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202화
한편 바다 건너 바이에른 뮌헨의 훈련장에서도 한창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팀 전술의 주축이 되는 선수는 역시나 리베리로, 수비수들은 그의 드리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아르연 로번이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움직임과 왼발 하나로 수비수들은 공략했다면 리베리는 측면과 중앙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움직임과 양발 테크닉으로 수비진을 붕괴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오솔의 드리블 스타일과 흡사했다. 물론 프랑크 리베리는 덩치가 좀 작다뿐이지 속도나 드리블의 유연함은 훨씬 뛰어났다. 토마스 뮐러는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인상도 프랑크가 훨씬 무서워요.”
“뭐? 그래도 내가 오솔보다는 낫지 않냐?”
리베리는 빗살무늬 토기를 연상시키는 길쭉한 역삼각형 얼굴에 한쪽 뺨을 길게 가로지르는 흉터가 있었다. 축구 선수라기보다는 마피아가 아닐까 싶은 외형이었으나 그는 스스로 이 정도면 잘생겼다고 믿고 있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뭘 그렇다 쳐. 내가 못생겼다는 소리냐?”
“잘생긴 건 아니잖…… 어억!”
뮐러는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바람에 끝말을 잇지 못했다. 곧바로 도망쳤음에도 리베리의 빠른 발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두고 봐라. 내가 이번 대결에서 누가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인지 증명해 보일 테니까. 덤으로 외모도 누가 나은지 확인시켜 주지!”
“그건 안 하는 게 나아 보이는데…… 아, 알았어요. 프랑크가 더 잘 생겼어요. 됐죠?”
“왠지 그 말투도 기분이 나쁜데?”
리베리는 인상을 썼지만 이번에는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훈련 때 있었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번 느끼는 건데, 넌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냐? 다음에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곤란하다고.”
“득점 확률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수비수의 예측에서 벗어나야 노마크가 될 테고, 그래야 슛하기 편하니까요.”
“그러니까 나도 예측하기 힘들다고!”
고속으로 돌파하는 리베리로서는 박스 안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돌파하기 전에 한 번 확인하고, 드리블하면서 또 한 번, 마지막으로 패스하기 바로 직전에 한 번, 총 세 번의 확인 절차를 거친다.
문제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토마스 뮐러는 매번 확인할 때마다 움직임의 방향성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분명 돌파하기 전에 봤을 때는 골대로 쇄도하고 있었는데, 다음에 보면 박스 중앙으로 나와 있고, 패스하려고 보면 또 골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냥 공간으로 패스하면 되잖아요. 쉬운데?”
“공간으로 패스하면, 무조건 네가 받을 거라 이거냐?”
“무조건은 아니지만…… 골을 넣으려면 선수에게 패스하기보다는 그편이 낫다는 거죠.”
이론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문전에서 하는 패스는 그 속도도 빠르고 이동 거리도 짧아서 호흡이 조금만 엇나가도 패스 미스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리베리는 그런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뮐러는 생각이 달랐다.
“빗나가더라도 시도해 봐야죠. 그편이 명백히 이길 확률이 높은 선택이니까요.”
“그놈의 확률, 확률. 넌 무슨 통계학과 나왔냐? 그리고 확률이라고 해봐야 결국에는 감이잖아, 아니야?”
“감보다는 경험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죠. 프랑크도 생각해 보세요. 선수에게 주는 편이 결과가 좋았나요, 아니면 공간으로 주는 편이 좋았나요?”
“에이, 몰라! 난 그냥 감으로 할 거야!”
“공격할 때는 서로를 믿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씀하실 때는 언제고…… 절 믿고 패스해요. 저도 프랑크가 패스할 거라고 믿을 테니까. 그럼 우리가 이길 확률도 올라갈 겁니다.”
“망할 놈……. 그거야말로 믿음의 영역이다. 나만 믿어 내가 4강, 결승까지 데려가 줄 테니까.”
“어…… 제 계산으로는 오솔을 막는 게 중요하던데요? 그러니 프랑크보다는 필립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뭐?”
“하하하! 농담입니다.”
* * *
2009년 4월 7일, 이제 프리미어리그도 여덟 경기만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오솔과 만주키치 등은 참으로 오랜만에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에 방문하게 되었다.
6만 6천 명이 운집한 알리안츠 아레나는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했다.
“이곳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할 때가 좋은데 말이야.”
오솔은 농담처럼 말했다. 그가 골을 넣었을 때의 상황을 뜻하는 말이었다. 만주키치와 선수들은 말뜻을 알아듣고 가볍게 웃었다. 이제 맨시티 라커룸은 경기를 치르기 전에 오솔이 농담을 날리는 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될 거야. 많이 해봤잖아.”
만주키치의 말처럼 오솔은 이곳에 찬물을 부은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유독 오솔을 향해 야유를 보내는 목소리들이 많이 들렸다. 오솔 개인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과 나라까지 싸잡아서 욕하는 소리에 새삼 각오가 다시 섰다.
‘그 입을 죄다 닥치게 해주지.’
오솔을 비롯한 선수들은 줄지어서 통로를 나섰다. 선망과 악의를 비롯한 온갖 감정이 섞여든 거대한 아레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뮌헨의 선축, 오솔과 만주키치는 센터 서클 앞을 빙 둘러서 서 있었다.
선축을 위해 서 있던 뮐러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설마 투톱? 오늘은 측면에서 뛰는 게 아닌가?’
뮐러의 생각대로 오늘 맨시티의 포메이션은 4-4-2로 오솔과 만주키치가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오른쪽 윙어로는 부상에서 완전히 돌아온 앙헬 디 마리아가 자리해 있었다. 여기에는 데샹의 복안이 숨겨져 있었다.
‘뮌헨의 측면 공격은 레알보다도 강합니다. 특히 리베리와 람이 자리하고 있는 왼쪽 측면은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무방하죠.’
오솔을 계속 측면으로 쓸 경우, 이전까지와는 달리 수비에 가담시켜야 했다. 람은 웬만한 윙어 못지않게 돌파력이 좋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오솔은 수비도 제법 잘했다. 적어도 디 마리아보다는 잘할 것이다. 그러나 데샹은 오솔의 공격력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클린스만 체제의 뮌헨은 공격 시 라인을 높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미첼리스나 루시우는 그렇게까지 빠른 선수들이 아니죠. 우리가 공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데샹은 왼쪽 날개로 베일을, 중앙에는 오솔을, 오른쪽은 디 마리아를 놓는 것으로 역습의 삼각 축을 형성했다.
중앙에서의 연계와 수비 가담은 전적으로 만주키치가 맡았기 때문에 모드리치와 야야 투레의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했다.
물론 이들이 제 호베르투와 슈바이슈타이거, 반 봄멜이라는 단단한 허리 라인을 상대로 얼마나 버텨줄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했다.
디 마리아와 보싱와가 리베리와 람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그러나 적어도 데샹이 준비한 역습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었다. 전반전 8분경 펼쳐진 역습이 이를 증명했다.
[반 봄멜의 패스를 끊어내는 야야 투레입니다.]
[만주키치 선수의 압박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패스했어요! 맨시티, 기회를 잡았습니다!]
야야 투레는 잡은 공을 곧장 만주키치에게 건넸고, 만주키치는 그걸 원터치로 모드리치에게 되돌려 보냈다. 그렇게 삼각형을 그리며 이동한 축구공은 모드리치의 발끝에서 비수처럼 빛났다.
마침 전방에는 세 명의 기수가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파앙-!
그중 모드리치의 선택은 베일이었다. 중앙에 있는 오솔로서는 후방에서 날아오는 공을 받아내기 쉽지 않다는 걸 고려한 결정이었다.
[공은 좌측 깊이 날아갑니다. 베일!]
과연 베일을 운반자로 고른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베일을 막아야 하는 마시모 오도는 그의 그림자조차 쫓지 못했던 것이다.
베일은 계속 달렸다. 보통은 적당히 달리다가 패스하는 편이 더 빠른 공격법이었지만, 그는 부정확한 패스에 기대기보다는 자신의 두 발을 믿는 쪽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가 뛰는 모습을 본다면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것이다.
파바바박!!
공을 갖고 뛰고 있음에도 베일은 오솔이나 디 마리아보다 빨랐다.
아무리 치고 달리기라고 해도 공을 터치할 때마다 조금씩 느려진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속도였다. 베일은 그렇게 골대로부터 20m 지점까지 달리더니 패스를 시도했다.
파앙-!
그라운드를 따라 낮게 깔리는 패스인 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수비수 틈에서 오솔이 불쑥 튀어나왔고, 이에 질세라 골키퍼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1초 만에 판단을 마쳐야 하는 상황.
오솔은 순식간에 판단을 끝냈다.
스슥!
공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오솔의 두 다리 사이를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바로 차는 것도 좋고, 접었다가 차는 것도 좋지만…….’
둘 모두 골키퍼와 수비수들에게 걸릴 확률이 높은 행동이었다. 물론 오솔은 얼마든지 넣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는 보다 확률이 높은 선택지를 따르는 것이 안전했다. 노마크로 있는 디 마리아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그런 선택지였다.
타다닥!
디 마리아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슈팅을 시도했다. 심지어 그의 앞에는 골대를 가로막는 상대도 없었다. 말 그대로 툭 차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쉬워 보이는 골이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디 마리아의 얼굴에 긴장이 흘러넘치는 이유였다.
‘침착하게, 기본을 지켜서…….’
다행히 디 마리아는 큰 경기에 강한 선수였다. 그의 골 기록을 보면 대부분이 4강과 결승에서 넣은 것들이고, 승부를 결정짓는 결승골들이 많았다.
툭!
넣는 것이 당연한 골. 디 마리아는 그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와아아!
1만 5천여 명의 원정 팬들의 환호성에도 불구하고 알리안츠 아레나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오솔이 원했던 반응이자 제법 익숙한 반응이었다.
‘그래, 이거지!’
* * *
“제길. 너무 일찍 먹혔는데?”
그렇지 않아도 험악하던 리베리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뮐러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별수 없네요. 이젠 형님만 믿겠습니다.”
“이 자식이…… 이럴 때만 형님이냐?”
“원래 위기 상황에는 에이스에게 기대는 법입니다.”
“그런가? 흐음. 그게 에이스의 숙명이라 이거지? 좋아, 바로 되갚아주지!”
“참, 공간으로 패스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또 그놈의 확률 이야기냐? 알았다. 알았어! 네 말대로 패스할 테니까 꼭 받아라! 못 받으면 진짜 뒈진다.”
“라져 댓!”
다시 뮌헨의 공격 순서였다. 직전에 어설픈 패스로 실점을 자초했던 반 봄멜은 이번에는 안전하게 후방으로 공을 돌렸다.
[공은 뮌헨이 소유하고 있지만,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아, 결국 미하엘 렌징 골키퍼에게까지 공을 빼는군요.]
[맨시티는 오늘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걸어주고 있습니다. 투톱은 물론이고 좌우 윙어들도 많이 뛰어주고 있어요.]
혹시나 전방에서 공을 뺏으면 바로 역습을 하고, 그게 안 되더라도 패스 실수를 유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리베리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리베리가 하프라인까지 내려와서 공을 받습니다.]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으면 골대까지 거의 50m가량 뛰어야 했다. 중간에 패스나 크로스를 한다고 해도 최소 30m 정도는 드리블 돌파를 해야 하고, 이는 곧 공격 속도를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보통은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전진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말이다.
파바박!
그러나 리베리는 그 일반적인 경우와 한참 동떨어진 존재였다. 전성기의 리베리는 전성기의 메시 못지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무서웠다. 무모하리만치 도전적인 돌파를 시도하고, 아무렇지 않게 성공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리베리, 달립니다! 툭 차 놓고 다리는 것만으로 돌파에 성공하는 리베리!]
리베리는 디 마리아의 수비 범위를 짧은 치고 달리기로 가뿐히 벗어났다. 디 마리아도 속도라면 남부럽지 않았으나 리베리는 그보다 더 빨랐다.
‘먼저 걷어낸다!’
리베리와 공이 멀어진 듯하자 보싱와가 공을 걷어내기 위해 앞으로 튀어나왔다.
달리기 속도는 리베리 쪽이 더 빨랐다. 그는 한껏 가속 중이었고, 보싱와는 막 달리기 시작한 탓이다. 그러나 공은 보싱와 쪽으로 흐르고 있어서 마냥 유리하다고 볼 수 없었다.
결국 누가 먼저 잡아낼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때, 리베리의 몸이 한 차례 더 빨라졌다. 그는 마치 결승선에 다다른 스케이팅 선수처럼 발을 쑥 내밀었다. 그러곤 툭! 하고 공은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공은 보싱와가 나오면서 생긴 공간으로 굴러갔다.
‘에이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리베리는 보싱와를 밀쳐내고 계속 달렸다. 완전히 뚫어냈다면 더없이 좋았겠으나, 아쉽게도 보싱와가 진로를 방해한 그 잠깐 사이에 벌써 중앙 수비수가 커버를 와 있었다.
연달아 두 명이나 제쳤고, 달린 거리는 거의 35m에 달했다. 이제는 슬슬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리베리는 오히려 허벅다리와 장딴지에 힘을 줬다.
‘지금 쉬면 이 기회는 날아가고 만다.’
리베리의 양팔이 현란하게 휘적거렸다. 순식간에 몇 번이나 무게 중심을 옮겨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결과, 리베리는 어렵사리 콜로 투레를 속이고 패스 타이밍을 잡는 데 성공했다.
‘누구에게 주지?’
클로제는 콤파니에게 막혀 어깨를 넣지 못했다. 이쪽은 기껏 패스해봐야 콤파니가 먼저 걷어내게 생겼다. 반대편의 뮐러는 중앙으로 파고들고 있었는데, 콤파니 등에게 막혀 패스 코스가 보이지 않았다.
‘바보 같은 놈! 공간으로 주라면서 거기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 젠장, 모르겠다!’
팡-!
리베리의 패스가 향한 곳은 중앙의 빈 공간이었다. 맨시티가 평소처럼 4-3-3 포메이션으로 나왔다면 조이 바튼이 막았을 위치. 그러나 지금은 맨시티와 뮌헨 양측 모두 신경 쓰지 못한 공간이었다.
그때, 중앙으로 파고들던 뮐러가 골대 앞에서 반원을 그리며 빙 돌아 나왔다. 리베리가 패스를 하는 바로 그 타이밍에 이루어진 변화였다.
턱!
그가 막 반 바퀴를 돌아 빈 공간에 들어섰을 때, 리베리의 패스도 타이밍 좋게 발밑에 도달했다. 뮐러의 마크맨은 여전히 골대 앞에 있었다.
노마크 찬스였다.
‘공간으로 패스하는 게 곧 저한테 패스하는 겁니다.’
뮐러는 몸을 뒤집으며 그대로 터닝슛을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