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07화
‘벌써 뒤지고 싶진 않아!’
오솔은 정면으로 맞는 것만은 피하고자 최대한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늦지 않게 반응했고, 공은 그의 머리 윗부분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헤딩 능력, 그리고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합쳐진 결과였다.
‘아뜨뜨!’
그러나 타격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공에 긁힌 부분이 마치 두피가 벗겨진 것처럼 따가웠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피부에 열상만 입었을 뿐, 따로 어지럽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장 우려했던 뇌진탕은 피했다.
‘후우. 방금은 진짜 위험했다. 다음부터는 보싱와를 던지든지 해야겠다. 하마터면 그대로 골로 갈 뻔했네.’
오솔은 경솔한 행동을 반성하며 골대를 확인했다. 다행히 공은 골대 안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머리가 닿으면서 빗나간 것이 분명했다. 오솔이 가만히 앉아있자 만주키치를 비롯한 선수들이 다가왔다.
“오솔, 괜찮아?”
“아, 다행히 정통으로 맞진 않았어.”
“그걸 맞고도 살다니…… 몸이 무슨 돌덩어리로 되어 있는 거 아니야?”
“그럼 죽을 줄 알았냐? 그리고 돌덩어리라니? 내가 돌대가리라는 소리냐?”
“말뜻을 알아듣는 걸로 봐서는 정상 맞네.”
만주키치의 말에 모드리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빗맞은 것 같긴 하더라. 그래도 조심해. 일단은 경기가 끝나고 바로 검사해 보자. 남은 시간 동안은 헤딩하지 말고.”
“그럼 이번 코너킥은 부탁 좀 할게요.”
“그런데 보싱와는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왜 그래, 조세? 어디 다쳤어?”
“당연하지. 아우, 어깨 빠지는 줄 알았네.”
보싱와는 어깨를 주무르며 인상을 썼다. 오솔이 최대한 조심했음에도 제법 부담이 갔던 모양이다. 오솔은 은근슬쩍 물었다.
“많이 아프냐?”
“됐어. 너도 위험했잖아. 아프긴 하지만 한 골 막았으면 된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팔에 힘이 잘 들어가나 궁금해서 그래. 어때, 지금 같으면 빅이어 정도 되는 물건을 들 수 있겠어?”
“빅이어? 그건 조금 무겁지 않나? 힘들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왜?”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
오솔은 혹시나 이번에 우승하게 되면 시상식 직전에 한 번 더 보싱와의 어깨에 올라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코너킥. 맨유는 반 데 사르 골키퍼까지 공격에 가담해 봤으나 콤파니와 야야 투레 등이 철저하게 방어한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코너킥이 실패로 돌아간 그 순간, 휘슬이 울리고, 마침내 힘겨웠던 경기가 끝이 났다.
스코어는 2 대 1, 점수차는 고작 1점이었고, 경기력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올드 트래퍼드 원정이 걱정스러워지는 결과였다.
* * *
1차전이 끝난 다음날, 맨체스터 시티의 전략 분석실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데샹 감독과 코치들은 물론이고 비디오 분석관과 스카우트까지 전부 모여서 그런지 방안이 빈틈없이 빽빽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수석코치가 물었다.
“퍼거슨 감독이 또 3-5-2로 나올까요?”
“절대 아니지. 이미 격파된 전술을 또 들고 나올 리 없잖아. 게다가 맨유의 홈이고 한 골 뒤지는 상황이야. 무조건 공격적인 형태로 나온다. 가장 자신 있는 전술로.”
“그렇다면 4-2-3-1이겠군요.”
데샹 감독은 전술판에 이름을 붙였다. 원톱에 테베즈, 10번 자리에 루니, 좌우로 호날두와 박해진의 이름이 자리했다. 중원 지역에는 캐릭과 플레처라고 적혀 있었다.
“설마 이런 조합으로 중원에 설까요? 상대가 안 될 텐데요?”
“포메이션은 이래도 박해진이 중앙까지 커버하러 올 테니 사실상 미드필더가 셋인 거나 마찬가지야. 캐릭은 후방 플레이 메이킹에 집중할 테고 박해진과 플레처가 박스 투 박스 역할을 맡는 거지.”
박스 투 박스는 각 팀의 페널티 박스 사이의 공간을 바삐 돌아다니는 역할을 뜻했다. 부지런히 뛰면서 공수 모두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살림꾼인 것이다.
“게다가 공격도 세 사람의 위치에 따라 그 형태가 수시로 변할 거야. 세 명이 일렬로 서는 것도 가능하고 테베즈와 루니가 앞뒤로 서고 호날두가 한쪽 면에서 파고드는 비대칭적인 형태도 가능하지.”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투톱의 형태로 변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결국 기본 포메이션은 4-2-3-1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비대칭 4-3-3이나 4-3-1-2으로 변한다는 얘기였다.
상당히 복잡한 움직임이었지만 상대는 이미 1차전에서 3백과 4백을 자유자재로 혼용했었다. 이 정도 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의식해야 했다.
“그래도 중원만 잘 틀어막을 수 있으면 오히려 1차전보다 편할 수도 있겠는데요?”
“맞아. 우리가 노려야 할 곳은 바로 여기, 중앙 지역이지. 특히 이 선수를 공략해야 해!”
데샹의 손가락이 플레처의 이름에 닿았다. 과거에는 ‘다크 플레처’라는 오명을 얻었던 선수였으나 오늘날 맨유 중원의 핵심적인 선수가 된 플레처. 데샹은 맨유의 약점이 그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억하나? 플레처가 1차전에서 카드를 받았다는 걸.”
“기억납니다. 태클이 제법 거친 편이었죠.”
“좋은 선수야. 딱 퇴장당하지 않는 선에서 반칙을 했었지. 하지만 2차전에서는 그렇게 뛰기 힘들 거야. 그에게는 이미 2장의 옐로카드가 누적되어 있거든. 챔피언스 리그의 카드 규정은 알고 있지?”
“아, 그렇군요! 챔스에서는 카드 세 장이 쌓이면 다음 경기 출전 금지였죠? 플레처는 벌써 두 장이 쌓인 상황이니 2차전에서 카드를 받으면 결승전까지 올라가 봐야 출전하지 못해요! 그렇다면…….”
“당연히 평상시보다 플레이가 움츠러들겠지.”
“우리는 그걸 공략하면 되는 거고요!”
“맞아.”
2014/15 시즌부터는 챔스 8강에 진출하면 이전의 경기에서 쌓인 카드를 무효화했지만, 아직까지는 그 규칙이 논의조차 없었다. 그래서 우승을 노리는 팀들은 카드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는데, 맨유는 박스 투 박스 역할을 해줄 선수가 플레처밖에 없어서 카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안데르손은 아직 수비가 약하고, 하그리브스는 여전히 부상 중이지. 결국 플레처 외에 대안이 없다.’
퍼거슨 감독이 긱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어떻게든 빈자리를 메워왔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시즌 말미에 다가오자 긱스와 스콜스 등 노장들의 컨디션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데샹이 어떻게 하면 플레처를 괴롭힐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가만히 전술판을 확인하면 코치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앗! 그렇다면 우리도 큰일인데요?”
“뭐가?”
“바튼도 다음 경기에서 카드를 받으면 결승전 출전 금지입니다.”
“그, 그래?”
“네. 심지어 바튼은 벌써 두 번이나 출전 금지당했고, 이번이 대회 8번째 카드입니다.”
조별예선부터 11경기를 치렀는데 두 경기 빠지고도 카드를 8번이나 받았다는 건 거의 매 경기 카드를 받았다는 소리였다. 데샹은 재빨리 기록을 확인했다.
역시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바튼은 물론이고 가레스 베리 역시 카드 누적이 위험한 상태였다.
“허! 이걸 어쩐다?”
플레처를 공략하기 전에 집안 단속부터 해야 했다.
데샹은 곧장 바튼을 불러서 면담을 진행했다. 감독이기 이전에 선수 출신으로서 결승전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감독직을 수행하는 이상 이렇게 입만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떤가요? 2차전에 출전해도 문제 될 게 없겠습니까?”
“전 뒷일을 생각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러니 설령 결승전에 결장하게 된다 하더라도 상관없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2차전이고, 여기서 이기지 못하면 결승전도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요.”
데샹은 안심하고 바튼을 출전시키기로 했고, 이 소식은 곧 선수단 전체에 퍼져 나갔다.
* * *
“괜찮겠어요?”
경기 전날, 오솔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바튼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그깟 경고가 무서워서 움츠러들 사람으로 보이냐? 걱정하지 마라. 카드 따윈 신경 끄고 상대를 막는 것에만 온정신을 집중할 테니까.”
“그런 것에 겁먹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제가 걱정하는 건 그 후의 일이에요. 카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죠?”
“알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인데…… 못 나가게 되어도 괜찮겠어요?”
“뭐가 걱정이야. 나 하나 빠진다고 우승 못할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2차전을 카드 하나 받지 않고 막아낼 수도 있잖아.”
가능성이야 있었지만 맹공을 펼쳐올 맨유를 상대로는 카드를 얻을 확률이 더 높았다. 게다가 상황도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바로 어제 있었던 바르셀로나 대 첼시와의 경기에서 역대급 오심들이 쏟아지면서 첼시가 패배했기 때문이다.
사실 경기 초반, 마이클 에시엔이 골을 넣었을 때까지만 해도 히딩크 감독이 다시 한번 일을 내는구나 싶었다. 마침 경기장도 그들의 홈인 스탬퍼드 브리지였고…….
게다가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사비는 그답지 않게 패스 실수를 많이 저질렀고, 경고 누적으로 빠진 앙리 대신 공격수 위치에 선 이니에스타는 번번이 돌파에 실패했다.
그 결과 전반전을 마쳤을 때 그들의 슈팅 횟수는 제로(0)였다.
‘물론 후반전에 완전히 뒤집혔지만…….’
후반전은 오심이 경기를 지배했다. 오브레보 주심은 피케와 에투의 핸들링 반칙을 코앞에서 보고도 휘슬을 울리지 않았고, 그 외에도 첼시에게 유리한 상황이 몇 번이나 나왔음에도 눈을 감았다.
실수였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판정의 결과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심판 판정이 경기를 망친 것이다.
그러니 내일 경기에서는 심판들이 평소보다 더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것이다. 판정이 깐깐해질수록 수비하는 입장에서도 태클을 조심해서 시도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바튼은 조심이라는 단어와 백만 광년쯤 떨어진 사람이었다.
바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금방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혹여…… 내가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도 네가 우승 트로피로 갚으면 되지. 결승전은 뛰지 못해도 우승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바튼은 이때 벌써 자신의 운명을 짐작했던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호날두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을 때, 그처럼 단호하게 반칙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콰가각-!
삐이이익!
휘슬과 동시에 노란색 카드가 올라가고 바튼의 대회도 그대로 끝이 났다. 결승전이라는 큰 목표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멘탈이 열 번은 더 흔들렸을 법한 상황이다. 그러나 바튼은 생각보다 담담한 얼굴이었다.
“바튼…….”
“오늘 반드시 이기자. 내 마지막 경기인데 이겨야 하지 않겠어?”
이미 판결은 떨어졌고, 번복할 수 없었다. 되돌릴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은 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55분 정도였으나 바튼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라도 팀을 결승전에 올리고 싶었다.
“그래요. 꼭 이깁시다.”
바튼의 각오가 선수들에게 전해졌다. 결승전이라는 과실을 포기하면서까지 승리를 갈구하는 의지가…….
맨시티 선수들은 바튼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료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호날두의 슈팅을 육탄으로 저지하고, 태클하다 넘어져도 그대로 머리를 들이밀어 걷어냈다.
[모드리치의 패스! 오솔에게로 향합니다.]
오솔 역시 골을 넣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한 골, 딱 한 골이면 끝이었다.
원정이니만큼 한 골만 넣어도 상대는 두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만큼 저항의 의지를 꺾는 행동도 없었다.
‘반드시 넣는다. 이긴다!’
오솔은 공을 잡고 그대로 내달렸다. 비디치가 제법 빠르게 따라붙었으나, 그것은 사실 속임수였다.
오솔은 공을 잡고 안쪽으로 접어 들어갔고, 비디치는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발이 꼬여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게 막 오솔이 슈팅을 시도하려는 순간, 뒤에서 태클이 들어와서 발밑의 공을 걷어냈다. 슈팅 타이밍을 빼앗은 좋은 태클이었으나 오솔의 발등을 치고 지나가는 다소 위험한 태클이기도 했다.
삐이이익!
휘슬이 울리고, 옐로카드가 나왔다. 카드를 받은 건 플레처였다.
‘미친…… 너도 결승전에 미련이 없다 이거냐?’
이렇게 되면 플레처 역시 팀이 결승전에 올라간다 해도 출전할 수 없었다. 투지를 보인 두 선수 덕분에 경기 역시 전에 없이 치열해져 갔다.
오솔은 이후에도 몇 번의 기회를 잡았었는데, 플레처의 과감함 태클 때문에 번번이 막히고 말았다. 플레처는 옐로카드를 받은 상태에서도 태클에 거침이 없었다.
파바박!
차르륵!
파앙-!
승부의 추는 종반으로 갈 때까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2차전은 그렇게 0 대 0으로 끝이 났다.
종합 2 대 1로 맨시티의 승리였다.
경기가 끝나고 바튼은 적잖이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시합에 집중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허무함들이 뒤늦게 가슴에 날아와 박히고 있었다.
오솔을 비롯한 선수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결승전에 진출했다고 기뻐하기에 앞서 바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했다. 오솔이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하하.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씁쓸하네.”
“…….”
“흐흐. 빅이어를 들어 올리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지?”
“그럼 일단은 맛보기로 FA컵 트로피부터 챙겨보죠.”
“그렇지. 아직 남은 경기가 많았지. 리그도 있고. FA도 있고.”
이제 프리미어리그는 단 세 경기가 남았을 뿐이고, FA컵은 결승전 딱 하나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치르면 길었던 시즌이 끝이 난다.
오솔은 빙긋 웃었다.
“챔스 결승전이 제일 마지막에 있는 이유가 뭘까요?”
“그야.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니까 그런 거지. 왜? 다른 이유가 또 있냐?”
“전 저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챔스 결승을 치를 때쯤엔 프리미어리그고 FA컵이고 우승자가 결정된다는 거죠.”
이는 곧 결승전 직전에 엄청난 양의 경험치가 들어온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