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98화 (198/213)

 # 198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98화

46장 다시 만난 반 더 바르트

“야. 너 전력으로 달리면 어느 정도냐?”

처음 가레스 베일이 팀에 합류한 날, 오솔이 날린 질문이었다. 그 말에 베일은 수줍게 웃으며 ‘저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했다.

“그래? 그럼 한번 뛰어보면 알겠네.”

그때부터 오솔의 시험은 시작되었다.

과거 함부르크 시절, 반 더 바르트가 오솔을 해부했듯이 이번에는 오솔이 베일의 속도와 볼터치, 드리블 등등을 아주 세세히 확인한 것이다. 그것도 실전에서.

“오늘은 페트로프의 속도에 맞춰서 패스할 거야. 만약 못 받는다면 선발로 출전한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 되겠지.”

“열심히 할게요!”

베일은 오솔보다 두 살 더 어린 선수답게 말을 잘 들었다. 어찌 보면 디 마리아나 호비뉴처럼 명성을 얻기 전에 팀에 들어온 것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말을 잘 듣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오솔 선수가 절 강력 추천했다고 들었어요. 윙어로의 포지션 변경도 오솔 선수의 생각이라고…….”

베일은 수줍게 웃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토트넘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던 자신을 데려와 준 것에 감사한 듯했다.

그는 어차피 포지션을 바꾸고 성공할 운명이었지만 이제는 오솔 덕분에 팔자가 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감독님한테 들었냐?”

베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솔을 가볍게 목을 꺾어 뚜둑 소리를 내었다.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럼 내 안목이 맞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네?”

“네?”

“긴말 안 한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싶으면 바로 뛰어라. 패스가 온다 싶을 때 뛰면 늦어. 나다 싶으면 일단 뛰어.”

베일은 오솔의 말뜻이 무엇인지 단 한 번의 패스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반대편 측면에서 대륙을 가르며 날아오는 스루 패스는 베일로 하여금 전력을 다하게 만들었다.

‘윽! 빠르잖아?’

발이 빠르기로 유명한 페트로프에게 주는 패스가 느릴 리 없었다. 게다가 페트로프는 어쨌든 1년 넘게 오솔과 호흡을 맞춰왔던 선수라 나름대로 오솔의 패스 타이밍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면 베일은 패스 타이밍을 몰라서 페트로프보다 다소 늦은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못 잡을 정도는 아니야!’

놀랍게도 베일은 살짝 늦었다 싶었음에도 공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준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속도였다.

파바박!

베일은 공을 몰고 달리면서 중앙 지역을 확인했다. 토트넘에 있을 때는 윙백으로 뛰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윙으로 뛰게 되면 동료 선수들이 얼마나 속도를 맞출 수 있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엇? 벌써 올라왔잖아?’

베일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어느새 오솔이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오솔은 스루 패스를 했던 당사자였다. 이는 적어도 베일보다 10m는 더 뒤에서 출발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벌써 따라왔다? 아무리 베일이 드리블을 하면서 달렸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러면 기다릴 필요가 없지.’

베일은 빠른 발만큼 성격 역시 급했다.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크로스를 올렸다. 엄청난 가속을 가능하게 했던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파아앙-!!

하얀색 선이 그어지는 듯한 착각과 함께 공이 박스 안에 다다랐다. 오솔은 수비수의 키를 아득히 넘어서는 높이로 점프해 공을 낚아챘다. 맨체스터 시티의 상징인 독수리가 연상되는 움직임이었다.

와아아!

골망이 흔들리고, 관중은 오솔의 이름을 연호했다. 오솔은 골대 안을 굴러다니는 공을 보며 씩 웃었다.

‘짜식, 제법 빠른데? 킥력도 괜찮고…….’

그는 쏟아지는 환호성을 뒤로하고 베일에게 다가갔다. 베일의 첫 번째 공격 포인트를 기념해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나이스 크로스였다.”

“정말요? 저 잘했어요?”

“음. 괜찮긴 했는데…… 솔직히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

“그, 그런가요?”

“뭐, 그거야 차차 고쳐 가면 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 그보다 패스 타이밍은 익혔지?”

“…….”

베일은 기가 막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겨우 한 번 패스해놓고 ‘당연히 할 수 있지?’라고 묻는 모습에서 오솔의 대단함도 느껴졌지만, 알 수 없는 짜증 또한 같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왜? 아직 모르겠어?”

“아, 아니요. 잡았습니다, 타이밍.”

“좋아. 그럼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른 패스를 보낼 테니까. 늦지 않게 잘 따라잡아라.”

오솔의 두 번째 스루 패스는 미리 말했던 대로 엄청나게 빨랐다. 그 공을 잡기 위해 달리는 입장인 베일로서는 욕이 나올 법한 속도였다.

‘망할…… 바로 뛰었기에 망정이지…….’

사실 베일은 패스 타이밍 같은 건 아직 몰랐다. 그냥 오솔이 공을 잡고 돌아선 순간부터 미친 듯이 뛰었기에 겨우 공을 잡을 수 있었을 뿐.

그나마 베일이 이 정도였으니 상대하는 수비수들로서는 못 막는 게 당연했다. 베일은 이번에도 끝까지 달리며 중앙 지역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진짜 아무도 없었다. 그 빠른 오솔조차 베일이 타이밍에 맞춰 돌파하자 따라가기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오솔은 베일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리에 힘을 더했다.

‘짜식, 빠르긴 진짜 빠르네!’

파앙-!

크로스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조금 느린 대신 정확도를 살린 크로스였다. 오솔은 달라붙는 수비수들을 가볍게 날려 버리고 슛을 시도했다.

철썩!

패스와 돌파, 크로스라는 단순한 패턴으로 벌써 두 골째. 그러나 알고 있어도 막을 수 없었다. 이 베일이라는 폭주 기관차는.

베일이 팀에 녹아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한 달에 불과했다.

‘좋아. 이로써 챔피언스 리그에 대한 준비는 완벽해졌다.’

오솔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함부르크에 있을 때는 AC밀란을 만나 16강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물론 상대도 다른 팀이었다. 이번에 그들이 만난 상대는 스페인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다. 오솔에게는 반 더 바르트가 있는 팀이라는 게 중요했다.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되었네요. 라파엘. 흐흐흐. 어디 제대로 한번 붙어봅시다.’

* * *

한편 레알 마드리드와의 결전을 기다리는 건 오솔만이 아니었다. 아니, 어찌 보면 오솔보다 더 벼르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날 헌신짝처럼 버렸던 놈들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구나.”

바로 지난 시즌 레알에서 떠나온 호비뉴였다. 호비뉴는 호날두에게도 악감정이 있었지만 사실 진짜로 서운하고 미웠던 쪽은 원소속팀인 레알이었다.

“역시 복수는 직접 해야지!”

사실 올 시즌 레알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주포인 반 니스텔로이가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었고, 수비진도 돌아가면서 다친 탓에 수비 조직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호비뉴는 바로 이 약해진 수비를 뚫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시켜 주세요!”

그렇기에 데샹 감독을 찾아가 당당히 요구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일전에 선발 출전하고 싶다고, 자신의 본래 자리를 되찾겠다고.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기대 이하였다.

“먼저 올리베이라, 그 사기꾼을 어째서 다시 만나고 있는지부터 설명해 보시죠.”

“……그건 제 사생활이니 신경 쓸 이유 없습니다. 이제는 통역도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니 만나도 상관없잖아요?”

“상관이 있습니다. 후우. 일전에 미리 말했었죠? 제 구단에서는 시즌 중에 음주를 철저히 금하고 있다고.”

“그게 뭐요?”

데샹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아니, 책상에 내던졌다.

사진은 술에 취한 호비뉴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아직 언론에 발표되지 않은 호비뉴의 음주 사진이었다.

“제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아니, 아무도 모를 줄 알았어요? 이 기레기들은 어떻게든 뜯어낼 건수를 찾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구단에 연락을 하는데?”

“쳇! 애초에 시즌 중에 금주라니 그런 바보 같은 규정이 어디 있어요? 사람마다 각자 스타일이 다르고 스트레스를 푸는 법이 다른데. 경기장에서만 잘 뛰면 되지!”

사실 경기장 밖에서 자기 관리에 소홀했던 스타들은 정말 많았다. 경기 전날 새벽까지 술을 퍼마시고도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들도 있었고, 호비뉴도 단기적으로는 경기력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행동은 대부분 그 끝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전 경기장에서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록도 괜찮고 경기력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빌어먹을 다이빙도 더는 하지 않으니까. 이번 챔스 16강에는 꼭 나가야겠습니다! 아시겠어요?”

데샹은 눈을 질끈 감았다.

* * *

[오솔의 패스가 반대편 측면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드디어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의 날이 왔다. 그리고 전반 15분, 오솔의 스루 패스가 왼쪽 측면으로 들어갔다. 그 공을 잡은 사람은…….

[가레스 베일! 공을 잡고 계속 달립니다! 빨라요! 라모스가 전혀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렇다. 호비뉴가 아니라 가레스 베일이었다. 안타깝게도 호비뉴는 그 모습을 벤치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오늘 경기에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호비뉴는 데샹 감독의 거절에 눈이 돌아갔고, 그 즉시 해당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며 공식적으로 데샹을 비난했다. 그 결과…….

[향수병 때문에 브라질로 휴가를 떠나게 된 호비뉴.]

호비뉴는 강제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휴가를 떠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항명을 시작한 이상, 데샹은 호비뉴를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 감독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는 뼈아팠다.

오솔은 사람 좋아 보이던 데샹의 단호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안 봤는데, 감독님 무서운 사람이네.’

좋은 점도 있었다. 호비뉴 같은 슈퍼스타가 단번에 날아간 결과, 선수단의 기강이 바로 선 것이다.

팀 전력만 놓고 본다면 호비뉴의 이탈이 아쉽게 다가왔으나, 실제 경기는 게임처럼 개개인의 능력치만으로 치르는 것이 아닌 만큼 차라리 호비뉴가 없는 편이 더 나았다.

‘베일도 잘해주고 있고, 곧 있으면 앙헬도 돌아오니까…….’

그때, 칭찬하기 무섭게 베일의 크로스가 엇나갔다.

[크로스! 아! 칸나바로가 앞에서 걷어냅니다! 크로스가 살짝 낮았습니다.]

크로스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베일의 속도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오른쪽에는 발 빠른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가 버티고 있었는데도 전혀 방비가 안 되었다.

심지어 별것 아닌 패스가 왔을 때도 공을 잡은 게 베일이면 실점 위기로 돌변했다.

[베일! 툭 차 놓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카카의 치고 달리기도 베일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었다. 베일은 중앙선부터 딱 두 번의 터치로 단번에 박스 안쪽까지 도달했다. 오솔도 이건 제때 쫓아가지 못했다.

‘이건 진짜 미친 속도인데?’

다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오른발 사용이 익숙하지 않았다. 베일이 오른발을 제법 잘 쓰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이니, 아직 5년은 더 연습해야 할 것이다.

뻐엉-!

왼발로 쏘아낸 슛은 제법 정확히 반대편 모서리로 날아갔다. 아웃프런트 킥으로 감아 찼다면 아무리 카시야스 골키퍼라고 해도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타앗!

그러나 이렇게 정직한 궤도로는 레알 마드리드의 수호신, 카시야스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카시야스를 뚫어내려면…….

“역시 주워 먹기지!”

카시야스가 완전히 균형을 잃은 순간, 오솔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튕겨져 나온 공을 툭 하고 밀어 넣었다. 비록 베일과 같은 속도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오솔이 페페나 칸나바로보다는 빨리 도달한 것이다.

“전반 10분, 선취점이다.”

“이번에는 잘했죠?”

“그래. 잘했다, 시저.”

혹성탈출의 그 시저였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덮고 있던 베일의 모습이 꼭 영화 속 원숭이 같았던 것이다.

오솔은 손을 뻗어 베일의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넘겼다.

“이마를 드러내. 그편이 멋있다.”

“네, 넵! 감사합니다!”

베일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마주키치가 서운한 듯 오솔의 유니폼 끝자락을 잡았다.

“나는 진작부터 머리 올리고 뛰었는데…….”

“……어쩌라고?”

“나한테는 한 번도 저런 칭찬 해준 적 없잖아.”

“하아. 내가 봤을 때 넌 연습보다는 연애를 좀 해야겠다.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하네.”

“흥칫뿡!”

토라진 표정으로 오솔을 놀리는 만주키치. 돌아온 것은 오솔의 발길질이었다.

* * *

‘짜식들…… 재밌게 노네.’

반 더 바르트는 옛 동료들의 세레머니를 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음에는 챔스에서 붙어보자며 멋지게 헤어진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진짜로 맞붙게 되었다.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골을 먹혔어도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을 반 더 바르트.

그러나 오늘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필드에서 땀을 흘리는 옛 동료들과 달리 그는 지금 벤치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베른트 슈스터 감독 체제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반 더 바르트였으나, 감독이 후안데 라모스로 바뀐 이후로는 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존의 4-2-3-1 포메이션이 2009년 1월을 기점으로 4-4-2로 바뀐 결과였다.

투톱은 라울과 이구아인이, 미드필더진에는 스네이더와 가고, 구티, 로번이 섰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의 자리에서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반 더 바르트로서는 4-4-2 진형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맨시티로 따라갈 걸 그랬나?’

호비뉴와 마찬가지로 반 더 바르트도 요즘 들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호비뉴보다 훨씬 더 참을성이 많았다.

‘아니, 어떻게든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기회를 잡는다!’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전반 30분, 야야 투레와 경합하던 구티가 그만 발목을 접질리고 만 것이다. 덕분에 반 더 바르트는 제법 이른 시간에 필드에 들어서게 되었다.

‘왼쪽 윙이라…….’

공교롭게도 오솔과 마주치는 위치에서 뛰게 되었다.

“어서 와요.”

“반갑다, 오솔.”

이제는 두 사람의 상황이 역전돼서 오솔이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반 더 바르트가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