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3화 (13/250)

< 불사의 역병 -1- >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공터를 스쳤다.

시혁은 가슴을 어루만졌다.

통증은 그쳤다.

대신 불길한 감각이 자꾸 자신을 자극하고 있었다.

뭔가 이질적인 존재가 깃든 것 같은 느낌. 그것이 계속해서 증식하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손을 보았다.

좀비가 물어뜯었던 자리는 진작 아물었다. 대신 커다란 흉터가 남았는데, 새로 돋은 살과 기존의 살이 뚜렷이 대비되어 괴물의 입처럼 보였다.

“이제 끝장이야.”

“빌어먹을. 앰버튼이 도망쳤을 때 자살해야 했는데……”

“어떻게 하지?”

불사의 역병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좌절하는 걸까?

그에 대해 묻자, 질문을 들은 저격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치료사잖소? 세계의 지식을 열람할 자격이 있을 텐데 왜 내게 묻는 거요?”

“예?”

세계의 지식이라니, 그건 또 뭔가.

저격수는 시혁이 수습 치료사라는 것을 듣고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세계의 지식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름 그대로 세계가 품고 있는 지식이다.

다만 자신의 병종에 맞는 지식만 열람이 가능했다. 시혁은 치료사이니 각종 질병이나 상태 이상에 대해 알 수 있고, 저격수는 저격 방법이나 상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특정 단어에 정신을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서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과연 불사의 역병에 정신을 집중하자, 몇 가지 개념들이 시혁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변이]

[죽음]

[부활]

[언데드]

[진영 변환]

[현실 영향]

[종족 변화]

시혁은 수습 치료사였다. 따라서 지식을 열람해도 명쾌하게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전문 계급은 되어야 한 번의 열람으로 필요한 지식들을 얻어낼 것이다.

두서없이 떠오른 단어들을 이용, 몇 번이나 세계의 지식을 열람했다. 그 끝에 불사의 역병에 대한 정보가 시혁의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조립되었다.

시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거 사실입니까?”

“열람에 성공했나 보오? 그럼 사실이지. 그러니 이리 좌절하는 것 아니겠소?”

저격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혁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좀비에게 물리면 살이 썩는 병에 걸려 죽는다. 그러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좀비로 재탄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최악의 경우라도 죽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설령 좀비화가 되어도 사망 판정을 받아 자신의 세계로 귀환하게 된다.

단, 여기에 불사의 역병이 덧씌워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종족이 바뀐다.

원래 병종과 비슷한 새로운 병종으로 되살아난다. 시혁은 치료사니까, 아마 되살아난 장의사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번민하고, 절망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죽음의 마나가 쌓이는데, 그 양은 시체 제조자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따라서 불사의 역병을 걸고 이렇게 방목해 놓곤 했다.

왜 절망하느냐고?

까짓 거 자살하면 될 걸?

간단하다.

이 변화는 고향 세계에도 영향을 미쳐셔, 멀쩡하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언데드 괴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혁은 기억을 보존하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귀환 즉시 기억을 잊어버리니 더 큰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괴물로 변해 있는 셈이니까.

이런 상황이니, 낙담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다들 공터에 주저앉은 채 한숨만 토했다.

“이봐.”

중장보병 하나가 가까이 왔다.

얼굴에 진한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시혁의 앞에 철퍼덕 앉더니 그리 기대하지 않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자네가 불사의 역병을 치료할 수는 없나?”

시혁은 헛웃음을 지었다.

불사의 역병에 대한 지식을 열람했을 때, 어떤 병인지는 알아냈어도 치료 방법은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저격수가 퉁명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봐. 성자 정도 되지 않으면 불사의 역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거 몰라? 이제 다 끝났어. 젠장, 현실의 나에게 짧은 전언이라도 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저격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괴물이 되어 자기 가족들을 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짙은 공포가 느껴졌던 것이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시혁은 옷을 벗고 자신의 가슴을 확인했다.

해골 모양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낙인으로부터 검은 핏줄 같은 것이 사방으로 번졌다. 아프지는 않지만 간지러웠다. 이것이 전신을 뒤덮으면, 시혁은 인간성을 잃고 말 터였다.

침을 그 위에 놓았다.

임맥을 따라서, 전중, 옥당, 자궁, 화개, 선기 혈.

소용이 없었다.

검은 핏줄이 퍼지는 속도가 아주 조금 늦춰졌을 뿐이다. 여전히 개미 떼가 진군하듯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걸 본 생존자들이 낙담했다.

“안 되는군.”

“끝이야……”

마법사와 사제는 이미 죽었다. 남은 것은 기병과 중장보병, 저격수 정도였다. 자연히 딱 1명 남은 치료사인 시혁에게 기대를 걸었는데, 그 기대가 산산히 부셔진 것이다.

다들 낙담해 있는데, 중장보병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이러지 말고 성으로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소!”

듣고 있던 저격수가 코웃음을 쳤다.

“어느 세월에? 우리는 하루 안에 죽지도 못하는 괴물이 된다. 칼날 산을 넘고 어둠의 숲까지 통과하려면 사흘은 족히 걸리는 거 몰라? 우리에겐 이미 희망이 없어. 칠흑 처형인이 괜히 우리를 그냥 놔둔 줄 알아?”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순 없지 않소?”

“흥, 그게 시체 제조자와 칠흑 처형인이 원하는 거지.”

희망을 갖고 몸부림칠수록, 그리하여 깊이 절망할수록 생산하는 죽음의 마나도 많아진다.

이들 10명의 생존자가 언데드가 되어 돌아가면, 그때까지 만들어낸 마나만으로 1개 부대쯤은 쉽게 소환할 수 있을 터.

냉소적인 저격수의 말에, 중장보병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혁의 눈이 깊어졌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벌써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써볼 것도 아니고, 겨우 침 몇 개를 꽂아본 것뿐인데.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끝이라면 모르겠다.

재앙이 지구까지 미친다면, 그리하여 자신이 괴물이 된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다행히 시혁에겐 아직 써보지 않은 게 많았다.

왼쪽 손을 폈다.

녹색 빛이 반짝이며, 길쭉한 원통형의 물체 몇 개가 나타났다.

바닥에는 피부에 붙이기 좋게 양면 테이프가 있다. 그 위는 쑥을 뭉쳐 기둥처럼 세워놓았다.

뜸 중에서도 흔히 미니뜸이라고 부르는 물건.

시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는 안 돼.’

미니뜸은 간접구에 속한다. 피부에 직접 뜸을 뜨는 게 아니라, 약간의 공간을 두고 쑥의 열기로 혈자리를 뜨겁게 자극하는 것이다.

훨씬 더 강한 화력이 필요했다.

시혁이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또 녹색 빛이 반짝였다.

커다란 쑥뜸 뭉치가 나타났다.

시혁은 그걸 거의 손가락 두 개 크기로 뜯어 힘을 주어 뭉쳤다. 원래는 쌀알 정도 크기로 쓰는데, 그 정도로는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뜸을 가슴 중앙, 전중혈에 올렸다. 향을 소환할 것도 없이 라이터로 직접 불을 붙였다.

불이 붙었다.

단번에 확 타오르며, 시혁의 가슴에 짙은 화상을 남겼다.

“끄아아악!”

시혁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냥 쌀알 크기로만 떠도 통증이 상당하다. 그런데 손가락 두 개나 뭉쳐 단번에 불을 당겼으니, 꼭 뾰족한 칼로 가슴을 찌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시혁이 뭘 하나 보고 있었다.

뜸이 금세 다 타고 시혁이 겨우 정신을 차리자, 그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저거 봐!”

“효과가 있어!”

“불사의 역병이 억제됐다!”

잠깐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시혁의 가슴 대부분을 장악했던 불사의 역병이다.

그런데 그 범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처음 불사의 역병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시혁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노림수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동료 치료사가 그러지 않았나.

불은 정화의 힘이라고.

여기에 쑥이 더해졌다. 대지에서 자라, 녹색 생명의 마나를 그득하게 담은 물건이었다.

불이 나무를 만났다.

자연히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세상을 불사를 기세로 치달려, 시혁의 몸을 잠식하던 죽음의 마나를 태워버렸다.

오행상생 중 목생화(木生火)의 이론에 부합되는 결과.

눈으로 확인했으니 더 망설일 이유가 없다.

한 번 더 뜸을 놓고 불을 당겼다. 또 강렬한 통증이 시혁을 때렸지만, 괴물이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른 이들도 달려들었다.

“나도 치료해주게!”

“나는 집에 나만 보는 딸이 다섯이나 있네. 제발 치료해주게!”

시혁이 혼자 도망치기라도 할 듯, 그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그들을 진정시켰다.

“조용히 하세요. 저 안 도망갑니다. 일단 다들 누우세요.”

모두 순순히 시혁의 지시에 따랐다.

일렬로 눕자, 시혁은 뜸 뭉치를 소환하여 그들의 가슴 위에 뜸을 적당히 올렸다.

낮은 목소리로 사전 경고를 했다.

“뜨거울 겁니다. 거의 죽고 싶을 정도일 테니까, 미리 준비 하세요.”

“알았네. 빨리 치료해주기나 하게.”

“불사의 역병이 불에 약할 줄이야……”

“그냥 불이 아닐 걸? 저 마법의 가루가 중요해. 충만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다들 여유 만만했다.

아르거스에 소환되어 싸우면서 어지간한 고통은 다 겪어 봤으니, 화상 정도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혁은 정석대로 향을 소환했다. 그 끝에 불을 붙인 후, 생존자 모두의 뜸에 차례대로 불을 당겼다.

처음 뜸이 탈 때야 별로 뜨겁지 않았다.

매캐한 냄새가 주위를 감돌자, 생존자들은 여유를 부렸다.

“별로 뜨겁지 않은데?”

“이런 치료라면 하루 종일 받을 수도 있겠어.”

하지만 천천히 타는 것은 처음뿐이다.

불길이 뜸의 일정 부분 이상 태우자 슬슬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좀 뜨겁구나 싶은 순간, 뜸의 남은 부분을 질주하며 불의 마나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생존자들이 눈을 까뒤집었다.

“아악!”

“살려줘!”

“어흑!”

흰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뜸 냄새에 가려, 고기 태운 냄새가 시혁의 코끝을 파고들었다.

다들 숨을 헐떡였다. 방금 전의 통증은 산전수전 다 겪은 소환자들이 느끼기에도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그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독하다.”

“죽는 줄 알았어.”

“과연, 이 정도이니 불사의 역병을 억제시켰던 거로군.”

시혁은 생존자들의 가슴을 확인했다.

검은 핏줄이 뚜렷이 후퇴했다. 가슴 정중앙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이걸로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희망이 생겼다.

“완치는 안 되는 것 같은데, 맞소?”

“맞아요. 역병을 억제하는 게 최선이에요. 그 이상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해요.”

시혁의 대답에, 생존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악명 높은 불사의 역병이 이렇게 쉽게 치료될 리가 없지.”

“쉬운 치료치고는 지독히 아픈데……”

“제가 보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질 겁니다. 언젠가는 뜸 치료도 통하지 않을 때가 올 거라고 봅니다.”

“그 전에 성으로 돌아가야겠소.”

“그런데 우리가 소환된 성에 성자가 있었나요? 사제나 주교는 봤어도, 고급 병종은 못 본 것 같은데요.”

“으음…… 성자가 없으면 반신의 이적이나 영웅의 마법 정도여야 불사의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그걸 시전 해줄지 모르겠습니다. 이 전장에 소환된 영웅은 겨우 세 명인데, 각자 기사, 궁수, 마법사이니까요. 아직 성직자 영웅은 소환되지 않았어요.”

“쯧, 백색 군주가 우리에게 이적을 사용할 리가 없지. 불사의 역병은 전염성도 강하잖아? 요새에 들여보내지 않을 확률도 높아. 솔직히 말해서 나 같으면 그렇게 해.”

하다못해 기사 같은 상급 병종이 끼어 있으면 어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존자들은 모두 중급 병종이었다. 이적을 써서 치료하느니, 차라리 새로운 병력을 소환하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신들에게 있어, 일반 소환자들은 그저 장기판의 졸에 불과하니까.

그들의 인생이 어찌 되든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 불사의 역병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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