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12화
와아아아!
둥글게 빙 둘러싼 관중석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세계 최고의 팀들이 격돌하는 무대, 그 마지막 경기에 걸맞은 골이 들어간 것이다.
오솔은 코너 쪽으로 달려가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에게 걸린 이상 당연한 결과라는 태도. 바르셀로나 팬들로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을만한 모습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그 클래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골이기도 했다.
‘체력도 적잖이 떨어졌을 테니 잘하면 기세를 꺾을지도 모르겠는데?’
슬며시 ‘막을 수 없는’이 발동할 것을 기대해 봤는데, 아쉽게도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반응은 기대와는 영 딴판이었다.
‘눈에 불이 붙었군.’
지금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자와 같았다. 기세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살기등등해서 오솔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펩의 바르셀로나는 기술적인 완성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무장 역시 뛰어난 팀이었다.
‘뭐, 상관없지. 애초에 치열한 승부가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경기장 곳곳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오솔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모드리치가 경고를 보냈다.
“오솔, 뒤에 사람!”
오솔이 뒤를 돌아보자 웬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하나가 상의를 탈의한 채 오솔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경비원 복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 둘이 미친 듯이 그를 쫓고 있었다. 꼴을 보아하니 경기장 난입이었다.
“오솔 선수 사랑해요! 날 기억해 줘요, 내 이름은…….”
그러나 남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오솔이 남자의 팔을 잡고 업어치기 한판으로 단번에 제압해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눈앞이 핑글핑글 돌고, 숨은 턱 하니 막힐 것이다.
“어이구 수고하십니다.”
오솔은 음주 단속 경찰을 만난 것처럼 경례를 하며 경비원에게 남자를 넘겼고, 경비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남자를 제압했다.
정신을 차린 남자가 애끓는 눈빛으로 오솔을 바라봤다. 오솔이 해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경기장에 난입해도 용서가 되는 건 개나 고양이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인간?”
“너, 너무해!”
“그 새끼 입 좀 막아줘요.”
“읍! 읍읍!”
남자는 납치라도 당하는 사람처럼 끌려갔고, 관중들은 오솔의 단호한 대처에 박수를 보냈다. 사태가 진정되자 심판이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괜찮나?”
“문제없어요. 경기 진행하시죠.”
“음…… 다음부터는 괜히 나서지 말고, 경비원이 처리하기 전까지 그냥 가만히 있게.”
“그러죠.”
오솔은 시간을 확인했다. 전광판 시계는 어느덧 후반전 18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가 빠르게 제압한 덕분에 시간이 오래 지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경기가 끊어졌을 때 난입한 덕분에 흐름이 끊기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네.’
아무래도 이런 식의 돌발 상황에 약한 것은 맨시티 쪽이다. 오솔이 일 처리를 빠르게 한 것도 결국은 선수들의 긴장이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솔 역시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오늘 선수들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삐이익!
경기가 재개되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다시 진득이 공격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화가 난다고 해서 성급하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에 없이 천천히 패스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강박 같은 게 느껴졌다.
‘스페인이 아니라 꼭 독일 팀 같군.’
흡사 2014년 월드컵 당시 독일 팀을 보는 것 같았다. 한 몸처럼 움직이며 패스 속도를 높여가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압박해! 패스를 방해하라고!”
상대의 패스 코스와 타이밍을 어그러뜨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게 압박을 하고, 거칠게 부딪쳐야 했다.
그러나 전반전부터 유독 많이 뛰어왔던 선수, 베일에게 문제가 생겼다. 관중이 난입하며 생긴 그 순간, 알게 모르게 몸속의 긴장이 스르륵 풀린 것이다.
‘윽! 몸이……!’
베일로서는 알지 못했다. 그의 정신은 오솔의 득점과 동시에 극한까지 치솟았으나, 몸은 어느새 한계에 도달해서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걸 알고 있는 건 오히려 그를 상대하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었다.
‘패스해 줘!’
전반전 내내 베일과 달리기 싸움에서 졌었던 다니 아우베스. 그러나 이번에는 베일이 그보다 한참이나 뒤처지게 되었다.
파바바박!!
그 순간, 부스케츠의 패스가 시의적절하게 그의 발 앞에 떨어졌다. 아우베스는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갔고, 메시는 측면에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안쪽으로 접고 들어갔다.
‘이런 젠장!’
야야 투레로서는 둘 중 어느 쪽을 막아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메시를 따라가자니 아우베스의 측면 돌파가 무섭고, 그렇다고 아우베스를 막자니 메시의 플레이가 두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야야 투레는 아우베스 쪽을 선택했다. 메시는 그나마 커버를 쳐줄 사람이라도 있지만 아우베스는 그가 놓치면 끝장이었다.
역시나 아우베스는 야야 투레가 따라오는 걸 보고 메시에게 패스했다. 야야 투레는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형!”
“걱정 마!”
콜로 투레가 득달같이 튀어나와 메시에게 달라붙었다. 메시를 상대로 뺏는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저 돌아서지 못하게 막는 게 최선이었다.
‘좋아. 일단은 막았다. 막았, 어……?’
공1은 이미 메시의 가랑이 사이를 빠져나간 뒤였다. 콜로 투레가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그곳에는 어느새 이니에스타가 전진해 있었다.
“메시에게서 눈을 떼지 마!”
벤치에서 들려오는 경고음. 그러나 콜로 투레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메시가 그의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아차!’
메시는 이니에스타의 스루패스를 왼발로 잡고 순식간에 우뚝 멈춰 섰다. 놀라운 신체 능력이었다. 그러나 감탄을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메시의 발은 벌써 두 번도 넘게 슛을 할 것처럼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콜로 투레가 막 메시에게 접근할 때였다. 메시는 아웃프런트로 공을 툭 하고 밀어 찼다. 목표는 박스 중앙, 쇄도하고 있는 샤비였다.
파앙!
샤비는 침착하게 반대편 골대를 노렸다. 완벽한 패스를 닮은 정확한 슛이었다.
“이런 젠장!”
데샹 감독은 무릎을 내려쳤다. 사실 그는 20분이 지난 시점에 베일의 상태를 파악하고 교체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상대가 티키타카로 계속 시간을 끈 탓에 25분이 되도록 교체가 되지 못했고, 결국은 이런 실수가 나오고 말았다.
“조금 이르더라도 아까 골을 넣었을 때 교체했어야 했어. 실수다. 제길…….”
데샹 역시 알게 모르게 관중 난입에 흔들린 것이다. 그도 아직은 어린 감독이라는 반증이었다. 결국 교체 신호는 골을 허용한 다음에야 떨어졌다.
베일은 고개를 떨궜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오솔은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위로했다.
“울지 마.”
“죄송해요. 저 때문에…….”
“체력 한 톨 남기지 않고 죽어라 뛴 놈이 뭐가 죄송해.”
베일은 두 다리를 떨고 있었다. 방금 상황에서 다리가 풀릴 정도로 전력으로 뛴 것이다.
“들어가서 근육이나 풀어줘. 괜히 트로피 들어 올릴 때 쥐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오솔은 베일을 들여보내는 잠깐 사이에 선수들을 모았다. 그는 드물게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마 이번 세대의 바르셀로나는 역사상 가장 강한 팀 중 하나일 겁니다.”
바르셀로나의 뛰어난 경기력은 메시도 메시지만 사실상 세 얼간이 조합의 힘이 더 컸다.
이 조합은 샤비가 더 이상 90분을 뛸 수 없고, 이니에스타의 머리가 하얗게 세고 나서야 빈틈이 생길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그런 팀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대등한 싸움을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재작년까지 리그 중위권에서 허덕이던 팀의 경기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그렇기에 오솔은 믿었다. 그들의 저력을,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을.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이기는 건 결국 우리가 될 겁니다.”
오솔의 두 눈에 선수들의 의지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역시나 다들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라 그런지 눈빛들이 살아 있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넘어서야만 하는 법이죠.”
잠시 침묵이 깔렸다. 그리고 만주키치를 시작으로 다들 한마디씩 했다.
“어우, 오글거려.”
“크흐흐! 진짜 웃음 참느라 혼났다.”
“난 힘들어서 그런가?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오더라.”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는 모습들이 긴장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솔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러나 동료들의 놀림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장담하건대 아마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연설이었을 거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넘어서야만 하는 법이죠. 키야! 죽인다!”
“이 정도면 평생 놀려먹을 수 있겠는걸?”
“…….”
오솔이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가자! 이 쓰벌놈들아!”
“흐흐흐! 조오치!”
덕분에 오솔도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저도 모르게 과하게 들어가 있던 힘이 동료들 덕에 빠지게 되었다.
* * *
이후로도 후반전 40분까지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양 팀 선수들 모두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한계까지 도달했으나, 그럼에도 좀처럼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정확한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갔고, 맨시티는 항상 한 발씩 더 뛰면서 그들을 막아섰다.
교체 카드는 어느새 3장씩 사용한 상황, 이제 경기를 바꿀 수 있는 건 필드에 선 선수들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솔의 마지막 수가 발동되었다.
-‘극장골의 주인공’이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5씩 상승합니다.
오솔이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언제나처럼 패스를 주고받는 세 얼간이. 그들이 여유롭게 공을 옮기고 있을 때 오솔이 느닷없이 나타나 부스케츠에게 백태클을 시도했다.
태클이 자칫 잘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바로 퇴장당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오솔은 이번 기회를 살리는 것만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다 지면 평생 놀림당한다고!!’
부스케츠는 오솔이 이렇게까지 대담한 태클을 할 줄은 몰랐는지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버프 스킬의 영향이 있었다.
‘좋아, 닿았다!’
문제는 흐르는 공을 누가 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당장 가까운 것은 이니에스타였다. 그러나 오솔의 몸놀림에 먼저 반응한 것은 뒤에 있던 모드리치였다.
두 사람은 먼저 공을 잡고자 정신없이 뒤엉켜 들었는데, 놀랍게도 경기 내내 수비에 참여했던 모드리치가 더 빨랐다. 이니에스타는 이를 악물었다.
‘읏!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 있다니?’
모드리치는 몸이 휘청거리면서도 끝내 이니에스타보다 먼저 공을 차는 데 성공했다. 목표는 전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만주키치였다.
‘젠장, 뒤지게 힘드네.’
모드리치는 패스와 동시에 넘어지면서 앞으로 한 바퀴 굴렀다. 간신히 몸을 멈춰 세운 그에게 보이는 것은 투박한 패스를 가슴 트래핑으로 패스하는 만주키치와 그 패스를 받으려고 뛰어가는 오솔의 뒷모습이었다.
‘가라! 최고 어쩌고를 보여줘!’
오솔은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공을 잡고 성큼성큼 전진했다. 그는 수비수가 앞을 가로막을 것 같자 디 마리아를 향해 곧장 패스했고, 디 마리아는 공을 잡은 즉시 반대편 측면의 페트로프에게 길게 찼다.
파바박!
패스가 조금 길었지만 페트로프는 교체해 들어온 선수답게 전력으로 뛰어서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페트로프는 속도 외에 이렇다 할 재주가 없는 선수였다. 마침 크로스를 받아줄 선수도 없어서 난처해할 때였다.
“이쪽!”
야야 투레가 노마크 상태로 하프 스페이스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페트로프는 그 즉시 야야 투레에게 패스했고, 야야 투레 역시 원터치로 중앙의 공간으로 공을 찔러 넣었다.
좌우로 크게 흔든 덕분에 수비수 사이가 벌어지면서 만들어진 자그마한 공간. 그곳에 오솔이 나타났다. 오솔의 입은 좌우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축구 재밌네!”
오솔은 발을 힘껏 휘둘렀다. 그 순간, 처음 축구를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오솔은 오랜 시간 억눌려왔던 괴로움과 죄책감, 슬픔과 기쁜, 환희와 좌절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꽈-앙!
오솔은 몸 구석구석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신이 한없이 자유롭게 해방되는 감각과 함께 공이 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깊이 파고들어 가는 축구공과 파동이 일어나듯 흔들리는 그물망이 그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 기분은 빅이어를 들어 올리고 폭죽이 터져 나가는 순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2009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은 맨체스터 시티였다.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