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2화 (12/250)

< 칠흑 처형인 >

마법사들이 굳은 얼굴로 앰버튼 경에게 보고했다.

“시체 제조자의 영웅 부대는 막 환영의 숲을 벗어났습니다. 수는 우리와 동일하게 딱 50 명이고, 죽음의 기사가 놈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레벨은 알 수 없나?”

“마법의 새로는 불가능합니다. 원견 마법을 써야 하는데, 그러면 해골마법사들도 저희의 존재를 알아차릴 겁니다.”

“흠, 그래? 병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영웅 죽음의 기사 1명, 해골 기사 2명, 사령술사 2명, 시체 골렘 5기, 해골 마법사 5명, 해골 병사 10명, 해골 궁수 10명, 좀비 15마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전력 자체는 우리가 우위에 있겠군. 이제 환영의 숲을 벗어날 정도면 5, 6레벨 정도일 테니까. 복색은 어떤가? 우리처럼 전원이 보물 장비를 갖고 있나?”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보물 무기나 방어구를 가진 것은 셋 중 하나 정도입니다. 장신구까지 생각해도 절반은 넘지 않아 보입니다.”

“좋아, 좋아. 지휘관은 죽음의 기사라고 했지? 어떤 놈일지 모르겠군. 특징 같은 것 없나?”

“음…… 투구 대신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붉은 망토를 찼는데, 번들거리는 걸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검이나 창은 안 보이고 도끼 하나만 가지고 있습니다.”

“도끼? 설마 그 도끼날 사이에 왕관을 쓴 해골 조각이 있나?”

“아,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런……”

앰버튼 경이 혀를 찼다.

적 지휘관의 정체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시체 제조자가 거느린 영웅 중 하나, 칠흑 처형인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한 단계 위, 상위 계급 영웅이니까. 나보다 먼저 이 전장에 소환되어서, 레벨도 분명히 높을 테고.”

영웅은 적군이 우세. 병력은 아군이 우세.

앰버튼 경은 영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굳이 맞서 싸우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어떤 존재의 의지가 개입된 순간, 전투 속행이 결정되었다.

[칠흑 처형인을 죽여라.]

백색 군주가 그렇게 지시한 것이다.

하긴 호재는 호재였다. 겨우 50 명의 소규모 부대가 호위 병력의 전부였으니까. 칠흑 처형인은 시체 제조자 진영에서도 서열이 높은 영웅이니, 이 기회에 죽여 놓는 게 좋을 것이다.

반신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거부할 수는 없다.

앰버튼 경이 지도를 폈다.

“어쩔 수 없군. 진군한다. 마법사들, 혹시 우리 부대를 적의 시야에서 숨길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두세 명까지는 가능해도, 그 이상은 힘듭니다.”

“알겠다. 가까이 가면 어차피 들킬 테니 괜히 힘 빼지 않도록 하지. 대열을 유지하도록. 그리고 충분히 접근한 다음 원견 마법을 쓰도록 해라. 특히 칠흑 처형인의 레벨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레벨 업 후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 부대원 모두 힘이 회복되어 있었다. 적 부대를 향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은신하지도 않고 대놓고 진군했다. 자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적 부대도 시혁이 속한 부대를 발견했다. 유령 박쥐를 하늘 높이 띄워 놓은 까닭이었다.

잠시 소란이 벌어졌다.

두 부대 모두 상대의 눈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조우할 시기를 가늠하며 서로에게 접근했다.

서로 얼굴을 확인할 정도로 가까워진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산 중턱의 완만한 기슭.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완만하다고는 해도 인간 군대가 고지대를 차지하고 있어 좀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시혁은 얼굴을 찌푸렸다.

언데드 군대는 처음 본다. 기껏해야 지구의 영화나 만화에서 본 게 다였는데, 실제로 본 언데드 군대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시체와 해골들.

다 썩어 짓무른 것들이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여기까지 풍겼다. 속이 울렁이며 욕지기가 느껴졌다.

본능적인 혐오와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얼굴이 썩 좋지 않았다.

마법사 하나가 앰버튼 경에게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5, 6레벨 정도입니다. 칠흑 처형인은 25레벨로 확인되었습니다.”

“25레벨? 빌어먹을. 발목이나 붙잡는 게 고작이겠군.”

현재 앰버튼 경의 레벨은 15.

레벨을 올리기 좋은 기회는 몽땅 가져갔어도 그 정도였다. 계급 차이까지 생각하면 칠흑 처형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두 군대가 서서히 진형을 갖췄다.

치료사들은 저격수들 틈에 섞였다. 마법사와 사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적군들이 이쪽만 노려보고 있었다. 전투력은 취약하면서, 가만히 놔뒀다간 전황을 엎어버릴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오랜만이군. 세 주기만인가?”

칠흑 처형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음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앰버튼 경도 몇 발짝 전진했다. 창을 어깨 위에 둘러맨 채 짧게 비웃음을 날렸다.

“은의 강에서 벌인 일전 이후로는 처음이지, 그래, 그때 박살냈던 어깨는 잘 복구했나? 비가 오면 뻐근할 텐데?”

“내 불멸의 육체는 그깟 상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너희 인간들이나 그러겠지. 내가 성광 질주 네놈의 다리에 새겨놓은 상처처럼.”

“흥! 더 말이 필요 있나?”

“없지. 병사들을 믿고 덤볐나 본데, 헛된 꿈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마!”

칠흑 처형인이 기세를 올렸다.

시커먼 기운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그 힘이 세상을 압도했다. 50명의 인간 군대 전원을 찍어 눌렀다.

시혁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전신의 힘이 빠지고 시야까지 어두워졌다. 생전 처음 겪는 경험에 당황하는 찰나, 앰버튼 경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게 들렸다.

“칠흑 후광? 이런 제기랄, 50레벨이었나?”

뭐?

방금 전에는 25레벨이라며?

이유는 간단했다.

괴물들을 사냥하며 얻었던 보물 중 1회용 마법서를 사용했던 것이다. 백색 군주의 이적이나 영웅의 특기라면 모를까, 일반 마법사로는 그것을 꿰뚫어보기가 불가능했다.

칠흑 처형인이 흉소를 터뜨렸다.

“고작 15레벨 주제에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모두 죽여라!”

끼기기긱!

키긱! 키긱!

언데드 군대가 일제히 괴이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일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사령술사와 해골 마법사들만 뒤에 남아 지원 사격을 했다.

빨랐다.

평소에는 굼벵이처럼 느린 좀비도 지금 이 순간에는 호랑이처럼 날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양 진영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칠흑 후광.

칠흑 처형인의 궁극기였다. 적은 약화시키고 아군은 강화시키니 대규모 접전에서는 이만큼 무서운 기술도 얼마 없었다.

“막아라!”

[막아라.]

앰버튼 경과 백색 군주, 양측에서 동일한 명령이 내려왔다.

시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날렸다.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는데,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앰버튼 경.

그가 말머리를 돌렸다.

“어어?”

순간, 시혁과 앰버튼 경의 눈이 마주쳤다.

차갑기 이를 데 없는 눈동자.

무심하기만 했다. 지난 며칠 동안 어둠의 숲과 칼날 산을 정벌하면서 쌓은 정이 무색했다.

앰버튼 경이 전장을 이탈했다.

칠흑 처형인이 분노하여 그 뒤를 쫓았다.

“어딜 도망가느냐!”

해골 군마를 달려 그 뒤를 쫓지만, 기동력 하나는 앰버튼 경이 월등했다. 천고의 명마인 바투스를 타고 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저 멀리 멀어졌다. 금방 산 위로 올라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펄. 엿 같네.”

치료사 하나가 욕설을 내뱉었다.

시혁도 상황을 파악했다.

백색 군주가 부대원들을 화살받이로 쓴 것이다.

49명의 일반 소환자보다, 1명의 영웅 소환자가 더 귀중하다고 여긴 모양.

자연히 욕이 나왔다.

“젠장……”

앰버튼 경 없이 언데드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벌써 전열이 무너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달려 나갔던 기사와 기병들 중, 무장이 부실한 기병들은 벌써 절반 이상 죽어나갔다.

더구나 칠흑 처형인이 추격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후미로부터 달려와 도끼를 날려대니,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으아악!”

“살려줘!”

“빌어먹을 백색 군주! 엿 같은 앰버튼!”

백색 군주가 명령을 내린 이상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부질없는 저항을 반복하다가 이 자리에서 죽어야만 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10레벨?

영웅의 한계 레벨에 도달한 칠흑 처형인에겐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누구도 일격을 견디지 못했다. 설령 기사라고 해도 칠흑 처형인의 도끼가 불길한 검은색으로 물들 때면 단번에 조각이 났다.

전세가 순식간에 기울었다.

기세 좋게 기슭으로 내려왔던 부대원 중, 살아남은 것은 이제 사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시혁도 궁지에 몰렸다.

홀로 떨어진 채 좀비들에게 둘러싸였다. 어딜 봐도 도와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익! 그냥 죽어줄 줄 알아?”

시혁은 안간힘을 쓰며 저항했다.

오른손으로는 침을 던지고, 왼손으로는 라이터를 켜 불을 뿌렸다. 던진 침이 허공을 날고, 불은 화려하게 시혁의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언데드 병력들은 처음에는 시혁을 피해 다녔지만, 곧 허울만 좋은 공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비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어어어!”

시혁은 라이터를 정조준하고 불을 뿌렸다.

치이익.

고기 타는 소리가 났다.

시체 썩는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가 어울려 역겨운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냄새에 얼굴을 찌푸릴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좀비가 불을 무시하고 달려든 까닭이었다.

“크아악!”

양 팔을 벌려 시혁을 잡으려고 하자, 시혁은 몸을 날려 바닥을 뒹굴었다.

겨우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위기는 지금부터였다. 한 번 공격을 피한 것은 좋은데, 그만 좀비들 사이로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좀비들이 시혁을 덮쳤다.

“안 돼! 아아악!”

시혁은 발버둥을 쳤다.

그 와중에 라이터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다시 소환해서 불을 뿌리려는 순간, 좀비 한 마리가 시혁의 손을 콱 깨물었다. 축축한 느낌과 함께 불 같은 통증이 시혁의 정신으로 파고들었다.

시혁은 입을 벌렸다.

흉악한 좀비들이 기를 쓰고 달라붙었다.

벌린 입에서 떨어지는 타액이 끔찍했다. 꺼멓게 삭은 치아가 짐승의 송곳니처럼 흉측하게 드러났다.

‘끝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자력으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 차라리 죽어 버리자.

고통스러운 것은 잠깐이다. 지구로 돌아가서 몇 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잊을 수 있다.

죽음의 기억은 남겠지만 뭐 어떤가. 감정은 잊히는데.

헌데 좀비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시혁을 둘러싸고 뜯어먹으려다 말고, 머리를 감싸며 뒤로 물러난 것이다.

혹시 누군가 도와주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한 명이 보였다.

해골 군마에 타고 왕관을 쓴 죽음의 기사.

칠흑 처형인.

그 자가 시혁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으으……”

지금도 칠흑의 힘을 후광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자연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칠흑 처형인이 시혁의 앞에 섰다.

거만한 자세로 시혁을 내려다보더니, 붉은 안광을 빛냈다.

“좀비에게 물렸군.”

“으으……”

시혁은 그 와중에도 의문을 가졌다.

그게 뭐 어떻다고?

순간, 한 가지 깨달음이 시혁의 머리를 강하게 쳤다.

지구의 각종 매체에서 나오는 좀비의 고유 특성이 있지 않나.

물리면 감염된다는 것.

시혁은 눈을 크게 떴다.

여기서 자신이 좀비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진영만 바뀌나? 죽었다가 재소환되면 원래대로 돌아갈까? 지구에 있는 자신의 몸에는 영향이 없을까?

알 수 없었다.

칠흑 처형인이 키득대며 웃었다.

“좋아. 죽음의 세례를 내려주마.”

죽음의 세례?

극도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시혁은 도망쳤다.

하지만 급한 것은 마음뿐이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엉금엉금 뒤로 기어보지만, 칠흑 처형인의 손이 다가오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손이 꺼멓게 빛났다.

어둠, 아니 죽음이 쏟아졌다.

한없이 역겹고 혐오스러운 어떤 것이 시혁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커헉!”

시혁의 몸이 크게 한 번 퍼덕였다.

그것을 보며 칠흑 처형인은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걸작이군! 변이가 완료되면 시체 궁전을 찾아오도록 해라. 적의 부대도 하나 줄이고, 공짜로 병사들도 얻었으니 이거 수지맞는 장사를 했군.”

어느새 전투가 종료되었다.

생존자는 좀 있었다. 약 5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언데드 병사들이 그들을 끌고 칠흑 처형인의 앞에 다가왔다. 하나 같이 좀비에게 공격을 당해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칠흑 처형인은 그들에게 모두 죽음의 세례를 퍼부었다.

“안 돼!”

“차라리 죽여!”

“제발 죽여줘! 제발!”

부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칠흑 처형인은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죽음의 세례, 정확히 말하면 불사의 역병을 한 명 한 명에게 걸었다.

시혁은 숨을 헐떡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금방 모든 이들에게 불사의 역병이 걸렸다.

언데드 병사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해골들은 위턱과 아래턱을 마주치며 딱딱거리고, 시체 골렘과 좀비는 바람이 새는 숨소리를 냈다.

칠흑 처형인을 필두로, 언데드 부대가 공터를 떠났다.

여섯 명의 생존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이 뭘하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는 투였다.

시혁은 망연한 눈으로 떠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 칠흑 처형인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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