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9화
한편 데샹 감독은 생각보다 이른 실점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괜히 맞불을 놓았나?’
그는 다소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공격적인 선수 구성을 했다. 오솔을 최전방 공격수로, 일라누를 처진 공격수로 놓는 4-2-3-1이 그것이다. 지역 더비 매치, 그것도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경기라는 점을 감안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테베즈의 적극적인 압박 때문에 공수전환이 자꾸만 늦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습이었다.
‘과연 퍼거슨 감독이다. 약점을 제대로 찌르는구나.’
데샹은 눈을 힐끗 돌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벤치를 확인했다. 편안한 얼굴로 껌을 질겅이는 영감님의 모습이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역시 그 인터뷰는 도발이었나?’
그는 사흘 전에 있었던 인터뷰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기자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퍼거슨의 발언이 떠오른 것이었다.
‘퍼거슨 감독님은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수 우선 영입을 두고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지금 맨시티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수비수지 공격수가 아닙니다. 아마 데샹 감독님도 동의할 겁니다.’였죠.’
공격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써놓고 겁쟁이처럼 수비만 할 거냐는 물음.
과연 더비 매치라고 해야 할까? 퍼거슨의 도발이 매서웠다.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올까 봐 신경이 쓰였겠지.’
데샹의 짐작대로 퍼거슨은 맨시티가 수비적인 운영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맨유를 제외한 빅 4와의 경기에서 수비적인 4-3-3을 활용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리 짐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때 보여줬던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첼시·리버풀전에서는 지고 말았지만 바튼의 퇴장과 리차즈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무승부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
퍼거슨이 데샹을 자극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맨유로서는 맨시티가 공격적으로 나와 주는 편이 훨씬 상대하기 편했다.
‘인터뷰에선 공격적으로 맞받아치고, 실제로는 수비적인 전술을 꺼냈어야 했어.’
그랬다면 전술적인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실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끊임없이 기만하는 음흉함.
이는 감독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술 중 하나였다.
데샹 감독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기롭게 응수하고, 또 정면으로 맞서는 선택을 했다.
‘우리는 결코 수비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가 있으니까요.’
이는 선수들에게 보내는 신뢰감의 표현이자 자신감의 표출이었으며, 동시에 욕심이었다.
‘욕심이지, 지나친 욕심.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퍼거슨 감독과 붙어 보겠어.’
데샹은 퍼거슨과 한 번쯤 정면으로 붙어보고 싶었다. 살아있는 전설과 마주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퍼거슨이기에 붙어보고 싶었다.
“감독님, 감독님!”
“아, 오솔 선수. 무슨 일이죠?”
데샹의 의식은 오솔의 등장과 함께 돌아왔다.
“스위칭을 할까 합니다.”
“스위칭이요? 누구랑요?”
데샹의 물음에 오솔의 눈길이 한쪽으로 향했다. 지울리와 에브라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오른쪽 측면. 그곳이 오솔의 목표였다.
덕분에 데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9번인 오솔이 측면으로 돌아갈 이유를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아니, 왜…….”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절 믿고 허락해 주세요.”
오솔의 말대로 이렇게 토론할 시간이 없었다. 당장 경기는 재개되었고, 오솔은 전방으로 돌아가 맨유의 수비진을 압박해야 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데샹은 오솔의 눈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확신에 차 있는 영롱한 눈빛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 무언가 생각이 있겠지.’
마침 그도 대안이 없었다. 일단은 1점 차이를 유지하며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에 반전의 기회를 잡을 생각이었으니, 그사이에 오솔의 작전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좋아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봐요.”
“감사합니다.”
오솔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섰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모습에서 베테랑이나 갖고 있을 법한 침착함이 느껴졌다.
“하하.”
데샹은 저도 모르게 오솔을 따라 웃었다. 선수에게 기대는 상황, 그렇게 걱정했던 상황이 펼쳐졌음에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 * *
‘남은 시간은 20분. 좋아. 이 정도 시간이라면 적어도 한두 번은 기회가 찾아온다.’
오솔은 오른쪽으로 빠지며 지울리에게 윙크를 보냈다.
“미안해요. 본의 아니게 덩치들을 떠넘기게 됐네요.”
“됐어. 어차피 직접 부딪힐 일은 별로 없을 거야. 가짜 9번이라면 나도 너 못지않게 잘할 수 있으니까.”
지울리는 그 말과 함께 퍼디난드와 비디치 사이로 쏙 들어갔다. 평균보다 작은 지울리가 평균보다 훨씬 큰 선수들과 붙게 되자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지울리라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공간을 찾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오솔은 지울리의 실력이 중앙에서도 발휘되기를 바라며 측면에 섰다. 그곳에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 보이는 에브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다. 국민 바보야.”
오솔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말려 올라갔다.
한편 이러한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퍼거슨의 턱이었다. 그는 오솔의 위치를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껌 씹는 걸 멈췄다.
‘오솔을 측면으로 돌린다고?’
퍼거슨은 일주일 전부터 오솔의 자료를 확인했었다. 전력분석관이 일차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케이로스 수석코치가 추가로 분석·정리한 자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측면에 선 경우는 없었는데.’
오솔이 측면으로 이동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수비진을 흔들려는 목적이었다. 당연히 외곽으로 나가는 건 마무리 단계 직전에서야 보이는 모습이었고, 그러다가도 공간이 생겼다 싶으면 오솔은 다시 중앙으로 파고들어 골을 노렸다.
지금처럼 아예 측면에 선 경우는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뭘 노리는 거지?’
퍼거슨은 데샹의 얼굴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천천히 턱을 움직였다. 껌을 씹자 평상심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속을 잘 감추는군.’
데샹은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두 눈이 그랬다. 미리 준비해 왔던 비책이라기엔 자신감이 부족한 눈빛이었으나, 그렇다고 요행을 바란다고 보기에는 묘한 확신이 깃들어 있는 눈빛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90년대에 퍼거슨의 옆을 지켰던 마크 펠란 수석코치가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감독님이 에릭을 바라보는 모습을 꼭 닮았네요.’
에릭, 에릭 칸토나. 올드 트래퍼드의 왕이라 불렸던 사나이이자, 조지 베스트와 브라이언 롭슨의 7번을 이은 사나이.
쿵푸 킥을 비롯해 경기장 안팎으로 말이 많았던 칸토나였으나, 퍼거슨은 언제나 그를 믿었다. 그가 놀라운 플레이로 팀을 구원하리라는 것을.
실제로 데샹의 눈빛은 그 옛날 에릭 칸토나를 바라보던 퍼거슨의 그것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그저 경기를 즐기는 축구팬처럼 기대감을 갖고 바라보는 눈동자. 이는 웬만한 신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스태프는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덕분에 퍼거슨 감독은 데샹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잡아내지 못했다. 동시에 그러한 눈빛을 이끌어내는 선수가 어떤 마술을 부리는 지도…….
* * *
‘읏! 정말 힘이 좋은 녀석이군.’
에브라는 오솔을 따라가려다 주춤거리듯 물러났다. 가벼운 옆걸음이었음에도 전해지는 무게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박해진과는 전혀 다른 타입이야.’
박해진은 성실하고 영리한 선수였지만, 빈말이라도 몸싸움에 능하다고 할 수 없는 선수였다. 물론 그는 영리한 선수답게 그러한 점을 역으로 이용해 반칙을 쉽게 얻어내곤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몸싸움이 안 되는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하기 힘들었다. 저 호날두조차 몸에 근육을 붙이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까딱 잘못해서 공간을 내줬다간 억지로 밀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오솔이 윙어로 뛸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과연 얼마나 뛰어난 전술적 역량을 지녔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방금 접한 힘은 흡사 지난 시즌 드록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했다. 일단 속도가 붙으면 막기 쉽지 않아 보였다.
‘측면에서의 경험은 내가 압도적으로 많다. 결코 공간을 내주지 않겠어.’
에브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가 매주 막아야 하는 상대가 누군가. 절정에 다다른 호날두였다. 몸싸움과 민첩성이 톱클래스인 선수를 상대로 수시로 수비 훈련을 해왔던 그였기에 오솔이 아닌 다른 누가 온다 하여도 상관없었다.
“오솔!”
마침 맨시티의 공격 상황이었다. 맨시티 선수들 역시 오솔이 측면에 서 있는 모습에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그에게 패스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솔은 언제나처럼 첫 번째 패스 옵션이었다. 그 모습에서 맨시티 선수들이 오솔에게 갖고 있는 신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아. 급할 것 없어. 침착하게 막자.’
에브라는 오솔이 안으로 접고 들어오는 움직임에 능하다는 점을 떠올리고, 주의를 바짝 끌어올렸다. 만약 오솔이 중앙으로 드리블을 한다면 바로 끊어낼 생각이었다.
“어디 속도로 한번 붙어볼까?”
오솔은 한국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측면을 따라 치고 달렸다. 에브라는 깜짝 놀라 오솔을 옆으로 밀어냈다. 조금이라도 진로를 늦추려는 동작이었다.
쿵!
“으헉!”
그러나 어설픈 몸싸움은 오솔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에브라가 안쪽으로 크게 밀리며 그에게 측면 공간을 내주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젠장!”
에브라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오솔의 피지컬을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돌파를 허용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그는 발 빠른 선수답게 곧장 오솔을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도 오솔과의 격차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빠르다! 몸싸움만 좋은 게 아니라 드리블 스피드 역시 갖추고 있었어.’
그동안 오솔과 속도 경쟁을 펼친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앙 수비수였다. 적어도 키가 180cm는 넘어가는 덩치들이란 말이다. 그래서 오솔이 그들을 상대로 빠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도, 위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한데 직접 상대해 보니 이게 웬걸? EPL에서 가장 빠른 측면 수비수, 에브라가 붙었음에도 오솔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중앙을 최우선으로 막는다.’
에브라는 측면을 내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골라인을 향해 직선으로 뛰었다. 이 루트대로라면 바깥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오솔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갔다. 이렇게 되면 크로스는 막기 힘들겠어.’
중앙을 막아서는 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두 사람의 거리는 멀어졌고, 오솔은 측면에서 자유자재로 플레이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크로스가 빗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어.’
에브라는 오솔이 크로스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자신의 실책으로 골을 허용하지 않기를.
뻐엉-!
“이런 씨불!”
평소에 무척이나 점잖은 에브라였으나, 오늘따라 유독 입이 거칠었다. 그러나 맨유의 팬들은 그런 에브라의 모습에 십분 공감하고 있었다. 이 크로스는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오솔은 무회전만이 그의 장기가 아니라는 듯, 회전을 잔뜩 건 날카로운 크로스를 선보였고, 혹시 베컴이 돌아왔나 착각하게 되는 크로스가 박스를 가로질렀다.
반 데 사르 골키퍼는 공의 회전을 보고 뛰쳐나가길 포기했고, 퍼디난드와 비디치 역시 그 높이와 속도를 보고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패스와 슈팅이 둘 다 90에 이른 오솔의 크로스였다. 공을 만질 수 있는 건 그의 허락을 받은 사람뿐이었다.
[페트로프!!]
마르틴 페트로프가 그 목표였다. 중앙에 위치한 퍼디난드-비디치 조합은 올 시즌 고작 22골만 허용한 미친 조합이었다. 맨유와의 경기에서 중앙을 공략해서는 답이 없었다.
‘만주키치였다면 확실했을 텐데.’
오솔은 페트로프의 쇄도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발은 누구보다 빠르지만 슈팅이나 헤딩 등 나머지 기술은 기대 이하인 페트로프. 과연 그가 크로스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다닷!
페트로프의 선택은 헤딩이었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공은 전력을 다한 러닝 점프가 아니면 도달하기 힘든 높이로 날아왔고, 그는 공을 향해 빨려들 듯 달려야 했다.
파앙-!
키는 브라운이 페트로프보다 5cm 정도 더 컸다. 그러나 헤딩의 순간, 실제 높이는 페트로프 쪽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투웅!
그러나 헤딩의 임팩트는 다소 부정확했다. 헤딩을 잘하는 선수라도 소화해내기 힘든 크로스였으니 당연했다.
공은 바닥을 한 번 찍더니 골대 좌중간으로 폴짝 뛰었다. 속도는 줄었으나 대신에 예측 불가능한 궤적을 그린 것이다.
타앗!
이건 영락없이 들어갔다 싶은 순간, 반 데 사르의 길쭉한 팔이 아래에서 위로 크게 휘둘러지며 공을 쳐 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게 아닐까 싶은 놀라운 반응속도였다.
그러나 나이를 거꾸로 먹는 이는 반 데 사르만이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뤼도비크 지울리의 반응속도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아싸, 개꿀!”
지울리의 발에 걸린 공은 반 데 사르의 머리 위로 가볍게 넘어갔다. 그의 말대로 아주 달달한 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