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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67화 (167/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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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67화

지난 생에 오솔은 첼시에 머문 시간 동안 존 테리와 정말 질리도록 훈련했었다. 그래서 그의 생활 습관이나 자주 하는 버릇, 부상으로 불편한 부위까지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처음 불륜을 저지른 때가 2007년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알고 있지.’

확실히 지난 크리스마스는 여러모로 역사적인 날이었다. 맨체스터를 뒤흔든 사건들은 물론이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큰 사건이 있었으니 말이다.

‘시간대가 안 맞아서 전반기에는 써먹지 못했지만, 이제는 둘이 만났다는 게 확실하니까 괜찮겠지.’

오솔은 첼시 쪽 벤치를 확인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웨인 브리지의 얼굴이 영 좋지 않았다. 부상과 주전 경쟁 때문에 생긴 근심이었으나, 오솔이 보기에는 약혼녀를 뺏긴 남자의 우울감으로 느껴졌다.

‘짜샤, 같은 남자로서 내가 복수해 주마. 비록 지금은 내가 미울지 몰라도 나중에는 내게 고맙다고 할 거다.’

불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웨인 브리지와 존 테리는 경기장에서는 물론이고 사적으로도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 둘은 같은 클럽 소속에 국가대표 동료인 데다가 서로 마음까지 잘 맞아서 애인을 대동한 2 대 2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문제는 그 2 대 2 데이트를 계기로 존 테리가 브리지의 애인인 바네사에게 흑심을 품었다는 점이다. 존 테리는 아내가 있음에도 바네사를 유혹했고, 놀랍게도 바네사 역시 약혼자인 브리지를 놔두고 존 테리와 만남을 가져갔다.

‘둘 다 똑같은 것들이지.’

오솔이 바네사와 존 테리를 싸잡아 욕하고 있을 때였다. 존 테리가 다가와 으르렁거렸다.

“동료의 아내와 바람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냐?”

무시무시한 눈빛과는 달리 목소리는 개미만 했다. 꼭 겁먹은 강아지가 이빨을 내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오솔은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내가 동료의 아내라고 했던가? 말을 잘못했네. 정확히 말하면 동료의 애인이었지. 아니, 약혼녀라고 해야 하나?”

“뭐, 뭣?”

존 테리의 작은 눈이 크게 뜨였다. 오솔의 발언이 보다 정확해지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이다.

‘인간아. 그 여자가 그렇게 좋았으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랬으면 나쁜 놈이라고 욕할지언정 서로 사랑하긴 했구나 인정했을 텐데…….’

지금 아내와 꾸린 가정을 잃기는 싫고 친구 애인과는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심지어 바네사는 존 테리의 아이를 임신하기까지 했었다.

‘낙태하라고 돈까지 쥐여줬으면 뻔한 거지. 사랑은 개뿔, 그냥 유희였던 거야.’

오솔은 혼란에 빠진 존 테리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인데 왜 그렇게 예민해? 누가 보면 정말로 바람이라도 피우는 줄 알겠네. 하하!”

덕분에 존 테리의 혼란은 한층 가중되었다.

원래 사람들은 확실한 결론이 나기 전까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나 이렇게 중요한 일에서는 더욱더 그랬다.

[조이 바튼! 다시 한번 공을 뺏어옵니다!]

[바튼 선수. 최근에 재계약을 논의 중이라더니 정말 잘하네요. 이 정도 해준다면 당장 재계약해야죠!]

바튼의 패스는 전방에 있던 일라누에게 닿았다. 시드웰이 따라붙으며 몸싸움을 걸었으나 일라누는 특유의 드리블 실력을 발휘하며 공을 지켜냈다.

‘지금이다.’

썰을 풀 타이밍이었다. 오솔은 뒤로 물러나면서 어깨로 존 테리의 가슴팍을 가볍게 툭 쳤다.

“그런데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말이야. 친구라고 믿었던 놈에게 배신당하면 어떤 기분일까? 아니지, 친구한테만 배신당한 건 아니구나. 약혼녀한테도 배신을 당했으니 더 상심이 클 것 같은데…… 어때?”

“이…… 이 자식…….”

“흐흐흐. 나 같으면 진짜 가만 안 놔뒀을 거야.”

오솔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여 존 테리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첼시의 벤치 쪽으로 돌아갔다.

“벤치만 달구는 친군데 불쌍하지도 않냐?”

“……!”

그 순간, 존 테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웨인 브리지를 향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죄책감에 무너져라! 죄책감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야.’

오솔은 존 테리의 시선이 돌아간 틈에 반대편으로 달리며 공을 받았다.

박스 안에서 아무런 방해도 없이 패스를 받은 오솔. 이 말은 곧 골이 들어갔다는 표현이나 마찬가지였다.

출렁!

[고오오올! 오솔! 곧바로 두 번째 골을 집어넣습니다!]

오솔이 세리머니를 하는 사이 중앙 수비수 카르발류가 존 테리에게 다가갔다.

“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시끄러워! 네 일이나 잘해! 젠장…….”

존 테리는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신경이 한쪽에 쏠려 있어서 도저히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뭐?”

“겨우 한두 번 실수한 것 가지고 떠들지 말라고, 알았어? 내가 아무리 실수해도 네가 올 시즌에 보여준 모습에 비하면 훨씬 나으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너……! 후우, 그래. 닥쳐주지. 누구 말인데 거역하겠어.”

카르발류의 떨떠름한 표정은 존 테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지금 존 테리에게는 카르발류의 표정이 어떻다던가 하는 사소한 문제는 중요치 않았다. 그보다는 오솔이 그의 불륜을 어떻게 알았으며, 어디까지 알고 있고, 또 그 말고 누가 더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다.

“젠장. 빌어먹을 노란 원숭이 새끼가…….”

존 테리의 발언에 카르발류의 어깨가 움찔했다. EPL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절대 엄금하고 있었다. 중계 수익의 많은 부분을 아시아 시장에서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EPL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징계가 타 리그보다 강했다.

‘쳇, 마음대로 하라지.’

그러나 카르발류는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첼시에서는 감독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사람이 존 테리였다. 당장 무리뉴를 쫓아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괜히 말을 꺼내봐야 미운털만 박힐 게 뻔했다.

한편 오솔은 세리머니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몰래 두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둘이 싸웠나?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은데? 존 테리야 나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해도 카르발류는 왜 저러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두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중앙 수비수들이 서로 믿지 못하고 호흡이 엇나가면 그 사이로 돌파했을 때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 다음은 저 안쪽으로 파고들어 봐야겠어.’

오솔이 한창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지울리가 옆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한 거야, 오솔? 저 존 테리를 두 번이나 바보로 만들다니…….”

“후후. 지울리, 혹시 흔들린 우정이라고 알아요?”

“흔들린 우정?”

“네. 그걸로 존 테리를 정신없이 흔들어놨죠.”

“뭔가 하긴 했구나? 뭔지는 몰라도 아무튼 잘했다. 상대가 정신을 못 차렸을 때 한 골 더 넣자.”

“두 골이고, 세 골이고 더 넣어야죠.”

오솔은 이번에는 어떤 말로 신경을 긁을까 고민하며 전방으로 올라갔다.

* * *

‘이 자식은 위험해.’

존 테리는 오솔의 뒤통수를 보며 살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는 어떻게 알게 되었냐느니,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섣부른 문답을 하는 건 오히려 그의 잘못을 사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이 녀석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고, 바네사와의 관계도 정리하면 다 끝나는 일이야.’

존 테리가 무서운 각오를 하고 있을 때였다.

파앙-!

이번에도 오솔에게 패스가 연결되었다. 오솔은 일전에 생각했던 대로 패스를 받는 동시에 몸을 중앙으로 틀었다. 존 테리는 한발 늦게 따라왔고, 정면의 카르발류는 중앙을 커버하기 위해 움직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른데? 하지만…….’

카르발류가 중앙을 커버하러 가는 바람에 왼쪽에 다시 공간이 생겼다. 오솔은 한 번 더 치고 가려고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런데 그 순간,

“오솔, 위험해!”

지울리의 경고가 들려왔다. 동시에 오솔의 귓가에 잔디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들었다기보다는 느껴졌다. 등 뒤를 축축하게 적시는 눅눅한 살기가.

‘백태클이다!’

이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오솔은 드리블을 하기 위해 뻗던 왼쪽 발을 재빨리 땅에 디뎠다. 지금 모든 체중이 오른발에 실려 있었다. 이 상황에서 디딤 발에 태클을 당하면 최소 6개월에서 심하면 은퇴까지 해야 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콰가각!

어느새 테리의 태클은 오솔의 발뒤꿈치에 거의 닿아 있었다. 오솔은 본능적으로 발을 들어 올리며 몸을 눕혔다. 버티려고 하면 더 큰 부상을 입고 말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충격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했다.

퍼어억!

존 테리의 스터드에 걷어차인 발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니, 어찌 보면 오솔이 몸을 띄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개새끼가!’

오솔은 발끝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 짧은 시간에 수십 번도 넘게 욕설을 내뱉었다. 흡사 트럭에 치였을 때 느꼈던 아찔함이 그의 온몸을 덮쳤다.

‘넌 뒤졌다, 이 새끼야.’

오솔은 옆으로 떨어지며 팔꿈치를 들어 올렸다. 목표는 존 테리의 큰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티 나게 찍은 것은 아니고 갑작스러운 낙하에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올린 척했다.

퍼벅!

추락 직후, 오솔은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확인했다. 지금은 존 테리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젠장. 이게 지금 괜찮은 건가? 아프긴 무지 아픈데?’

오솔은 발끝의 감각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다리를 움직였다. 다행히 아프기는 엄청나게 아팠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컨디션 80.6%

컨디션도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한다면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역시 계속 뛰기는 좀 불안하단 말이야.’

하긴, 잘못하면 발목이 뒤틀리거나 부러질 뻔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오솔이 터프하다고 해도 부상의 위험을 안고 계속 뛸 수는 없었다.

‘당장 병원부터 가 봐야겠어. 2 대 0까지 벌려놨으니까 이대로 교체해도 되겠지.’

오솔이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오솔과 존 테리 근처로 양 팀 선수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이런 씨바 새끼가 감히 발목을 노려? 심판! 방금 봤죠? 이건 그냥 담가 버리겠다는 뜻이잖아요!”

만주키치가 부족한 영어로 열심히 화를 냈고,

“이 잡종 놈이! 그따위 태클은 어디서 배운 거냐! 당장 일어나 이 새끼야. 그렇지 않으면 네놈 모가지에 똑같은 태클을 먹여주마!”

죽이겠다는 말을 창의적으로 하는 바튼도 있었다. 덕분에 화를 내러 왔던 지울리나 다른 선수들은 이 두 선수의 폭발을 말리기 바빴다.

첼시 선수들은 일단은 존 테리를 보호하려 그 앞을 막았으나, 그들도 존 테리의 태클이 얼마나 악의적이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변호할 말이 없었다.

그저 램파드만이 ‘일단은 다쳤으니까 의료진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냐’라며 진화에 나섰을 뿐이었다.

“다쳐? 다치긴 뭘 다쳐. 오솔에 비하면…… 어라? 다, 다치긴 했네?”

만주키치는 램파드와 이마를 맞대고 소리치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존 테리의 입에서 핏물과 함께 하얀 치아 몇 개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오솔은 그 모습을 슬쩍 확인하곤 다시 다리를 붙잡았다.

‘후후. 따로 연습하지도 않았는데, 아직까지 발치 실력이 안 죽었구나.’

존 테리의 11번과 21번 치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흔히 토끼 이빨이라고 하는 앞니 두 개였다. 그 꼴을 보아하니 앞으로 라면 먹기는 힘들어 보였다.

“오솔 괜찮나?”

어느새 의료진이 도착해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교체해야 될 것 같아요. 병원에 좀 가 봐야겠어요.”

이제는 교체를 검토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심판은 더 늦기 전에 판정을 내렸다.

[손에 쥔 카드는 일단 빨간색입니다. 네. 역시 존 테리에게 주는군요.]

[오솔 선수에게도 가나요?]

심판은 카드를 잡고 잠시 방황하더니 오솔에게 돌아서면서 안주머니에 카드를 집어넣었다. 오솔의 행동에서 고의성을 찾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긴,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주저 없이 보복까지 할 사람은 오솔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 존 테리는 붉게 물든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퇴장이나 부러진 앞니가 아니라 오솔이 말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저놈이 바네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이에 오솔은 끝까지 의뭉스러운 얼굴로 대응했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에 존 테리의 얼굴을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이후 퇴장 명령에 따라 얼굴이 피투성이인 존 테리는 제 발로 걸어나갔고,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오솔은 들것에 실려 나갔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장면이었다.

“아, 참! 지울리!”

오솔은 경기장을 떠나기 전, 지울리를 불러 손을 잡았다.

“경고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됐어.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설마 네가 반응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걸. 그나저나 정말 대단한 반사 신경이었다. 그 정도 반응이면 검사 결과도 괜찮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네. 그럼 뒤를 부탁해요. 먼저 가 볼게요.”

“그래.”

이후 오솔이 얻어낸 프리킥은 지울리가 멋진 골로 연결했다.

그랜트 감독은 숀 라이트필립스를 빼고 중앙 수비수인 알렉스 코스타를 투입했는데, 존 테리가 빠지고 포르투갈어를 쓰는 선수들끼리 호흡을 맞추자 일시적으로 수비력이 상승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첼시의 상황은 이미 최악이었다. 점수는 이미 3 대 0까지 벌어졌고, 한 명 퇴장까지 당했다. 이제는 축구의 신이 도와주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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