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7화 (7/250)

<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 -1- >

“크헉! 커헉, 헉, 헉.”

시혁은 몸을 뒤틀며 일어났다.

어둡다.

그래도 얼추 주위의 윤곽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익숙한 곳이다. 다름 아닌 남자 인턴용 숙소였다. 2개의 이층 침대가 그리는 윤곽이 흐릿하게 시혁의 눈에 들어와 박혔다.

시혁은 멍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죽음의 공포가 점점 지워졌다. 주변을 인식한 후, 천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숙소구나……”

벌써 두 번째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6시였다. 오늘은 화요일이니까, 지금 일어나서 숙소를 나가야 한다.

몸을 튕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옷을 입고, 가운을 걸친 뒤 밖에 나가 간단히 머리를 감았다.

‘어디 보자. 오늘은 45명이구나.’

시혁은 환자 인원을 확인했다.

1달 전 처음 인턴을 시작할 때만 해도 시혁의 담당 환자는 20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러던 게 환자가 슬금슬금 늘더니, 이제는 그 2배까지 치고 올라갔다.

병원 전체적으로 다 그랬다. 130병상을 가득 채워서, 닫아둔 병실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그 중에서도 시혁이 맡은 침구과가 무시무시했다. 입원 환자를 끝없이 올리는 것이다. 인턴의 담당 과가 바뀌자마자 벌어진 일이어서, 침구과 주치의 고유하가 시혁을 보고 환타(환자 타는 사람) 아니냐며 농담을 하곤 했다.

7시 아침 보고까지 45명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시혁은 날듯이 7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나마 젊은 환자가 많아 다행이었다. 아침 시간에는 대부분 자고 있으니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병동을 돌았다.

몇몇 주의해야 할 환자가 있지만 그뿐이었다. 7층과 6층에 많은 침구과 환자들을 먼저 확인한 후, 약간은 긴장하며 5층으로 내려갔다.

시혁이 맡은 과는 침구 1과와 2과, 그리고 7내과.

7내과 과장은 양방내과 전문의면서 한의사 복수 면허자라 간혹 까다로운 환자가 입원하곤 했다. 수련의가 따로 배정되지 않아 다른 과의 레지던트 2년차가 주치의를 해서, 인턴으로서는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이제 열이 안 나시네요.”

501호, 1인실에 있는 환자와 얘기를 나눴다.

이현석.

급성 편도염으로 입원한 환자였다. 병원 직원 중 한 명이었는데, 나이가 젊어 금방 친숙해졌다.

이현석이 지겹다는 듯 수액 통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전 언제 퇴원할 수 있습니까? 이제 열도 안 나는데요.”

“오늘 교수님 회진 있어요. 9시 좀 넘으면 오실 테니까, 그때 한 번 여쭤 보세요.”

“이동명 교수님 오늘도 오세요? 대단하시네요. 거의 매일 출근하시나 봅니다.”

“그렇지요, 뭐. 병원에는 수요일만 안 계실 걸요?”

처음 입원했을 때는 시혁을 무던히 고생시켰던 환자였다.

환자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다. 병이 문제였다. 입원할 때 39.5도의 고열을 보이더니, 항생제와 해열제가 들어가는데도 쉽게 열이 잡히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렇게 생체 징후가 불안정하면 일정 시간마다 재측정을 한다. 그 결과는 무조건 인턴에게 먼저 보고되고, 인턴은 그때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여 주치의에게 보고해야 했다.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1시간 주기로 이현석을 확인해야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밤이라고 열이 떨어지냐면 그런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나마 어제부터는 열이 내렸다. 아마 며칠 정도 경과 관찰 후 퇴원하지 싶었다.

이현석이 답답한 듯 몸을 뒤틀었다.

“그런데 선생님. 저 오후에 잠깐 외출하는 건 안 됩니까?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뭐 바쁜 일 있으세요?”

“네. 고향에 토지 매매 문제 때문에 법원 다녀와야 돼서요. 어휴, 일이 복잡해요. 어떻게 안 될까요?”

“글쎄요. 어차피 저한테는 권한이 없는데…… 조금 있다가 회진 시간에 교수님이나 주치의 선생님께 여쭤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좋겠죠? 알겠습니다. 한 번 물어보기나 해야겠네요. 원래는 저번 주에 해결했어야 됐는데 입원하는 바람에 못 했지 뭡니까?”

시혁은 플라스틱 파일에 철해놓은 환자 기록표에 ‘외출 원하심’이라고 써넣었다.

예전에는 현황표를 그대로 들고 다녔지만 이젠 달라졌다. 아예 기록용 양식을 만든 것이다. 환자 이름, 나이, 과, 병실만 적어놓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구분해 놓으니 증상을 기록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5층에서 7내과부터 먼저 보고를 했다.

[……그리고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시다고 오후에 잠깐 외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회진 시간에 교수님이나 선생님에게 물어보신답니다. 이상입니다.]

[뭐 때문에 외출하는지는 말씀 안 하셨어요?]

[고향에 토지 매매 때문에 법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괜찮을지 모르겠네. 알았어요.]

주치의가 전화를 끊었다.

시혁도 그제야 전화를 내려놓았다.

시계를 보니 7시 2분.

7내과가 환자가 적으니 미리 전화를 한 것이다. 이제 6층으로 올라가서 침구과 보고를 해야 했다.

고유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침 보고가 끝나자마자 한 마디를 남겼다.

[7시 20분에 바로 2과 자침 시작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환자가 늘면 인턴만 바쁜 게 아니라 주치의도 바쁘다.

시혁은 부리나케 7층으로 올라갔다. 침구 2과 환자들 옆에 전침과 적외선 치료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한편, 미리 준비한 곡반을 7층 간호사 스테이션에 올려놓았다.

아침부터 지독하게 바빴다.

시혁은 미친 듯이 달려 다녔다.

고유하가 침을 놓으면 전침을 걸고 적외선 치료기를 작동시켰다. 그러는 한편 7층 1인실이나 2인실에 있는 침구 1과 환자의 부항과 뜸을 떴다. 7시 40분이 됐을 무렵에는 처음 침을 맞은 환자들의 침을 빼기도 했다.

1인 3역이라고 할까.

부항도 뜨고, 전침도 걸고, 발침도 하고……

땀이 삐질삐질 나고 어지럽기까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아침에 단지 몇 명이라도 해결해 놓으면 오늘 하루가 달라지니까.

뜸을 뜰 때만 환자의 옆에 붙어 있었다. 기껏해야 손가락 한 마디 길이라 3분이면 다 타곤 했다.

손이 빠른 것은 시혁의 장점 중 하나였다. 인턴 동기들 중 가장 빨랐다. 작정하고 하면 1시간에 12명씩 부항과 뜸을 뜨고 다녔으니까.

반면 고유하는 손이 좀 느렸다. 환자 1명 자침에 5분 정도가 걸렸다. 덕택에 8시까지 빠듯하게 침을 놨어도 7층의 침구 1과 환자들만 침을 놓을 수 있었다.

[선생님. 710호까지 놨어요. 6층은 1과 회진 끝내고 이어서 바로 시작할게요.]

문자가 왔다.

답장해서는 안 된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참으로 불합리하지만, 응급 상황을 제외하면 주치의에 대한 모든 연락은 병동 전화로 해야 했으니까.

시혁은 차례대로 발침을 했다. 짬짬이 부항을 뜨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8시 15분까지 총 5명 환자의 부항과 뜸을 완료했다.

9시에는 침구 1과와 7내과 회진이 있다. 어제 저녁에 전침과 적외선 치료기 설치는 완료해 둔 뒤였다. 잠깐 병동에 들러 곡반만 만든 후 9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동기들이 식당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땀을 흘리는 시혁을 보더니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아침부터 고생이 많아요.”

“휴, 그러게요. 침구과랑 7내과는 아침이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오후 되면 괜찮아 지니까요.”

“앉아서 밥 좀 먹어.”

“밥이라도 먹어야 하지, 안 그러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1달 동안 동기들과 많이 친해졌다.

시혁은 원래 09 학번이라 병원 동기들과는 1학번 차이가 났다. 그런데 1년 유급을 하는 바람에 같이 학교를 다녔다. 원래 성격이 수더분하진 않았고, 유급한데 대해 창피함을 느껴 같은 학년 학생들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고생을 하다 보니 동기애 같은 게 형성되었다. 데면데면 했던 김상아와 말을 텄고, 1살 어린 송단비와는 존대를 하긴 해도 친숙하게 여기고 있었다.

“오늘 7내과 회진 제가 커버하면 되죠?”

“네, 선생님밖에 커버할 사람이 없어요. 이태준 선생님은 부인과 회진 있고, 김상아 선생님은 재활 2과 회진 있으니까요.”

“부인과 환자가 없으면 좋은데……”

“어쩔 수 없죠.”

벌써 8시 반이다.

느긋하게 밥을 먹을 시간은 없었다.

시혁은 앉은지 5분도 안 되어 아침밥을 끝장냈다. 김치에 메추리알 장조림, 된장국을 들이붓듯이 한 것이다. 다른 동기들도 그리 느리지는 않아서, 거의 비슷한 시간 식사를 마쳤다.

바쁜 하루가 지나갔다.

이현석의 외출은 이동명 과장이 안 된다고 잘랐다. 아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최소한 금요일은 되어야 한다고 해서, 그때 퇴원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회진과 자침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시혁은 고유하가 자침하는 동안 또 부항을 뜨고 다녔다. 정말이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늘 내로 일이 끝나지 않을 테니까.

초인적으로 일을 했다. 결국 저녁을 먹기 전에 모든 일을 끝냈다.

“끝났다……”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신규 입원 환자 다섯 명이 있었다. 침구 1과 3명, 침구 2과 1명, 7내과 1명이었다.

입원 보고는 이미 했다. 이젠 저녁에 상세한 환자 병력 조사를 하고, 심전도를 찍는 게 남았다.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밤 10시는 될 것이다.

그나마 오전보다는 나았다. 뛰지 않아도 좋았다. 걸어다녀도 충분했다.

식당에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작은 병원이다 보니 음식이 부실했다. 점심 정도만 먹을 만 했다. 하지만 인턴들에게는 하루 중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 보니 천금보다 귀중했다.

“힘들었다……”

“넌 일 다 끝났어?”

“응. 참, 너 입원 환자 있더라. 심전도는 내가 찍어 놨어.”

“진짜? 고마워. 부항 뜨느라 정신이 없어서 심전도 못 찍고 있었는데.”

“난 환자가 적잖아. 그런 거라도 해야지.”

2내과와 3내과, 재활 2과를 맡은 김상아의 말이었다.

적다곤 해도 3개 과를 다 합치면 25명 정도는 된다. 처음에는 그 정도로도 허덕였는데, 지금은 웃으며 일을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7시까지는 휴식 시간. 누구 밥 먹으러 오는 사람도 없으니 딱 좋았다.

인턴들의 화제는 한정되어 있다.

병원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환자 얘기, 간호사 얘기, 레지던트와 과장들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특히 환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다.

인턴으로 생활하다 보면 별의 별 환자를 다 만난다. 병이 깊어 신경질적으로 변한 환자는 차라리 괜찮은데, 인턴과 간호사를 자기 아래로 인식하고 진상을 부리는 환자가 있어 문제였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때로는 뒷담화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분 좋게 병동으로 내려왔는데, 한 가지 예상 외의 일이 생겼다.

6병동 현황판에 신규 입원 환자 이름이 뜬 것이다.

[606 A1 최병규]

분명히 1시간 전만 해도 없던 이름이었다.

시혁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선생님. 신환이에요?”

간호사에게 묻자, 시혁을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선생님 침구과죠? 연장진료실에서 환자 곧 올라온대요. 선생님이 환자 타긴 정말 환자 타나 봐요.”

“끄응. 저녁에는 좀 쉴 줄 알았더니……”

“환자 침 맞고 있다고 하니까 시간 좀 지나야 올라올 거예요. 그때까지 좀 쉬세요.”

“어디가 아프대요? 허리?”

“손가락이 간지럽다고 하네요.”

“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증상이다.

시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걸로 입원을 해요?”

< 잉케산스 우스툴라티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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