를 자기 출세 수단으로 삼으려는 겁니다.”

오승훈 과장은 힐난하는 눈빛으로 시혁을 쳐다보았다.

기가 찼다.

생체 실험이라니?

공명심? 출세 수단?

그럴 거라면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굳이 신아영을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런 소리까지 들었는데, 여기서 더 참아야 할까?

이들이 교수라는 이유 때문에?

시혁의 머리가 슬슬 달아오를 때, 여태 침묵을 지키던 3내과 성진후 과장이 한 마디를 했다.

“그렇기야 하겠어? 인턴 선생 딴에는 환자를 위해서 그런 거겠지. 괜한 사람 몰아붙이지 말게.”

“글쎄요. 그 속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승훈 과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부인과 양동조 과장이 끼어들었다.

“저도 오 과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얘기 들어보니 아주 맹랑해요. 진짜 발현자라고 해도 홍 원장님께 그래서는 안 되죠. 일벌백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아예 한 술 더 떴다.

격론이 벌어졌다.

환자는 아예 뒷전이었다.

교수의 권위와 자기들 안위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나마 박성화 과장이 환자는 우선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가 홍기태 원장과 오승훈 과장 등에게 면박을 당했다. 법적인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를 모두 책임질 것이냐는 논리였다.

이런 꼴을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최대한 스스로를 억제하며, 낮은 목소리를 입 밖으로 토했다.

“교수님들.”

교수들의 언쟁이 멈췄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눈으로 시혁을 쳐다보았다.

시혁은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제 처분은 그렇다 치고, 신아영 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대로 가면 전신 마비가 될 텐데요.”

시혁의 말에, 홍기태 원장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

“신아영 님이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데, 하루만 늦어져도 평생 침대 신세를 져야 하지 않습니까? 부디, 평소 말씀하셨던 것처럼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은 교수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걸 상기시킨 건데, 오히려 교수들은 그런 시혁이 못 마땅했나 보다.

너 나 할 것 없이 시혁을 꾸짖었다.

“너는 네 일이나 해!”

“어디 인턴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어!”

“네가 아는 게 다인 것 같지? 그러다 환자를 죽여 봐야 정신을 차리지. 너 같은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 괜히 괴수 질병 치료하겠다고 나대다가, 송장 치우고 고소당한 한의사가 한 트럭이야!”

시혁에게 호의적이었던 내과 교수들은 조용하고, 다른 과 교수들은 목에 핏대까지 세웠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발현자임을 이미 밝혔다.

왜 믿지 않는 걸까?

치료 방법에 대해선 아예 묻지도 않았다.

그 구체적인 원리를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인턴 직책과 졸업 년도에만 집착했다. 그것으로 시혁의 모든 것을 단정 짓고, 자기들의 사고방식에 시혁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이미 바뀌어 버린 세계.

이들은 아직도 발현자와 이능력자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나 보다.

문득 귀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인턴이 교수들 말을 잘 들어야지. 쥐뿔도 모르면서 뭘 어쩌자는 거야?”

순간, 불쑥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더 참지 않았다.

그걸 그대로 내뱉었다.

“아니죠.”

뒤이어,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들이 제 말을 들으셔야죠.”

“뭐?”

“그게 무슨 소리냐?”

한참 퍼부어대던 교수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 막 한의대를 졸업한 신출내기가 자신들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까.

시혁은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원래 초보가 전문가에게 배우는 법이지, 그 반대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괴수 질병의 전문가입니다. 교수님들이 아니고요. 그러니 초보인 교수님들께서 제 말을 들으셔야지요.”

“허허허.”

“이것 참 이젠 하다못해 별 소리를 다 듣는군.”

“지금 말 다 한 거냐?”

교수들의 얼굴에 매서운 빛이 감돌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교수도 있었다.

누군가 시혁의 손을 잡았다.

조희영이었다.

사태가 점점 파국으로 치닫자, 진정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더 퍼부을까 하다가, 조희영의 낯을 봐서 참기로 했다.

교수들에게 최후 통첩을 날렸다.

“다 못 했습니다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신아영 님이 기다리고 계셔서요. 이렇게 앉아 있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조희영이 붙잡는 것을 뿌리쳤다.

얼굴이 벌게진 윤병태가 앉으라고 윽박질러도 무시했다.

교수들이 건방진 놈이라느니, 예의가 없다느니 해도 한 귀로 흘렸다.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래.

시혁도 지금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잘 안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아영을 치료하는 거다.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문제든 고민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지 않았나.

만약 교수들이 신아영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시혁의 대응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잡념을 떨쳐버렸다.

닫혀 있던 원장실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두터운 나무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송문식 원장이 경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 선생. 내가 최 선생을 아껴서 하는 말인데 지금 나가면 다 끝이다. 이리 와서 앉아라. 흥분을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보자.”

시혁은 몸을 돌렸다.

소파 위 교수들의 시선이 온통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을 향해, 직각에 가깝게 허리를 굽혔다.

학부 시절 강의실에 들어와 강의를 했던 교수들에 대한 마지막 인사.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많은 것을 배웠지.

병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아르거스에서 응용해 본 적도 있었고.

하지만 이젠 끝이다.

섭섭하고 아쉽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시혁이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대로 물러나왔다.

문이 닫히는 작은 소리가, 원장실에 모인 사람들의 귀에 천둥처럼 울렸다.

쾅!

< 문을 닫다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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