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04화
48장 앞으로 단 한 걸음
“지금이야! 달려들어!”
코치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만주키치가 빠르게 쇄도했다. 목표는 막 패스를 받은 보싱와였다. 이에 보싱와 역시 패스할 곳을 찾아 재빨리 다리를 놀렸다.
정면은 만주키치에게 막혀 있었고, 측면 지역은 동료 선수가 너무 멀리 있었다. 결국 중앙 수비수에게 뿌리는 패스.
팡!
그러나 공격 쪽에서는 바로 이 패스를 노리고 있었다. 오솔이 중간에서 튀어나와 공의 흐름을 뚝 하고 끊어낸 것이다.
오솔은 지체하지 않고 슛을 때렸다. 왼발로 찬 것인데도 반대편 모서리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출렁!
“나이스!”
골이 들어가자 코치의 칭찬이 쏟아졌다. 조금 특이한 것은 칭찬의 내용이었다. 코치는 슈팅 이전의, 견제 과정에 대해 칭찬하고 있었다. 훈련의 목적이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짐작이 가는 모습이었다.
“견제 좋았어, 만주키치! 오솔의 끊어내기도 좋았고!”
“후우……. 힘들어 죽겠네.”
만주키치의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왔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전력으로 달렸다. 덕분에 가슴이 들썩였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러나 흘러내리는 땀에 비례하듯 보람도 컸는지 표정만은 제법 밝았다.
“그래도…… 마침내 성공했다!”
“수고했어.”
오솔은 수고했다는 의미로 뒤통수를 톡톡 두드려 줬다. 만주키치는 활동량이 많고 체력이 좋은 선수였지만 수비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열흘간 펼쳐진 혹독한 훈련 덕분에 이제는 제법 상대를 능숙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수고는 무슨…… 너야말로 쉴 틈이 없었잖아.”
만주키치의 말대로 오솔 역시 쉼 없이 뛰었다. 훈련 자체가 만주키치와 디 마리아가 측면 수비수들을 압박하면, 오솔이 기다리고 있다가 중앙으로 흐르는 패스를 중간에서 끊어내는 형태라 오솔도 그만큼 많이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잘 통할까?”
만주키치는 미간을 좁혔다. 방금까지만 해도 착착 진행되는 훈련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으나 어느새 사흘 앞으로 찾아온 경기 일정에 긴장이 된 것이다. 오솔은 일부러라도 확신에 찬 눈으로 답했다.
“방금 봤잖아. 몇 번이나 연습한 보싱와조차 실수하고 말았어. 맨유가 예상대로 나온다면 제대로 카운터 칠 수 있을 거야.”
“후우. 미치겠네. 챔스 준결승에, 그것도 맨유랑 치르는 경기인데 갑작스러운 전술 변화라니…….”
“갑작스러운 변화라야 잘 먹히지. 그리고 많이도 필요 없어. 단 한 번, 한 번만 성공시키면 돼. 그럼 내가 어떻게든 골로 만들어줄게.”
절로 힘이 나는 말이었다. 동시에 신뢰가 가는 말이기도 했고.
만주키치는 오솔의 슈팅 성공률이 80%에 육박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활짝 웃었다.
“흐흐흐. 이제 맨유만 넘어서면 결승전이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라…… 이거 흥분되는데?”
만주키치가 막 결승전 무대를 꿈꾸려 할 때였다. 조이 바튼이 스포츠 음료를 건네주러 왔다가 그 말을 들었는지 바로 한마디 했다.
“방심하지 마, 마리오! 내가 당장은 눈앞의 상대에만 집중하라고 했지? 상대는 지난 시즌 챔피언이다. 리그에서는 이겼지만 토너먼트에서는 또 달라.”
“그냥 결승전은 어떤 느낌인지 잠깐 생각만 해본 거였어요.”
“생각하지 마. 이기고 또 이기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게 될 거다.”
얌전히 음료만 건네주고 갔으면 좋았으련만 바튼은 굳이 싫은 소리를 해댔다. 자연스럽게 만주키치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는 바튼의 뒷모습을 보며 툴툴거렸다.
“쳇! 무슨 생각도 하지 말래.”
“혹시나 방심할까 봐 걱정하는 걸 거야. 우리 팀에는 큰 대회에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많잖아. 다들 젊은 편이기도 하고…….”
맨시티는 젊은 팀이었다. 당장 팀의 에이스인 오솔은 스물두 살이었고, 만주키치가 스물셋, 디 마리아와 베일이 각각 스물하나와 스물이었다. 비교적 고참에 속하는 바튼이 스물일곱이었으니 전체 연령이 얼마나 낮은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젊은 팀은 쉽게 불타오른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라서 때때로 방심에 빠지기도 했다. 바튼이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건 알겠는데, 왜 나한테만 말하냐고. 넌 그냥 쓱 보고 지나갔잖아.”
“이게 연륜의 차이라는 거지.”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거든?”
“그래서 리그 득점왕 트로피 있어?”
“치사하게 트로피로 지금…….”
“챔피언스 리그는? 월드컵은?”
오솔은 거의 모든 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고, 월드컵에서는 실버슈로 뽑히기까지 했다. 기록 면에서는 만주키치가 아니라 호날두나 메시보다 나을지 몰랐다.
“졌다, 졌어. 더러운 놈! 인정한다. 잘하는 놈이 형이지.”
“흐흐흐. 농담이야. 어쨌든 바튼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방심하지 말자는 거지. 게다가 퍼거슨 감독은 반짝 전략이 무서운 사람이잖아. 우리처럼 상대로 카운터 전략을 준비해 올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첫 경기는 예상대로 나와줬으면 좋겠다. 기껏 카운터 전략을 준비했는데, 상대도 맞춤 전략을 걸어 오면 곤란하잖아.”
“예상대로 될 거야. 첫 경기는 우리 홈이니까.”
오솔의 말처럼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1차전은 맨체스터 시티의 홈에서 펼쳐진다. 맨유는 높은 확률로 수비적인 전술, 즉 4-3-3으로 나올 것이다.
‘두고 봐야지. 고것이 미끼를 물을 것인지.’
* * *
“여보세요?”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를 승리로 마친 날 밤, 오솔은 고교 동창인 황태곤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태곤은 솔 아카데미에서 겨우내 치열하게 훈련하더니 마침내 2부 리그 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하한다, 짜식아. 열심히 하더니 드디어 복귀하는구나.”
“하하. 아직은 후보니까 더 열심히 해야 돼. 그래도 고맙다. 네 덕에 축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어.”
“내 덕은 무슨…… 고마우면 얼른 주전 자리를 차지해. K리그로 올라가면 더 좋고.”
“그래. 다행히 기회는 많이 찾아올 것 같아. 여기 와 보니까 구단 상황이 영 힘들다고 하더라고. 인수자를 찾는다는 말도 들려오고……. 아무튼 그래선지 주전 선수들을 여기저기에 팔기 바빠. 나한테는 기회지. 구단이 해체되지만 않으면 말이야.”
“그래? 이유야 뭐가 됐든 어렵게 잡은 기회니까 열심히 해.”
“고맙다. 바쁠 텐데 굳이 전화까지 해주고……. 참, 챔스 경기,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보기로 했어. 응원할게. 힘내라!”
“그래. 고맙다. 이만 끊을게.”
오솔은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리그랑 챔스, FA컵까지 다 우승하면 보너스가…… 대충 35억 원 정도 되려나?”
모든 대회를 우승한다고 했을 때, 오솔의 수입은 약 150억 원이 된다. 여기에 초상권 수입 등 부대 수입을 합하면 총수입이 대략 250억 원까지도 증가할 수 있었다.
‘구단을 인수하고 운영하기에는 아직 부족한데…….’
K리그의 경우 구단 1년 운영비는 대충 50~100억 원이고, 2부 리그는 약 30~50억 원 정도 된다. 2부 리그라고 해도 1년에 최소 30억 원인 것이다. 결코 얕볼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인수 시기만 따지면 지금이 적기란 말이지.’
어려운 경제 탓에 애물단지로 변한 구단들을 처분하고자 하는 기업과 지자체장들이 많았다. 지금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 구단을 인수하고 경기장까지 임대할 수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은 시즌이 끝나고 생각하자. 한국은 이제 막 시즌이 시작됐을 테니 적어도 7월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오솔은 사람을 시켜서 K리그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는 한편, 각 구단의 인수 금액에 대해서도 조사하도록 했다.
‘시즌이 끝나면 박해진 선배랑 동남아에서 인지도를 끌어올리면서 은근슬쩍 사업 얘기도 꺼내봐야겠다.’
풋볼 그룹을 만들고자 하는 오솔의 원대한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 *
어느덧 꽃샘추위도 거의 다 지나간 4월 29일. 오늘은 축구에 관심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수요일에 불과했으나, 축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축제와도 같은 날이었다. 바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이 벌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서로 악수를 나누고 시합 준비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을 때, 데샹 감독 역시 퍼거슨 감독을 찾아가 손을 내밀었다.
“좋은 시합 부탁합니다.”
“그래요. 잘해봅시다.”
아직까지는 둘 다 웃는 낯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각자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가 드러난다면 둘 중 한 사람은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
‘이번에도 제가 이길 겁니다.’
데샹은 상대의 진형을 확인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4-3-3이었다. 그가 짐작했던 대로 맨유는 4-3-3 포메이션으로 나온 것이다.
‘박해진과 호날두, 루니의 쓰리톱에 긱스, 캐릭, 플레쳐 조합이라…… 대충 무슨 속셈인지 보이는군.’
퍼거슨은 오솔이 오른쪽 날개로 출전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공격적인 카드인 테베즈가 있는 상황임에도 굳이 수비형 윙어라고 불리는 박해진을 기용한 것은 오솔을 마크하고자 함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데샹은 오솔을 기존의 원톱 포지션으로 옮겨 놓았다. 플레이 메이킹은 모드리치에게 맡기고 오솔에게는 골만 노리도록 한 것이다.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온 이상 기회는 많지 않다. 딱 한 번의 기회. 그걸 살려야 해.’
말하자면 백발백중의 공격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오솔 외에 다른 스트라이커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삐이익-!
경기가 시작되고 맨시티 선수들의 위치가 명확해졌다. 4-2-3-1 포메이션. 원톱은 오솔이고 10번 위치에는 모드리치가 섰다.
“오솔 원톱이라고?”
이제야 오솔의 위치를 확인했는지 맨유 쪽 벤치가 소란스러워졌다. 데샹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눈치챈 모양이군. 하지만 늦었다.’
오솔의 다재다능함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당연히 측면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원톱으로 서면서 생기는 변수. 상대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은 곧 초반의 유리함으로 이어졌다.
[맨체스터 시티! 전반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 들어갑니다!]
맨유가 들고나온 4-3-3은 양쪽 날개의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는 약점 외에도 한 가지 약점이 더 존재했다. 바로 좌우 풀백들의 패스 코스가 한정적이라는 점이었다.
‘쓰리톱이 높은 위치에 설수록 풀백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풀백에서 측면 공격수에게 단번에 이어지는 패스는 힘들다는 뜻이지. 게다가 존 오셔는 개인 돌파가 좋은 선수도 아니야. 높은 확률로 안정적인 패스를 시도할 거다.’
만주키치의 압박 플레이도 좋았다. 그는 상대에게 접근하면서도 동시에 중앙으로의 패스 코스를 방해하는 등 제법 까다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풀백들이 패스할 수 있는 곳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 그리고 골키퍼밖에 없었다.
‘그거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바지.’
그곳은 이미 모드리치와 오솔이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패스가 어설프다 싶으면 바로 강탈할 속셈으로……. 결국 오셔의 선택은 반 데 사르 골키퍼밖에 없었다.
뻐엉-!
골키퍼에게 백 패스가 흐르고, 골키퍼는 그 공을 전방으로 길게 차올렸다. 그러나 야야 투레와 콤파니 등이 버티고 있는 맨시티였다. 제공권 싸움에서 질 리 없었다.
투웅!
야야 투레와 호날두의 제공권 싸움이 펼쳐졌다. 호날두는 높이 뛰고, 또 그만큼 체공 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했으나, 야야 투레의 강인한 신체 앞에서는 유명세가 통하지 않았다.
“으으윽!”
야야 투레의 머리를 맞고 흘러간 공은 바튼을 거쳐서 모드리치에게 흘러갔다.
모드리치는 캐릭이 지키고 있는 중앙 지역을 피해 왼쪽 측면으로 공을 몰고 갔고, 자연스럽게 측면에 있던 만주키치는 중앙으로 위치를 옮겨갔다.
순간적으로 4-4-2 포메이션이 된 맨체스터 시티. 무난하게 크로스를 올리는 것 외에 다른 공격 방법이 없겠다 싶은 순간, 오솔과 모드리치의 눈이 마주쳤다.
‘리베리와 뮐러의 움직임, 기억하죠?’
‘우리가 걔들보다 나을걸?’
‘패스해요, 공간으로!’
파앙!
모드리치의 패스가 페널티 아크로 향했다. 캐릭이 측면으로 달려오면서 빈 공간이 된 지역이었다. 그곳으로 오솔이 달려들었고, 이에 질세라 긱스도 발걸음에 힘을 더했다.
[누, 누가 먼저 잡나요?]
상황만 놓고 보면 오솔이 더 불리했다. 오솔은 앞으로 달리다가 순간적으로 반전해서 뒤로 뛰어야 하는 데 반해 긱스는 달리던 동작 그대로 방향만 살짝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솔의 신체 능력 앞에서 그 정도 유리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불륜으로 회춘한 사람에게 질 수 없지!’
파바박!!
오솔은 마치 누군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쑥 튀어나와 공을 잡았다. 긱스가 막 공을 뺏으려 했을 때는 벌써 오솔의 널따란 등판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마 긱스가 5년만 더 젊었어도 먼저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긱스의 순간 속도는 월드클래스 급이었으니까. 그러나 긱스도 벌써 마흔에 가까운 나이였다. 패스라면 모를까 신체 능력으로 무언가 보여주기는 힘들었다.
‘플레처였다면 뺏겼을지도 모르겠는데?’
만약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패스를 하는 사람이 모드리치였기 때문이다. 플레쳐가 어디에 있었든지 모드리치라면 어떻게든 오솔과 긱스가 붙게끔 패스했을 것이다.
‘돌파는 몰라도 패스는 모드리치가 리베리보다 훨씬 낫지.’
그리고 오솔 역시 균형감각이나 슈팅, 파워 등등 모든 면에서 뮐러에 비해 월등했다. 그러니 오솔의 터닝슛 역시 막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콰앙-!!
오솔의 발등을 떠난 공이 골망을 뒤흔들었다. 경기가 시작한 지 고작 3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