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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63화 (16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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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63화

이후 오솔의 가족은 다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 오솔과 여민국이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하는 김에 가족들 역시 한국에서 며칠간 쉬기로 한 것이다. 민주는 확인 차 물었다.

“나머지 두 경기에는 비기기만 해도 1위 확정이지?”

그녀는 원래부터 축구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대표팀 일정을 세세히 꿰고 있을 만큼 축구 도사가 되어 있었다. 모두 남편을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육아로 정신이 없었을 텐데 그건 또 언제 확인했대.’

그러니 오솔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렇긴 한데 우즈벡전에서 일찌감치 이겨서 본선 진출을 확정 지으려고. 본선 진출 여부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건 좀 그렇잖아.”

한국은 아시아 지역 예선에 시리아와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바레인 등과 한 조에 묶여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한국이 가장 높았으나, 규정상 조 1위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보니 방심할 수 없었다.

“날이 추우니까 감기 조심해. 너무 무리해서 훈련하지 말고. 참,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오랜만에 한국에 머무는 건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식을 먹어야지. 이번에는 내가 솜씨를 좀 발휘해 볼게.”

“어쭈, 자신감이 대단한데? 할 수 있는 요리는 있어?”

“치, 영양사님께 많이 배웠거든!”

오솔의 식사는 영양사의 계획대로 철저히 준비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녀가 요리를 배울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그녀 나름의 목표를 위해서.

“그럼 뜨끈한 닭 칼국수를 기대해 봐도 될까?”

“닭 칼국수? 알았어. 내가 제대로 보양식을 만들어줄게.”

“너무 어려우면 배달해서 먹자. 괜히 장모님 귀찮게 하지 말고.”

“걱정 마. 엄마 손은 빌릴 필요도 없어. 내가 의외로 금손이라니까?”

“……제발 먹을 수 있게만 만들어줘.”

“뭐?”

미주는 울컥한 표정이 되었다가 쌍둥이들이 멀뚱멀뚱 보는 것을 확인하고 억지로 표정을 풀었다.

“후우, 대한이랑 주희 덕분에 산 줄 알아.”

“그럼~ 내가 우리 쌍둥이 덕분에 하루하루 살고 있지.”

“에휴. 말이나 못 하면……. 참, 영국에 돌아가는 비행기 언제라고 했지?”

“다음 날 밤 비행기를 타고 바로 가야 해.”

프리미어리그 일정이 빠듯했다. 11월에 남은 경기도 두 경기나 되었고, 12월은 6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연말 연초는 박싱데이 때문에 2주 동안 무려 4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확실히 겨울 휴식기가 있는 분데스리가보다 힘든 일정이었다.

“이번에는 겨울에도 바쁘겠네. 우리 자기 힘들겠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출전 수당은 꼬박꼬박 들어오니까 그걸 위안 삼으려고.”

“그럼 그나마 여유가 있는 건 지금뿐이겠네?”

“아마도? 그래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은 푹 쉬고 돌아가려고.”

“그냥 쉬기만 할 거야? 내가 닭 칼국수도 해주는데?”

“그, 그냥 안 쉬면 뭘 어쩌게?”

“흐응. 자기 퇴소하는 날 애들을 친정에 맡기려고 했는데.”

민주는 음흉하게 웃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후훗! 자기야. 그날 집에 아무도 없어.”

오솔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럼 나도 없으면 안 될까?”

민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아니, 나는 자기 없으면 안 된다고.”

“죽을래? 그날 뒤풀이 같은 거 하지 말고 빨리 들어와. 알았지?”

“넵!”

오솔은 어째 장외 경기가 가장 힘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파주로 떠났다.

이후 오솔이 활약한 한국 올림픽 대표는 어렵지 않게 조 1위를 달성했다. 이로써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일본, 호주, 그리고 개최국 중국으로 결정되었다.

그 후 오솔은 민주의 독 칼국수…… 아니, 닭 칼국수를 먹으며 진땀을 흘려야 했다. 식탁에는 그것 외에도 몸에 좋다는 음식들이 즐비해 있었다.

‘영양 과다야…….’

한편 같은 시간, 데샹 감독은 웸블리에서 치러지는 잉글랜드 대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는 맨시티 출신 선수인 리차즈와 촐루카가 출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입 명단에 이름을 올린 만주키치, 모드리치, 그리고 스르나까지 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꼭 직관해야 했다.

‘크로아티아는 대부분 1군을 기용했군.’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크로아티아였으나, 그럼에도 잉글랜드를 맞아 기존 전력을 거의 대부분 출전시켰다. 페트리치 대신 만주키치가 출전하고 코바치 대신 크란차르가 나왔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나에겐 잘 된 일이지 저들의 호흡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만주키치는 투톱 중 왼쪽에 섰고, 스르나는 오늘 왼쪽 미드필더로 나왔다. 거기에 모드리치 역시 좌중간에 위치해서 서로 긴밀한 위치에서 호흡 맞추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상대가 리차즈라는 게 조금 걸리지만 말이야.’

퍼디난드와 존 테리를 믿고 띵까띵까 놀았던 리차즈는 오늘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훈련 중 우측 풀백인 글렌 존슨이 발가락 부상을 입은 탓이다.

‘이래서야 누굴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군.’

데샹은 입맛을 다셨다. 리차즈가 잘해주면 물론 좋겠지만, 영입 명단에 든 선수들이 리차즈를 상대로 애를 먹는 모습을 보이면 솔직히 실망할 것 같았다.

와아아-!

경기는 막상막하였다. 잉글랜드는 개인기가 좋은 윙어 조 콜을 필두로 게임을 풀어나갔으며, 크로아티아는 영입 명단 삼인방이 리차즈를 마음껏 요리하고 있었다.

만주키치는 제공권에서 리차즈를 압도했고, 모드리치는 의표를 찌르는 패스로, 스르나는 빠른 돌파와 각도기로 잰 듯한 날카로운 크로스로 상대를 곤란에 빠트렸다.

‘이건 좋지 않은데.’

데샹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크로아티아가 공격하면 리차즈가 진땀을 흘렸고, 잉글랜드가 반격하면 조 콜이 촐루카를 돌파했다. 그렇게 경기 내내 맨시티에 속한 두 선수가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스코어는 1 대 1이 되었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오솔이 추천한 모드리치가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보니 더 대단한데? 대체 오솔은 어떻게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지?’

루카 모드리치와 니코 크란차르의 중원 조합은 잉글랜드의 제라드, 램파드 조합을 상대로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아무리 제라드와 램파드가 호흡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은 엄연히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미드필더들이었는데 우위를 점하다니.

단적으로 말해 일 대 일로 붙었을 때도 크게 밀리지 않거나 혹은 그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소리였다.

‘모드리치의 실력은 이미 EPL 수준이야. 어쩌면 오늘 경기로 몸값이 확 뛸 수도 있겠는데?’

사실 몸값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구단주가 워낙에 큰 손이니까. 다만 유로 2008을 앞둔 상황이라 선수 개인이 이적을 꺼려할지도 몰랐다. 몇몇 선수들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팀을 옮기는 걸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에 영입하는 게 제일 좋은데…….’

데샹의 시선은 크로아티아 진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후 치열했던 두 팀의 대결은 경기 막판, 모드리치의 중거리슛으로 끝이 났다. 사실은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이었는데, 로빈슨 골키퍼가 다 잡은 공을 놓치면서 그대로 골로 연결되고 말았다.

‘잉글랜드는 데이비드 시먼 이후로는 안정감 있는 골키퍼가 나오지 않는군.’

결국 그 골을 마지막으로 휘슬이 길게 울리고, 경기는 3 대 2 크로아티아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장 한편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리차즈의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에 치명적인 실수는 로빈슨 골키퍼가 저질렀지만 리차즈 역시 다섯 번이 넘는 돌파를 허용하면서 이번 경기 팀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이런…… 상심이 큰 모양인데?’

데샹은 곤란하다는 듯 턱을 짚었다.

클럽 감독들은 선수가 A매치에 갔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컨디션이 망가지는 것도 싫어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실책과 비난으로 선수의 멘탈이 흔들리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싫어했다.

특히 걱정인 것은 이번 경기가 잉글랜드가 유로 2008에 진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는 점이다.

전 국민의 관심이 쏟아지는 경기.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리차즈는 무려 두 번이나 뿌지직거렸고, 그의 실책은 고스란히 골로 연결되었다. 덕분에 내년 여름,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다른 나라 경기를 보면서 손가락만 빨게 생겼다.

‘걱정이네. 이제 막 클럽도 끊고 훈련도 열심히 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자칫 이 일로 열정을 잃는 건 아닐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골키퍼가 첫 번째 타깃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실수가 워낙에 임팩트가 강해서 리차즈의 실수는 그럭저럭 묻힐 수 있었다.

그다음날 나온 기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마이카 리차즈, 팀은 지든지 말든지 나 홀로 파티?]

[늦은 밤, 유명 모델과 함께하는 모습이 포착된 리차즈.]

모 잡지사에서 실수를 저질렀던 몇몇 선수들의 뒤를 밟았고, 하필이면 리차즈가 모델 메이슨과 만나는 모습이 찍혀 기사로 나간 것이다.

이 기사는 그렇지 않아도 분노가 들끓고 있던 팬들에게 기름을 끼얹는 일이자 골키퍼에게 향하던 비난의 화살이 리차즈에게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젠장. 그날 메이슨을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리차즈는 단 한 번의 판단 미스로 모든 일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는 여론의 질타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홈팬들에게도 야유를 들어야 했다. 당연히 재계약 역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그년이랑 어떤 사이야?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아니지?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그렇지?]

[나쁜 놈! 당장 연락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자기야 지금이라도 내게 돌아와 우리 진짜 행복했잖아.]

[죽여 버릴 거야. 개자식!]

지금은 이름을 지워버린 여자 하나가 그에게 미친 듯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얘 이름이 뭐였지? 에밀리, 애쉬? 젠장, 그렇지 않아도 짜증 나 죽겠는데, 별게 다 귀찮게 하고 있네.’

이런저런 악재가 겹치면서 리차즈의 경기력 역시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2무 2패. 리차즈가 A매치에서 돌아오고 나서 치른 네 경기의 결과였다. 그는 한 경기에 한 번씩은 꼭 실수를 저질렀고, 덕분에 맨시티는 이제 완전히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건 말도 안 돼.’

정상까지 올랐다가 단번에 바닥까지 꼬꾸라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빨리 추락해서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되짚어볼 시간도 없었다.

* * *

그러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12월 18일이 되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박싱데이 때문에 남들보다 일주일 빠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는데, 만수르는 선수들과 그들의 파트너를 위해 맨체스터 번화가에 위치한 근사한 레스토랑과 클럽을 통째로 빌렸다.

시간이 되자 선수들이 제각기 독특한 패션을 뽐내며 등장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카메라가 쫓는 대상은 선수가 아니라 그들의 파트너였다. 가십을 좋아하는 언론에서는 축구 선수의 여자 친구나 아내의 패션과 외모에도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어떤 미친놈이? 눈이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텐데?”

오솔과 민주는 서로의 의상을 한 차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맨시티 최고의 스타가 등장하자 셔터 찍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오오! 저 드레스 좀 봐, 예쁜데?”

“오솔의 사복 패션도 생각보다 괜찮은걸? 한국인들은 다 저렇게 옷을 잘 입나?”

사람들은 오솔 부부의 패션 센스에 크게 놀랐다. 오솔은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남자들 못지않게 멋들어진 스타일을 뽐내고 있었고, 민주 역시 우아하면서 세련된 스타일의 드레스로 시선을 끌었다.

보통 축구 선수는 개인 시간의 대부분은 운동과 휴식으로 보내기 때문에 옷을 잘 못 입는 편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역시 호날두가 있었다.

‘10년이나 앞선 스타일이다. 이 녀석들아.’

오솔은 몇 안 되는 과거의 유산에 감사하며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도착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아는 척을 해왔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데샹 감독을 찾을 때였다. 처음 보는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오솔 선수. 그이에게 말 많이 들었어요.”

“누구요?”

“아,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죄송해요. 전 조지아 맥닐이라고 해요. 맨체스터에서 제일 투정이 심한 남자랑 만나고 있죠.”

그게 누군가 하고 있을 때, 그녀의 뒤에서 조이 바튼이 나타났다.

“조지아,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 거야?”

“후훗. 당신 흉을 조금 보고 있었죠.”

바튼은 평소처럼 불만에 찬 표정이었으나 맥닐에게 무어라 말은 못 하고 가볍게 콧방귀만 뀌었다.

“참, 바튼. 감독님은 어디 계셔?”

“……이쪽이야.”

“민주야. 나 잠깐 갔다 올게.”

“응, 걱정 말고 다녀와. 나는 새로 사귄 친구에게 그동안 갈고닦은 회화 실력을 뽐내고 있을 테니까.”

오솔은 바튼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자 친구예요? 아니면 아내?”

“아직 여자 친구야.”

아직이라고 하는 걸 보니 결혼 생각은 있어 보였다.

‘하긴, 그러니 그렇게 얌전했겠지.’

다혈질로 유명한 바튼이 화를 참는 모습은 쉽게 구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넌 결혼했다고 그랬지? 그럼 아내야?”

“네. 오랜만에 아이들을 맡기고 나왔죠.”

“그렇군.”

오솔과 바튼이 데샹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어느덧 민주와 맥닐은 십년지기 친구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말은 잘 통해?”

“말은 그럭저럭 의미만 통하는 수준인데, 그래도 생각은 진짜 잘 맞는 것 같아.”

“잘 됐네.”

“참, 맥닐은 대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배우고 있대. 오늘 우리의 패션을 보고 너무 세련돼서 놀랐다는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맥닐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노섬브리아 대학에서 배우고 있어요. 나중에 제 이름을 건 옷가게를 운영하는 게 꿈이죠. 그래서 말인데…… 끝나고 지금 의상을 제 사진에 담아 가도 될까요?”

“어머, 그러지 말고 지금 다 같이 한 장 찍어요.”

맥닐은 오솔 등과 겨우 한 살 차이로 또래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민주는 그녀와 친근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민주가 많이 외로웠나 보다.’

오솔은 조금은 미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저렇게 사교성이 있는 친구가 자신 때문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참, 두 사람은 언제 결혼한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그러니까 성인이 되자마자 했어요.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를 다녔거든요.”

“어머, 그렇게 일찍?”

둘은 축구 선수의 여자 친구, 혹은 아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대화가 잘 통했다. 맥닐이 비교적 쉬운 단어로 알아듣기 쉽게 말해준 덕분이기도 했고.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물론 오솔과 바튼, 두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두 사람 다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신이 났네요.”

“……그러게.”

두 사람이 하릴없이 창밖을 내다볼 때였다. 레스토랑 입구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중년의 남자 하나가 막 차에서 내려 입장하던 리차즈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뭐, 뭐야?”

“이 자식! 감히 내 딸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죽여버릴 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전 그런 적 없어요!”

“이런 뻔뻔한 놈. 내가 엘리스 애비다!”

“엘리스? 그게 누군데요?”

“뭐? 죽여 버리겠다! 이놈!”

엘리스의 아버지는 알코올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달려들었고, 그대로 리차즈에게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물론 그의 태클은 경호원들에게 막혔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고스란히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내 딸의 순정을 짓밟아놓고 멀쩡할 줄 알았냐? 두고 봐! 내가 꼭 너를 법정에 세울 테니까!”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딸, 순정, 그리고 분노한 아버지. 이건 100%, 아니, 200% 성추문 사건이었다.

오솔은 기자들이 엘리스의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따는 걸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가관이네요. 지랄 염병이고요. 그야말로 욕망의 산물입니다.”

“내가 저 새끼 언젠가 사고칠 줄 알았다.”

바튼 역시 리차즈를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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