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 -2- >
“원래는 침만 맞고 가려다가, 보호자가 고집을 피워서 입원하기로 했대요. 아마 보험 환자 아닐까 싶어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입원해 있으면 일당 나오는 사람들. 저도 손가락 간지러워서 입원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끙, 이젠 참 별……”
시혁은 욕을 하려다 말고 스스로를 다스렸다.
간지러움도 심하면 고통이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 얼마나 힘들지 누가 알겠나.
처치실에서 이를 닦은 후, 환자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차트 정리에 들어갔다.
그나마 김상아가 심전도 검사를 해줘서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이 간지럽다라……’
문득 아르거스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소각의 저주.
그것도 처음 증상은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간지러운 것에서 시작을 했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각의 저주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
소각의 저주는 불길 광마가 사용한다. 지구에 불길 광마가 나타나지 않는 바에야 소각의 저주가 출현할 리 없었다.
얼마 후 환자가 올라왔다.
걸어오긴 멀쩡히 걸어왔는데,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강하게 움켜쥔 채 천천히 발을 옮기고 있었다.
“괜히 뜸을 떠가지고…… 아파 죽겠네.”
“오빠, 괜찮아?”
“걱정 마. 난 괜찮아. 집에 안 들어가도 돼?”
“오빠 입원하는 것만 보고 갈게.”
여자 친구가 따라왔나 보다.
시혁은 차트를 들고 잠깐 기다렸다. 환자가 병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바로 따라 들어갔다.
“최병규 님이시죠?”
“네, 안녕하세요.”
“손가락이 안 좋으셔서 입원하셨다고요?”
“네. 몇 시간 전부터 간지러웠는데 별 거 아닐 줄 알고 그냥 참았거든요. 그런데 조금 전부터 따끔거리는 게 참기 힘들어서 침 맞으러 왔는데, 어째 침 맞고 나니까 더 심해지네요.”
“그래요? 손가락 좀 봐볼게요.”
최병규가 왼손을 내밀었다.
울긋불긋했다.
집게손가락이 특히 짙었다. 그곳에 물집이 몇 개 잡혀 있었다. 다른 곳은 적색으로 붓기만 했지 아직 물집은 없었다.
최병규가 불평을 했다.
“처음에는 검지만 좀 간지럽고 말았는데, 이젠 손 전체가 그래요. 방금 전에 뜸을 뜨고 나서 화상까지 입었다니까요?”
시혁은 최병규의 손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익숙했다.
아르거스에서 이런 증상을 수십 번이나 봤다.
소각의 저주가 맞다.
초기 상태.
이제 막 번지기 시작했다. 조만간 화상이 팔을 뒤덮을 것이다. 그게 몸통까지 진출하여 불꽃이 일어나면 그때는 이미 늦다.
믿기지가 않았다.
어째서 이게 지구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여기가 아르거스도 아닌데?
시혁은 현재 상태를 근거로 소각의 저주가 걸렸을 시간을 역산해 보았다.
현재 시간은 저녁 7시 반.
그렇다면 아무리 미약하게 걸렸어도 오늘 오전에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멀쩡한 것을 보면, 저주를 건 주체가 강력한 존재는 아니었겠지.
심각한 얼굴로 최병규를 보자, 최병규의 얼굴도 덩달아 딱딱해졌다.
“뭐…… 안 좋은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최근에 괴수에게 공격당하신 적이 있습니까? 특히 불 속성 괴수한테요.”
“괴수요? 하하, 그럴 리가요. 군대 있을 때 해골 늑대가 DMZ에 나타나서 북한이랑 합동 작전 편 게 전붑니다. 사실 포위만 하고 있었지, 이능력자들이 알아서 다 했고요. 그게 벌써 2년 전인데요? 불 속성 괴수는 TV로만 봤어요.”
“그래요?”
자신이 잘못 안 걸까?
시혁은 최병규의 손을 보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화상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수포도 계속해서 돋아났다. 최병규의 여자 친구도 그걸 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어디서 화상 입은 거야?”
“몰라. 뜸을 뜨더니 이러잖아. 그냥 미르 병원에 갈 걸 그랬어.”
최병규가 얼굴을 찡그렸다. 꽤나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여자 친구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뜸 뜬 자국 같지가 않아……”
시혁은 초조한 눈으로 최병규의 손을 보았다.
어떤 경로로 소각의 저주에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렇게 방치할 경우 최병규는 분명히 사망하게 된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시혁은 차트를 병실에 놔두고 나왔다.
얼굴이 굳어 있자, 간호사들도 염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뭐 안 좋아?”
“네. 혹시 대야 같은 거 있어요? 물 좀 담을 수 있게요.”
“대야는 없고 사각 트레이는 몇 개 있는데……”
“그것 좀 주세요. 참, 아이스팩 좀 가져갈게요. 소금은 없죠?”
“소금? 식당에 가면 있긴 할 텐데, 문 닫았을 걸.”
“알았어요. 일단 아이스팩이랑 트레이만 좀 주세요.”
스테인레스로 만든 트레이에 물을 담았다. 아이스팩을 그 안에 넣은 뒤, 그걸 들고 병실에 들어갔다.
그 사이 손목까지 화상이 진전되어 있었다. 최병규와 그 여자 친구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최병규 님. 손을 이렇게 늘어뜨리세요.”
“이렇게요?”
“예. 그렇게 계세요.”
시혁은 침상에 설치된 간이 탁자를 올렸다. 그 위에 최병규의 팔을 걸치게 한 후, 왼손을 늘어뜨리게 했다.
소각의 저주에 걸렸을 때, 그 부위를 그냥 물에 담그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그럴 경우 저주의 힘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압착된다. 뼈로 파고들어 더 심각한 상황을 일으킬 수 있었다.
시혁은 손에 물을 묻혀 최병규의 손목을 쓸어내렸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자, 화상 부위가 넓어지는 것이 멈췄다.
하지만 그뿐이다.
생명의 마나가 깃든 물처럼 소각의 저주를 한 곳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더 진전되는 것만 막을 수 있었다.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제의 저주 해제나, 치료사의 마나 주입 같은 것을.
시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능 치료!’
5년 전, 하늘에 검은 천체가 나타났다. 검은 천체로부터 정체불명의 힘이 지구에 투사되었고, 그 이후 괴수가 출현했다.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좀 진정된 분위기였다. 얼마 후 이능력자들이 각성하여 괴수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치유 계열 이능력자도 존재했다. 자연히 다양한 방면에서 쓰였다. 괴수 사냥에 동행하여 이능력자들을 치유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병원에 소속되어 환자들을 치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능력자의 수가 적은 만큼 모든 병원이 이능력자를 보유하진 못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정연대학교 병원과 문인대학교 병원, 그리고 몇 개의 종합 병원이 전부였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으로 보내야 한다.
시혁은 병실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멈칫했다.
간호사 스테이션까지 고작 10여 미터 남짓한 거리지만, 그마저도 움직이기 아까웠던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주치의에게 모든 연락은 병동 전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예외는 오직 응급상황 때뿐이었다.
지금이 응급상황이 아니면 뭐냐?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가 가더니, 고유하가 전화를 받았다.
[고유하입니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시혁은 인턴 교육 후 한 번도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건 적이 없다.
자연히 고유하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스마트폰을 통한 연락은, 오직 응급상황에만 쓰인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혁은 침을 한 번 삼킨 후 보고했다.
[선생님. 연장진료 통해서 26세 남자 환자 한 분 입원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괴수 질병 같습니다.]
[뭐라고요? 병명이 뭔데요?]
[병명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증상이 이상합니다.]
시혁은 최병규가 보이는 증상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손가락에서 시작되는 간지러움. 어디에 데지도 않았는데 생기는 화상. 시간이 갈수록 화상이 더 강해지고 부위가 넓어지기까지 한다.
듣고 있던 고유하가 대답했다.
[어라…… 그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알았어요. 일단 가볼게요.]
전화가 끊겼다.
시혁은 전화를 하면서도 물로 최병규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아까 전까진 매우 아파하더니, 그 덕에 좀 견딜 만 한 모양이었다. 최병규의 얼굴이 편하게 풀렸다.
“제가 할게요.”
최병규의 여자 친구가 자청하고 나섰다.
시혁은 물이 담긴 트레이를 넘겨주었다.
“손끝이 물에 잠겨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한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기만 하세요.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물방울이 떨어지게만 하세요.”
“알았어요.”
여자 친구가 최병규를 돌보는 사이, 시혁은 송단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상연락망, 시혁의 다음 순서.
곧 송단비가 전화를 받으며, 특유의 높은 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선생님.]
[선생님. 응급이에요. 606호요.]
[네?]
시혁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억제되었던 화상이 또 번지고 있었다. 다시 트레이에 손을 넣어 최병규의 손에 물을 흘렸다.
동기들이 도착했다.
다들 병실 안을 들여다보더니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응급이라고 해서 뛰어왔는데, 심폐소생술을 하는 게 아니라 물을 손에 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을 하기 전, 고유하도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쪽 손에 얇은 태블릿 PC를 쥐고 있었다. 시혁은 물 붓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고유하에게 자세한 사항을 보고했다.
직접 최병규를 확인한 고유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태블릿 PC를 켜고 뭔가를 검색하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
생소한 이름이다.
기존의 병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순수한 라틴어로 명명한 병.
최병규의 여자 친구가 겁을 집어먹었다.
“그, 그거 괴수 질병 아니에요?”
“괴수 질병?”
“TV에서 본 것 같은데……”
최병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가 뭔지는 몰라도 괴수 질병은 안다. 대부분 인체에 치명적이고, 시간 내에 이능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한다는 사실도.
고유하가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이 말씀하신 걸 종합하면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부터 의심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뜸 말고는 어디 데인 적이 없다고 하셨죠? 뜸으로 생긴 화상은 이렇게 넓지 않습니다. 뜸을 올린 자리에만 생기죠. 제 소견으로는, 정연대학교나 문인대학교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치료 안 되나요?”
“만에 하나,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가 맞으면 반드시 이능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저희 병원에는 치유 계열 이능력자가 없습니다.”
“알았어요. 정연대학교 병원으로 갈게요.”
여자 친구가 최병규를 부축하여 일어나려고 했다.
시혁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선생님. 응급차 부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택시 타고 얼마 안 걸리긴 하지만, 그 안에서는 응급 처치를 하기 힘듭니다. 소견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유하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환자분 잠시만 기다리세요. 앰뷸런스 불러드릴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자 최병규와 여자 친구가 확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택시 타고 10분이면 정연대학교 병원에 도착하지만, 자기들끼리 가기는 좀 무서웠던 것이다.
고유하가 쌩하니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에게 응급차 호출 지시를 내리는 한편, 소견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시혁도 동기들을 불렀다.
“선생님들! 식당에서 소금 좀 얻어다 주세요.”
“소금이요?”
“네. 그냥 얼음물보다 소금물이 더 처치 효과가 좋아요.”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식당은 잠겼지만, 그거야 경비에게 열쇠를 받아다 따면 될 일이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이태준이 흰 소금을 잔뜩 가져왔다.
시혁은 트레이에 소금을 확 들이부었다. 그 물을 손목에 적셔주자, 최병규가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아.”
“왜 그러세요?”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요.”
자세히 보니 손목의 화상 부위가 좀 옅어진 느낌도 들었다.
<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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