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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80화 (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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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80화

“에이 씨! 하필이면 그때 조용해지네.”

권형수는 툴툴거리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숙소에서 한숨 푹 자고 싶었으나 자신만 보면 들들 볶는 감독 때문에 불가능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 적어도 라인 조절까지는 완벽하게 끝내야 해!’

귓가로 박성배 감독의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루가 멀다고 들었더니 이제는 아예 귀에 박힌 것 같았다.

‘그 양반은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수비만 하기도 힘든데 라인 조율에 빌드업까지…… 하아. 진짜 지친다, 지쳐.’

사실 권형수는 미드필더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케이스였다. 그래서 제법 발재간도 있고 패스도 잘한다. 다만 정작 수비수에게 가장 중요한 수비력이 조금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잘하는 상대를 만날 때마다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요컨대 실력에 비해 임무가 너무 과중한 게 그의 문제였다.

‘하아. 오솔 그놈 성격이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팀에서 입지도 탄탄하고. 이거 완전히 찍힌 거 아니야?’

오솔을 향한 그의 마음에는 부러움과 질투, 짜증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는 오솔의 실력이나 배경은 물론이고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는 환경까지도 모든 것이 부러웠다.

‘누구는 죽어라 달리고 부딪치고 깨지는데, 누구는 놀러 온 것처럼 시시덕거리기나 하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수비 훈련이 다른 어떤 훈련보다 더 철저하고 혹독한 편이다. 공격은 변칙적이고 자유로우며 개인 기량에 많이 기대는 반면, 수비는 규칙적이고 협동을 기본으로 하며 단체의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포백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공간 전체를 방어할 수 없기에 나온 말이었다. 네 사람의 수비수는 아귀가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공간을 모두 점유해야 했다.

그러나 둘이나 셋도 아니고, 넷이나 되는 사람이 일심동체를 이루는 것은 웬만한 훈련량으로는 불가능했다. 당연히 훈련 강도가 그만큼 세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오솔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저거…… 완전히 노답인데?’

면전에서 욕을 들은 것치고는 의외로 평온한 반응이었다.

‘이상하게 별 감흥이 없네.’

그만큼 그가 성장했다는 의미였고, 동시에 권형수라는 존재가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개미에게 물렸다고 해서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 본데? 하긴, 아직도 조직력이 엉망이니까. 조율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거야.’

오솔의 말대로 권형수의 짜증은 훈련 강도보다는 전술 숙련도의 문제에 더 가까웠다. 아무리 반복해도 손발이 안 맞으니 같은 훈련이라도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박 감독의 훈련은 강도만 놓고 보면 유럽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었다.

‘그렇다고 클럽에서 하는 훈련이랑 대표팀 훈련을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인 건 맞잖아.’

물론 당사자로서는 무척 힘들 것이다. 능력에 비해 많은 기대를 받고 있으니까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고. 그러나 오솔이 느끼기에는 단순한 투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솔직히 나만큼 바쁜 것도 아니잖아?’

실제로 오솔은 대표팀에 와서도 평소의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선수들의 훈련량의 1.5배는 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공격 전술을 짜고 해당 훈련을 진행하기까지 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선수단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투정을 부리든 욕을 하든 상관없으니까 제발 경기만 잘 치러다오.’

***

이윽고 오후 훈련이 시작되었다. 오솔과 친구들은 준비했던 패턴대로 훈련을 진행했다. 오솔의 스루패스를 받고 그대로 슈팅까지 가져가는 우주원의 모습이 보인다.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이제는 우주원도 제법 스트라이커 같았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시선을 끌 정도는 되겠네.’

이제는 훈련을 반복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공격 훈련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수비 훈련장에서 또다시 탄식이 들려왔다.

“아…… 형수야! 중앙에서 강하게 리드를 해야지, 왜 자꾸 타이밍을 놓쳐? 상대가 오른쪽으로 오면 다 같이 거리를 맞춰서 딱딱 이동하라고 했잖아! 그게 늦어지면 자꾸만 공간이 생긴다니까?”

오솔과 친구들은 잠시 훈련을 멈추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불같이 화를 내는 박성배 감독과 무언가 불만이 많아 보이는 권형수가 있었다.

“……저 녀석은 안 되겠는데?”

우주원이 “누구?”라고 묻자 오솔은 “권형수.”라고 짧게 답했다.

“권형수가 왜?”

“보니까 볼 키핑이랑 패스가 된다고 이것저것 시키려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임무가 너무 많아. 생각이 많으니까 이도 저도 안 되는 거라고.”

“그럼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지 않을까?”

“감독님이 하겠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말려.”

“그래도 감독님은 네 말은 좀 듣지 않을까? 너한테 공격을 도맡길 정도잖아.”

“아니, 불가능해. 감독님… 공격 쪽은 몰라도 수비는 확실하게 꿰고 있거든. 게다가 나는 수비는 문외한이잖아. 내 말을 들을 리 없어.”

올림픽 대표팀의 수비가 엉성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권형수에게 주어진 과중한 역할과 수비수들의 전술 이해력 부족이었고, 다른 하나는 박성배 감독이 지독한 이상주의자라는 것이다.

박성배의 별명은 ‘수비 전술의 대가’였다. 그는 국내에서 수비에 관해서는 최고를 논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이상론을 현실에 맞게 접목할 줄 모른다는 데 있었다.

‘빅 클럽에서나 시도할 수 있을 법한 전술을 짜 놓고 선수들을 거기에 맞추려니 그게 되겠냐고.’

전술이 너무 어려운 데다가 선수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감독이 원하는 전술의 6~70%밖에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계속 실수가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타협할 건 타협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박성배 감독은 다른 모든 감독이 그렇듯 고집이 센 편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술을 바꾸지 않았고, 권형수를 비롯한 선수들의 실력이 급상승하는 일도 없었다. 결국 한국팀은 대회 전날까지 수비를 안정화하는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

불안함을 안고 만난 첫 상대는 카메룬이었다. 카메룬은 아프리카 국가 특유의 경기 운영을 선보였다. 조직적인 공격보다는 개인의 기량에 기대는 공격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첫 경기는 한국이 2 대 1로 승리했다. 전반 초반, 수비진에서 실책성 플레이가 나오면서 실점했지만 곧바로 오솔을 위시한 선수들의 활약으로 역전했다.

‘후우. 이건 아닌데…….’

그러나 오솔은 좀처럼 만족하지 못했다. 수비적인 운영을 펼친 것치고는 상대에게 기회를 너무 많이 허용했기 때문이다. 만약 오솔의 슈퍼 플레이가 없었다면 어쩌면 질 수도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웃고 있는 속 편한 녀석도 있었다.

“하하! 좋아! 다들 잘했어. 그래도 1점으로 막았잖아! 다음 경기도 지금처럼 하면 돼!”

수비진의 리더 권형수였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또 만족하고 있었다. 승리에 기뻐하는 것이야 선수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오늘 경기에 만족한다는 듯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다.

‘다음 경기면 이탈리아전인데… 그때도 지금처럼 한다고? 개 털리겠다는 소린가?’

이겼다는 사실에 만족하기에는 오늘 보여준 경기력이 너무도 형편없었다. 오솔은 이따위 경기력에는 만족하지도 못할뿐더러 남은 경기들을 위해서라도 팀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술이든 선발 명단이든 뭐라도 바꿔야 할 텐데…….’

박성배 감독 쪽을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문제가 있다는 것만 알 뿐, 해결할 능력은 안 되는 사람이었다.

결국 문제는 이어지는 이탈리아전에서 터지고 말았다.

[아아… 벌써 두 번째 실점입니다. 쥐세페 로시의 속도에 또 당하고 맙니다.]

[지금 수비에 가담하는 선수만 7명인데 전혀 방어가 안 되고 있습니다.]

유벤투스 소속의 플레이메이커 지오빈코는 여민국이 그럭저럭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발 빠른 공격수 쥐세페 로시는 막을 수 없었다.

로시는 박스 안쪽을 제집처럼 넘나들며 한국 수비진을 유린했다. 이건 그의 마크맨으로 권형수를 찜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개인 기량과 경험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경기네요.]

[기량의 차이요?]

[네. 십 대 후반에 빅 리그에 데뷔한 이탈리아 선수들에 비해 우리 선수들은 실전 경험이 너무 적습니다. 당장 주전 대부분이 대학 축구팀에 있거나 K리그에서 막 데뷔한 선수들이지 않습니까?]

양 팀 선수들 사이에 실력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건 오솔도 부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오솔을 진짜로 화나게 한 것은 실력 차이가 아닌 생각과 태도의 차이였다.

“그래도 2점이면 잘 막은 거야. 상대는 이탈리아잖아! 우리도 나름대로 선방한 거라고! 괜찮아, 오늘 경기는 져도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어! 아직 온두라스전이 있잖아.”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들린 목소리였다. 이번에도 입을 연 것은 수비 실수로 두 골을 헌납한 장본인, 권형수였다.

‘지금이 자기 합리화나 할 때냐?’

오솔은 승부욕이라곤 1도 느껴지지 않는 변명 짓거리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이런 놈이 수비진의 중심에 있었으니 경기가 엉망이 되는 게 당연했다.

‘안 되겠다. 더는 못 참아.’

결국 오솔의 참을성도 한계에 다다랐다.

‘내가 이번에는 좀 얌전히 지내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답이 없어.’

오솔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감히 내 말에 토 달지 마라. 이 노답 새끼들아.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실력이 안 되면 체력으로, 그것도 부족하면 정신력으로 뛰란 말이야!’

특히 ‘자신보다 조금 뛰는 놈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는 제법 잘 들었다. 선수들은 오솔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죽을힘을 다해 뛰었고, 나름대로 근성을 보인 덕분에 동메달이라도 딸 수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내 이미지가 좋은 것도 아니고, 악역 몇 번 더 맡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결심을 굳힌 오솔이 막 나서려 할 때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민국이 그를 붙잡았다. 그는 오솔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야. 괜한 짓 하지 마.”

“하지만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굳이 네가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이럴 필요는 없어. 게다가 우리는 이미 병역 혜택도 받았잖아. 또 지금도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있고…… 굳이 나설 필요 없어.”

“……죄송하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대충 살고 싶지 않아요.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전 가능한 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정말 넌 못 말리겠다.”

여민국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그는 오솔의 열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미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좋은 팀에 속했으며, 병역 혜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너는 매번 이쯤 하면 됐다 싶을 때마다 날 일깨워 주는구나…….’

여민국은 오솔의 어깨를 잡고 내리눌렀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

“하지만!”

“그런 말은 이미지가 좋은 사람이 해야 더 잘 먹혀. 이를테면 나 같은…….”

여민국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권형수를 향해 다가가더니 놈의 멱살을 잡고 단숨에 일으켜 세웠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과격한 행동이었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한번 말해봐!”

“뭐야…… 왜 그러는데?”

“같잖은 자기 합리화를 듣고 있으려니 구역질이 나서 그런다!”

“뭐, 구역질? 야!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어? 틀린 말 했냐고! 솔직히 이탈리아 상대로 이 정도면 잘한 거 맞잖아!”

“두 골이나 먹혀놓고 할 말이냐 그게?”

여민국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주변에서 달려들어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확실히 평상시에 모범적으로 행동해왔던 여민국이 화를 내자 효과가 있었다. 이쯤 하면 됐다고 해이해지던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아온 것이다.

‘화, 확실히 효과가 좋은데? 분위기도 반성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여민국은 오솔과 눈이 마주치자 윙크를 보냈다.

“어때, 제법 효과가 좋지?”

“……진짜로 화난 거예요? 아니면 연극?”

“후후. 의도적으로 화를 낸 것은 맞는데. 완전히 연극은 아니었어. 사실은 나도 녀석에게 짜증이 좀 났었거든.”

사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여민국도 올림픽 참가를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있었다.

“팀이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해잖아. 프리시즌 훈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그거 다 빼고 왔는데, 저렇게 어영부영 뛰는 꼬라지를 보고 화가 안 나게 생겼어?”

시즌 준비를 포기하고 참여한 대회였다. 결과가 잘못되는 건 참아도 과정까지 엉망인 건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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