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79화
7월 중순. 오솔은 고막에 경미한 부상을 달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한여름의 베이징은 정말 찌는 듯이 더웠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지열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는데, 현지에서 제공한 훈련장이 워낙에 열악해서 훈련에도 지장이 생겼다.
오솔은 땀으로 흠뻑 젖은 목덜미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그나마 미세먼지는 심하지 않네.’
중국 정부는 자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올림픽을 위해 약 두 달간 대기질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고, 덕분에 올림픽이 개최되는 기간 동안은 미세먼지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장을 바라보는 오솔의 마음속은 미세먼지가 잔뜩 낀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이게 뭐 하는 건지…….”
한창 수비 훈련이 진행되는 올림픽 대표팀의 모습은 오합지졸이라는 네 글자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지난 2년간 합을 맞춰왔던 사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술했다. 옆에 있던 고영주가 애써 변명거리를 찾았다.
“더워서 그럴 거야. 그래. 더워서 그런 거겠지…….”
그러나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경기가 열리는 8월은 지금보다 더우면 더 더웠지 시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날씨 탓을 해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이번에는 메시랑 제대로 붙나 싶었는데…….’
이번 대회 최고의 팀은 메시가 있는 아르헨티나였다. 이들은 말만 23세 이하 대표팀이지 실제 구성은 거의 국가대표 선수단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오른쪽에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있었고, 전방에는 FIFA 20세 이하 월드컵을 우승시키고 온 득점왕 아궤로가, 왼쪽은 앙헬 디 마리아, 플레이메이커로는 ‘밭 가는 축신축왕’ 리켈메가 있었다.
‘여기에 중원을 마스체라노와 페르난도 가고가 꽉 잡아주는 구성이니…… 사실상 이기는 게 불가능한 상대나 다름없지.’
다행히 한국과는 조가 떨어져 있어서 붙는다고 해도 최소 준결승에서야 만날 팀이었다.
‘조별 리그만 넘어서면 바로 8강이었지? 확실히 경기가 적은 건 좋네.’
참가팀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그만큼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일정을 떠올리고 있을 때, 훈련장 한쪽이 시끄러워졌다.
“막아!”
“걷어내야지!”
“마크해, 마크!”
“그걸 놓치면 어떻게 해?”
수비수 하나가 공격수의 마크를 놓치면서 허무하게 실점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지금 하는 꼬라지만 보면 잘하면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하기 전에 돌아갈 수도 있겠는데?’
오솔은 실수를 한 선수, 권형수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슬프게도 저 녀석은 주전 선수 중 하나였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중앙 수비수.
“하아. 아무래도 망한 판 같은데…….”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자. 아직 2주 정도 남았으니까 그사이에 수비도 좋아지겠지.”
“후우. 그래. 한숨만 쉬고 있다고 뭐가 바뀌겠어. 연습하자 연습!”
오솔은 고영주, 우주원 등과 함께 다시 필드로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솔 등이 자리한 훈련장에는 코치나 스태프들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스태프…… 그러니까 박성배 감독과 그 밑의 코치들은 모두 수비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고, 오솔이 있는 곳에는 가장 젊은 코치 딱 한 사람만 있었다.
우주원은 불안하다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정말 이래도 되나?”
“감독님이 이렇게 하라잖아. 수비부터 잡아가는 게 최우선 과제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축구라는 게 수비만 잘한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공격 훈련을 왜 선수인 너한테 맡겨?”
우주원의 말대로 박성배 감독은 훈련 진행을 오솔에게 맡겼다. 아니, 따로 전술 지시도 없었으니 이건 사실상 공격 전술까지 온전히 떠넘겼다고 봐도 좋았다.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오솔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는데? 돌려 말하면 우리 마음대로 공격해도 된다는 소리잖아. 정해진 규칙대로만 뛰는 것보단 차라리 이편이 더 좋을 수도 있어.”
“하지만…….”
“뭐가 걱정이야. 우리가 발을 맞춰온 게 몇 년인데…….”
확실히 선수들끼리 마음만 잘 맞는다면 정해진 공격 패턴이 없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강팀 같은 경우는 공격수들에게 최대한 자유롭게 뛰도록 해서 창의적인 공격을 가능케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오솔이 지난 리버풀전에서 보여준 플레이 메이킹 능력 덕분이었다. 그때 선보였던 드리블과 패스, 돌파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할 정도로 수준 높은 것이었고, 박 감독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공격을 풀어갈 생각이었다.
“내가 감독님에게 공격의 전권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다들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 흐흐흐. 기대하라고. 내 훈련은 결코 만만치 않을 테니까.”
“저 자식 저거 눈 돌아갔다.”
“무력에 권력까지 쥐다니 이제 저놈은 아무도 못 막아…….”
고영주와 우주원의 입에서 걱정이 튀어나왔다. 두 사람도 운동선수인 만큼 일반인에 비하면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솔만큼 승리에 대한 갈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오솔은 그런 그들을 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올림픽인데 메달을 목에 달아야 할 것 아니야. 2년 가까이 군대에서 썩느니 한 달 바짝 힘든 게 낫잖아?”
아직 면제를 받지 못한 우주원의 눈에 독기가 들어왔다. 뜨거운 베이징의 날씨보다 군대 훈련소 바닥이 더 뜨거울 것은 명확했다.
오솔은 이어서 고영주에게도 말했다.
“형은 솔직히 한 것도 없이 면제받았잖아요. 올림픽까지는 죽어라 뛰어야 맞는 겁니다.”
“누, 누가 뭐래? 나도 아시안게임에서 부진했었다는 건 알고 있어!”
“흐흐흐! 그럼 다들 내 지시에 순응하겠다는 걸로 알고…… 이제 훈련을 시작합니다! 잘 따라와요. 돌대가리들은 이해하기 힘든 방식이니까.”
“그런 걸 네가 알려주겠다고?”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반문했다.
* * *
오솔은 데샹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전술판을 들고 설명에 들어갔다.
“자, 내가 이렇게 밑으로 내려와서 공을 잡았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중앙으로 좁혀와야지.”
“그래, 그거야! 이제야 이해를 하네!”
오솔은 바둑돌을 옮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쓰리톱을 이루고 있던 돌이 오솔의 손길이 닿으면서 조금씩 움직였다. 전방에 있던 녀석이 아래로 내려가고, 좌우에 있던 돌이 전방으로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투톱과 공격형 미드필더의 구성으로 변화했다.
“이때는 둘이 투톱처럼 움직여야 해. 내가 움직이는 것에 맞춰서.”
오솔은 가짜 9번의 개념을 짧게 설명하고, 두 사람의 움직임이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 자세하게 일렀다. 오솔의 주 역할이 찬스 메이커인 만큼 앞선 두 사람의 움직임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 내가 할 수 있을까?”
우주원이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었다. 고영주는 그나마 스트라이커로 뛴 경험이 많아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전통적인 윙어였던 우주원은 전방에서 골을 노린다는 게 영 어색하기만 했다.
오솔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할 수 있지.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빈 공간을 찾아서 공을 받고 집어넣는다. 엄청 쉬운데?”
“기만자 새끼…….”
“뭐라고?”
“아, 아니야.”
“……솔직히 단기간에 포지션 변경을 하는 건 어렵겠지. 하지만 이게 안 되면 이길 수 없어. 우리 팀 전술이 얼마나 수비적인지는 다들 알고 있잖아?”
“하긴…… 공격에 가담하는 건 사실상 우리 셋밖에 없더라.”
박성배 감독은 조별 리그 이탈리아전을 기준으로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연습시키고 있었다. 단순히 4백을 수비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중앙 미드필더 세 사람까지 전부 수비형 미드필더로 구성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수비 전술이었다.
“그나마 민국이 형이 가끔 공격에 가담해주긴 하는데, 솔직히 감독님 눈치가 보여서 거의 못 올라오는 상황이긴 하지.”
“그러니까. 평범하게 쓰리톱으로 갔다간 이길 수 없다는 거야. 셋이서 골을 만들려면 무조건 포지션 변형을 시도해야 해. 그리고 요즘에는 클래식 윙어보다 윙포워드가 더 각광받고 있잖아. 이참에 너도 스타일에 변화를 좀 줘야 한다고.”
오솔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우주원도 보다 공격적인 역할에 도전할 마음이 생겼다. 이에 오솔은 투톱과 공미 조합에 이어 추가적인 변형과 스위칭에 관련해서도 설명을 시작했다.
오솔은 각각의 상황에 맞는 움직임을 설명하고 이를 실제로 훈련하는 식으로 연습했는데, 하루에 3개씩 매일 다른 패턴을 훈련했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처음의 패턴으로 돌아왔다. 즉, 오솔과 친구들은 이 짧은 시간에 약 스무 가지의 공격 패턴을 익힌 것이다.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오솔은 2주밖에 안 되는 훈련 기간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나마 조별 리그에서 이긴다면 추가로 일주일의 시간이 더 주어지겠지만, 당장 조별 리그에서는 호흡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도 밥을 같이 먹자는 녀석들이 없네.’
오솔은 식판을 들고 입맛을 다셨다. 소집된 지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그는 여전히 여민국, 고영주 등 몇몇 선수들하고만 어울리고 있었다.
감독이 수비진을 따로 단련한 덕분에 다른 선수들하고는 훈련 시간에도 얼굴을 마주치기 힘들었고, 덕분에 훈련 외 시간에도 서먹서먹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어색할 줄이야.’
사실 오솔은 23세 이하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선수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린 선수들이니까 맨시티라는 배경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좀 달랐다. 요즘 아이들은 다른 것인지, 아니면 오솔 정도 되는 선수라면 배경이 안 보일 수 없는 것인지, 선수들은 오솔을 흡사 아이돌처럼 대했다.
‘이건 어째 아시안컵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은데?’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분데스리가에 이어서 프리미어리그까지 제패한 선수는 한국 축구사에 전무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오솔은 박해진과 차호진을 합쳐놓은 것보다도 영향력이 컸다.
게다가 오솔이 벌어들이는 돈을 생각하면 그들이 느끼는 거리감은 더 커진다. 오솔의 주급은 그들의 최소 몇백 배, 많으면 몇천 배나 더 많았다. 그러니 가벼운 농담조차 건네기 힘든 상대로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성지훈이 왜 그렇게 완장질을 해댔는지 조금 알겠네.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뛰었다면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게다가 전생의 경험이 있는 오솔과는 달리 성지훈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선수였으니 자만심이 깃들기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나저나 애들이랑 좀 친해져야 하는데…….’
오솔은 슬쩍 선수들이 모인 곳에 식판을 놓았다. 딱히 사람 사귀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팀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리더십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에이스’ 스킬을 발동시켜서 추가적인 버프를 좀 받을까 하는 욕심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다들 훈련은 잘들 돼가?”
그래서 오솔이 먼저 말을 걸었다. 억지로 친근하게 대하려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지만 버프로 얻을 능력치를 생각하며 참았다. 다행히 오솔이 먼저 다가가자 다른 선수들도 하나둘씩 마음을 열었다. 차마 먼저 말을 걸지 못했을 뿐, 다들 그를 동경하고 있었다.
“유럽은 어떤 느낌이야? 독일이랑 영국 중에 어디가 더 좋아?”
“챔피언스 리그는 어땠어? 맞다, 카카는 실제로 보면 얼마나 잘해?”
흡사 팬미팅 현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오솔은 귀찮은 걸 참아가며 하나하나 성실히 답해줬다. 상대를 동료가 아닌 한참 후배들이라고 생각하자 그나마 짜증이 덜했다.
그런데 오솔은 나름대로 친절하게 행동한 것을 아니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잦은 실수로 훈련 내내 혼났었던 권형수였다.
“에이 씨바, 밥맛 졸라 떨어지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말을 한 순간이 오솔과 동료들이 잠시 대화를 쉬는 타이밍이었다. 덕분에 식당 안에 권형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오솔의 테이블에서 시선이 쏟아지자 권형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조용해지냐.’
사실 권형수는 고된 훈련과 잦은 실수로 짜증이 잔뜩 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솔이 잘난 듯이 유럽 축구에 대해 떠들어대자 순간적으로 욱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솔에게 진심으로 덤빌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윽! 뭐라고 변명하지?’
막상 이렇게 오솔과 다른 선수들의 관심을 받게 되자 되레 수치심이 느껴졌다. 방금의 욕설이 별것도 아닌 놈의 추잡한 질투였기 때문이다.
“흠흠! 바, 반찬이 이게 뭐야!”
권형수는 괜히 반찬 탓을 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의 등 뒤로 오솔의 한심하다는 눈빛이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