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88화
처음에는 구단의 전용기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공항에서 만난 것은 구단주의 개인 비행기로 그와 그의 가족들이 이용하는 물건이었다. 비서가 말했다.
“아부다비를 거쳐서 가실 겁니다.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셔야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이동보다는 빠를 겁니다. 더 편안하기도 하고요.”
오솔은 비서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 내부로 들어섰다. 바깥의 모습이 깔끔한 수준이었다면 내부 인테리어는 초호화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우리 집보다 좋잖아? 뭔가 인생무상해지는 기분인데…….’
그나마 부자 구단주가 그의 돈줄이라는 게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개인 비행기까지 동원해서 오솔과 만날 정도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설마 이번 경기에서 살살 뛰어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워낙에 축구를 좋아하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왠지 국대 경기도 챙겨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만나 이야기했을 때는 또 달랐다.
“사실 이번에 한국으로 가는 건 단순히 경기만 보려는 게 아닙니다. 경기 관람은 단순한 유흥이고, 실제로는 사업상 논의할 게 있어서 방문하는 것이죠. 아, 단순한 유흥이라고 해서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솔 선수의 경기는 언제 보아도 즐거우니까요.”
사업상 방문이라는 말에 오솔은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꿨다. 만수르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업이라는 게 사실상 국가를 상대하는 수준일 것이고, 대부분 밖으로 꺼내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 시즌 팀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괜찮나요?”
오솔은 순간적으로 호비뉴의 까불거리는 모습이 떠올랐으나, 이내 웃으며 별일 없다고 답했다. 첼시에 있었을 때 느낀 것이지만 구단주는 선수단 내부의 일에 최대한 끼어들지 않는 편이 좋았다.
‘당장 통역 문제도 해결됐고, 이제는 패스도 곧잘 하니까…… 문제 될 건 없겠지.’
맨체스터 더비 이후 두 사람의 호흡도 조금씩 맞아가고 있었고, 그 결과 오솔의 득점력도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현재 리그에서는 6경기 출전에 3골 4도움을 기록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2경기 1골 3도움을 기록 중이었다.
‘이 정도면 주급 값은 충분히 하고 있는 거겠지.’
만수르 역시 오솔의 활약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누구보다 먼저 오솔의 가치를 알아보고 데려왔다는 자부심 역시 섞여 있었다. 말하자면 대박 날 아이템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봤다는 안목에 대한 자부심이다.
“이번 휴식기에는 올림픽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죠? 괜찮다면 다음번에는 제 배를 좀 빌려드리겠습니다.”
아직은 5,600억 원짜리 초호화 유람선 ‘토파즈’가 건조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난’하게 1천억 원대 요트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오솔로서는 기겁할 만한 제안이었다.
‘무난하게 천억? 천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평상시에도 천억 원이라면 깜짝 놀랐겠으나 요즘은 더 큰 금액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오솔이 사놨던 메이플 주식이 큰 폭으로 떨어진 탓이다. 덕분에 오솔의 재산은 한순간에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뭐, 놔두면 결국은 다시 올라갈 테지만…….’
시장이 다시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년. 이를 알고 있는 오솔은 오히려 주식을 더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메이플 주식이 아니라 주가가 400달러 선까지 떨어진 구골 플렉스를 노린다는 게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나는 주식 쪽은 잘 모르니까 2019년에도 유명했던 기업 위주로 사놔야지.’
오솔은 그 외에도 금을 따로 모으고 국내 주식 시장도 지켜보는 등, 코앞으로 다가온 경제 위기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도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이전처럼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나마 수입처는 안전해서 다행이야.’
현재 오솔의 연봉은 114억 4천만 원 선. 여기에 출전 보너스 등 각종 보너스를 합하면 연봉은 약 130억 원에 육박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유로 혹은 파운드로 계산되고 있었기에 미국발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전했다.
물론 이런 준비나 고민들도 만수르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다. 천억 원대 요트를 무상으로 빌려준다던 부자 구단주가 이어서 이런 제안까지 건넸기 때문이다.
“혹시 그것도 불편하다면 섬을 하나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후후, 아쉽지만 무상 대여입니다. 뭐, 혹시 모르죠. 리그 우승이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면 선물로 드릴지도…….”
‘……무조건 우승해야겠는데?’
선물 받은 건 되파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오솔은 만약 섬을 받게 되면 반드시 되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이후에는 각자가 따로 시간을 보냈다. 오솔에게는 휴식이 필요했고, 구단주는 이동 중에도 따로 할 일이 많았다. 덕분에 오솔은 이동 시간 내내 최고급 침대에 몸을 누이고 푹 잘 수 있었다.
“오솔 선수.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곧 착륙할 예정입니다.”
비서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한국석유공사 사장과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경제부총리였다.
‘뭐야 이거…….’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당시 아랍 에미리트 연합은 원자력 발전소 사업 수주를 위한 일을 진행 중이었고, 만수르의 한국행은 그에 따른 정부의 입장을 듣기 위함이었다.
물론 아부다비 왕가를 대표해서 나온 것일 뿐, 만수르에게 원자력 공사 관련 실권은 없었다. 이 당시 진짜 실권자는 프랑스에 가서 따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만수르의 한국 방문은 프랑스 측 제안에서 이득을 보기 위한 행위인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덕분에 황당해진 것은 공항까지 대동한 정치부 기자들이었다.
“뭐야, 여기서 오솔이 왜 나와?”
아무리 정치부 기자들이라고는 해도 한국인인 이상 오솔을 모를 수는 없었다. 박해진을 모르고 김유나를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찰칵, 찰칵!
기자들은 저도 모르게 오솔과 만수를 한 화면에 잡고 촬영을 시작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고 경제부총리도 모두 뒷전이었다. 그리하여 그날 저녁…….
[뜻밖에 국빈급 환대를 받는 오솔.]
[아랍 왕자의 오솔 사랑. 만수르, “내가 원조 오솔 팬!”]
오솔의 입국 소식은 정치부 뉴스에서 다뤄지게 되었다.
* * *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은 무난하게 끝났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오솔은 오랜만에 레벨이 하나 더 오르게 되었다. 중간에 올림픽을 치렀다는 걸 감안하면 한참 늦은 레벨 업이었다.
‘이제는 정말 레벨 업 하기가 쉽지 않구나.’
오솔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오솔(Lv 72. 오른발잡이, 왼발 숙련도 84%)
-신체 : 균형감각 90(+5)/ 힘 90(+5)/ 반응속도 81(+1)/ 순간속도 90(+5)/ 주력 91/ 점프력 90(+5)/ 지구력 92/ 강인함 92(+5)
-기술 : 개인기 85(+1)/ 드리블 90/ 볼터치 90(+5)/ 슈팅 90/ 패스 90(+1)/ 헤딩 91(+6)/ 스로인 11/ 태클 66/ 일 대 일 마크 66
-잔여 포인트 : 3
오솔은 반응속도를 84(+1)로 올렸다. 호비뉴의 합류 덕분에 그가 직접 개인기를 부릴 필요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대신 반응속도가 올라가면 그만큼 문전 앞에서 패스를 받기 좋았다. 부상 방지도 되고.
‘이제 80대에 머물러 있는 게…… 왼발 숙련도와 반응속도, 그리고 개인기 정도인가?’
스로인이나 태클, 일 대 일 마크도 더 올릴 수 있지만 이것들은 공격수인 오솔에게 크게 필요치 않은 능력들이었다. 70 정도만 도달해도 충분했다.
‘포인트가 남으면 슬슬 상점을 이용해도 되겠어.’
이전보다 열정적으로 뛰는 만큼 부상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다른 나라, 다른 구단에서 뛰려면 해당 언어를 배울 필요도 있었고…… 그러니 앞서 말한 능력들을 90까지 다 찍은 다음에는 포인트를 최대한 모아 놓을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루고 나면 결국에는 이적을 해야겠지.’
적어도 2~3년은 더 맨시티에서 뛰겠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더 큰돈을 만지려면 결국 이적을 추진해야 했다.
물론 메시처럼 한 구단에서 평생을 뛰며 레전드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맨시티 정도면 주급 문제도 없고, 환경도 좋았으니까.
그러나 오솔은 이미 전생에서도 3년 넘게 EPL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대로 계속 EPL에서 뛰기에는 이곳은 너무 익숙한 무대였다.
‘또 각 리그를 제패하고 다니는 게 더 재밌잖아.’
다만 그만한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구단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오솔을 감당할 수 있는 구단이라고 해봐야 맨유,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정도인데…… 이중 맨유는 맨시티의 라이벌 구단이니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그곳으로 가는 건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이적한다면 역시 레알이 좋긴 한데…… 아! 나중에 파리도 가능은 하겠군. 아니, 아니야. 거기는 돈은 많이 주겠지만 아무래도 리그 수준이 많이 낮지. 간다고 해도 최대한 나중에 가는 게 좋겠어.’
다행히 오솔의 고민은 금방 끝이 났다. 아직은 능력치를 다 채우는 것도, 그리고 이적하는 것도 한참이나 먼 이야기였다.
* * *
이어지는 아랍 에미리트 연합과의 경기는 오솔의 활약으로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
경기를 관람하러 온 만수르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것으로 감정표현을 대신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이리라.
한편 오솔은 최종 예선 일정을 생각하며 계산에 들어갔다.
‘이것으로 2승째…….’
월드컵 최종 예선은 8경기를 치르고, 5개 팀 가운데 두 팀만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계산상 최소 4에서 5승 정도는 기록해야 안정권에 들어가는 상황이었으니, 오솔이 있는 한-사실 없었어도- 월드컵 본선 진출은 확실했다.
‘어찌어찌 이기기는 했는데…… 역시나 수비가 조금 불안하네.’
올림픽 대표팀에 이어 국가대표팀 역시 수비가 문제였다. 골 결정력 문제야 오솔이 해결했다고 해도 다른 문제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수비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주축 선수들의 동반 은퇴였다. 독일 월드컵을 치른 지도 어느덧 2년…… 이제는 2002년에 막내였던 이청운이 어느새 스물일곱이었다. 그러니 수비진에는 신인들만 있는 게 당연했다.
‘남아공 월드컵을 치를 때쯤이면 이영신 선배가 만으로 서른셋, 차태민 선배도 서른이다.’
다행히 이영신은 자기 관리가 투철한 사람이라 2010년까지는 충분히 제 몫을 해준다. 그러나 이전처럼 공격적인 움직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고, 또 아무리 잘해줘도 전성기보다는 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새로운 수비수들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이번에 뽑힌 수비수들은 대부분 큰 대회를 치러본 경험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이들도 꽤나 많았다.
‘사실 포지션 변경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
딱히 이들에게 실력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도 중간에 포지션을 변경한 것치고는 괜찮은 수비를 펼쳤으니까.
문제는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시작했으면 더 뛰어난 수비수로 성장했을 선수들이 그저 그런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역시 제대로 된 수비수가 나오려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키워야 해.’
오솔은 생각난 김에 바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상대는 독일에서 한창 코치로 일하고 있을 최주혁 감독이었다.
“여보세요. 감독님 지금 바쁘세요?”
“괜찮아. 막 오후 훈련이 끝났어. 무슨 일인데 그래?”
“혹시 감독님 후배 중에 수비수 전문 코치가 가능하신 분 있어요? 아, 이왕이면 골키퍼 전문 코치도 있었으면 하는데…….”
“뭐, 수비수 전문 코치? 너 유소년 아카데미 한다고 하지 않았어? 유소년 단계에서 굳이 전문 코치가 필요하냐? 자격증을 가진 코치라면 지금도 충분하잖아.”
이때까지는 이게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2018년에도 유소년 레벨에 전문 코치를-그것도 수비수나 골키퍼 전문 코치를- 두는 곳은 한국에서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한번 제대로 키워보려고요. 10살짜리 데려다가 10년 정도 가르치면 그래도 제 몫은 해내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거 괜히 헛돈 날리는 거 아니야?”
“오늘 경기를 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는 수비가 답답해서 안 되겠어요. 지금부터라도 키워야겠다 싶더라고요.”
“지금부터 키워? 야! 10년 후면 2018년인데, 그때까지 수비수를 키워서 어쩌려고? 같이 뛰기라도 하게?”
“당연하죠! 10년 후라고 해도 제 나이 서른하나예요. 그때도 충분히 전성기입니다.”
“……참나! 알았다. 바로 알아봐 줄게!”
오솔은 최주혁 감독이 다리를 놔준 코치들과 하나하나 통화를 진행했고, 유소년 때부터 시작하는 단계별 포지션 육성이라는 말에 긍정적인 답변들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 언제 귀국해야 하는 거죠?”
“언제든지요. 당장 오셔도 좋고, 올해 연수가 끝나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예.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따로 담당자 연락처를 남기겠습니다. 제가 못 받을 수도 있으니 안 되면 여기로 연락 주세요.”
오솔은 통화를 마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10년?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입장에서 10년이면 짧은 거지. 흐흐흐. 이제 내 국대 커리어는 내가 챙긴다!”
향후 한국 유소년 축구계를 송두리째 바꿔 버린 사건의 시작은 알고 보면 오솔의 아주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