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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84화 (18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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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84화

41장 원하는 게 골이야?

“그래서 얘기는 좀 해봤어?”

민주의 물음에 오솔은 허탈하게 답했다.

“말이 통해야지.”

“왜? 통역이 있을 것 아니야.”

“통역? 있긴 했지. 아주 날라리 같은 놈이…….”

오솔은 3라운드 경기 직후 호비뉴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호비뉴의 통역사를 통한 대화를…….

“마지막에 왜 패스를 하지 않았는지 물어봐 줘요.”

“그건 왜요? 어차피 골이 들어갔잖아요.”

“뭐요?”

통역사의 당돌한 말대답에 오솔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오솔의 험악한 얼굴에도 겁먹지 않고 의문을 이어갔다.

“그렇잖아요. 골도 넣었고 경기에서도 이겼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이봐, 당신! 통역이면 통역답게 내 말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나 해요. 괜히 대화에 끼어들지 말고.”

호비뉴의 통역을 맡은 30대 중반의 브라질 남자는 잠시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호비뉴에게 뭐라 뭐라 이야기를 전달했다.

‘멍청한 놈! 빅4 애들이 얼마나 살벌하게 덤벼드는 줄도 모르고 개인기 자랑이나 해대고 있다니…….’

오솔은 되도록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었다. 호비뉴처럼 작은 녀석을 상대로 힘을 쓰는 것은 어쩐지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각이 있다면 충고를 받아들이겠지. 중앙에서 계속 뛰기에는 프리미어리그의 몸싸움이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보니 통역과 호비뉴 두 사람이 그들만 아는 언어로 떠들며 웃고 있었다. 오솔은 그 모습이 꼭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봐, 통역! 통역했어?”

오솔의 외침에 통역사가 시큰둥한 얼굴로 답했다.

“호비뉴도 골을 넣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네요. 아, 그리고 제 이름은 통역이 아니라 올리베이라예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젠장!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따위로 뛰겠다는 거냐?”

“말조심해요. 그따위라니…… 호비뉴는 당신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쉬운 사람이 아닙니다.”

“닥치고 통역이나 해! 왜 네가 대신 답하고 있는 거야? 네가 무슨 호비뉴의 대변인이냐?”

“흐흐. 대변인이라…… 틀린 말은 아니네요. 통역은 물론이고 영국에서의 생활 전반은 제가 맡았으니까요. 그러니 나한테도 말조심해요.”

“뭐 이런…….”

그 후 올리베이라는 호비뉴를 끌고 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방금 했던 대화를 각색해서 전달하는 중일 것이다.

“결국은 통역이 문제인 거네? 그 사람은 영어 안 배운대?”

오솔은 민주의 질문 덕분에 상념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자 분노가 금방 가라앉았다. 오솔은 소파에 몸을 묻었다.

“몰라.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대화를 해봤어야 알지. 그나마 헬로, 하이 같은 건 하더라.”

“우리 애들이랑 똑같네.”

“망할 통역 놈 같으니…….”

“또, 또! 애들이랑 있을 때는 말 좀 가려서 쓰랬지!”

“네. 엄마. 잘못했어요.”

오솔은 입술을 한 번 삐죽이고는 생각을 이어갔다.

‘패스만 제때 해준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호비뉴에게는 일라누와 바스토스 등 브라질 동료들도 있었다. 딱히 영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외롭지도 않을 테니 굳이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말 그대로 호비뉴가 플레이 스타일만 살짝 바꾸면 끝나는 일이었다.

‘아니면 억지로 바꿀 수밖에 없도록 해버려?’

오솔은 음흉한 미소와 함께 수를 강구하기 시작했다.

* * *

“그런데 그때 오솔은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던 거예요? 고작 패스 한 번 안 한 것 치고는 조금 과하던데.”

“어?”

호비뉴의 물음에 올리베이라는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야, 설마 그걸 계속 신경 쓰고 있었냐? 야, 신경 쓰지 마. 그 새끼 그거 그냥 텃세를 부리는 거야. 원래는 자기가 최고였는데, 이제는 모든 게 널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괜히 심술부리는 거라고.”

“그래요? 그게 조금 서운했나? 하긴, 녀석도 올림픽 때 보니까 잘하기는 진짜 잘하던데…… 갑자기 서포팅하는 역할을 하려니 짜증이 날만도 하지. 지난 시즌에는 득점왕까지 했었으니까.”

호비뉴가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자 올리베이라가 급히 말을 잘랐다.

“야, 됐어! 골을 몰아주면 너도 얼마든지 득점왕 할 수 있다. 네가 말했잖아. 그것 때문에 여기 왔다고.”

“그렇죠…… 저도 슬슬 득점왕 한 번 해야죠.”

공격수는 결국 골로 말을 한다. 호비뉴는 그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아무리 멋진 돌파를 성공하고 경기를 지배해도 결국 레알 마드리드 보드진의 선택은 리그에서 31골을 터트린 호날두였다.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호비뉴에게 1 대 1 트레이드도 아니고 웃돈까지 얹은 트레이드는 견디기 힘든 모욕으로 다가왔다. 아니, 심지어 맨유는 그 제안을 거절하기까지 했으니…….

그때의 비참한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가 굳이 맨시티를 선택한 것도, 그리고 골을 노릴 수 있는 포지션을 요구한 것도 결국은 그때의 일이 결정적이었다.

‘조만간 맨유전이 있었지? 그래. 어디 비교해 보자고. 호날두가 잘하는지 내가 잘하는지 말이야.’

호비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올리베이라가 슬쩍 어깨를 부딪쳐왔다.

“기분도 꿀꿀한데 어떻게 자리를 한번 만들어 볼까? 듣기로는 VIP만 받는 곳이 있다던데? 신원 확실한 사람들만 들어오니까 언론에 새어 나갈 일도 없어.”

“……아니요. 당분간은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 그래?”

올리베이라는 아쉬움을 삼키며 차를 집으로 몰았다. 눈앞에서 VIP 클럽의 모습이 아른거렸으나 더 큰 도약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그래. 어차피 이것도 오래 못 간다. 평소에 놀던 버릇이 어디 가겠냐?’

브라질 스타들이 대개 그렇듯, 호비뉴 역시 술과 여자, 파티를 즐기는 편이었다. 특히 호비뉴는 알아주는 기분파로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해야만 제 실력이 나오지, 반대로 통제하고 규칙적으로 행동하는 건 그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쳤다.

‘그래도 오래 참지는 못하니까 되도록 빨리 좀 성공해라. 그래야 나도 네 덕을 좀 보지.’

* * *

데샹 감독은 오솔과 호비뉴의 조합을 계속해서 시험했다.

‘연습할 때는 그럭저럭 패스를 하는데 말이야.’

콜로 투레가 앞을 막아서자 짧은 페인팅 후 바로 오솔에게 패스하는 호비뉴의 모습이 보인다. 놀랍게도 연습 상황에서는 호비뉴도 패스라는 걸 할 줄 알았다.

‘문제는 실전이지.’

호비뉴의 골 욕심은 실전에 들어가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데샹이 몇 번이고 설득해 봤으나 소용없었다. 프랑스나 유럽 선수들에게는 데샹의 이름이 무게감 있게 다가갔으나, 남미 선수이자 작은 펠레라고 불리는 호비뉴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다.

차라리 스콜라리 감독이었다면 호비뉴를 제 뜻대로 통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호비뉴가 첼시로 이적했다면 어쩌면…….

‘설마 그게 싫어서 첼시행을 거절한 건 아니겠지?’

하도 말을 안 들으니 이제는 별의별 생각까지 다 들었다.

‘후우. 어찌해야 하나.’

데샹의 고민은 리그 4라운드에서 승리하고서도 계속됐다. 팀 순위는 선두권에 올라가 있었으나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 감독들이 바보도 아니고 호비뉴의 성향을 눈치 못 챘을 리 없었다.

‘이거 큰일인데…… 당장 주중에는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있고, 주말에는 맨체스터 더비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하필이면 조별 리그 첫 번째 상대가 프리메라리가의 강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들은 호비뉴에 대한 것이라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어쩐다…… 어쩌지…….’

데샹의 고민이 깊어져 갈 때, 오솔이 불쑥 찾아왔다. 데샹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호비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오솔도 자신 못지않을 것이다.

‘왜 왔지? 설마…… 호비뉴랑 같이 못 뛰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데샹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아니, 오솔 선수 어쩐 일입니까?”

“감독님.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대로 호비뉴에게 공을 몰아주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에요.”

데샹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스타답지 않게 의견을 잘 따라와 주던 오솔이 마침내 반대 의견을 꺼낸 것이다.

“호비뉴의 돌파가 위협적이라는 데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확실히 녀석은 저보다 민첩하고 발재간이 뛰어나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패스할 때와 돌파할 때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골 욕심도 많아서 마지막 순간에는 반드시 슛으로 마무리를 하죠.”

좋게 말하면 자신의 장기로 경기를 풀어가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는 행동이었다.

‘더불어 욕심에 눈이 먼 행동이기도 하지.’

데샹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오솔이 하는 말들은 딱 그가 생각하고 있던 내용들이었다. 호비뉴는 이상한 고집으로 자꾸만 공격의 칼끝을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갔다간 결국 팀의 약점이 되고 말 것이다.

‘조금 더 설득해 보고 싶었는데…… 오솔까지 반대한다면 어쩔 수 없지. 호비뉴를 후보로…….’

데샹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오솔이 뜬금없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해주면 어떨까 합니다.”

“네?”

“골을 그렇게도 좋아하니 편하게 골만 넣을 수 있게 제가 좀 도와주려고요. 오늘 온 건 그래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으려고 온 겁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아, 별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비센테 칼데론에 도착한 맨시티 선수들은 대부분 낯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지난 시즌까지 라리가에서 활약했던 호비뉴는 예외였다.

“긴장할 것 없어. 얘네 별거 아니야.”

그러나 호비뉴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는 디에고 포를란과 세르히오 아궤로, 막시 로드리게스와 루이스 가르시아 등 위협적인 선수들로 가득했다. 게다가…….

[호비뉴의 돌파 시도! 아! 또다시 막히고 맙니다!!]

호비뉴가 상대를 아는 만큼 상대도 호비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사소한 습관이나 버릇부터 최근에 이상하리만치 골에 집착한다는 사실까지 모조리!

‘젠장! 뭐지 이 자식들? 오늘따라 왜 이리 단단해?’

호비뉴는 돌파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레알에서 뛸 때에는 형편없이 털렸던 수비수들이 이번에는 너무도 수월하게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

수비수, 욘 헤이팅아는 그런 호비뉴를 비웃었다. 투톱으로 뛰면서 정작 투톱의 연계가 없다? 이건 사실상 원톱이라고 봐야 했다.

‘뭘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고 있어? 패스가 없다는 걸 아는 이상 막히는 게 당연하지.’

호비뉴가 간파당하면서 공격이 뚝뚝 끊기는 맨시티와 달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시원시원한 공격을 이어갔다.

미드필더진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포를란과 아궤로의 투톱이었다. 전통적인 9번 역할을 200% 이상으로 수행하는 포를란과 재빠른 돌파로 수비를 흔드는 아궤로의 조합은 객관적으로 봐도 오솔-호비뉴 조합보다 뛰어났다.

‘과연 인간계 최강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네.’

오솔은 포를란의 슈팅이 가까스로 빗나가는 걸 확인하고 데샹 감독에게 신호를 보냈다.

‘벌써 세 번이나 막혔어요. 이제는 준비한 작전대로 할 겁니다.’

데샹은 한번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오솔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모드리치!”

오솔은 1.5선까지 내려와 공을 받았다. 호비뉴는 언제나처럼 전방에 남아 패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이!”

그래서일까, 오솔이 돌아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호비뉴의 모습이었다.

‘어디 공격수가 패스를 요구하나? 얌전히 패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야지!’

오솔의 패스는 오른쪽에서 침투하고 있던 지울리에게 향했다. 이번에도 호비뉴는 손을 들어 올리면서 패스를 요구했다.

파앙!

지울리의 패스가 그에게 굴러간다 싶은 순간, 오솔이 튀어나와 그 공을 가로챘다.

‘그렇게도 골이 넣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오솔은 호비뉴 쪽으로 공을 띄웠다. 호비뉴의 키보다 훨씬 높게 날아간 패스는 좌측에서 쇄도하고 있던 앙헬 디 마리아에게 닿았다.

앙헬 디 마리아는 공을 받자마자 크로스를 올렸다. 목표는 오솔의 머리였다.

‘편하게 주둥이 앞에까지 떠다 줄 테니, 잘 받아먹으라고!’

오솔의 헤딩은 흐트러진 수비진 사이의 빈 공간으로 떨어졌고, 그곳으로 호비뉴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슈팅을 시도했다.

출렁!

골이 들어갔다.

“나이스 패스!”

“크로스 좋았어!”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호비뉴 혼자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솔은 그의 등판을 찰싹 치며 말했다.

“좋은 슛이었다. 호비뉴.”

“어? 어, 어…….”

그리고 10여 분 후 호비뉴는 두 번째 골을 기록했고, 후반전 15분에 한 골 더 넣어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결코 밝다고 할 수 없었다. 혼자서 시도했던 돌파는 모조리 막혔고, 오솔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자신을 뺀’ 공격은 모조리 유효슈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뭐지 이건?’

이런 식의 공격이라면 굳이 호비뉴가 아니라 다른 누가 와도 골을 넣을 수 있었다.

경기는 3 대 1, 맨시티의 승리로 끝이 났고, 호비뉴는 해트트릭을 터뜨렸음에도 7점을 간신히 넘어가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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