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혼순천탕 -1- >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섯 가지 약재를 배합하여 만든 탕약이다. 그 기운을 온전히 심장 주변으로만 보내야 했다.
황금 풀의 뿌리를 술로 볶고, 핏빛 덩굴의 줄기를 투여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살피며 침과 뜸을 써야 했다.
약사발을 들었다.
눈을 감고, 단번에 들이켰다.
‘크아악!’
시혁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썩은 고기를 먹은 것 같았다. 곰삭힌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을 댄 순간 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질척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시혁은 스스로를 칭찬했다.
토하지 않고 몽땅 삼켰으니까. 아르거스에 오기 전의 시혁이었다면 입에 대는 게 아니라 냄새를 맡는 즉시 졸도했을 것이다.
땡그랑!
약사발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벌써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위가 꾸물거리며, 뭐 이딴 걸 집어넣느냐며 항의를 했다.
시혁은 차분하게 침을 들었다.
하완부터 구미까지, 임맥을 따라 쭉 침을 놓았다. 침을 통해 생명의 마나가 위까지 스며들었다. 그 생명의 마나를 따라, 복용한 약에서 죽음의 마나가 풀려져 나왔다.
그 다음에는 수궐음심포경의 아홉 개 혈에 자침했다. 그러면서 심장 주변으로 길을 연다는 의지를 보내자, 위 바깥으로 나온 죽음의 마나가 시혁의 의지에 반응했다.
죽음의 마나가 심장 주위로 움직였다. 그리하여 불사의 역병, 그 근간을 이루는 힘의 결집체로 스며들었다.
시혁은 눈을 부릅뜨고 마나의 속성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성공적이었다.
죽음의 마나가 불사의 역병에 의해 생명의 마나로 변화했다. 뒤이어 심장으로 들어가 전신으로 뿜어지자, 시혁은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결과가 외형에서도 나타났다.
시혁의 가슴에는 여전히 해골 문양이 새겨져 있다. 거기서 검은 핏줄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다가, 누군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스르륵 사라진 것이다.
생존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거 봐!”
“아까보다 더 효과적인데?”
“잘 하면 치료할 수도 있겠어!”
시혁이 뭐라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생존자들이 시혁의 앞에 와서 일렬로 앉았다.
약을 복용시키기 전, 시혁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굉장히 맛이 더럽습니다. 썩은 고깃덩이를 드시는 것 같을 텐데, 꾹 참고 삼키세요. 토하면 안 됩니다.”
“걱정 마시오.”
“아르거스의 약물 중에는 맛이 없는 것은 얼마든지 있지. 그런 거 먹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오.”
“각자 체질이 다르니 뭔가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몸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그렇게 하리다.”
한 명씩 시혁의 지도를 받아 약을 복용했다.
그 표정들이 참으로 볼 만 했다. 시혁이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맛이 심각하게 없다 못해 굉장히 역겨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약만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다들 억지로 겨우 집어삼켰다. 아니, 거의 식도에 밀어 넣다시피 했다.
시혁은 신중하게 그들을 살폈다.
타인의 몸에서 마나가 활동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꽤 어려웠다. 정신을 극도로 집중해야 했다. 그나마 자신의 몸을 보듯이 선명하게 보기도 어려웠다. 그저 대략적인 움직임만 느낄 수 있었다.
먹지 안에서 색색의 구름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이걸 선명하게 꿰뚫어 보려면 대가 계급은 되어야 한다. 지금 시혁은 전문 계급도, 숙련 계급도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시혁은 해부학적인 지식을 동원했다. 먹지처럼 보이는 생존자의 몸 안에 장기들이 어느 위치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지 상상했다.
자신이 상상한 장기를 따라 구름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마나가 움직일 때 자침을 시작했다.
선택한 혈은 처음과 같았다.
임맥과 수궐음심포경의 경혈들.
속으로는 굉장히 긴장을 했는데,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생존자들 모두에게 죽음의 마나를 흡수시키는데 성공했다.
죽음의 마나가 생명의 마나로 변환되면서, 생존자들의 가슴에서 검은 핏줄이 몽땅 사라졌다.
“우와!”
“됐다! 됐어!”
생존자들이 뛸 듯이 기뻐했다.
시혁도 싱긋 웃음을 지었다.
한의사가 되어 처음으로 직접 구성하여 처방한 탕약이었다.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보니 무척 기꺼웠다.
시혁 개인에게는 꽤나 기념비적인 일.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약 처방을 보면 저마다 그 효능을 짐작할 수 있게 이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중익기탕이니, 소속명탕이니 하는 것들이다.
시혁 혼자만의 처방이고, 앞으로 재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인생 첫 처방이니, 그럴 듯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회혼순천탕(廻魂順天湯)이라고 하자.’
언데드가 되어야 할 영혼을 되돌리고, 하늘이 내린 운명에 순응한다고 해서 회혼순천탕.
좀 거창하지만 어떤가?
시혁 혼자만 알고 있을 처방인데.
글쎄, 과연 그럴까?
만약 회혼순천탕으로 불사의 역병을 치료하는데 성공한다면 세계 지식에 등재가 된다. 치료사나 그 상위 병종들이 열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시혁의 계급에도 큰 영향을 미치겠지. 고급 병종은 되어야 치료할 수 있는 병을 상급 병종도 아니고 중급 병종이 치료한 셈이니까.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치료의 첫 발을 뗀 것에 불과하지 않나. 불사의 역병을 치료하려면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시혁은 생존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어쩌면 1달이 넘어갈 수도 있어요.”
“기간이 대수인가? 치료만 되면 뭐든 감수할 수 있네.”
“약초가 더 필요할 겁니다. 지금 있는 약초로는 사흘이면 동이 납니다.”
“그럼 캐와야겠군. 어차피 어둠의 숲에서 다 구할 수 있는 약초들이잖나?”
“식량은 부족하지 않을까요?”
“이런, 마차들을 끌고 올 걸 그랬군. 맞아. 미리 사냥도 하고 채집도 해서 식량을 저장해 둬야겠어.”
당분간 생활할 준비를 마쳤다.
유령 표범 동굴을 기지로 삼았다.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시체 버섯과 무덤 이끼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깊이 숨어서 은신처로 활용하기도 쉬웠고.
시혁은 새벽, 정오, 저녁, 자정, 이렇게 하루에 4번 약을 복용하게 했다.
그때마다 침을 맞아야 했다. 약의 독성이 인체를 계속 갉아먹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왕뜸을 소환해서 아랫배에 놓고 불을 붙였다.
왕뜸은 이름처럼 아주 컸다. 거의 주먹 하나 크기였다. 그걸 아랫배에 두고 뜨면 열기가 전신으로 퍼지며 인체의 원기를 북돋우는 한편, 체내에 쌓인 독기를 해치우곤 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시혁은 자신과 생존자들의 몸이 갈수록 약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사의 역병이 심장 주위에 있는 게 문제였다. 마나를 반대 속성으로 변화하면 변환할수록 부담이 가해지는 것이다. 빨리 낫게 하고 싶은 욕심에 약재를 많이 쓰기라도 하면 그 날 하루 종일 골골거리곤 했다.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도를 궁구했다.
어둠의 숲에서 나는 몇 가지 약재를 모았다. 인체의 기혈을 보하고, 특히 심혈관계를 강화시키는 약초들이었다.
꿀과 함께 환(丸) 형태로 빚었다. 그리고 치료약을 먹는 사이, 빈 시간에 1개씩 먹게 했다. 탄자대 크기(대략 직경 1cm 이상 2cm 이하)로 빚었으니 그 정도가 딱 맞았다.
환을 복용한 다음에는 뜸을 떴다. 약 기운을 온전히 흡수시켰다. 그러면 약이 혈액을 따라 주행하며 심장을 강화시켰다. 불사의 역병에 직접 닿지 않게, 시혁은 주의를 기울였다.
이 약이 없었다면 심장이 약화되어 부정맥 등 다양한 질환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시혁도, 생존자들도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다. 미래를 대비해 식량을 채취하고 저장하는 한편, 시혁이 지시하는 대로 치료를 받았다.
고통스럽지만 견딜 만 했다.
몸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지만, 불사의 역병이 약해지는 것을 그들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1주 정도 지나자 가슴에 새겨진 문양이 옅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점심 치료를 위해 한 곳에 모였다.
약을 복용하고, 침도 한 차례씩 맞은 후 사이좋게 뜸을 떴다. 왕뜸은 간접구라 고통스럽지 않아 은근히 이 시간을 기다리는 생존자도 있었다.
“치료사님. 얼마나 더 치료를 해야 낫겠습니까?”
저격수 하나가 시혁에게 물었다.
처음에 생존자들은 자기들 좋을 대로 말을 했다. 존대를 하는 사람도, 하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2주가 지난 지금은 모두 존대를 썼다.
시혁의 실력을 인정하고, 믿고 따르는 거라고 할까.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히 다들 다른 행성 출신인데, 말이 통하는 것은 물론 그 뉘앙스까지 저절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것도 아르거스의 신들이 개입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원래 인간은 아니었다. 다른 종족도 끼어 있었다. 다만 권세 진영에 속하면 고향에서의 본인이 어떠했든 인간의 육체를 얻는 것이다.
아르거스의 권세 진영은 곧 인간 종족.
그것은 다른 진영도 마찬가지. 다만 특정 조건을 만족하거나, 거장 계급에 도달하면 진영을 바꿀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선 중요한 게 아니지만.
시혁은 잠깐 생각을 해보고 대답했다.
“제가 보기엔 2주 정도만 더 치료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길어도 1달은 넘지 않을 겁니다. 불사의 역병이 약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감사합니다. 치료사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생존자들이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아직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지만, 기나긴 동굴을 지나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이 보이는 한, 아무리 고통스러운 치료라도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사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나란히 누워 뜸을 뜨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 높은 곳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 전체가 진동했다.
귀로 듣지는 못했다.
몸으로 들었다.
전신의 뼈가 공명했다.
뼈 하나하나가 관악기가 된 듯, 웅장한 화음을 내뿜었다.
그 결과 격렬한 파동이 일어나 영혼을 두드렸다. 시혁은 본능적으로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백해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격자무늬 흰 빛과 황금빛 글자들이 변질되고 있었다.
시커먼 기운이 얼룩처럼 나타났다. 순식간에 세력을 불렸다. 종래에는 하늘 전체가 까맣게 변했다.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풍겼다.
죽음의 마나.
세계 전체가 죽어 버린 것 같았다. 실제로 시혁과 생존자들이 누워 있던 곳 근처의 풀과 나무들이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졌다. 대지는 오래 가물었던 것처럼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새 소리와 벌레 소리가 자취를 감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계 전체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하늘 너머로 보이는 조각난 별을 향해서.
시혁은 어찌된 일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시체 제조자와 백색 군주의 항쟁에서, 끝내 백색 군주가 패배한 것이다.
애초에 2주를 버틴 것부터 용했다. 2주 전에 이미 패색이 짙었으니까. 어쩌면 자신의 성역에서 자원과 마나를 끌어다 썼을지도 모르겠다.
옆에 누워 있던 저격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귀환이 되지 않네요.”
“아, 원래 승패가 결정되면 승리 측과 패배 측 모두 소환자들이 귀환한다고 했지요?”
“예. 불사의 역병 피해자는 예외인가 봅니다.”
“얼른 치료를 끝내야 하는데…… 시체 제조자의 승리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습니다.”
시혁은 염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죽음의 마나가 세상에 가득 찬 이상, 인간은 이 세계에 있는 것만으로 점차 힘을 잃는다. 또한 온갖 질병이 창궐하여 고통받게 된다.
불사의 역병이 사라지는 게 먼저냐.
역병의 독성과 변해 버린 세계에 굴복하여 목숨을 잃는 게 먼저냐.
아직은 알 수 없었다.
< 회혼순천탕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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