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의 군대 -2- >
시혁은 몇 번이나 각자의 일을 숙지시켰다.
대기실 담당, 접수실 담당, 진료실 담당, 입원실 담당, 이송 담당……
롯뜨와 반은 진료실에 박아두면 자기 일은 알아서 할 터였다. 따라서 인부들을 교육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
“어떻습니까? 알아듣겠습니까?”
“예, 치료사님.”
“쉽네요. 여기서 저기까지 환자만 날라주면 되니까.”
“여기랑 여기 번갈아서 보내고, 중독은 저기, 질병은 저기라 이거죠? 다 외웠습니다.”
역시 단순한 일이다 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시혁은 자신과 롯뜨, 반을 환자로 가정하여 모의 연습까지 벌였다. 롯뜨와 반은 이게 무슨 해괴한 행동이냐는 얼굴을 했고, 인부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까지 지었다.
그렇게 모의 연습을 두어 차례 했을 때였다.
뿌우우우!
밖에서 긴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혁의 몸이 멈칫했다.
“전투가 시작되나 봅니다.”
롯뜨와 반이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시혁은 가볍게 손을 저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됩니다. 두 분은 진료실에 들어가 계세요. 저는 잠시 바깥 상황을 보겠습니다.”
천막 밖으로 나왔다.
숲 쪽에서 거대한 군세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동물과 식물로 이루어진 군대.
늑대, 검은 말벌, 외뿔 곰, 포자 버섯, 아귀 구렁이, 나무 거인, 부엉이 마법사, 검치호 등등.
마법적인 힘과 조직력은 밀릴지 모른다. 그러나 특유의 야성으로 밀어붙이는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난전에 들어가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방어선에 선 병사들이 부산히 움직였다.
아무래도 5분 이내에 전투가 시작될 것 같았다.
거기까지 보고 시혁은 천막으로 들어왔다.
“어떤 것 같아요?”
롯뜨가 묻자, 시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제가 봐서 아나요. 적어도 쉽게 뚫릴 것 같지는 않네요.”
“그럴 거예요. 성검 공작은 방어에는 도가 텄으니까요. 지옥 진영이나 야만 진영이 아니면 정면으로 뚫기는 힘들어요.”
곧, 밖에서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땅이 흔들렸다.
격렬한 고함, 뭔가 부딪치는 소리, 섬뜩한 비명이 들렸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천막 안에 있으니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쉬지 않고 들리는 소리로 전세를 짐작할 뿐이었다.
시혁은 천막 한쪽에 앉아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칼을 들고 싸울 것도 아니니 흥분해 봐야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인부들이 부상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으아아!”
“살려줘!”
처참했다.
죄다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배가 갈라져 창자가 쏟아져 나온 이들도 많았다. 뭐에 물렸는지 몸 한 곳이 퉁퉁 부은 자들도 보였다.
시혁은 빠르게 진두지휘를 했다.
“처음 온 사람부터 진료실로 보내요. 진료실 안에 자리 다 차면 대기실에 눕히고요. 어어? 그 사람은 중독된 것 같은데? 입원실로 보내세요.”
모의 연습이 무색하게, 인부들은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버벅거렸다.
시혁이 예측했던 사항이었다. 처음 몇 분 간 대기실에 머무르며 교통정리를 했다. 인부들이 곧 자기들 일에 익숙해지며, 부상자들의 이동이 원활해졌다.
그때쯤에는 입원실에 환자가 꽤 찼다. 대충 1/3 정도는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이미 롯뜨와 반은 자기 진료실에서 맹렬히 외상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조금씩만 움직이면 되니 그 속도가 무척 빨랐다.
시혁도 치료를 시작했다.
먼저 중독 입원실로 들어갔다. 질병 입원실보다 환자 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으으으……”
환자들이 누운 채 신음 소리를 냈다.
시혁은 환자들을 한 번 쭉 살폈다.
몸 한 곳이 부운 환자가 많았다. 대개는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위였다.
그들을 보자, 시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지식이 떠올랐다.
[검은 말벌의 독]
환자들은 고통스러워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별 것 아닌 독이다. 지구의 벌독과 비슷한 종류니까.
다만 아나필락시스, 즉 항원 항체 반응으로 인해 심각한 전신 증상만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 쇼크와 호흡 장애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 외에는 몇 명이 목을 움켜쥐고 꺽꺽대는 것이 보였다. 증상이 가장 심한 이는 벌써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형적인 저산소성 증상.
시혁은 급히 그 병사에게 다가갔다.
상태를 살펴보니 독 기운이 이미 전신에 퍼져 있었다. 혈관이 아니라 신경을 타고 퍼졌는데, 특히 호흡근이 마비된 게 가장 위험했다.
[아귀 구렁이의 독]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뜸을 선택했다. 바닥의 스티커를 뗀 후, 병사의 가슴과 배에 있는 주요 혈에 붙였다.
불이 솟구쳤다.
시혁이 소환한 뜸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길쭉한 간접구였다. 윗부분에만 불을 붙이면 적어도 5분은 탄다. 그걸 정확히 12개 올려놓고, 다른 환자에게 넘어갔다.
일단은 급한 아귀 구렁이 독 환자들부터.
뜸을 놓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구에서 이가 갈리도록 많이 떠봤기 때문일 것이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10명 남짓하던 아귀 구렁이 독 환자들 모두에게 뜸을 떴다.
그때쯤 첫 환자에게 올려놓은 뜸이 모두 탔다.
시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첫 환자를 살폈다.
강력한 정화의 힘이 환자의 몸을 훑고 지나간 뒤였다. 그것으로 아귀 구렁이의 독이 거의 소실되었다. 이젠 여독만 조금 남아 있었다.
다만 신경 손상이 좀 남았다. 이대로 내보내면 며칠 자리보전을 해야 할 것이다.
가볍게 침을 쭉 놓았다.
그것으로 끝.
중독은 물론 자잘한 부상까지 모두 회복되었다.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보내세요.”
“예, 치료사님.”
인부들이 병사를 깨웠다.
병사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목을 한 번 확인한 후, 시혁에게 인사를 했다.
“치료사님! 감사합니다!”
시혁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감사하긴요. 같은 진영인데요. 또 안 물리게 조심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병사가 급히 천막 밖으로 뛰어나갔다.
시혁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아귀 구렁이 독에 당한 환자들을 끝냈다. 그 다음에는 검은 말벌에게 당한 환자들을 보살폈다.
더 쉬웠다.
요령은 같았다. 대신 사용하는 침과 뜸의 수를 줄였다. 딱 6개씩만 사용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환자들이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혁이 입원실에 들어오고 겨우 10분이 지났을 때, 입원실에 있던 중독 환자들을 모두 해결했다.
“후!”
현재 시혁이 쉬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20명 남짓.
중급 병종들이 섞여 있어 보유한 마나의 절반 정도를 쓴 것 같았다. 일반적인 치료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마나 효율이었다.
쉴 틈은 없었다.
옆의 질병 입원실로 이동했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을 보니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가 있었다.
그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이들, 피부가 간지럽다고 벅벅 긁어 피를 흘리는 자들, 마지막으로 몸이 마비된 채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사람들.
각각 지식을 열람했다.
[인간 곰팡이]
[초파리 알]
[덩굴 신경]
시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같이 악랄한 병이었다.
인간 곰팡이는 체내의 여러 장기에 곰팡이가 피는 병이다. 따라서 다발성 장기 부전을 초래한다.
초파리 알은 피부에 초파리들이 알을 까서 극렬한 간지러움을 일으킨다.
덩굴 신경은 인체의 신경계 전부를 식물로 대체한다. 처음에는 사지가 마비되고, 나중에는 중추신경계까지 침습하여 뇌사 상태에 빠뜨렸다.
뭐부터 처리해야 할까?
초파리 알을 선택했다.
위험도로 따지면 가장 낮다. 하지만 치료하기가 쉬웠다. 중독 환자들을 치료했던 것처럼 뜸을 뜨고 침을 놓는 것만으로 치료가 될 테니까.
시혁이 보기에 침과 뜸만으로 인간 곰팡이와 덩굴 신경을 치료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약.
그렇다면 어떤 약을 써야 할까?
초파리 알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지식을 열람하자, 바로 답변이 나왔다.
[화염초의 꽃잎]
[별빛 공작새의 깃털]
두 병에 대한 특효약이다.
다만 한 번 먹는다고 즉시 회복되진 않았다. 병의 진행을 멈추고, 계속해서 장복하면서 조리해야 회복되었다.
어디까지나 그냥 먹었을 때의 이야기.
시혁이 손을 써서 처방을 구성한다면 어떨까?
근처에 있던 인부 하나를 불렀다.
“보급관에게 가서 화염초의 꽃잎이랑 생명수의 껍질, 황금 풀의 뿌리, 격류 버섯, 짐승 덩굴 줄기, 별빛 공작새의 깃털, 거인 기생 덩굴 뿌리, 치유의 샘물, 얼음원숭이의 뇌수 좀 구해달라고 하세요.”
“네?”
인부는 눈만 끔뻑였다.
시혁도 말해놓고 속으로 아차 했다.
과연 이 약재 중 몇 가지나 구비하고 있을까?
그리고 전투가 격화된 이 시점에서 창고를 뒤적여 약재를 보내주는 게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번 전투는 시혁 본인의 힘만으로 넘겨야 하는 셈이다.
‘어쩔 수 없구나.’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그 잠깐 사이 질병 입원실이 북적북적 댔다. 옆의 중독 입원실도 꽤 환자들이 들어온 것 같았다.
약이 없으면 인간 곰팡이와 덩굴 신경 환자를 치료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약침과 온침을 동원해도 마찬가지였다. 체내 깊숙한 곳에 들어간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을 따라올 방법이 없으니까.
‘응급 처치만 하고 성당으로 넘기자.’
입맛이 씁쓸했지만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구도 그렇지만 아르거스에서도 환자 치료가 우선이다. 스스로의 자존심을 내세워 환자를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승리를 위해서도, 환자를 위해서도 보낼 환자는 보내주는 게 좋았다.
빠르게 침과 뜸을 시술하기 시작했다.
인간 곰팡이 환자는 배에, 덩굴 신경 환자는 머리와 등에 주로 침을 놓고 뜸을 떴다. 그때마다 생명의 마나가 스며들어 환자들의 안색이 편안해졌다.
여기에 약침이나 온침을 병행하면 효과가 더 좋겠지만, 그럴 마나가 있으면 다른 환자를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야전 성당으로 보내세요. 치료하려면 약이 필요한데,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치료사님.”
인부들이 환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차례 치료를 했으니 사제들의 신성 치료도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시혁은 다시 중독 입원실로 들어갔다.
입원실이 꽉 차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시혁은 중독을 치료하는데 강점이 있으니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뜸을 쭉 뜨고, 침을 다시 쭉 놓는 방식으로 치료해나갔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도중에 레벨 업을 한 차례 했다. 거의 바닥났던 마나가 빠르게 차오르면서, 밀려드는 환자들을 어찌어찌 치료하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전투가 끝났다.
“후!”
마지막 초파리 알 환자를 치료하고, 시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롯뜨와 반이 다가왔다.
전투 시작 전만 해도 불신하는 기색을 보였었는데, 이젠 두 눈에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최시혁 치료사님, 고생하셨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환자들이 적게 들어올 테니까 더 밀릴 줄 알았는데 훨씬 수월하게 치료했네요.”
“두 분도 수고하셨습니다.”
롯뜨와 반은 한가할 때마다 입원실로 들어와 손을 보태곤 했다.
사실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둘의 솜씨가 초보적이었으니까. 레벨이 시혁보다 높으니 마나는 더 많았지만, 중독과 질병 환자 치료에 쓰는 게 마나 주입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이 선망의 눈길로 시혁을 쳐다보았다.
“최시혁 치료사님. 어떻게 하면 생명의 마나만이 아니고 불의 마나도 다룰 수가 있나요?”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뜸은 아르거스가 아닌 지구에서 배운 것이니까. 뜸에 대해 모르는 외계 행성 사람이라면 이 방법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대신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반 님도 반 님 세계에서 배운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을 잘 생각해 보세요. 기본적인 치료만 하면 거기서 끝입니다. 일단 본인이 뭘 할 수 있는지 알아야 돼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반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까 보니 롯뜨는 마사지로, 반은 붕대를 감는 방식으로 치료를 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지는 않을 터.
이 한 마디 조언이 둘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숲의 군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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