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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85화 (18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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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85화

‘설마 이런 식의 플레이가 가능할 줄이야.’

데샹 감독은 새삼 놀라고 말았다. 오솔이 생각한 방법은 공격에서 호비뉴를 완전히 빼겠다는 황당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솔이 그걸 실제로 성공시킨 것이다.

‘하긴, 계속 혼자 플레이할 거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수도 있지.’

호비뉴를 배제했다고 해도 상대는 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상대에게는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호비뉴의 모습이 적지 않은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오솔은 지금까지 호비뉴에게 패스가 몰렸다는 사실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그를 미끼 삼아 찬스를 만들었고, 제대로 먹혀들었다.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와준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어.’

이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수비는 살짝 약한 팀이었다.

지금의 이미지와는 살짝 다른데, 그들이 제대로 짠물 수비가 된 것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팀을 맡은 2011-12시즌 이후의 일이고, 그전까지는 빈말로도 수비가 좋은 팀이라고 할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리그 평균 수준이랄까?

시메오네가 팀을 맡기 전 7시즌 동안 평균 46.8실점을 하다가 그가 팀을 맡고 난 7시즌 동안 28.4실점으로 줄어든 것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했다.

‘역시 호비뉴가 아무리 좋은 선수라고 해도 에이스는 오솔이다.’

이번 경기의 MOM은 당연히 오솔의 차지였다. 그는 도움을 두 개 기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경기를 지배했다.

호비뉴가 잦은 드리블로 템포를 죽인 것은 물론, 억지로 돌파하다가 실패해서 역습을 허용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기해봐야겠어.’

데샹은 호비뉴와의 미팅을 잡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이야 운 좋게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런 위험천만한 작전을 맨체스터 더비에서도 쓸 수는 없었다. 맨유는 이렇게 어설픈 작전에 계속 당할 만큼 허술한 팀이 아니었다.

한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호비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니야. 이래서야 골을 넣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잖아. 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그때 호비뉴의 속도 모르고 통역사 올리베이라가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해냈어, 호비뉴! 해트트릭이라니! 하하하! 역시 대단해, 이제야 승승장구하는구나!”

“해트트릭? 하하…… 오늘 세 골이나 넣었나?”

골을 넣은 기억은 희미하고 개인기를 부리다가 공을 뺏긴 기억은 너무도 선명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형! 감독님이랑 미팅을 좀 잡아줘요.”

“어? 미, 미팅? 아니, 왜? 오늘 경기도 잘 끝났잖아. 네가 원하던 대로 골도 많이 넣었고…… 문제 될 것 없는데?”

“형.”

“어, 어?”

“잡으라면 그냥 잡아요. 두 번 말할 기분 아니니까.”

“그, 그래. 알았어.”

올리베이라는 호비뉴의 지랄 맞은 성격을 욕하며 구단 스태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스태프에게서 데샹 감독의 미팅 제안이 들어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어라, 감독도 미팅을 원한다고? 뭐지 이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 * *

다음날, 데샹은 미팅을 앞두고 기합을 잔뜩 넣었다. 그동안은 최대한 호비뉴에게 좋게 설득하려 해왔지만 이제는 슬슬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그래. 누가 뭐래도 에이스는 결국 오솔이다. 두 사람을 동시에 기용하려면 호비뉴가 변해야 해. 그래야 전체적인 전력이 상승한다.’

호비뉴가 변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결국 그를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솔 원톱인 전술 따로, 호비뉴와 만주키치 투톱인 전술 따로 운용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올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는 물론이고 챔피언스 리그, FA 컵과 리그 컵 등 참가 대회가 많았고, 구단에서는 강화된 전력만큼 전 대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리그에서는 4위권, 챔피언스 리그는 16강 진출 같은 것이다.

‘후우. 아무리 그래도 4,400만 유로의 선수를 컵 대회에 기용하다니…… 이것 참, 되도록 그런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제일 좋은 상황은 호비뉴가 레알 마드리드에 있을 때처럼 왼쪽 측면에서 뛰는 것이고, 차선책은 그가 쓸데없는 골 욕심을 버리고 팀플레이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며 기다리고 있자 잠시 후, 호비뉴와 그의 통역사가 나타났다.

“어서 와요. 호비뉴. 지난번에 해트트릭은 정말 좋았어요.”

간단한 이야기인 덕분에 호비뉴 역시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호비뉴가 무어라 말하자 통역사 올리베리아가 목소리를 살짝 가다듬더니 통역을 시작했다. 한껏 무게를 잡은 모습이 누가 호비뉴고 통역사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경기에서 보인 전술은 감독님 뜻인가요?’라고 묻는군요.”

“무슨 전술인지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나요?”

데샹은 호비뉴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말했다. 그는 선수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감독답게 눈을 맞추며 자신의 진심이 전달되기를 빌었다.

“…….”

그러나 데샹의 교감은 금방 끝나고 말았다. 통역을 해야 할 올리베이라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탓이다. 데샹이 의아한 듯 시선을 돌리자 올리베이라는 뒤늦게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감독이 무슨 전술을 말하는 거냐는데?”

“오솔을 중심으로 한…… 날 공격에서 철저히 배제한 전술을 말하는 거라고 전해줘. 그게 선수들이 멋대로 벌인 짓인지, 아니면 감독님의 지시가 있었는지 말이야.”

“뭐? 그런 일이 있었어?”

이건 직접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느끼기 힘든 일이었다. 오솔이 공격을 주도하지 않을 때는 또 호비뉴에게 패스가 왔었기 때문에 더욱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호비뉴는 얌전히 설명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드물게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형. 빨리 통역이나 해요.”

“아, 알았어.”

데샹은 호비뉴의 질문을 확인하고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곧이어 그와 시선을 맞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생각한 거다.”

여기서 오솔이 입안한 작전이라고 해버리면 선수들끼리 충돌할 위험이 있었다. 반면 자신이 의도했다고 말하면 개인적인 불만은 생길지언정 팀워크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데샹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지금 네가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맙소사!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다고? 감히 호비뉴를 왕따시켰단 말이야?”

뒤늦게 사실을 확인한 올리베이라가 호비뉴보다도 흥분했다. 데샹은 대화의 흐름이 끊겼다는 사실에 드물게 짜증을 냈다.

“이봐 통역 안 하나?”

“지금 통역이 문제예요?”

“뭐? 당신이 하는 일이 그거잖아!”

황당해하는 데샹을 앞에 두고 올리베이라는 한참 늦게 통역을 시작했다. 호비뉴가 벌써 몇 번이고 채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역에 감정이 섞이자 제대로 된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다.

“망할. 네가 실수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려고 했단다. 대놓고 엿 먹어보라 했다는 거지.”

“감독님이 진짜 그렇게 말했어?”

“그렇다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이 감독도 되게 음흉하네. 앞에서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뒤로는 이런 걸 계획하고 있어?”

“…….”

“야. 이참에 구단주한테 감독을 바꿔 달라고 하는 건 어때? 이미 이적 시장도 닫혔고, 여기가 돈도 많이 주잖아. 감독만 우리를 이해해 주는 사람으로 바꾸면 딱일 것 같은데.”

올리베이라는 나름 호비뉴를 대신해서 화를 낸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호비뉴는 이유를 듣고 문제를 해결하러 온 거지 문제를 키우려고 온 게 아니었다.

“형, 제발 좀 닥쳐요. 닥치고 통역만 좀 해요. 감독이 하는 말 전부를 제대로 알려달라고요.”

“아, 알았어.”

올리베이라가 잠잠해지자 데샹이 물었다.

“다 떠들었나? 아, 통역할 것 없어. 이건 당신한테 하는 말이니까.”

“흠흠. 끝났어요.”

“좋아. 당신! 내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해.”

“쳇…… 알았어요.”

“듣기로는 호비뉴, 당신도 미팅을 원했다고 하던데 맞죠?”

통역을 들은 호비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그도 슬슬 통역이 귀찮아진 듯 몸짓을 많이 썼다. 데샹은 계속 물었다.

“왜 그랬어요? 원했던 대로 골을 넣는 역할을 맡았고, 세 골이나 넣었는데?”

“‘재미가 없었어요.’라고 하는군요.”

“재미라…… 역시 재미가 없죠? 마지막 순간에만 공을 건드리는 건.”

호비뉴의 고개가 다시 움직였다. 해트트릭을 했음에도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쾌한 감정을 이번에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공허하다고 해야 하나?’

알맹이가 쏙 빠져버린 빈 땅콩처럼 허전한 기분이자, 자신의 장점을 하나도 활용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 무기력한 기분.

그래, 그건 무기력이었다.

결국은 그도 브라질리언이다. 탄생과 동시에 축구공을 만졌고, 아직 신발도 신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공을 차왔던 브라질리언.

그런 그에게 공을 잡고 달리지 못한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골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서 플레이 메이킹까지 할 수는 없어요. 그건 혼자서 수비진 전체를 상대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죠.”

이번 경기에서 오솔이 보여준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오솔은 오늘 패서의 역할에 집중했다. 공을 드리블하며 전진하는 역할은 주로 지울리와 디 마리아가 맡았고, 슛은 호비뉴에게 넘겼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솔은 매 순간 적재적소로 이동하며 모든 패스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패스는 가장 기본이 되는 무기고, 가장 날카로운 공격 수단이지만 상대가 웅크리고 있을 때는 써먹기 힘든 수단이기도 하죠.”

단단한 성벽처럼 뭉쳐있는 수비진을 뚫으려면 공성차가 필요했다. 공성탑처럼 높거나 충차처럼 파괴력 있는…….

‘혹은 트로이 목마처럼 기발한 전략으로 성문을 여는 방법도 있지.’

단언컨대 호비뉴 같은 선수야말로 트로이 목마라고 할 수 있었다. 상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신묘한 전략 병기.

그리고 오솔은…….

‘오솔은…… 굳이 따지자면 드래곤이지.’

이쪽은 병기라기보다는 드래곤이나 대재앙급 마법-이를테면 메테오-에 더 가까웠다.

“어쨌든…… 제가 당신에게 원하는 역할은 상대의 단단한 방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그 드리블로 말이죠.”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묻네요.”

데샹의 얼굴이 환해졌다. 드디어 호비뉴와 말이 통한 것이다.

“일단은…… 이 인간부터 잘라요.”

“어, 그러니까 일단은 이 인간부터…… 뭐, 뭐라고? 누굴 잘라?”

올리베이라가 화들짝 놀라자 데샹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가 그대로 목에 가져다 대 쓱 그었다.

“짤라. 짤라 버려. 끽, 알지, 끽?”

“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뭐하긴. 대화가 통하게끔 조치를 취하는 거지.”

역설적이게도 그동안은 통역 때문에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데샹은 이제야 제대로 설득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전술판을 꺼내 들었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민주의 물음에 오솔은 후련한 얼굴로 말했다.

“구단에서 새로 통역을 붙여주기로 했어. 원래 있던 녀석은 그 자리에서 자르고.”

“진작에 좀 그렇게 하지.”

“듣기로는 레알에 있을 때 구단에 당한 게 있어서 그런 쪽으로 불신이 좀 생겼었나 봐. 구단에서 붙여주는 걸 거부했었다고 하더라고.”

“그럼 이제는 패스도 잘해?”

“글쎄…… 그건 경기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

이틀 뒤에 맨체스터 더비가 있었다. 데샹은 이날 오솔을 원톱으로, 호비뉴를 왼쪽 날개로 기용하기로 했는데, 이는 호비뉴의 장기인 드리블 돌파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마침 호날두도 왼쪽 날개로 출전할 테니 좋은 비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건 뭐야?”

오솔은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축구공을 머리에 이고 있는 벌꿀 오소리 인형이 귀엽게도 맨시티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마침 등 번호가 9번, 오솔의 번호였다.

“이거 설마 내 캐릭터야?”

“응. 귀엽지?”

“이런 걸 팔고 있어?”

“아직은 정식으로 출시된 건 아니고 곧 론칭에 들어간대.”

“아, 구단 관계자들한테만 미리 주는 건가?”

오솔은 팀 동료들의 캐릭터를 생각했다. 해골을 닮은 만주키치, 외계인을 연상케 하는 콤파니, 꼬마 엘프 지울리……. 디자인을 봐야 하겠으나 언뜻 잘 팔리긴 힘든 캐릭터들이었다.

‘그나마 벌꿀 오소리가 제일 낫네. 귀엽기도 하고.’

유니폼이나 이런 굿즈의 판매량이야말로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솔은 자신의 캐릭터가 가장 잘 팔리길 바랐다.

“어때? 디자인이 귀엽지 않아?”

“응.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인기 좀 얻겠어.”

“헤헷! 생긴 게 다가 아니야. 비장의 무기는 따로 있어. 여기, 여기를 이렇게 누르면…….”

민주가 인형의 뒤통수를 꾹 누르자, 머리에 얹어있던 축구공 부분이 슝 하고 발사됐다.

“짜잔! 슈퍼 헤딩도 돼. 어때, 재밌지?”

“……이런 걸 다 어떻게 아는 거야?”

“히히히. 사실은 내가 디자인한 거지롱! 꺄아아!! 대박이지 않아? 그냥 한번 내봤는데 바로 뽑혔어!!”

오솔은 여 씨 집안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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