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03화
토마스 뮐러에게는 공간 연주자(Raumdeuter, 라움도이터)라는 별명이 있다. 뮐러가 어떤 선수인지 무엇을 장기로 하는지는 그 별명만 들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간, 그리고 위치 선정 능력. 그는 이른바 축구 지능이 좋은 선수인 것이다.
“움직임이 말도 안 되는데?”
만주키치의 눈이 커졌다. 말로만 들었던 공간 연주자의 플레이 스타일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반면 오솔은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꼭 필요한 위치에 필요할 때 등장하는 타입이지. 굉장히 막기 까다로운 스타일이야.”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는 건 동료의 움직임과 상대의 움직임을 완전히 파악하고, 또 예측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즉 뮐러는 프로 바둑기사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것처럼 계속 주변의 움직임을 계산하면서 뛰는 것이다.
사실 이 공간 활용 능력을 제외하면 뮐러에게는 특별히 장기랄 게 없다.
뮌헨 유스 출신답게 기본기가 탄탄하기는 하지만, 프로에서 뛰는 선수라면 누구나 기본기가 갖춰졌으니 딱히 자랑거리도 아니었다.
전체적인 플레이만 보면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저 정도는 누구나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줌에도 뮐러는 유독 득점과 도움 기록이 많았다.
‘플레이가 쉬워 보인다는 건 그만큼 확신이 있기 때문이야.’
공이 어디로 올지, 동료들은 어디로 이동하고, 상대편은 어떻게 반응할지 이미 머릿속에 있는 상황이었다.
당황할 일도 없고, 따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공을 잡고 바로 행동하면 된다. 그러니 결정적인 순간에 강할 수밖에 없었다.
‘박해진 선배처럼 뛰고, 인자기처럼 골을 넣는 놈이라…….’
부족한 플레이 메이킹은 리베리가 맡아주고 있었고, 시선을 끌어주는 것은 클로제가, 수비는 미드필더들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대충 상대법이 보이는군.’
오솔이 동료들을 모으려 할 때, 타이밍 좋게 데샹 감독의 지시가 떨어졌다.
‘디 마리아와 보싱와는 공격을 자제하고 최대한 리베리와 람을 막는 데 집중해라!’
‘클로제를 밀착 마크하는 건 콜로 투레가 맡는다. 콤파니는 리베리나 뮐러 쪽을 커버하는 데 집중해라!’
‘오솔은…… 상대의 측면 지역을 박살 내버려라!’
오솔의 시선이 측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리베리와 뮐러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맞춰, 제 호베르투와 슈바인스타이거가 정신없이 커버를 다니고 있었다.
‘리베리처럼 볼을 다루고 뮐러처럼 뛰면 과연 너희들이 막을 수 있을까?’
오솔이 걸음을 옮기자 4-4-2를 유지하던 맨체스터 시티의 포메이션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얼핏 4-4-1-1이 아닌가 싶은 변화.
그러나 실상 오솔의 위치와 역할은 무어라 지칭하기 힘들었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뛰는, 말 그대로 자유(Free Role)였다.
* * *
오솔이 먼저 노린 곳은 리베리가 활약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공격의 시작은 어찌 되었든 리베리였다. 공수가 전환되는 첫 번째 지역은 아마 이곳이 될 것이다.
‘이쪽은 제 호베르투가 맡고 있는 건가?’
여기서부터 뚫고 들어간다면 적어도 3~4명의 선수를 맞닥뜨리게 된다. 당장 제 호베르투를 시작으로 반 봄멜과 4백 수비, 골키퍼까지 모두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평소의 오솔이었다면 패스를 이어가는 선택을 했을 것이나 오늘은 이미 리베리의 돌파를 본 상황이었다. 효율성도 좋지만 이렇게 감정이 끓어올랐을 때는 내키는 대로 돌파하고 싶어지곤 했다.
‘리베리는 적당히 돌파하다 패스했지? 나는 좀 다를 거다.’
마침 공격권이 넘어왔다. 콤파니는 패스할 곳을 찾다가 노마크 상태로 있는 오솔을 발견하고 바로 패스했다. 오솔은 제 호베르투가 뒤에서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한 명.’
오솔은 공을 잡으며 몸을 돌렸다. 바로 뒤에 수비수가 있었다면 단번에 뺏길 법한 위험천만한 턴이었다.
게다가 퍼스트 터치도 오솔답지 않게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발밑에 딱 달라붙는 게 아닌 한참 앞으로 튀어나가는 볼터치였다.
초등학생 아이라 하더라도 쉽게 뺏을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공교롭게도 오솔이 공을 보낸 곳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선수 하나 없이 휑했던 것이다. 오솔은 씩 웃었다.
‘람은 올라오지 못해. 디 마리아를 버리고 여기까지 온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중앙에 있던 제 호베르투까지 자리를 비우고 붙어준 덕분에 공간이 꽤나 넉넉했다. 오솔의 투박했던 볼터치는 결국 이 공간을 노린 의도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토마스 뮐러의 공간 활용 못지않은 멋진 움직임이었다.
오솔은 성큼성큼 걸어 공을 잡았다. 그는 제 호베르투를 그저 볼터치 한 번으로 제쳐내고 길목을 막아서는 반 봄멜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공간이 있는 쪽은 측면이다. 디 마리아가 달려준 덕분에 짧지만 달릴 만한 공간이 생겼다. 정면이나 중앙 쪽은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반 봄멜과 슈바인슈타이거가 꽁꽁 틀어막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공을 몰고 가는 사람이 누군가.
‘조까! 나 오솔이야!’
오솔은 무작정 달려들었다. 정면, 반 봄멜이 지키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어떻게 돌파할지 생각해 놓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무작정이었다.
‘원래 생각은 달리면서 하는 거지.’
오솔은 측면으로 달릴 것처럼 속임수를 부린 다음, 역으로 슈바인슈타이거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으로 허를 찌르고자 함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돌파할 곳은 뻔했다. 바로 반 봄멜과 슈바인슈타이거 사이의 공간이었다.
‘웃기지 마라!’
그러나 슈바인슈타이거는 이미 오솔의 속셈을 눈치채고 있었다. 리베리와 같은 팀으로 뛰면서 이런 유형의 선수는 보다 도전적인 돌파를 즐긴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으으. 빠르다……!’
반 봄멜은 속아서 못 막았다면 슈바인슈타이거는 알고도 막을 수 없었다. 리베리의 돌파가 그렇듯 오솔의 그것도 빠르고 정교했으며 아무리 발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무형의 힘이 아니다. 진짜 힘이다.
‘이 쉬벌 놈이 손으로 밀고 있잖아!!’
오솔은 리베리처럼 상대의 수비 범위 밖까지 발을 놀리는 대신 단단한 두 팔로 상대의 접근을 막아선 것이다. 리베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범접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멀쩡한 팔 놔두고 다리로만 돌파하는 건 너무 바보 같잖아?’
오솔은 자신과 리베리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리베리는 오솔보다 더 작고 날렵하다. 오솔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정도 수준에 이를 수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오솔에게는 이 힘이 있었다. 굳이 다리를 두세 번 움직일 필요 없이 팔만 한 번 스윽- 내밀면 끝이었다.
와아아아!!
오솔이 연달아 세 사람을 돌파하자 원정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반면 홈팬들은 끔찍한 사고 현장이라도 목격한 사람들처럼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날 비난할 수는 있어도 내 플레이는 비난할 수 없다.’
오솔은 범처럼 날았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수비수들이 주춤거렸다. 오솔의 돌파를 돕고자 디 마리아와 만주키치, 베일 등이 달려들었고, 곧 수비진이 동요하는 모습이 보였다.
‘루시우와 데미첼리스라…….’
마침 발이 느린 데미첼리스 쪽이 가까이에 있었다. 오솔은 순간적인 가속으로 데미첼리스와 필립 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파바박!
데미첼리스는 겨우겨우 따라붙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저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수비는 하지 못했다. 오솔은 어느새 박스 안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수비수로서도 쉽사리 태클을 걸지 못하는 위치. 오솔의 개인기가 발휘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데미첼리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속도다. 복잡하게 움직일 것 없이 상체 페인팅 한두 번이면 충분해.’
오솔은 중앙으로 접을 것처럼 티 나게 페인팅을 하고, 측면으로 내달릴 것처럼 은근슬쩍 어깨를 넣었다.
데미첼리스는 발은 느려도 제법 눈치는 빠른 편이었다. 오솔의 첫 번째 속임수를 눈치채고 측면으로 움직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속임수였지만 말이야.’
“아앗!”
오솔은 데미첼리스의 비명을 뒤로하고 중앙으로 나아갔다. 이제 앞에 버티고 있는 건 루시우와 렌징 골키퍼뿐이었다.
‘사람들의 행동을 읽고 틈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좋은 플레이다. 하지만 더 좋은 건 상대의 행동을 강제하는 거야.’
오솔의 다리가 뒤로 접혔다. 금방이라도 슛을 때릴 것 같은 자세. 게다가 그의 눈은 골대 구석을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당연히 골키퍼고 수비수고 바짝 긴장해서 슈팅을 막으려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만약 막지 않았다면 오솔은 그대로 찼을 것이다.
‘막으면 킥 페인팅으로 바꾸면 되는 거지.’
오솔은 속도를 스르륵 줄여 자연스럽게 공을 잡고 돌파해 들어갔다. 방향은 루시우의 무게 중심과 반대되는 곳이었다. 이로써 마지막 관문인 루시우까지 돌파했다.
파박!!
그때, 오솔의 예상을 뛰어넘는 움직임이 나왔다. 슛을 막느라 균형을 잃었을 골키퍼가 번개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오솔은 재빨리 공을 컨트롤해 봤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툭-! 데굴데굴!
‘이런……!’
내내 여유롭던 오솔조차도 이번에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급해지니 컨트롤이 엇나갔고, 공을 옆으로 살짝 뺀다는 것이 생각보다 멀리 가고 말았던 것이다.
기껏 다 돌파해놓고 원점으로 돌아가게 생겼으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젠장! 이러면 슈팅 타이밍이 안 나오는데…… 에라 모르겠다!’
뮐러처럼 터닝슛을 할 시간도 없었다. 오솔은 발끝으로 공을 멈추고는 관성에 의해 몸이 앞으로 쏠렸을 때, 공을 멈췄던 발의 뒤꿈치로 힐 슛을 때렸다.
궁여지책에 가까운 동작이었으나 동시에 오솔의 골에 대한 집착이 엿보이는 슛이었다.
만약 뮐러였다면 욕심내지 않고 패스할 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편이 득점 확률이 더 높은 선택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오솔은 이렇게 차는 편이 더 확률이 높다고 느껴졌다. 그에게는 그만한 실력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오솔의 슛이 골키퍼의 장갑과 수비수의 발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골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하하! 여-윽시, 될놈될이다!”
* * *
오솔의 득점 장면을 본 뮌헨 선수들은 대부분 크게 기가 꺾이고 말았다. 특히 토마스 뮐러는 흡사 멘붕이라도 찾아온 사람처럼 힘들어하고 있었다.
리베리는 그런 뮐러의 뒷목을 찰싹하고 가볍게 쳤다.
“얀마, 정신 차려! 왜 그렇게 있어?”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단 걸 깨달은 느낌에요. 갑자기 허탈해 미치겠어요.”
“응? 무슨 소리야, 그게?”
“저는 열심히 머리 굴려가면서 겨우겨우 찬스를 잡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런 거 다 필요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걸 보니 허무해서요.”
“까짓거, 바로 갚아주면 되잖아. 지금까지처럼 날 믿어!”
“하하……. 글쎄요. 어째 한동안은 힘들어 보이는데요?”
리베리는 뮐러의 시선을 따라 그라운드를 훑었다. 필드 위에는 맥 빠진 모습을 보이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과 활력이 넘치는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모습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 이런…….”
“이제는 수를 읽기 힘들어졌어요. 저 녀석이 완전히 판을 엎어버렸거든요.”
결국 남은 시간 내내 맨시티의 파상공세로 끝나고 말았다. 리베리가 혼자서 고군분투해 봤으나 맨시티는 공격 못지않게 수비에서도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리베리를 봉쇄했다.
결국 뮌헨은 후반전에 한 골 더 먹히면서 최종 스코어 3 대 1로 패배하고 말았다. 2차전이 치러지는 장소가 맨시티의 홈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정말적인 스코어였다.
그리고 2차전이 치러진 4월 14일 저녁,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웃는 것은 역시나 맨시티 선수들이었다.
맨시티의 2 대 0 승리, 종합 5 대 1의 대승이었다.
이제 4강을 앞둔 오솔의 득점 기록은 14골이었다. 정말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오솔이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더욱더 완벽해져 간다는 점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붙었을 때는 로번 저리 가라 할 만큼 뛰어난 개인기와 파워풀한 슈팅을 보여줬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리베리의 저돌적인 돌파와 뮐러의 공간 활용 능력을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되돌려줬다.
이제 4강에서 만나는 상대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두가 기대하는 가운데, 상대가 결정되었다.
상대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