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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1화 (11/250)

< 영웅 부대 -2- >

그러는 사이 부대가 계속 진군했다.

다양한 존재들이 습격을 했다. 길가의 나무가 눈을 뜨고 나뭇가지를 후려쳤다. 변이된 곰이 대열로 뛰어들고, 사람 팔뚝만한 벌들이 웅웅대며 날아들었다.

시혁은 신나게 불을 뿌렸다.

라이터의 작동 단추를 누르고 휘젓기만 하면 됐다. 그럼 화려한 불꽃이 일어나 적들을 공격했다. 실질적인 공격력은 없다고 해도, 잠깐 놀라게 하는 데는 아주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정지.”

가장 앞에서 행군하던 앰버튼 경이 오른손을 들었다.

커다란 공터가 보였다.

주위가 무성한 덤불에 싸여 있어 밖에서 안을 보기는 힘들었다. 아주 작은 샛길만 덤불 사이로 으슥하게 나 있었다.

앰버튼 경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곳은 그림자 호랑이의 영역이다. 내가 먼저 들어가 주의를 끌겠다. 기사, 사제, 치료사, 중장보병, 저격수, 마법사 순으로 들어오도록. 그림자 호랑이는 때때로 적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기습을 한다. 각자 잘 피하고, 사제들은 그림자 호랑이가 노리는 인물에게 보호막을 걸어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지금 시작하겠다.”

앰버튼 경은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그 커다란 말에 올라탄 채 샛길을 짓밟으며 공터로 들어갔다.

자연히 그림자 호랑이가 앰버튼 경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크아앙!”

사나운 울부짖음과 함께 격전이 벌어졌다.

그림자 호랑이가 길게 도약했다. 허공을 날아 앰버튼 경을 덮치자, 앰버튼 경도 쉽게 보지 못하고 바투스를 조종했다. 바투스가 콧김을 뿜으며 그림자 호랑이를 피해 달려 나갔다.

회피 직후, 앰버튼 경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창을 뻗었다. 흰 불꽃이 격렬하게 뿜어지며 그림자 호랑이를 강타했다. 그림자 호랑이가 고통에 겨워 길게 비명을 질렀다.

“지금!”

“돌입!”

기사들이 구령을 외치며 샛길을 따라 달렸다.

일반적인 군마로는 그림자 호랑이와의 전투에서 방해만 된다. 따라서 다섯 명 모두 하마한 상태였다. 커다란 방패와 마법검을 부여잡은 채 두 눈을 빛냈다.

상급 병종답게 몸놀림이 신속했다. 엇 하는 순간 이미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뒤를 이어 하나둘 공터로 진입했다.

시혁이 들어간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앰버튼 경이 치료사들의 진입 순서를 뒤로 미뤄뒀기 때문이다.

안쪽은 난장판이었다.

그림자 호랑이가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앰버튼 경이 지속적으로 화염의 창을 날리지만, 앰버튼 경보다는 다른 이들을 공격하는데 더 주력했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보호막을 걸고 치유의 주문을 사용하여 아직 죽은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이지, 조만간 사망자가 생길 터였다.

치료사들을 본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치료하시오! 급하오!”

한쪽에 부상자들을 모아놓고 있었다. 시혁은 빠르게 그쪽으로 달려갔다.

치료사는 상급 병종인 사제와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뒤떨어진다. 하지만 외상 치료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사제보다 더 뛰어날 정도였다.

시혁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고 누워 있던 기사에게 손을 뻗었다.

임맥을 따라 전중, 옥당, 자궁, 화개, 선기 혈에 차례대로 침을 꽂아 넣었다.

세계의 법칙이 작용하여, 기사의 상처가 간단히 회복되었다. 시혁은 그것을 확인하고 다음 부상자에게 옮겨갔다.

바로 그때였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과 함께, 발밑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크앙!”

그림자 호랑이.

시커먼 동체가 시혁을 덮쳤다.

늑대보다 훨씬 더 빨랐다. 뭔가 거뭇한 게 보였다 싶은 순간, 거대한 충격이 시혁을 후려갈겼다.

“커헉!”

시혁은 입에서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타격 직전 투명한 보호막이 시혁을 감싸서 이 정도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일격에 심장이 으스러지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도 충격이 너무 컸다. 시야가 까맣게 물들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혁은 겨우 손을 뻗어 스스로의 가슴에 침을 놓았다.

“헉, 헉, 헉.”

겨우 시야가 회복되었다.

실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직도 그 반향이 남아 있었다. 분명히 몸은 다 회복시켰는데, 타격 당시의 기억 때문에 몸이 떨렸다.

누군가 억지로 시혁을 끌어냈다.

“이봐! 표적이 되고 싶은 거야? 거기 있으면 놈이 또 공격해! 최대한 물러나!”

“예! 예!”

그 말에 시혁도 정신을 차렸다.

빠르게 뒤로 달렸다. 기다렸다는 듯 시혁의 그림자에서 또 검은색 맹수가 튀어나왔다.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림자 호랑이의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시혁의 등을 스쳤다. 그 서슬에 옷이 몽땅 찢어지며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놈!”

근처에 있던 기사가 그림자 호랑이를 들이받았다.

레벨만 높았으면 유효한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는 아직 1레벨에 불과했고, 그림자 호랑이가 충분히 감당할 수준의 충격을 주는데서 그쳤다.

대신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앰버튼 경이 달려와 화염의 창을 그림자 호랑이에게 꽂을 시간을.

화악!

“크아앙!”

제대로 된 일격이었다.

짧은 거리지만 급히 가속하여 창을 찌르자, 그림자 호랑이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림자 호랑이가 주변을 무수히 난타했다. 기사가 거기 맞아 나가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앰버튼 경은 빠르게 회피 기동을 하며 공격을 먹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시혁은 엉금엉금 기어갔다.

기사에게 자침을 하여 회복시키자, 기사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고맙네. 자네는 어서 몸을 피하게. 나야 맨몸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자네는 그게 아니지 않나.”

“예, 조심하세요.”

또 공격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얼른 그림자 호랑이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충분히 멀어진 다음에야 숨을 돌렸다.

어느덧 부대 전원이 공터로 진입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 지나간 것이다.

앰버튼 경과 기사들이 일선에서 그림자 호랑이를 공격했다. 중장보병들이 공터에 흩어져 기습을 막아내고, 저격수와 마법사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사제들은 한 발 앞서 보호막을 시전하고, 부상자가 발생하면 치료사들이 달라붙었다.

순조로웠다.

중간에 시혁도 한 번 공격을 당했다.

그런데 그 순간 중장보병이 시혁의 앞을 가로막고 대신 공격을 받았다. 사제의 보호막까지 지원을 받은 터라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

시혁은 급히 자리를 옮겼다.

그림자 호랑이가 하도 자주 이동해서 정신이 없는 것만 제외하면 퍽 순조로웠다. 죽은 사람 한 명 없이, 두툼한 화살과 마력탄이 그림자 호랑이의 생명을 차근차근 깎아냈다.

오죽하면 시혁이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 정도였다.

“크아아아악!”

한참을 싸우다가, 그림자 호랑이가 별안간 긴 울부짖음을 토했다.

그림자 호랑이의 몸 표면에 짙은 어둠이 떠올랐다.

최후의 발악.

“조심하라! 엎드려! 그림자 칼날이다!”

앰버튼 경이 소리쳤다.

시혁은 반사적으로 엎드렸다.

소리는 없었다.

대신 날카로운 칼날 같은 것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방금 전 시혁이 서 있던 자리에도 시커먼 칼날이 하나 날아와서, 엎드려 있던 시혁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날린 그림자 칼날이지만, 다들 빠르게 움직여서 유효한 타격을 입은 이가 없었다.

그림자 호랑이가 긴 숨을 뱉은 뒤 모로 쓰러졌다.

시혁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명 소소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을 치료해주자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림자 호랑이를 힘들여 잡은 보람이 있었다.

앰버튼 경을 포함한 부대 전원의 레벨이 올랐던 것이다. 더욱이 덤불 속에서 몇 가지의 보물을 발견했다.

검 한 자루, 예복 한 벌, 날렵한 활 하나, 반지 한 쌍과 귀걸이 한 쌍.

앰버튼 경은 흥미 없는 눈으로 보물들을 살폈다. 성능은 쓸 만하지만, 한 번 귀환하면 사라지는 물건들이었다.

누구에게 줄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각 병종의 높은 계급 인물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레벨이 오를수록 편차가 심해지니, 그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자, 바로 출발하지.”

갈 길이 멀다.

어서 50명 전원이 10레벨을 찍어야 했다. 앰버튼 경 자신도 최대한 레벨을 올려야 했고.

그림자 호랑이 다음에는 원숭이 왕, 원숭이 왕 다음에는 괴수 멧돼지……

어둠의 숲 전체를 휩쓸고 다녔다.

레벨이 빠르게 올라갔다.

치료소 안에서 치료만 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6레벨을 찍었다. 시혁만 그런 것도 아니고, 부대원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보물도 많이 얻었다. 부대원 중 절반 가까이가 보물 하나씩을 받았다. 시혁도 마나를 주입하여 보호막을 생성시키는 팔찌를 하나 얻어 착용했다.

앰버튼 경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모자라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어둠의 숲을 지나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산이 하나 나온다.

칼날 산.

보다 더 강한 괴물들이 나오는 곳이었다. 따라서 레벨을 올리기도 좋고, 소환자들이 쓸 보물을 수집하기도 좋았다.

막 산을 오르기 전, 앰버튼 경이 부대 전체에 말했다.

“지금부터는 긴장하도록 해라. 어둠의 숲은 우리 진영 후방에 있지만, 칼날 산은 시체 제조자의 영역과 겹치는 부분이 존재하니까. 어쩌면 시체 제조자의 영웅 부대와 마주칠 지도 모른다.”

그 말에 시혁도 긴장이 되었다.

시체 제조자는 현재 이 지역을 두고 백색 군주와 맞붙은 상대 진영 반신의 이름이었다.

언데드 군세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휘하에 강력한 언데드 병종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직접적인 이적을 발휘하는 것은 약해도, 그 때문에 아무도 얕보지 못한다던가.

앰버튼 경이 마법사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는 이제부터 괴물 공격에 참가하지 않아도 좋다. 대신 마법의 새를 날려 주위를 정찰해라. 혹시 시체 제조자의 영웅 부대가 접근한다면, 반드시 미리 알려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마법사들이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칼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레벨이 오른 까닭에 어렵지 않았다. 길도 잘 닦여 있었다. 길을 따라 움직이며 괴물들을 사냥했다.

우려했던 상대 진영의 영웅 부대는 없었다. 덕택에 수월하게 레벨 업을 했다. 칼날 산에 진입하고 얼마 후, 산악 거인과 트롤 주술사, 오크 마을을 토벌하며 순조롭게 사냥을 했다.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아르거스에는 기본적으로 낮과 밤의 구별이 없다. 신들의 힘이 작용하는 까닭에 잠을 자지도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하늘 위를 떠도는 황금빛 문자를 관찰하여 시간 변화를 알 수는 있었다.

한쪽 수평선에서 떠올라 다른 쪽 수평선에 질 때까지를 하루의 절반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동쪽과 서쪽, 날짜를 구분하는 게 가능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서, 어떤 반신은 시계탑을 세우기도 했다.

그 시간 기준으로 따졌을 때, 본성을 나서고 딱 닷새 만에 영웅 부대가 칼날 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새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괴물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앰버튼 경이 먼저 경고를 했고, 다들 긴장한 채 새의 둥지에 돌입했다.

위험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시혁도 겨우 목숨을 건졌다. 어둠의 숲에서 얻은 팔찌가 아니었으면 정말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격전 끝에 새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후아!”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졌다.

대부분 9레벨, 10레벨을 찍었는데도 꽤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그림자 호랑이와 싸웠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긴장했던 것 같았다.

그만큼 성공 보상이 컸다.

50명의 부대원 전원이 10레벨을 달성했다. 보물도 쏟아져서, 앰버튼 경도 휘장 하나를 골랐다.

앰버튼 경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대로 북상한다. 북쪽에 있는 환영의 숲을 지나서, 시체 제조자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임무는 시체 제조자의 영역에서 후방을 교란하는 것이다. 성 3개는 불태워야 한다. 그게 힘들면 최소한 죽음의 성소라도 박살낸다. 우리 부대가 백색 군주와 시체 제조자의 전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는 점을 잊지 마라.”

“예!”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칼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칼날 산에 있는 괴물들은 모조리 죽인 다음이었다. 환영의 숲에 진입하기 전까진 싸울 일이 없었다. 시혁은 마음을 놓고 털레털레 걸어갔다.

하지만 쉽게 갈 팔자는 아니었나 보다.

마법의 새를 날려 주위를 정찰하던 마법사들이 부대를 정지시켰다.

앰버튼 경의 얼굴에 언뜻 긴장감이 스쳤다.

“놈들이 왔군.”

시체 제조자의 영웅 부대.

그들이 출현한 것이다.

< 영웅 부대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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