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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05화 (205/213)

 # 205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05화

전반전 3분, 벼락처럼 떨어진 슈팅 한 방이 골로 연결되었다. 초반의 어수선함을 제대로 이용한 것이다. 오솔을 상대하는 팀들이 힘겨워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점들이었다. 오솔은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완전히 딱 맞아떨어지진 않았지만…… 다행히 준비한 게 먹혀들었네.”

오솔은 가볍게 웃는 것으로 흥분을 털어냈다. 한골 넣었다고 좋아하기에는 일렀다. 퍼거슨 감독이라면 곧바로 대처법을 내놓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남은 87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겠지.’

오솔이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누군가 날아와 오솔의 건장한 몸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누군가 봤더니 같이 축하해 주러 온 만주키치였다.

“오솔, 이 자식! 정말로 넣었구나!”

“후후. 내가 언제 실수한 적 있던가?”

“와~ 씨! 재수 없는 자식!”

“사실이잖아.”

“사실이라서 더 재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야.”

“진짜 재수 없는 건 방심하다가 경기가 뒤집히는 거지. 농담은 이쯤 하고 다시 집중하자.”

“옙! 분부대로 합죠!”

“진지한 거 맞냐?”

즐거운 웃음소리가 흐르는 맨시티 선수들과 달리, 맨유 측 벤치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싸늘했다.

퍼거슨 감독은 얼굴이 붉어진 채 루니에게 소리쳤다.

“웨인! 뭐 하는 거야! 오셔가 압박당했을 때 바로 내려와서 패스 코스를 만들어줬어야지! 내가 오늘은 평소보다도 많이 뛰라고 했잖아!”

루니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미리 전술적인 지시를 받고 들어왔음에도 상대의 변칙적인 전술에 당황해서 제때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퍼거슨의 질책은 짧게 끝이 났다. 이어지는 것들은 선수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던 대응책들이었다.

“박해진과 플레처에게도 전해! 공을 가진 선수에게 바짝 붙어서 최대한 패스 코스를 짧게 가져가라고. 상대는 전방 압박을 강하게 하고 있다. 빌드 업에서부터 밀리면 아무것도 안 돼!”

“예!”

퍼거슨의 지시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루니와 플레처, 박해진 세 사람이 폭넓게 뛰어주자 풀백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헐거워졌고, 오솔 등이 지난 2주 동안 훈련한 작전들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됐어. 이제는 상대의 변화에 맞춰서 새로운 공략법을 찾으면 된다.’

오솔은 웃었다. 고작 5분 만에 지난 2주의 노력이 박살이 났지만 그래도 1골을 먼저 넣었다는 점에서 손해는 아니었다.

다행히 상황도 맨시티 쪽이 훨씬 유리했다. 루니와 박해진이 후퇴함에 따라 맨유가 4-3-3에서 4-5-1 형태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윙백의 고립 현상은 막아냈지만 이제는 반대로 원톱이 고립되었다. 이러면 당분간은 수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적진에 덩그러니 놓인 호날두. 아무리 호날두라고 해도 혼자 하는 공격은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물론 때때로 ‘과연 호날두다!’라고 할법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패로 끝이 났다.

[호날두의 슈우웃! 아! 또다시 빗나가네요.]

[호날두 선수가 지고 있는 짐이 너무 큽니다. 최전방에 있을 때는 콤파니에게 집중적으로 마크를 당하고, 밑으로 내려와서 공을 받으면 야야 투레에게 마킹당하고 있어요!]

[이거 퍼거슨 감독이 껌을 씹는 속도가 또 빨라지겠는데요?]

방법은 수비에 가담했던 세 사람이 죽어라 뛰어서 공격에도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박해진 등은 호날두의 공격 속도에 맞추기 위해 쉼 없이 뛰었다. 풀백 근처에서 최전방까지 거의 40m에 이르는 거리는 계속해서 오간 것이다. 그러자 그 체력 좋은 박해진도 전반전 40분 만에 입에서 단내가 올라오고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게다가 체력 외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바로 공격 속도의 문제였다. 전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에 가담하는 것과 후방에서부터 계속 뛰어오는 것은 그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막기 더 쉬웠다.

결국 맨유는 호날두의 고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전반전을 끝마쳐야 했다. 추가적인 실점이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 * *

맨체스터 시티의 라커룸. 선수들은 하늘색과 황금색으로 물든 공간에 모여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만주키치는 땀으로 흠뻑 젖은 푸른색 유니폼을 벗더니 돌돌 말아서 농구 하듯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예쓰! 들어갔다. 오늘은 운이 좋은데?”

“방심하지 마. 말 그대로 운이 좋았던 것뿐이니까.”

“뭐가 걱정이야? 전반전 내내 우리가 압도했잖아.”

“겨우 한 골 차잖아. 그래도 우리 홈인데, 적어도 두 골까지는 벌려놔야지.”

이건 단발 승부가 아니라 홈&어웨이 방식의 대회였다. 2차전에는 올드 트래퍼드로 원정을 가야 하기 때문에 홈에서 최대한 점수를 벌려놓아야 했다.

“계속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리지 않을까?”

“그렇게 어설픈 계획으로는 힘들 걸? 상대가 후반전에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도 하고.”

“그런가? 차라리 공격적으로 나와 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답답해. 중앙이 너무 두터워서 좀처럼 틈이 안 나잖아.”

실점 이후, 맨유는 굉장히 많이 뛰고 간격을 좁히는 것으로 공간을 꽁꽁 틀어막았다. 덕분에 맨시티는 측면에서 크로스만 주야장천 올리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을 강구하기 힘들었다. 좁은 공간을 공략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게 아쉽기만 했다.

“별수 없지. 최대한 세트 피스를 많이 만들어 보는 수밖에…… 중거리 슛도 많이 때려보고.”

그러나 이 시기의 맨유는 비디치와 퍼디난드라는 확실한 중앙 수비수 콤비에 반 데 사르라는 철벽의 수문장이 버티고 있었다.

세트 피스고 중거리 슛이고 단순한 플레이로는 뚫어내기 힘들었다. 이리저리 흔드는 플레이가 우선되어야 했다.

‘모드리치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좋았을 텐데…….’

젊다는 건 완성되지 않았다는 걸 뜻했다. 물론 가끔씩 예외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모드리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뛰어난 재주와 잠재력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완벽을 논하기 힘들었다.

‘모드리치의 장점은 정확한 패스와 왕성한 활동량이야.’

다른 것들도 평균 이상이었지만 당장 세계에서 먹힐 법한 재주는 저 두 가지였다.

‘그렇다면 많이 뛰면서 공격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플레이가 괜찮을 것 같은데…….’

오솔은 모드리치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 오솔과 모드리치는 서로의 눈빛을 확인했다. 둘 다 자신감이 가득 찬 눈이었다. 오솔은 살짝 걱정스럽다는 듯 확인했다.

“그런데 캐릭보다 많이 뛸 수 있겠어요?”

“글쎄. 자신은 있지만…… 누가 먼저 쓰러질지는 붙어봐야 알겠지.”

캐릭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좀처럼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 선수였다. 그래서 보통은 활동량이 적지 않은가 싶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많이 뛰는 선수 중 하나였다. 수비 시 길목을 미리 막고 동료들의 빈자리를 커버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이 뛰는데…… 그러다가 정말 쓰러지는 거 아니에요?”

“90분은 버틸 수 있어. 쓰러지는 거야……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상관없잖아?”

모드리치가 평소와 달리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것에는 사실 캐릭의 존재가 컸다. 캐릭은 수비력 못지않게 장거리 패스 능력도 뛰어난 선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빌드 업은 맨유를 상대하는 팀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데샹 감독은 모드리치를 이 위치로 올려 보냈다. 마치 박해진이 피를로를 마크하듯이 모드리치로 하여금 캐릭의 빌드 업을 방해하게 한 것이다. 덕분에 두 사람은 경기 내내 서로가 서로를 막거나 따돌리려 했고,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이 뛰었다.

“좋아요.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일단 추가골만 넣으면 조금 여유로워지니까 그때까지만 조금 더 뛰어 보죠.”

그러나 후반전이 시작되자 그 모든 계획은 무효화되고 말았다. 퍼거슨 감독이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왔기 때문이다.

[에브라의 오버래핑입니다. 어라? 생각보다 높이까지 올라가네요?]

에브라의 드리블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단숨에 중앙선을 넘었다. 평소였다면 이쯤 몰고 와서 박해진에게 공을 넘겼을 것이나 오늘은 계속해서 공을 몰고 갔다.

[박, 박해진 선수는 어디에……? 아! 바, 반대편에 있습니다. 어라? 이건 어떤 포메이션이죠?]

[이건 아마도…….]

데샹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3-5-2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그가 알기로 올 시즌, 맨유는 단 한 번도 쓰리백을 펼친 적이 없었다.

‘퍼거슨 감독은 도박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게다가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꺼내는 전술이 준비되지 않은 것일 리 없어.’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데샹과 선수들이 준비한 것처럼 퍼거슨 감독 역시 꽁꽁 숨겨뒀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는 것.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대처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몰랐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45분이었다. 대처법은커녕 분석을 끝마치기도 힘든 시간이었다.

3-5-2 형태의 맨유는 쓰리백으로 비디치와 퍼디난드 그리고 존 오셔를 놓았다. 그 앞을 지키는 역할은 역시나 캐릭이 맡았고, 윙백으로는 활동량이 좋은 에브라와 박해진이 자리했다. 묘하게 기존 역할을 벗어난듯하면서도 제법 잘 소화할 수 있는 역할 변경이었다.

‘역시 퍼거슨 감독님의 용병술은 알아주는구나. 4-3-3에서 3-5-2로 변했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아. 대체 얼마나 준비한 거지?’

에브라는 적당한 위치까지 공을 몰고 가더니 전방에서 호응하러 온 루니에게 공을 넘겼다. 콜로 투레가 루니를 강하게 압박했으나 애초부터 루니는 공을 오래 간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툭하고 백패스를 보냈다.

그 패스를 받은 건 첫 실점의 마지막 책임자였던 라이언 긱스였다.

“긱스다! 마크맨을 놓치지 마!”

“패스 코스를 막아!”

진작 은퇴했어야 할 서른여섯이라는 나이. 전성기와는 달리 이제는 한 명도 돌파하지 못하는 나이 든 윙어. 그럼에도 포지션을 옮겨 계속해서 클래스를 보여주는 선수.

모두가 긱스를 가리키는 표현들이었다. 돌파력은 잃었지만 여전히 패스만은 뛰어난 선수, 긱스. 그렇기에 선수들은 그의 패스에는 긴장할지언정 돌파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긱스가 오랜만에 공을 몰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긱스가 공을 잡고 달리는 순간, 그의 전성기의 움직임이 그라운드에 재현되었다.

툭! 스윽-!

긱스의 왼발이 공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의 패스를 경계하고 있던 수비수가 몸을 한쪽으로 움직이자 왼발이 다시 슥-! 하고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상대를 벗겨냈다.

에브라와 루니에게 딸려 들어가던 수비수들이 급히 긱스의 앞을 막아섰으나 그는 이번에도 간단한 상체 페인팅과 드리블로 제쳐냈다.

빠르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속을 수밖에 없는 그런 움직임이었다. 무려 19년의 경험이 녹아든 기술이었으니 막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파앙!

긱스의 기술은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정면에 있던 기븐 골키퍼도, 옆에서 급히 커버를 오고 있던 콤파니도 잡지 못할 코스로 패스를 보낸 것이다.

[호날두-우!]

긱스가 다 만들어주다시피 한 골, 호날두는 맛있게 받아먹었다. 전광판에 기록된 시간은 후반전 3분이다. 오솔이 선제골을 넣은 시간과 묘하게 겹쳤다.

* * *

오솔은 깊은 한숨을 뱉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망할. 긱스한테 당하는 건 너무 굴욕인데요.”

“너무 방심했어. 상대는 왼발의 마법사 긱스인데…….”

“그 마법봉에 당했다는 게 굴욕적인 거예요. 으으. 안 되겠어요. 바로 정의구현 들어가야지.”

마침 데샹 감독도 전술적인 변화를 지시했다. 큰 변화는 아니고, 이전의 경기들처럼 오솔이 오른쪽으로 가고 만주키치가 중앙으로, 디 마리아가 왼쪽에 서는 정도의 변화였다. 그러나 이런 변화야 말로 3-5-2의 약점을 제대로 노린 것이었다.

‘3-5-2는 측면 지역을 방어하는 선수가 다른 포메이션에 비해 한 명 적다.’

3-5-2는 다 좋은데 측면 방어가 취약했다. 상대는 두 명의 선수가 측면에 서는데 이쪽은 윙백 혼자서 수비하기 때문이다.

만약 측면 공격수들이 오솔이나 디 마리아처럼 빠르다면 윙백들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5-3-2처럼 강제로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상대의 공격은 중앙에 집중되고 막기 굉장히 쉬워진다.

‘일단은 측면에서 기회를 잡아볼까?’

오솔은 패스를 받자마자 라인을 따라 달렸다. 에브라가 황급히 따라오는 게 보였다.

‘지금쯤이면 보싱와도 올라오고 있겠지?’

윙백이 자신에게 붙어 있으니 보싱와는 노마크일 게 뻔했다. 오솔은 그렇게 생각하고 멈춰서 백패스를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보싱와와 그의 옆에 바짝 붙어있는 선수를 보는 순간 발을 멈칫해야 했다.

‘긱스? 긱스가 여기 왜 있어?’

오솔은 공을 끌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곧 필드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4-1-4-1? 대체 언제?’

3-5-2였던 포메이션이 어느새 4-1-4-1 형태로 변해 있었다. 중앙 미드필더였던 긱스가 왼쪽 윙어 자리고 옮기고, 그로 인해 생긴 공간은 루니가 대신 채운 것이다.

오솔이 드리블을 친 시간은 길어야 3초였다. 즉 상대는 고작 3초 만에 이토록 완벽하게 포메이션을 변경했다는 소리였다. 이는 하루 이틀 연습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 정도 호흡이라니…… 최소한 한 달은 준비한 전략이다.’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4-1-4-1 형태를 갖춘 맨유는 놀랍도록 견고했던 것이다. 세계 최고의 팀이 작정하고 수비하면 이렇게 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방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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