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4화
32장 가짜 9번
‘전방에서 패스를 받고, 공을 소유한다. 그리고 항상 골을 노린다.’
이것은 정통적인 9번 스트라이커가 취해야 했던 움직임이다.
가짜 9번도 기본적인 개념은 같다. 다만 그 위치와 최종 목적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위치까지 내려와 공을 받고, 소유한다. 그리고 전진 패스를 넣는다.’
이것이 가짜 9번의 역할이었다.
오솔은 걸음을 옮겨 미드필더들과 간격을 좁혔다. 어느새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에게서 단번에 패스를 넘겨받을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오솔!”
과연 하만은 하나 더 생긴 옵션을 향해 패스를 보냈고, 마크맨이 없는 오솔은 어렵지 않게 공을 받을 수 있었다.
“막아!”
시끄러운 외침과 함께 중앙 수비수인 윌리엄 갈라스가 오솔의 뒤에 바짝 붙었다. 아니, 거의 충돌하다시피 강하게 들이받았다. 갈라스는 이미 월드컵에서 오솔의 몸싸움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반칙이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큭! 이건 완전히 반칙이잖아? 넘어질까?’
오솔은 크게 휘청거렸다. 이대로 넘어질지 아니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계속 플레이를 이어갈지 고민할 정도로 강한 차징이었다.
‘아니야. 지금은 내가 버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
가짜 9번 역할을 수행하려면 동료들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이 필수였다. 그런데 현재 맨시티 선수들은 수비를 위해 후방으로 많이 물러난 상황이었다. 여기서 오솔이 쉽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면 동료들도 공격 가담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갈라스가 나를 따라 나오면서 공간이 생겼을 거야. 그곳을 공략하면 된다.’
오솔은 억지로 균형을 되찾으며 몸을 옆으로 틀었다. 비록 완전히 돌아서지는 못했으나 이 정도 각도라면 충분히 패스할 수 있었다.
‘남은 수비수는…….’
클리쉬와 투레, 사냐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20대 초중반의 젊고 발이 빠른 선수들이었다. 이들과는 속도 싸움을 해서 이기기 힘들었다.
‘좋아. 너로 정했다.’
오솔은 어느 정도 균형이 돌아왔다고 느끼는 순간 패스를 시도했다. 목표는 경험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지울리였다. 그라면 상대 수비진의 경험이 적다는 점을 적절히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윽!”
오솔은 패스 직후 다시 휘청거렸다. 패스를 할 때 갈라스가 손을 뻗어 방해한 탓에 간신히 찾았던 균형을 다시금 잃은 것이다.
‘젠장. 바로 쫓아가야 하는데.’
지금 맨시티는 지울리와 페트로프, 그리고 오솔까지 단 세 사람이 역습을 전담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 사람이라도 빠졌다간 파괴력이 반 이하로 뚝 떨어지고 만다.
‘늦게라도 올라간다. 혹시나 흘러나오는 공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오솔은 앞으로 고꾸라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어렵사리 균형을 되찾았을 때였다. 갑자기 경쾌한 알림음이 들리며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업적 달성!]
-업적, [천 번쯤 흔들려야 오뚝이가 된다.]를 달성하셨습니다.
-시합 중, 균형을 1천 회 되찾는 데 성공하여 신체 밸런스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균형감각이 4 상승합니다.(77→81)
-지속 스킬, ‘버들가지처럼 유연하게’가 생성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균형감각에 +5의 가중치가 붙습니다.
-균형감각 81(+5)
오솔은 균형감각이 올랐다는 말만 짧게 확인하고 곧장 전방으로 뛰었다. 평소와는 달리 속도를 급하게 올렸음에도 무게 중심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확실히 몸을 움직이기가 한결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타다닷!
오솔이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도달했을 때, 지울리는 이미 페트로프에게 공을 넘긴 후였다. 페트로프는 자신의 기술로는 중앙으로 파고들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터치라인을 따라 끝까지 달렸다. 그리곤 공이 나가기 전에 간신히 크로스를 올렸다.
파앙-!
그러나 공은 지울리에게 닿기는 조금 짧았다. 또 오솔은 아직 박스 안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모두가 공이 지나가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솔의 몸이 쑤욱 늘어났다. 오솔이 몸을 앞으로 크게 기울이며 또 한 번 가속한 것이다.
파앗!
마지막 순간까지 발을 내디디며 시도한 다이빙 헤딩이었다. 자세가 불안정해서 점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오솔은 높아진 균형감각 덕분에 흐트러짐 없이 공이 날아오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퉁!!
강한 회전과 함께 날아오던 공이 오솔의 이마에 맞고 골대 구석을 향해 찌르듯이 날아갔다. 크로스의 방향이나 수비 상황은 다르지만 동작만 놓고 보면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반 페르시의 다이빙 헤딩골과 흡사했다.
출렁!
게다가 그 결과도 같았다. 골대 구석을 향해 원 바운드로 들어간 슛. 레만 골키퍼는 골이 들어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페널티 라인을 간신히 넘겨 시도한 초장거리 헤딩이었음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만큼 강하게 날아온 탓이다.
와아아-!
경기장 한 귀퉁이가 소란스러워졌다. 맨시티 원정 팬들이 모인 장소였다. 반대로 아스날의 홈 팬이 있는 곳은 에미레이츠 도서관이란 별명처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오솔은 그대로 원정석까지 달려, 8천 명 남짓한 팬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파이팅을 하는 듯한 자세에 팬들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주먹을 뻗는다.
“구세주 오셨다. 이놈들아! 하하하! 당장 가서 내 유니폼부터 사라!”
오솔은 호탕하게 웃으며 주먹을 크게 한번 휘둘렀다. 맨시티 팬들은 그게 수신호라도 되는 양 함성을 쏟아냈다.
“정말 멋진 슛이었어!”
선수들이 몰려왔다. 젊은 선수들은 오솔의 플레이에 감탄한 듯 연신 칭찬을 보냈고, 항상 뚱한 표정이던 바튼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얹어있었다. 다만 지울리만은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다리 괜찮냐?”
그는 오솔의 오른발을 걱정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전력으로 뛰며 생긴 운동 에너지를 오른발 하나로 버텼고, 심지어 다이빙을 한다고 점프까지 했으니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멀쩡해요.”
“조심해. 부상은 스스로 무리하다가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아.”
“매일 충분할 정도로 몸을 풀어주니까 걱정 말아요. 그보다 제가 공을 잡으면 바로바로 공격에 가담해 줘요. 절대로 공을 뺏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 절 믿어요.”
“알았으니까 무리는 하지 마. 다치면 정말 큰 일이다. 그리고 공은 뺏겨도 돼. 뒤에 동료들이 괜히 있는 줄 아냐?”
“흐흐흐. 걱정 마시라니까요.”
오솔은 웃으며 지울리를 안심시켰다. 그러곤 자신들의 진영으로 넘어가며 슬쩍 오른발을 바라봤다. 잠시 힘주어 발을 내딛자 근육이 놀라 움찔한다.
‘확실히 무리를 하긴 했어.’
오솔은 상태창을 보고 흠칫했다. 96%였던 컨디션이 어느새 91%가 되어 있었다. 단 한 번의 플레이에 무려 5% 정도의 수치가 떨어진 것이다. 평상시에 몸을 단련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방금 플레이가 그대로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동점골도 넣었으니 이제는 조심해야지.’
이후 오솔을 활용한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다시금 갈라스가 압박해 왔으나, 오솔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균형감각이 86까지 오른 상황이었다. 오솔은 아무리 거친 차징이 오더라도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원투 패스!’
오솔은 지울리에게 공을 넘기면서 X자로 교차해 오른쪽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균형감각이 오른 덕분인지 동작이 이전보다 빨랐다.
지울리는 시의적절하게 오솔의 앞 공간으로 패스를 보냈고, 오솔은 순식간에 적진 깊숙이 들어가 클리쉬와 마주하게 되었다.
‘돌파? 패스? 뭘 할까?’
오솔이 고민하는 사이 반대편에 페트로프와 중앙에 지울리가 자리했고, 오른쪽 수비수 보싱와까지 올라왔다. 특히나 보싱와는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오솔은 등 뒤에서 돌풍이 지나가는 느낌마저 받았다. 덕분에 그가 얼마나 의욕적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보싱와, 미안해. 패스 못 줘서 미안해.’
오솔의 선택은 보싱와를 미끼 삼아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오솔은 클리쉬의 시선이 보싱와에게 잠깐 돌아간 틈을 이용해 중앙으로 드리블했고, 순간적으로 노마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왼발의 숙련도가 높지 않아 그대로 슛을 때리기는 힘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왼발이 무슨 필요냐.’
오솔은 타이밍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오른발 아웃프런트 킥을 시도했다. 제대로만 감긴다면 왼발로 감아 차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아웃프런트 킥은 더 빠르고 예측 불가능한 맛이 있었다.
파아앙!
‘이런 조금 덜 감겼다.’
공은 바깥으로 크게 휘어서 골대로 향했는데, 꺾이는 모양이 딱 보기에도 골대에 닿기에는 부족했다. 수비수나 골키퍼의 예상을 뛰어넘는 킥이긴 했으나 아직 오솔의 기술이 정확하지 않았다. 아마 낮은 개인기 수치 때문일 것이다.
타다다닷!
오솔이 슈팅이 빗나갔다며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반대편에서 뛰고 있던 페트로프는 그 ‘빗나간 슛’을 향해 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잡을 수 있어. 반드시 잡는다!’
페트로프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직전에 오솔의 헤딩 골이, 그때의 쇄도 장면이 남아 있었다. 닿을지 말지 확신할 수 없는 공을 향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난 직후였으니, 그의 열정에 불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촤르륵!
페트로프는 공이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야 간신히 슬라이딩으로 잡을 수 있었다. 빗나간 슛이 그의 열정 덕분에 패스로 되살아난 것이다.
슬라이딩으로 간신히 공을 잡아낸 페트로프. 그 앞을 사냐가 급히 막아섰다. 사냐는 공을 밖으로 차 내기 위해 발을 뻗었다. 그러나 페트로프는 계속되는 발길질에도 공을 뺏기지 않았다. 대단한 투쟁심이었다.
반칙을 걱정한 사냐의 발길질이 멈추자 페트로프가 공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상대의 태클을 몸으로 막거나 피해 마침내 중앙의 지울리에게 공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지울리는 공을 받으려 서 있었고, 당연히 등 뒤의 오솔과 보싱와 등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정면에 있는 페트로프는 이미 패스와 함께 넘어진 상황. 곧장 슛을 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오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길게 설명할 틈도 없었고, 길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울리는 오솔의 말을 듣자마자 공을 잡고 왼발을 이용해 힐패스를 넣었다. 수비진을 피하는 것만 생각해서 힘이 조금 과하게 들어갔다는 점만 제외하면 완벽한 패스였다.
‘조금 길지만 잡을 수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볼튼전에서 잡았던 찬스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터치라인에 이르러서야 겨우 패스를 잡은 오솔. 아니, 아니다. 오솔은 패스를 잡지 않았다. 그는 달리던 기세 그대로 다리를 휘둘렀다. 다시 한번 아웃프런트로 슛을 시도한 것이다. 그것도 골라인에 거의 닿을법한 위치에서.
오솔의 시각에서는 골대 기둥만 보일 정도로 각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이콘 역시 북한전에서 각이 없는 상황에서 아웃프런트 킥으로 골을 넣은 적이 있었고, 카를로스는 아예 코너킥으로 골을 넣은바, 이 각도에서 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뻐엉!!
역시나 강한 회전이 걸린 공은 골키퍼 앞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어 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골키퍼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절묘한 슛이었다.
레만 골키퍼는 팔이나 다리로는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몸을 틀어서 막으려 했다. 그러나 골대 쪽으로 회전이 걸린 공을 몸통으로 막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퍽! 철썩!
결국 공은 그의 옆구리를 때리고 그대로 골망에 틀어박혔다. 동점골이 들어간 지 5분 만에 역전골까지 들어간 것이다. 레만 골키퍼는 망연자실 필드에 엎어졌다.
아스날 벤치에도 비상이 떨어졌다. 두 골 다 오솔이 공격의 시작이자 마침표로 활약한 골이었다. 이대로 오솔을 내버려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벵거와 코치진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으윽! 내가 이럴까 봐 오솔 사달라고 몇 번이고 말했었잖아! 내가 먼저 찜했었는데, 아이고, 아까워…….’
벵거 감독은 쓰린 속을 달랠 틈도 없이 대책을 수립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