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방병원 인턴 >
아침 7시.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어느 한방병원 3층.
갑자기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끄아아악!”
얼음장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병원 전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 터진 비명은 3층은 물론이고,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5층부터 7층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침잠에 빠져 있던 환자들까지 놀라 병실 밖으로 튀어나왔다.
같은 숙소를 쓰는 동기 이태준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잠이 확 달아난 얼굴로 시혁을 보더니, 조심스레 질문을 했다.
“시혁아, 악몽 꿨니?”
시혁은 멍한 눈으로 이태준을 쳐다보았다.
황소 크기의 핏빛 개가 달려들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했다.
눈앞의 이태준과 핏빛 개가 겹쳐 보였다.
시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으로 더럽고 두려운 경험이었다. 강렬한 죽음의 기억이 시혁을 괴롭혔다.
“시혁아?”
시혁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이태준이 다시 시혁을 불렀다.
그 부름을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응? 아, 응. 불렀어?”
“너 악몽 꾼 것 같아서. 괜찮아?”
“아, 어. 괜찮아. 괜찮은 것 같아.”
아닌 게 아니라 눈을 뜬 순간부터 죽음 당시의 공포가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어 지우개로 그 당시의 감정만 모조리 지워버리는 것처럼.
묘한 일이다.
이젠 핏빛 개를 떠올려도, 핏빛 개의 거대한 송곳니를 상기해도 두렵지 않았다. 다시 마주친다 해도 그 흉악한 외모에 겁을 집어먹을지언정 죽음의 기억에 함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파악한 시혁의 눈빛이 변했다.
‘도대체 뭐지……’
다른 건 몰라도,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자신에게 작용했다는 사실은 눈치 챘다.
하지만 자신은 이능력자도 발현자도 아닌데?
오래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침대 머리맡에 놔둔 스마트폰이 빽빽대며 울었기 때문이다.
벌써 아침 7시 10분이었다.
오늘은 2016년 2월 21일.
시혁이 창천대 광주 한방병원의 인턴으로서 업무를 시작하는 날이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모르겠다.’
일단은 업무에 집중해야겠다.
별 일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옷을 입고 가운을 그 위에 걸쳤다.
본과 4학년 실습 후에는 처음 입는 가운.
본인이 한의사가 되었다는 실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집일 것 같았다.
찬 물에 머리를 감고 나서야 현실감이 강하게 들었다. 총의국에서 환자 현황표를 들고 나와 병동을 돌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이 시혁을 보고 인사를 했다.
“새로 오신 인턴 선생님이세요?”
“네. 최시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잘 부탁드려야죠. 그런데 아까 3층에서 이상한 비명 소리 안 들렸어요? 환자들이 무슨 일이냐며 물어보던데.”
시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간호사들이 뭘 두고 묻는지 알아차린 까닭이다.
“그거 접니다. 악몽을 꿔서요.”
“네?”
“어머, 정말요?”
간호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신고식 하셨네요. 가끔 그런 선생님들이 계세요.”
“그래도 첫날부터 하신 분은 없었는데……”
몇 마디 더 말을 나누고 간호사 스테이션을 지나쳤다.
아침부터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할 것은 환자 상태를 확인하여 아침 8시에 각 과 주치의들에게 보고하는 일. 그나마 일요일이라 8시이지, 평소에는 7시에 해야 했다.
그걸 해야 하는데,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환자에게 증상을 묻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다. 노인 환자들은 대개 깨어 있지만, 젊은 환자나 중년만 되어도 쿨쿨 자고 있었다. 그들을 깨워서 증상을 물으니 잘 자는데 왜 깨우느냐며 신경질을 냈다.
증상의 정도를 물어보는 것도 어색했다. 시혁은 재활 1과, 6내과, 신경정신과를 한꺼번에 맡았는데 통증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저 처음 입원할 때보다는 나은 것 같다, 좋아지고 있다, 수준의 대답만 얻었다.
그나마 통증 환자는 나았다. 6내과와 신경정신과에 뇌졸중 환자가 한두 명씩 입원해 있었는데 그 앞에 가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결국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5, 6, 7층을 한 바퀴 돌아 5층으로 내려왔다.
우선 신경정신과 주치의 이미숙에게 정규 보고를 끝마쳤다. 그 다음으로 6내과 주치의 강문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강문지는 왜 이렇게 늦게 전화를 걸었냐고 성을 냈다.
시계를 보니 8시 10분.
정규 시간에 정확히 보고를 해야지, 왜 10분이나 늦었냐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 늦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치사하게 군다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강문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는 조심해요.]
시혁은 현황표에 적어온 내용을 보고했다.
별 것 없었다.
애초에 환자 파악이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 아니, 환자 파악을 제대로 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냥 환자들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받아 옮겼다.
[환자들 수면 시간 확인은 안 해요?]
[FBS(공복 시 혈당)은 얼마였대요? 아니, 당뇨 환자 FBG 확인을 왜 안 해요?]
[그 환자 아침 혈압은요? 아 진짜! 고혈압 환자잖아요! 혈압 확인 당연히 해야지!]
진이 쭉 빠졌다.
미비한 게 있으면 강문지는 그 자리에서 다시 알아오라고 시켰다. 전화를 확 끊어버리니, 몇 번이나 병동과 간호사 스테이션을 왕복해야 했다.
보고 장소가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이용은 응급 상황이 아닌 한 금지였고, 병동 전화만 써야 하니 그것도 힘들었다.
6내과 보고가 끝나니 8시 반.
2내과를 담당한 송단비가 얼른 전화를 넘겨받았다. 즉각 2내과 보고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어미를 ‘요’로 썼다고 죽을 듯이 혼나고 있었다.
시혁은 얼른 6층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도 혼날 각오를 했는데, 재활과 주치의 배혜정은 뜻밖에도 호의적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계속 6내과 노티(notification, 보고)하고 있었어요?]
[예, 선생님. 제가 놓친 게 많아서, 병동에 다시 갔다가 보고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 진짜 그런 거 하지 말자니까. 알았어요. 시작하세요.]
[예. 재활 1과 노티를 시작하겠습니다.]
재활과 보고는 다행히 빨리 끝났다. 배혜정이 강문지와는 달리 사사건건 되묻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렇게 첫 업무가 끝났지만, 오늘 하루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9시에 각 과 주치의 자침이 있으니까.
아침도 못 먹고 거기 매달렸다. 곡반에 침과 알코올 솜을 담고, 환자마다 전침과 적외선 치료기를 설치해야 했으니까.
어떤 한방병원은 환자 자리에 전침과 적외선 치료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던데, 창천대학교 병원은 그 수가 훨씬 부족했다. 덕분에 인턴들만 죽어났다.
정확히 9시가 되자 배혜정이 병동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사적으로 배혜정은 시혁의 동기가 된다. 원래 같은 학번인데, 시혁이 1년 유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그런 걸 다 무시한다. 오직 하나, 기수만 따진다. 따라서 학교 선배와 후배가 병원에서는 아랫년차와 윗년차로 만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곤 했다.
배혜정이 마주 인사를 했다. 시계를 힐끗 보더니 610호 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을 확인하고, 시혁은 5층으로 내려왔다.
때마침 이미숙이 5층에 있는 신경정신과 의국의 문을 열고 나왔다. 시혁이 얼른 인사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곡반을 집어 들었다.
다른 과도 슬슬 자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환자들은 병실에 들어가 있고, 흰 가운을 입은 한의사들만 돌아다녔다.
시혁이 담당해야 하는 주치의는 두 명.
현재 인턴이 네 명인데 비해 주치의가 일곱 명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인턴은 다섯 명을 뽑았는데 한 명이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이라 빨라도 4월 말에나 합류할 것이다.
덕택에 정신이 없었다.
배혜정을 따라다니며 전침을 거는 것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 5층에서 전화가 왔다. 신경정신과 환자 침을 안 빼주느냐는 것이다.
아차 싶어 5층에 가서 침을 빼고 왔는데, 배혜정이 저 앞쪽 병실에 들어가고 있었다. 더구나 앞서 침을 맞은 재활과 환자들도 침을 빼야 해서,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시혁만 아니고 다른 인턴들도 그랬다. 그나마 주치의 1명씩 전담 마크를 해서 이 정도이지, 자기 과만 챙겼으면 지옥문이 열렸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환자의 자침이 끝나자 10시 반이 조금 넘었다.
시혁은 간호사 스테이션 뒤의 처치실에 숨어 숨을 골랐다.
인턴은 어디 앉아 쉴 곳도 없었다. 있다면 화장실, 병동 서쪽과 동쪽 끝에 있는 계단, 처치실 정도였다. 입국식 뒤에는 달라지겠지만 초반에는 그랬다.
다른 동기들도 지친 얼굴을 하고 처치실에 모였다.
“벌써부터 지치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잠도 겨우 2시간 잤는데……”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은 없다.
사혈, 부항, 뜸을 다 해야 하는 환자가 스무 명이나 된다. 남은 환자들도 간단히 사혈을 하거나 뜸을 떠야 할 게 있었다. 학교에서 다 배웠고 실습도 해봤지만, 그 스무 명을 다 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이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해서, 시혁은 오전 동안 딱 4명에게만 부항과 뜸을 뜨는데 성공했다.
알코올 솜으로 사혈할 부위를 닦고, 사혈침으로 사혈을 하고, 1회용 부항을 그 위에 붙이고, 그 주변으로 일반 부항을 싹 붙이고, 1회용 부항을 떼고, 피를 닦고, 그 자리에 뜸을 몇 개 뜨고……
익숙해지면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담당 환자 둘을 양 옆에 두고 함께 처리하거나, 아예 병실 하나를 한꺼번에 끝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혁은 실질적으로 이런 것을 처음 해보는 처지였다. 자연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20분 내내 환자 1명에게 매달려 있었으니까.
결국 부항과 뜸을 다 한 것은 오후가 다 가고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그나마 저녁 전에 해결을 해서 다행이다. 환자가 제일 많은 김상아는 저녁을 먹고도 부항을 뜨고 다녔다.
이후 저녁 보고와 당직 일지 작성 등 모든 일정을 끝마친 후, 4명의 인턴이 총의국에 모였다.
종례 시간이다.
일이 끝났다고 숙소에 들어가 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직 주치의에게 종례를 받아야 했다.
잔뜩 지쳤다.
익숙하지도 않은 구두를 신고 다녀서 발이 끊어질 듯 아팠다.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당장 숙소에 들어가 뻗고 싶었다.
“선생님들 수고가 많았어요.”
종례를 하러 내려온 안․이비인후․피부과 주치의 조희영이 말했다.
줄여서 안이피. 외관과(外官科)라고 부를 때도 있지만 안이피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인턴 네 명 모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졸린 눈으로 조희영의 말을 듣기만 했다.
“오늘은 입원 환자가 없었죠?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입원 환자가 많을 거예요. 오늘 보니까 많이 헤매던 것 같은데, 빨리 익숙해지세요. 안 그러면 선생님들만 힘들어요. 그리고 서로서로 많이 도와주고요. 원래 다섯 명이 할 일을 네 명이서 하니까, 안 그러면 정말 힘들어요.”
조희영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알고 듣는다면, 제대로 소화만 시킨다면 큰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턴 네 명 모두 나가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조희영이 무슨 말을 하건 얼른 종례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조희영이 그걸 보고 빙긋 웃었다.
“피곤하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고생했어요. 아, 그리고 내일부터 과장님들 회진 있는데 절대 구멍 내면 안 돼요. 그런 일 있으면 선생님들도 죽고, 저희도 죽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죠?”
“네, 알겠습니다.”
조희영은 그 말을 남기고 총의국을 빠져나갔다.
시혁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동기들 모두 그랬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히 씻었다.
발이 퉁퉁 불어 있었다. 물집이 잡히려는지 양쪽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숙소에 들어가 눕자, 몸은 피로한 가운데 눈만 말똥말똥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겪었던 경험.
혹시 그 경험을 오늘도 겪을까 싶어서였다.
시혁은 피식 웃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손만 뻗어 자침을 하면 어떤 치명적인 상처도 회복되던 그때.
지금과는 너무나 달랐다.
현실 지구에서 시혁은 인턴, 햇병아리 한의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손짓 몇 번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죽음의 공포까지 지워진 마당이니, 시혁은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 가닥 기대를 품고 잠이 들었는데, 시혁의 기대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다시 그 다음 날도……
결국 시혁은 이상한 경험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너무 바쁘고 힘들었으니까.
눈을 뜨면 뛰어다니고, 눈을 감으면 쓰러져 자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런 판에 그때의 경험을 잊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시혁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 것은 1달이 지난 후, 또다시 그 세계에 소환되었을 때였다.
< 한방병원 인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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