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11화
“이런 미친놈들! 뒷공간이 털릴 게 무섭지도 않나?”
“그만큼 상대도 필사적인 거야. 뒤가 없으니까 더 강하게 압박해 오는 거지.”
“미안하다. 내 실수야.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밖으로 차 낼걸…….”
“미안할 필요 없어. 아직 동점이니까. 다른 무엇보다 지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만 생각하자.”
오솔의 위로에 콤파니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흐리멍덩하던 눈빛도 점차 맑아졌다. 늦지 않게 멘탈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대처법을 마련하는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모드리치가 말했다.
“상대의 압박이 너무 빨라. 게다가 아까까지는 전진 패스만 막았는데, 이제는 공을 뺏으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어. 4-4-2 포메이션으로는 이런 식의 압박을 벗어나기 힘들어.”
4-4-2는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간격이 넓고 수비형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어서 패스 게임을 펼치기 힘들었다. 포메이션 자체의 구조적인 약점인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적절한 위치로 이동하면서 플레이하는 건데……. 문제는 상대가 그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지. 이렇게 되면 포메이션을 바꾸든지 빌드 업을 포기하든지 선택해야 해.’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는 형태로 포메이션을 바꾸거나 영국 축구로 대표되는 킥&러시 형태의 역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오솔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전술 변경은 감독님의 몫이야. 당장은 교체도 힘들 테고……. 그러니까 일단은 나나 만주키치의 머리를 향해 바로 올려.”
“하아, 빌드 업은 포기해야겠네. 설마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렇게 수비만 해야 하나?”
“놈들도 체력에 한계가 있는데 그럴 리 없잖아. 내가 봤을 때는 길어야 전반전까지야. 그러니 어떻게든 후반전까지 버텨보자.”
“하긴 분석 자료에도 후반전에는 압박의 강도가 줄어든다고 적혀 있었지?”
“오늘은 평소보다 더 격하게 달려드니까 분명히 더 빨리 지칠 거야.”
바르셀로나의 전방 압박은 연쇄적으로 중원과 후방 지역에서의 압박으로 이어진다. 전방 압박으로 패스가 부정확해졌을 때 그걸 뺏으려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식의 압박을 유지하려면 전 포지션의 선수들이 계속해서 뛰어야 했다. 그러니 아무리 티키타카를 펼치며 체력을 회복한다고 해도 90분 내내 압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빌드 업을 하는 건 상대가 지쳤을 때부터야.”
“킥&러시로 지치게 만든 다음에 시작하자는 거지?”
“그래.”
“하지만 그렇게 계속 뛰었다간 우리도 지칠 수밖에 없어.”
모드리치는 우리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오솔이 지치는 상황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었다. 오솔은 팀의 에이스이자 핵심이었다. 만약 후반전에 그가 퍼져 버린다면 득점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되면 수비를 아무리 잘해도 결국 승부에서 이길 수 없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내 강철 체력은 어디 안 갔으니까.”
“마지막 경기라고 무리하지 마. 넌 지금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여 있다고. 괜히 그러다…….”
모드리치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불길한 상상을 거두었다. 그러나 오솔은 그것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진짜로 괜찮아.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좋아. 평소보다도 컨디션이 더 좋다고. 후반전은 물론이고 연장전까지 가도 끄떡없어.”
오솔은 그 말과 함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컨디션 103%’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전반전이 반쯤 지난 시점에서 103%다. 그러니 시작할 때 110%였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포인트 굳은 거지.’
훈련이 한창일 때만 하더라도 오솔은 아이템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베일의 주력도 탐이 났었고,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올 선수의 체력을 카피하는 방법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를 끝으로 의미 없어졌다.
“결승전 응원할게. 잘해, 우리 아들!”
평소처럼 응원의 말을 전달하셨던 어머니. 그러나 이날은 뜻밖의 말을 덧붙이셨다.
“그리고…… 고마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어줘서.”
뜬금없는 말이었다. 고마울 건 무엇이고, 마음을 열었다는 건 무슨 소리일까.
“민주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주렴. 손주를 보시고 네 아빠도 많이 달라졌어.”
오솔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A매치가 한창이던 시기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었다는 이야기는.
오솔은 민주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왜 자신에게는 미리 말하지 않았는지.
그의 목소리는 흥분인지 걱정인지 모를 감정으로 떨려왔었다. 그러나 되돌아온 말들은 차분하고, 포근하며, 따뜻했다.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예의고 도리인데, 벌써 몇 년째 지키지 못했잖아. 아이들의 얼굴은 물론이고 내 얼굴도 모르시는 건 아닌 것 같았어.”
민주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솔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민감한 것인지 알기에.
“그리고…… 혹시나 한참 뒤에 자기가 후회하지는 않을지…… 아니,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해서 갔다 온 거야. 혹시나 찾아올지 모르는 감정을,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어. 내가 자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니까…….”
사실은 민주에게도 힘겨웠을 걸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을 이끌고 굳이 그곳으로 찾아갔다. 모두 오솔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때 느꼈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생각하지만 내가 돌아온 이유는 결국 널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
오솔은 시선을 들어 관중석 한 곳을 바라봤다. 혼자서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노 라이올라와 그 옆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듯 앉아 있는 여민국, 사랑하는 두 아이, 그리고 연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랑은 조금…… 아니, 많이 다르네.’
따스한 눈빛으로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의 모습을 기대해 봤으나, 애석하게도 아내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었다. 두 녀석 다 오솔을 닮아 기운이 넘치는 스타일이다 보니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쩝! 감동이 오래 못 가는군.”
오솔은 입맛을 다시다 말고 환히 웃었다. 마침내 민주와 아이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지켜봐 줘. 반드시 이길게.”
* * *
경기는 이전까지와 같았다. 맨시티는 중원을 꽉 틀어막은 채 잔뜩 웅크렸고, 바르셀로나는 티키타카가 막혀서 외곽으로 공을 돌리느라 바빴다.
혹여나 맨시티가 역습을 하게 되면 바르셀로나가 강한 압박으로 응수했고, 공은 오솔과 만주키치를 향해 길게 날아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피케와 부스케츠가 적절히 달라붙어 주고 그 뒤를 푸욜이 커버하는 형태가 되자 그것도 소용없었다.
삐이익-!
결국 전반전은 별다른 추가적인 득점 없이 1 대 1 스코어를 유지한 채 끝이 났다. 서로 한 방씩 주고받은 셈이었다.
“베일! 몸 상태 어때?”
데샹 감독은 전반전 내내 누구보다 많이 뛴 베일을 먼저 챙겼다. 베일은 풀백 위치까지 내려가는 것은 물론이고 역습 상황에서 오솔, 디 마리아 등과 더불어 전력으로 뛰어가는 멤버 중 하나였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조금 힘들지만 괜찮아요. 버틸 수 있어요.”
“힘들어도 조금만 더 부탁한다. 그래, 20분! 후반전 20분에는 교체해 줄 테니까. 최대한 많이 뛰어줘!”
“예!”
단순히 뛴 거리로만 본다면 베일만큼 뛴 선수들은 많았다. 당장 오솔이나 만주키치, 모드리치, 그리고 야야 투레 같은 선수들은 그보다 더 많이 뛰었고. 그러나 전력 질주의 횟수만 보면 베일이 압도적이었다.
전반전에만 10회.
그렇게 많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맨시티의 공격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전반전, 맨시티의 공격 횟수는 10회였다. 즉 전력 질주 10회면 사실상 공격할 때마다 매번 상대 골대까지 뛰었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베일이 젊은 선수라고 해도 많이 힘들 거야. 하지만 그 덕분에 오솔의 체력을 보존할 수 있었어.’
베일이 적극적으로 뛰어준 덕분에 오솔은 공격할 때에도 상대적으로 덜 뛰었다. 역습에는 참여했지만 전력으로 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컸다.
‘후반전은 상대도 압박이 느슨해질 거야. 킥&러시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다는 소리지.’
데샹은 오솔의 상태를 확인했다. 전반전 45분, 오솔은 4.6㎞가량 뛰었다. 공격의 중심으로 활약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수비수들을 사실상 혼자 견제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이 뛰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오솔. 후반전은 지금보다 더 많이 뛰어야 할 텐데, 가능하겠어요?”
“물론이죠. 후반전 내내 뛰어다니라고 해도 괜찮아요.”
혈색은 적당히 불그스름하니 좋았고, 호흡도 안정되어 있었다.
‘근육도 문제없고, 과연…… 시즌 막판인데도 몸 관리가 아주 잘 됐구나!’
그렇다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좋아요. 그럼 후반전, 공격을 이끌어주세요. 이제 후반전은 평소처럼 갑시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흐흐흐.”
맨시티가 준비한 작전은 안티 풋볼과 변형 라볼피아나가 끝이었다. 맞춤 전략으로 볼 수 있는 재미는 다 봤으니 이제는 그들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알고도 못 막는 축구는 너희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데샹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어보았다. 오솔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공격 축구는 어느새 맨체스터 시티의 스타일이 되어 있었다.
* * *
바르셀로나는 후반전과 동시에 다시 패스를 이어갔다. 부스케츠가 샤비에게, 샤비는 다시 부스케츠에게……. 그들은 반복되는 패스로 틈을 만들어보려 했으나 맨시티 선수들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이런 식의 플레이도 계속하기 힘들었다. 부스케츠가 공을 잡을 때마다 오솔이 득달같이 달려와 몸싸움을 걸어댔기 때문이다.
“조심해!”
부스케츠는 공을 향해 마중 나가며 원터치로 샤비나 이니에스타에게 패스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오솔이 노린 것은 이런 식의 다급한 패스 처리였다.
‘티키타카를 하면서 쉬는 것도 이것으로 끝이다. 지금부터는 너희도 죽어라 뛰어야 할 거야.’
오솔은 물론이고 만주키치 역시 죽을힘을 다해 압박했다. 그러다 마침내 바르셀로나 측에서 패스 실수가 벌어졌다. 다니 아우베스에게 흘러가던 패스가 약간 짧았고, 이를 베일이 번개처럼 튀어나오며 끊어낸 것이다.
[베일 달립니다! 오솔과 디 마리아도 호응합니다!]
만주키치는 느려서 도움이 안 되기도 하고, 압박에 치중하느라 힘들기도 해서 아예 역습을 포기했다. 반면 오솔은 동일한 압박을 하고서도 역습은 또 역습대로 참여했다. 오솔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감탄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오솔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아까까지 그렇게 달려놓고 또 달리고 있어요! 박해진 선수에게 많이 뛰는 비결이라도 배운 걸까요?]
파바박!
베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점차 속도가 줄어들었다. 평소보다 한계가 빨리 찾아온 모습이었다. 뒤에서 출발했던 오솔이 어느새 동일선상에 와 있었다. 베일은 더 늦기 전에 패스를 찔러 넣었다.
‘패스 좋고!’
오솔의 바로 옆으로는 푸욜이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서 흡사 타잔처럼 보였다.
‘용케도 여기까지 따라왔네.’
푸욜은 따라잡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오솔이 패스를 잡는 잠깐 사이에 아예 그를 앞질러서 자리를 잡기까지 했다. 대단한 집념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오솔의 다음 행동에 한순간에 헛것이 되고 말았다.
‘누가 돌파한대?’
오솔은 공을 잡으며 오히려 중앙 지역으로 돌아섰다. 그러곤 반대편에서 달리고 있던 디 마리아를 향해 길게 차올렸다.
뻐엉-!
공은 반대편 측면 깊이 떨어졌다. 디 마리아는 전력으로 달린 끝에 가까스로 공을 잡을 수 있었다. 그의 한계를 정확히 계산한 패스였다.
‘골라인까지의 거리는……?’
디 마리아의 시야 끄트머리에 골라인의 흰 줄이 보였다.
‘전진할 공간이 없다!’
오솔이 이런 패스를 보낸 것에는 명백한 의도가 있었다.
‘측면으로 파고들지 말라는 뜻이겠지? 그럼 어떻게 하지? 당장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기도 힘든데…….’
정면에는 어느새 피케가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를 제치려다가는 시간이 다 갈 것이고, 그러다 시우비뉴와 부스케츠 등이 합류하면 역습도 끝이었다.
그때 디 마리아의 눈에 오솔의 움직임이 들어왔다. 딱히 그의 시야가 넓은 건 아니었고, 그저 어깨 싸움 한 번으로 푸욜을 날려버리는 모습이 충격적이라 그랬다.
‘어떻게든 크로스를 올리기만 하면 되겠는데?’
디 마리아의 몸이 바깥쪽으로 향했다. 디 마리아는 발대 발 윙어였다. 그렇기에 크로스를 올리려면 바깥쪽으로 접고 올려야 했다.
이런 식의 크로스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가장 큰 장점은 상대 수비수가 크로스를 막아서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수비수는 기본적으로 안쪽을 지키고 서야 하기 때문에 수비 범위를 벗어나기가 그만큼 쉬웠다.
물론 반대급부가 없을 수는 없었다. 크로스 타이밍이 늦는 것이 그 첫 번째 단점이고, 두 번째 단점은 골키퍼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형태의 크로스라 공격수가 골키퍼와의 경합에서 이기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저런 바보 자식! 낮게 줬어야지!’
오솔은 골키퍼와 부스케츠 사이로 달려 들어가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팔을 쓸 수 있는 골키퍼와 오솔과 비슷한 키의 부스케츠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데, 디 마리아의 크로스가 쓸데없이 높았던 것이다.
“씨바, 모르겠다!”
파바박!!
오솔은 두 사람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채 뛰어올랐다. 발데스의 팔꿈치가 머리를 긁고 지나갔고, 부스케츠의 손이 시야를 가려대는 와중에, 오솔은 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하필 들어 올린 게 오른발도 아니었다. 오른쪽에서 넘어오는 크로스를 처리하려면 오른발로 차야 했지만 부스케츠가 옆에서 막아선 탓에 움직일 수 있는 건 왼발뿐이었다.
‘이젠 진짜 별짓을 다 하는구나!’
공이 오솔의 발등에 얹어지는 순간, 그의 다리가 마치 태권도 후려차기 하듯 접혔다. 즐라탄이 자주 하는 아크로바틱 슈팅 동작이었다.
때에엥-!
오솔의 발을 떠난 공은 골대를 한번 강하게 때리더니 그대로 골대 안에 처박혔다.
그의 두 번째 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