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90화
‘잠깐! 이 느낌은…… 동족이다, 오솔!’
만약 오솔에게 기생수가 있었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만큼 ‘찰 장군’ 찰리 애덤은 오솔 못지않게, 아니, 확실히 더 거친 축구를 하는 선수였다.
‘거칠다는 표현은 좀 약하지. 더럽게 축구한다는 말이 더 잘 맞아.’
오솔은 찰리 애덤의 등장을 가만히 지켜봤다. M자 탈모가 진행 중인 번들거리는 이마와 살짝 풀린 것처럼 보이는 동공, 그리고 듬성듬성 벌어진 앞니까지…… 그곳에는 젊은 언더테이커가 서 있었다.
‘힘도 좋고 반칙도 몸에 붙은 놈이야. 조심해야 해.’
찰리 애덤은 남들처럼 조심스럽게 반칙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심판이 보든지 말든지 대놓고 반칙을 저지르는 놈이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왜 그래, 오솔?”
그러나 긴장한 오솔과는 다르게 맨시티의 다른 선수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솔이야 미래를 알고 있었지만 아직 다른 이들에게 찰리 애덤은 스코틀랜드 애송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괜히 어디 한 군데씩 부러지기 전에 알려줘야지.’
오솔은 급히 앙헬 디 마리아를 붙잡았다. 현재 위치상 제일 먼저 부딪치게 될 선수는 그였다.
“조심해, 도비. 저 녀석 장난이 아니야.”
“누가 도비예요!”
디 마리아가 발끈했지만 오솔은 개의치 않고 찰리 애덤을 가리켰다.
“저거 완전 깡패 새끼야. 팔꿈치로 찍는 건 기본이고 살인 태클로 심심치 않게 하는 놈이니까 알아서 조심해.”
“사, 살인 태클이요, 진짜예요? 뻥 아니죠?”
“정 못 믿겠으면 그냥 뛰든지. 아작 나는 건 어차피 네 발목이니까.”
“윽! 알았어요. 주의할게요.”
“그래. 미리 조심해.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조금 알고 뛰는 게 더 안전할 거 아니야?”
“으으. 고마워요.”
고맙다고는 했으나 찰리 애덤을 바라보는 디 마리아의 눈빛은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공격을 하다 보면 결국 어떤 형태로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게 축구였다. 상대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피할 방법이 없었다.
‘에이! 그래. 유럽에 올 때부터 어느 정도 거친 축구는 예상하고 왔잖아.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괜찮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러나 찰리 애덤의 몸싸움은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쿠웅-!
‘으헉!’
찰리 애덤과 디 마리아의 첫 번째 몸싸움이 벌어진 순간, 디 마리아는 돌파하다 말고 제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찰리 애덤이 측면을 따라 달리려던 디 마리아에게 따라붙으며 자연스럽게 팔꿈치를 휘둘러왔기 때문이다.
‘미친…… 갑자기 숨이 턱 막히네.’
찰리 애덤의 몸싸움이 무서운 것은 기본적으로 힘이 좋은 선수라는 데 있었다. 같은 반칙을 하더라도 그 같은 거구가 들이받는 것과 캉테처럼 작고 귀여운 친구가 들이받는 건 충격의 크기가 달랐다.
‘젠장, 그렇다고 오랜만에 나왔는데 수비만 할 수도 없고…….’
호비뉴에게만 집중되던 조명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온 상황이었다. 디 마리아는 남은 시간, 데샹 감독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고 싶었다.
‘확실히 힘은 장사다. 그렇지만 속도는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아.’
이어진 공격에서 디 마리아는 측면을 따라 달리는 척 속임수를 부린 다음, 안으로 접고 들어가는 동작으로 순식간에 전환했다. 찰리 애덤은 물론이고 웬만한 윙백들로서도 따라잡기 힘든 빠른 방향 전환이었다.
‘됐다! 돌파했어!’
디 마리아가 잠시 행복에 젖었을 때였다.
“흐헤헤!”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두꺼운 팔뚝이 스윽 하고 디 마리아의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억! 크헉!’
찰리 애덤은 돌파를 막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숨통을 틀어막고 싶은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힘을 줘서 디 마리아의 목을 눌렀다.
“세상에 저러다 사람 잡겠다!”
오솔은 어디서 많이 본 광경에 기겁하며 심판을 찾았다.
삐이익-!
다행히 휘슬이 금방 울렸다. 심판은 빠르게 달려와 카드를 들어 올렸다.
옐로카드. 목을 조른 것치고는 비교적 가벼운 결과였다.
‘교체로 들어온 지 10분 만에 경고라니…… 대단하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카드를 받은 직후 찰리 애덤이 보인 반응이었다.
“흐헤헤! 그래도 한 번 막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온한 얼굴이 흡사 축구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자식 대체 뭐야? 무슨 축구 하다 말고 목을 졸라?”
“약간 모자란 놈 아닐까? 아까 봤지? 카드 받고 웃는 거.”
하프타임 동안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은 생전 처음 보는 캐릭터의 등장에 수군거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장난꾸러기 호비뉴 혼자 디 마리아를 놀리느라 바빴다.
“야, 아까 진짜 웃겼다. 얼굴이 완전히 빨개져가지고. 크크!”
“이쒸! 지금 웃음이 나와요? 저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요!”
직접 당한 입장에서는 공포스러운 경험이었겠지만, 사실 옆에서 보기에는 제법 웃긴 장면이긴 했다. 아니, 웃기지는 않더라도 진기한 장면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축구장에서 선수의 목이 졸리는 모습을 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렇게 웃고 떠드는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오솔은 곧장 중재에 나섰다.
“그만! 네가 고생한 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만 진정해, 도비! 그리고 초딩아! 너도 그만 놀려라. 동료가 당했는데 지금 장난칠 때냐?”
“아니, 웃기긴 하잖아. 못 막겠다 싶으니까 목을 조르는 게 말이 되냐고. 하하하! 진짜 수준 하고는…….”
“우습게 볼 게 아니야. 당장 후반전에 찰리 애덤이 널 막을 수도 있어. 너라고 안전할 것 같아?”
“에이. 걔는 벌써 카드 한 장 받았잖아. 이젠 나대지 못하겠지.”
그러나 이어지는 후반전 15분경, 호비뉴는 정강이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돌파를 시도하다 넘어진 호비뉴의 다리를 찰리 애덤이 아주 ‘부자연스럽게’ 밟고 지나간 것이다.
‘자연스럽게…… 달리다 보니 어쩌다……’가 아니다. 찰리 애덤은 애써 스텝을 꼬아가며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호비뉴의 정강이를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갔다. 이건 200% 확률로 노린 거였다.
‘참나, 어떻게 반칙을 해도 저렇게 티가 나게 하지?’
재밌는 건 찰리 애덤이 워낙에 덩치도 크고 동작도 굼떠서 반칙을 할 때마다 눈에 굉장히 잘 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심판에게는 안 걸릴 때가 많았는데, 이번 반칙도 심판은 휘슬을 울리지 않았었다.
‘하긴 대놓고 발을 밟는 미친놈이 있을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하겠어. 그것도 이미 공이 다 지나간 다음에…….’
반칙으로 유명한 선수라면 심판도 당연히 그런 쪽을 주의해서 보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찰리 애덤은 아직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아무리 심판이 경기 전에 선수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온다고 해도 후보 선수의 특징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핵이빨’ 수아레즈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축구를 하다 말고 상대를 물어뜯는 미친 짓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런 행동이 두세 번 더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심판 모두가 수아레즈의 핵이빨을 경계하게 된다.
‘그렇다고 45분 만에 찰리 애덤의 반칙이 유명해지길 바랄 수는 없으니…… 이제 목표를 무사귀환으로 바꿔야겠어. 일단 경기는 이기고 있으니까 말이야.’
오솔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호비뉴를 멈춰 세우더니 손을 내밀었다.
“엄살 그만 부리고 이제 일어나요. 살짝 밟은 것 같던데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다고 그래요?”
“뭐, 엄살? 야, 넌 차에 깔려도 살짝 깔렸으니까 안 아프다고 할 거냐?”
“……제법 설득력이 있는데?”
단번에 설득된 오솔은 호비뉴가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렸다. 호비뉴는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떨다가 의료진이 들어오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일어났다. 오솔은 엄지로 슬쩍 찰리 애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은 제가 맡을 테니까, 도비랑 같이 알아서 피해 다녀요. 괜히 얽혔다가 갈려 나가지 말고.”
“가, 갈려 나가? 지금 우리가 축구를 하는 거 맞냐? 뭐 이렇게 살벌해?”
“원래 영국 축구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후 호비뉴와 디 마리아는 찰리 애덤이 나타났다 하면 사방팔방으로 산개해서 도망 다녔다. 오솔은 같은 팀 약골들을 지키기 위해 찰리 애덤에게 바짝 붙었는데, 찰리 애덤은 악명 높은 오솔의 접근에도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흐헤헤. 마침내 만나게 되었구나, 오솔! 이제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 가려보자!”
“넌 무슨 뚝배기 깨려고 축구하냐?”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미친놈.”
“뭐야, 설마 승부를 피하는 거냐?”
“누가 피한대?”
오솔에게 굴러오는 공. 찰리 애덤은 자연스럽게 팔꿈치부터 올라왔다.
‘미친! 이게 무슨 격투기냐고!’
오솔은 팔꿈치도 피할 겸 공을 향해 마중 나갔다. 목표를 잃은 팔꿈치가 허공을 휘저었고, 오솔은 찰리 애덤을 크게 돌아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윽! 날 속이다니!”
등 뒤에 성난 황소를 달고 뛰어 본 적 있는가. 지금 오솔이 그러했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섭다더니…… 뒤에 두니까 더 위험하잖아? 안 되겠다. 무리해서 공격했다간 진짜 큰일 나겠어.’
찰리 애덤은 대놓고 발목을 차는 인간이었다. 지금처럼 보이지 않을 때는 특히 더 조심해야 했다. 오솔은 모드리치에게 공을 넘기고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선불 맞은 멧돼지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젠장. 너무 가깝다!’
재수 없게도 이미 피할 시간이 없었다. 충돌은 불가피한 상황. 오솔은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했다.
‘괜찮아. 상대의 의도만 읽을 수 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다행히 찰리 애덤은 의도를 숨길 정도로 음흉하지는 않았다. 그냥 우직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스타일, 말 그대로 남자의 축구-혹은 격투기-를 보여주는 인간이었다.
‘오른쪽 팔꿈치? 아니, 진짜는 저 발이다. 진짜 목표는 발목이야!’
찰리 애덤은 상·하체를 동시에 공격하겠다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버젓이 시도하고 있었다. 오솔은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둘 다 피하기는 힘든데… 어쩔 수 없지. 발목은 지켜야 하니까. 팔꿈치는 팔로 어떻게든 막아봐야지.’
오솔은 충돌과 동시에 발을 띄웠다. 그러곤 상대의 팔꿈치 공격을 양손으로 절묘하게 막았다. 아니, 막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찰리 애덤은 가슴 앞까지 당겼던 팔꿈치를 바깥으로 크게 휘둘렀다. 대놓고 오솔의 가슴을 찍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이 쓰벌 놈이!? 에라이, 이렇게 된 거 나도 명존쎄다!!’
오솔은 뒤로 밀려난 김에 오른발을 휘둘러 찰리 애덤의 명치를 후려쳤다.
퍽! 퍼벅!!
삐- 삐비빅-!
휘슬이 요란하게 울리며 경기가 중단되었다. 의료진이 곧바로 들어옴과 동시에 카메라는 두 사람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오솔은 가슴팍을 잡고 누워 쿨럭거리며 숨을 뱉고 있었다.
‘망할 놈의 새끼. 아주 니킥을 하지 그러냐?’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위험한 반칙을 하는 놈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들어오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티 나게 들어와서 주의만 기울이고 있으면 큰 부상은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나도 한 방 갚아줬으니까.’
놀랍게도 의료진이 먼저 다가간 것은 오솔이 아니라 찰리 애덤 쪽이었다. 곧장 일어나서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한 오솔과는 다르게 찰리 애덤은 앞으로 고꾸라져서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오솔의 발길질에 명치를 맞은 탓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진 것이다.
‘엄살은…….’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 급소를 때렸으나 오솔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빗맞았잖아, 인마. 얼른 일어나.’
게다가 공중에 뜬 상태로 뒤늦게 휘둘러서 별로 세게 차지도 못했다. 아프긴 해도 진짜로 의식을 잃은 건 아닐 것이다.
[아! 찰리 애덤 선수도 곧장 일어나는군요.]
역시나 바로 회복했다. 찰리 애덤은 일어나다 말고 오솔을 보더니 흠칫 놀라 자빠졌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반격기’에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오솔은 눈을 부라리며 경고했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다음번에 또 그러면 진짜 뒤질 줄 알아라.’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음은 없었다. 데샹 감독은 혹여나 오솔이 다쳤을까 싶어 바로 교체했고, 심판 역시 찰리 애덤에게 두 번째 카드를 들어 올림으로써 그를 경기장에서 치워 버렸다.
이후 경기는 시시했다. 이미 승리가 확실해진 맨시티와 한 명이 퇴장당하면서 잔뜩 웅크린 레인저스의 만남은 웬만한 수면제보다 잠이 잘 왔다. 덕분에 레인저스 홈팬들은 이른 귀가를 위해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슬슬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최종 스코어는 3 대 0, 맨시티의 승리였다. 이로써 맨시티는 개막전 이후 모든 대회에 걸쳐서 12연승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럭저럭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봐야 하나?’
모두 오솔이 적절한 때에 찰리 애덤을 처리한 덕분이었다. 만일 같은 반칙을 호비뉴나 디 마리아가 당했다면 몇 달간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몰랐다.
‘자, 다시 달려 보자고!’
그러나 상승세가 계속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이후 경기부터 맨시티는 조금씩 삐걱거리게 되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만난 스토크 시티를 시작으로 챔스 PSV전, 그리고 리그 컵까지…… 이후 만난 모든 팀이 호비뉴와 디 마리아를 상대로 거친 몸싸움과 과격한 태클을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찰리 애덤의 플레이가 일으킨 나비효과였다.
“젠장. 이거 무서워서 드리블을 할 수나 있겠어?”
호비뉴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평소처럼 엄살을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맨다리는 군데군데 퍼렇게 멍이 들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