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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76화 (17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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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76화

레이나에게 주말 예능의 최강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사실 레이나는 실수가 많은 선수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리버풀이라는 빅 클럽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실수 하나하나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황당한 것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는 공을 잡으려다가 알까기로 실점한 적도 있었고, 패스를 받다가 넘어져서 실점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혼자 달리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도 하는 둥 정상급 골키퍼가 저지르는 실수라기엔 너무 황당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 오점이 있는 레이나였으나 오늘은 달랐다.

[아! 막았습니다! 레이나!]

이건 무조건 골이다 싶은 슛을 멋지게 막아낸 것이다. 레이나는 공이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고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다.

“으라라랏차!”

와아아-! 레이나! 레이나-!

안필드 관중 모두가 레이나의 이름을 연호했다. 가끔씩 예능을 찍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레이나는 확실히 좋은 골키퍼였다.

‘참나, 이걸 막네. 역시 레이나라고 해야 하나? 쉬운 슛은 못 막으면서 이렇게 어려운 슛은 또 기가 막히게 막아내는군.’

오솔은 황당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날카로운 크로스와 제대로 꽂힌 헤딩슛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골키퍼가 와도 못 막을 슛이었는데, 레이나가 이걸 막을 줄은 몰랐다.

아쉬운 것은 눈앞에서 골을 놓친 만주키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오! 이게 안 들어가네! 미안, 오솔. 절호의 기회였는데.”

“실수한 것도 없는데 뭐가 미안해. 방금은 막은 놈이 비정상인 거고 넌 연습한 대로 잘했어. 자신감을 가져!”

오솔은 만주키치를 위로했다. 골을 놓친 것은 아쉬웠지만 준비했던 공격이 먹혀들었다는 점에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기회는 또 찾아올 거야. 다음번에 넣으면 돼!”

“알았어!”

한편 리세는 레이나의 선방 덕분에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만약 골이 들어갔다면 공격과 수비를 모두 실패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그의 머릿속에는 오솔이 자신의 크로스를 막아낸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젠장. 그 정도 반응속도라니…… 이게 말이 돼? 동영상으로 봤던 훨씬 빠르잖아?’

그 생각에는 베니테즈 감독 역시 동의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플레이였지만 베니테즈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오솔의 반응속도는 더 이상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역습은 호날두의 그것 못지않게 위협적이라는 것을. 베니테즈는 리세를 불렀다.

“욘! 작전 변경이다. 일단 전반전은 수비에만 집중하도록 해!”

“예? 하지만…….”

“분석이 잘못됐다. 놀랍게도 녀석은 시즌 막판에 이르렀는데도 전혀 지치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시즌 초반보다 더 빨라졌다.”

베니테즈의 예상대로 오솔은 꾸준한 자기 관리와 타고난 지구력 덕분에 시즌 초와 비교해도 컨디션에 차이가 없었다. 여기에 능력치까지 올랐으니 당연히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리세를 비롯한 리버풀 수비수들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하면서 거의 풀타임에 가까운 출전을 해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해도 사람인 이상 열 달 넘게 뛰다 보면 몸이 지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경기력의 차이로 이어졌다.

‘쳇! 겨우 한 번 막혔을 뿐인데…….’

리세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상대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오솔은 상대팀의 에이스이자 전술의 핵심이 아닌가. 분석에 문제점이 있었다면 그 즉시 모든 작전을 중단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리세. 뭐가 더 중요한지 알고 있겠지? 오솔을 철저하게 막기만 해도 네 몫은 다했다고 할 수 있어. 괜히 욕심부리지 마.”

“쳇! 알았어요. 수비에 집중할게요.”

“좋아. 녀석의 공격 패턴은 기억하고 있지?”

“알고 있어요. 기습적인 중거리 슛과 라인을 따라 달리는 치고 달리기죠.”

“그래. 그 두 가지만 막으면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것도 오솔이 측면으로 뛰었던 순간들을 전부 분석한 결과였다. 오른발잡이인 오솔로서는 로번이나 메시처럼 반대발 윙어 특유의 안으로 접고 들어오는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위력적인 모습이라고 해봐야 측면 돌파와 크로스, 중거리 슛이 전부인 것이다.

‘중앙은 휘피애와 캐러거가 잘 틀어막고 있다. 역습 상황만 아니라면 제공권에서 밀릴 일도 없어. 게다가 레이나도 오늘은 제대로 집중하고 있으니까 중거리 슛도 잘 막을 수 있을 거야.’

베니테즈는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 *

결국 리세는 처음의 작전과는 달리 오버래핑을 자제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고, 오솔은 이러한 변화를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 공이 하프라인을 넘어섰는데도 리세는 여전히 하프라인 뒤에 처져있었던 것이다.

‘뭐지? 설마 수비만 하겠다는 건가?’

오솔과 동일한 위치에서 속도 경쟁을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결과였다.

‘뭐, 상관없지. 이건 이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니까.’

이렇게 되면 리버풀의 왼쪽 공격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맨시티로서는 오른쪽과 중앙만 집중적으로 방어하면 되는 편한 상황이 되었고, 반대로 리버풀로서는 조금 답답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만약 작년의 리버풀이었다면 제라드 혼자서 어떻게든 경기를 풀어가고자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제라드의 패스! 토레스에게 닿습니다!]

토레스가 패스를 받은 상황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수비 라인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고, 좌우 날개는 넓게 서서 중앙에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중앙에 약간의 공간이 생기기는 했지만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 선수가 전무했다.

[주변에 선수가 없네요.]

캐스터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토레스가 깊숙한 위치에서 공을 잡긴 했지만 동료는 없고 수비진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백패스 외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만약 지금 공을 받은 게 호날두였다면 백패스 이후 공간을 찾아 달리며 리턴 패스를 요구했을 것이고, 아데바요르였다면 오히려 수비가 자신에게 집중되게 유도하며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토레스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수비진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중앙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든 것이다. 그가 노리는 곳은 리차드 던과 새롭게 팀에 합류한 미셸 바스토스 사이의 공간이었다.

[토레스! 달려듭니다! 빠릅니다!]

토레스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공격수였다면 굳이 돌진하지 않았을 평범한 패스를 기어이 득점 기회로 만들어내는 공격성과 저돌성이다.

사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대비하고 있는 수비진을 혼자 힘으로 뚫을 수 없었다. 지금 토레스가 하는 건 영웅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빨간 토레스는 놀이를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의 돌파는 무모한 것이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그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왔다.

파바박!

던이 앞을 가로막아 보지만 토레스는 순간적인 가속으로 빈 공간을 파고들었다. 전성기의 카카와 비견될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던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 무모한 돌파를 시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비진이 자리를 미리 선점하고 있는데 속도로 뚫어내겠다? 그의 사전에 이런 공격수는 처음이었…….

‘아! 한 놈 더 있었지.’

맨체스터 시티의 연습 경기에서는 이런 장면이 수도 없이 나왔었다. 그리고 던은 그때마다 상대의 등판을 보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당연히 오솔이었다.

‘이 녀석도 오솔과 같은 과로구나.’

던은 토레스의 이름이 적힌 붉은 유니폼을 보면서, 또한 그의 발을 떠난 공이 골망을 뒤흔드는 것을 보면서 한탄을 쏟아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다…….’

먼저 골 찬스를 잡은 건 맨시티였으나 득점에 먼저 성공한 것은 리버풀이었다. 수비력의 차이가 느껴지는 일합(一合)이었다.

* * *

이후 경기는 리버풀의 근소한 우세로 진행되었다. 중원 지역을 제라드와 사비 알론소, 그리고 마스체라노가 꽉 틀어쥔 덕분이었다.

이에 맞서는 맨시티의 중원 조합은 지울리와 모드리치 그리고 조이 바튼이었는데,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주도권을 더 많이 내줄 뿐,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모드리치는 한 사람 몫을 해주고 있었으나, 문제는 지울리와 바튼이었다. 이들은 사비 알론소와 제라드를 만나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원인은 지울리와 바튼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지울리는 앞서 말했던 대로 노화로 인한 체력 저하가 문제였고, 바튼은 그를 대체할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어서 거의 전 경기에 풀타임으로 뛰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것은 당장 통계만 확인해도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미드필더들의 활동량 비교가 나오고 있네요. 아…… 확실히 리버풀 선수들이 더 많이 뛰어주는군요. 제라드도 그렇고 다들 정말 대단한 활동량입니다.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까지 병행했었는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베니테즈 감독의 적절한 로테이션 덕분입니다. 강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로테이션을 돌린 덕분에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죠. 반면 데샹 감독은 확실한 베스트 11을 선정하고 그 선수들 위주로 경기를 치르는 성향이 강합니다.]

물론 데샹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맨시티가 따로 유럽 대회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일정에 여유가 있는 게 사실이니까. 게다가 맨시티는 주전과 비주전의 차이가 커서 4위권에 들기 위해서는 매 경기 베스트 11을 동원하는 게 좋았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서 이기고, 내년에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하게 된다면 좋든 싫든 선수들을 로테이션해야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골키퍼는 기본이고, 좌우 날개와 수비수까지 전방위적인 영입이 필요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라 중원이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지울리와 바튼의 부진 때문에 그나마 제 몫을 해주고 있던 모드리치까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일명 ‘마지우개’로 불리는 마스체라노가 모드리치만 죽어라 물고 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스체라노가 공을 커트해냅니다! 오늘은 모드리치 선수도 고생 좀 하는데요?]

[마스체라노는 끈질기기로 유명하죠. 저렇게까지 따라다니면 어떤 선수라고 해도 활약하기 힘들 겁니다.]

[알론소에게 공을 넘기는 마스체라노! 알론소가 전방으로 길게 차줍니다! 이야, 이 두 선수의 조합이 정말 좋은데요?]

[제라드까지 셋이죠. 어쨌든 맞는 말씀입니다. 이 정도면 첼시의 램파드, 에시앙, 마켈렐레와 맞먹을 만큼 훌륭한 조합이죠.]

리버풀의 중원은 역대급 조합이라는 극찬에 걸맞은 움직임을 선보였다. 마스체라노가 틀어막고, 알론소가 공을 운반하며, 제라드가 공격을 책임지는 형태로.

[제라드! 바튼을 몸싸움으로 압도합니다!]

[제라드도 바튼처럼 빈민가 출신에 터프한 선수거든요! 게다가 체격은 제라드쪽이 훨씬 좋습니다! 이러면 밀릴 이유가 없죠!]

제라드가 공을 잡고 전진하자 전방에 있는 토레스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졌다. 제라드와 토레스의 호흡은 이미 EPL에서 정평이 나 있는 상황. 당연히 맨시티의 수비진 또한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긴장한다고 막아지면 제-토 라인이라는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제라드는 거침없이 전진해서 수비수 한 명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더니, 측면으로 빠져나가던 토레스에게 공을 넘겼다.

중앙에 생긴 공간으로는 베나윤과 디르크 카윗 등이 파고들었고, 토레스는 측면에서 보싱와와 맞붙게 되었다.

크로스나 올릴 수 있을까 싶은 상황. 그런데 놀랍게도 토레스의 선택은 슛이었다. 반대편 골대의 모서리를 노리고 찬 것이다.

파앙!!

기습적인 슛이자 빠르고 정확한 슛이었다.

조 하트는 있는 힘껏 몸을 날려봤으나, 아쉽게도 그는 이번 슛도 막지 못했다.

[아아! 골입니다! 토레스! 맨시티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두 번째 골이에요!]

그렇게 경기는 단숨에 2 대 0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당장의 실점보다 맨시티의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 * *

‘좋지 않아.’

오솔은 동료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늘 한 줌의 여유를 갖고 있던 그였지만 오늘만은 웃을 수 없었다. 혼자서 게임을 뒤집기에는 리버풀의 전력이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동료들이라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모를까. 다들 이렇게 지쳐서는…….’

맨시티의 전력이 많이 강해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선수 구성이 얕을 수밖에 없었다. 포지션당 두세 명의 주전급 선수를 보유한 빅 4에 비하면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아직 챔피언스 리그는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올법한 상황인 것이다.

‘젠장!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지금 맨시티에서 공격을 풀어줄 수 있는 건 결국 오솔뿐이었다. 그가 해내지 않으면 이대로 두들겨 맞기만 하다가 끝날 공산이 컸다.

‘어차피 중원에서 밀리는 거 중원을 과감하게 건너뛴다.’

사실 이것이 데샹 감독의 복안이었다. 애초에 중원 싸움에서 밀릴 것을 예상하고 오솔을 측면으로 돌려서 그를 중심으로 공격을 풀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파아앙-!

마침 콤파니의 패스가 필드를 가로질렀다. 휘피애와 캐러거, 마스체라노까지 버티고 있는 중앙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헤딩을 못 하는 리세를 겨냥한 패스였다.

베니테즈 감독은 무릎을 탁하고 내려쳤다.

‘와이드 타깃 전술이구나! 이런…… 이건 예상왼데?’

와이드 타깃 전술은 주로 만주키치가 맡아왔었기 때문에 설마 오솔에게 적용할 줄은 몰랐다.

‘예상을 벗어나는 전술이긴 한데……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중앙에서 골을 넣어줄 선수가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인데?’

중앙을 건너뛰어야 한다면 차라리 만주키치를 타깃맨으로 썼어야 했다. 굳이 오솔을 타깃맨으로 쓸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헤딩 패스를 받아줄 공격수가 부실해서 효력이 없는 전술이 되는 셈이었다.

‘설마 바보? ……일 리는 없고. 뭐지?’

그 대답은 오솔이 할 수 있었다. 이 한 번의 플레이로 말이다.

“그렇게 측면만 막아서 되겠냐?”

오솔은 리세가 측면에 치우친 모습을 확인하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놀랍게도 공을 몰고 가는 발은 취약하다고 알려진 왼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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