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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3화 (15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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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3화

오솔은 손발이 오글거리느라 질문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도 아데바요르처럼 ‘해트트릭, 까짓 거 해줄게.’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데샹의 칭찬은 그 모든 각오를 다 날려버렸다. 결국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모르게 기자회견장을 나섰다.

“으으. 손발이 간지러운 게 한동안은 바쁘게 뛰어다녀야겠다. 그래야 좀 나아질 것 같아.”

오솔이 아직 후유증을 느끼고 있을 때, 심판이 동전을 하늘로 튕겼다.

앞면. 아스날에게 선택권이 돌아갔다. 주장 윌리엄 갈라스는 골대를 선택했다. 레만의 실력을 믿기는 하지만 그래도 햇빛을 마주 보며 서는 건 좋지 않았다.

‘조금 불안한데.’

오솔은 골대를 보며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현재 그들은 주전 골키퍼인 이삭손이 부상을 당하면서 캐스퍼 슈마이켈이 대신 출전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햇빛 같은 사소한 변수도 생각보다 크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후반전에 가면 나쁘지 않으니까. 전반전만 정신을 바짝 차리면 괜찮겠지.’

오솔은 센터 마크에 서서 아스날 쪽 진영을 슥 훑어봤다.

투톱으로 나온 반 페르시와 아데바요르의 뒤로 미드필더인 로시츠키와 플라미니, 파브레가스 그리고 흘렙의 모습이 보인다. 포백에는 클리쉬와 콜로 투레, 갈라스, 사냐가 있었고, 골대 앞에는 아스날의 수호신 옌스 레만이 서 있다.

‘4-4-2로구나.’

아스날은 오늘도 아리고 사키식 4-4-2 기본형을 전술로 들고 나왔다. 여기에 벵거 볼 특유의 측면 미드필더의 중앙 가담이 이루어질 것이다.

왼쪽 미드필더로 나온 로시츠키는 본래 도르트문트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흘렙은 측면과 중앙 어느 곳에서든 수준 높은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였기에 중앙 지향적인 움직임에 어색함이 없었다.

‘중원의 네 선수가 간격을 좁혀서 짧고 빠른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한다. 전형적인 벵거 볼이네.’

벵거 볼의 핵심은 역시나 허리라인을 구성하고 있는 네 명의 미드필더에 있었다. 그리고 올 시즌 아스날의 미드필더진은 전성기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중원의 주도권을 잡아야 해.’

그러한 사실은 데샹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데샹은 기존의 4-2-3-1을 버리고 일시적으로 4-3-3…… 아니, 거의 4-5-1이나 다름없는 전술을 꺼내 들었다. 중원에 세 명의 미드필더를 세움으로써 주도권을 확실하게 가져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삐이익!

호각이 길게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솔은 공을 후방의 하만에게까지 길게 전달했다.

하만은 바튼과 플라실 사이에 서서 삼각형을 그리며 착실히 패스를 돌려나갔다.

공은 오른쪽의 지울리에게도 갔다가 왼쪽의 페트로프에게도 옮겨가는 등 좌우로 움직이며 상대의 측면을 흔들었다.

측면 공략을 하려는 건 아니고, 측면을 흔드는 것으로 중앙 지역에 공간을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쳇, 공간이 없잖아?’

그러나 좌우에서 아무리 흔들어 봐도 아스날의 중원에는 공간이 나지 않았다. 네 명의 미드필더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시의적절 하게 중원을 커버했기 때문이다.

‘측면 미드필더가 정말 많이 뛰는구나.’

로시츠키와 흘렙의 활동량이 굉장했다. 맨시티가 중앙으로 전진하면 네 명의 미드필더가 간격을 좁혀서 4대 3 싸움으로 만들고, 측면으로 공을 돌리면 한 명은 따라가고 나머지 셋은 중앙에 남아 중원의 미드필더 숫자를 맞췄다.

‘저렇게 많이 뛰면 후반전에 힘들 텐데. 아니, 시즌 후반기까지 저렇게 계속 뛸 수 있나?’

장기적으로 보면 무리가 가는 전술이 맞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자면 완벽에 가까운 조직력이며 움직임이었다.

‘좌우로 크게 벌려줄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빈 공간을 공략할 수 있을 텐데.’

마침 플라실이 그런 재주가 있었다.

플라실은 우측 구석에서 공을 잡고 반대편을 깊숙한 곳을 향해 패스를 찔러 넣었다.

상대의 측면 미드필더는 중앙에 몰려 있었고, 측면 수비수 역시 페트로프를 마크하느라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터억!

덕분에 왼쪽 수비수 마이클 볼이 아무런 견제도 없이 공을 잡을 수 있었다.

볼은 공을 잡고 어떻게 할까 주저하더니 크로스를 올리라는 데샹 감독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발을 휘둘렀다.

파앙!

‘뭐, 이따위 크로스가 다 있어?’

공은 오솔을 크게 지나쳐 반대편 코너 깃발을 때리고 나가버렸다. 지켜보는 이는 기운까지 빼앗아가는 형편없는 크로스였다.

한국에서 지켜보던 중계진 역시 혀를 찼다.

[아, 이런 크로스는 좋지 않은데요. 좋은 기회였는데 너무 허무하게 날려버린 감이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문제점은 선수들 간의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인데요. 특히 공격과 수비,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의 차이가 극명합니다. 지금도 만약 공을 받은 선수가 보싱와였다면 단순히 크로스를 올리는 것 외에도 조금 더 전진한다거나 슛을 한다는 선택지가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보싱와 선수는 크로스도 날카롭잖아요.]

[예, 확실히 맨시티의 왼쪽 라인은 공격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방금 공격을 반대로 시도하면 되지 않나요?]

[글쎄요. 그렇게 하려면 바튼 선수가 패스를 넣어줘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정확한 패스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바튼은 지금 파브레가스를 막느라 좌중간 지역을 떠날 수 없었다. 플라실을 왼쪽으로 돌린다는 선택지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벵거 감독은 경기를 지켜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 바튼과 일라누의 호흡이 맞아 들어간다고 해서 약점이 없는 건 아니지.’

파브레가스를 굳이 오른쪽에 고정시킨 이유가 이것이었다. 상대의 좌우 전환을 막는 것.

‘상대는 바튼을 이용해 파브레가스를 막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건 역으로 상대의 공격을 한 방향으로만 국한하게 만들어준다.’

즉, 아스날로서는 왼쪽 방면만 막아서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이렇게 공격이 단순화되면 막는 입장에서는 수비하기 너무 편하다.

‘동시에 역습에 대한 걱정이 덜한 오른쪽 측면을 주로 공략한다.’

이제 아스날의 공격 턴이었다. 발재주가 있는 갈라스가 중앙의 플라미니에게 패스했다.

플라미니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로시츠키에게 공을 내줬다.

바튼은 파브레가스를 잡고 있느라 수비에 가담하지 못하는 상황. 다행히 하만이 길목을 막고 서 있었다.

로시츠키는 무리하는 대신 공을 우측의 빈 공간으로 뿌렸다. 흘렙이 빠르게 튀어나와 그 공을 잡고 가속했다.

빠르고 드리블이 뛰어난 흘렙이 달리기 시작하자 마이클 볼로서는 쉽사리 발을 뻗을 수 없었다. 볼에게 부족한 것은 단순히 공격적인 재능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조금 미안하군.’

팀의 약점으로 지목된다는 건, 그로 인해 팀이 패배한다는 건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괴롭기만 하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칫하면 완전히 정신을 놓고 무너지는 수도 있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거든.’

흘렙은 달리는 자세 그대로 공을 살짝살짝 터치하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방향을 정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이클 볼은 간신히 그의 뒤를 잡을 수 있었으나, 크로스가 올라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나를 두고 잔인하다 욕하지 말게. 프로라면 응당 감당해야 하는 일이니까.’

빠르게 올라간 크로스는 중간에 아데바요르의 머리에 걸려 그대로 골대에 틀어박혔다. 전반 6분, 엄청나게 빠른 시간에 선취골이 들어갔다.

헤딩도 빨랐고, 캐스퍼 골키퍼의 반응도 늦었다.

골키퍼가 제대로 적응하기도 전에 햇빛이라는 작은 변수가 작용한 것이다.

아데바요르는 손가락을 두 개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로 해트트릭까지 두 골 남았음을 알렸다.

마이클 볼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떨궈야 했다.

‘벌써 좌절하면 어떻게 하나. 이제 시작인데.’

오늘 아스날의 전술은 간단했다. 왼쪽을 막고, 오른쪽으로 공격한다.

‘후후. 어떤가 데샹 감독. 방법이 있나?’

벵거 감독은 알고 있었다. 맨시티의 왼쪽 수비수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아무리 선수를 교체한다 해도 상황은 똑같았다. 마이클 볼이 아니면 전성기가 다 지난 순 지하이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페트로프를 뒤로 물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 걸세.’

그렇게 되면 아스날의 오른쪽 방면은 더욱더 안전해진다. 이미 선취점을 넣었으니 안심하고 공격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

경기는 계속됐다. 벵거 감독의 예상대로 데샹 감독은 페트로프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아스날의 우측 수비수 사냐의 공격 가담으로 이어졌고, 상황은 나아질 줄을 몰랐다.

[조이 바튼! 멀리 공을 걷어냅니다. 방금은 태클이 좋았습니다.]

그나마 추가 골이 터지지 않은 것은 바튼이 파브레가스를 거칠게 다뤄주고 있어서였다.

실력 차이는 났지만 아스날 역시 공격이 흘렙의 돌파 일변도로만 진행되다 보니, 맨시티도 아슬아슬하게나마 상대를 막아낼 수 있었다.

추가골을 위해서는 아스날도 파브레가스가 활약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바튼에게 꽁꽁 묶여 있었으니, 파브레가스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젠장. 그만 좀 달라붙어요! 공도 없는데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스페인에서는 그렇게 부탁하면 떨어져 주냐? 네가 알아서 벗어나, 이 새끼야.”

“씨X. 욕은 당신만 할 수 있는 줄 알아?”

파브레가스의 깡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천하의 개쌍놈인 조이 바튼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 있다니.’

리차즈는 그 모습을 보며 적이지만 감탄할 정도였다.

물론 바튼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바튼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흐흐흐. 알아서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꼬마야. 나는 너처럼 우아하게 축구할 줄 모르거든.”

“악!”

바튼의 거친 몸싸움에 파브레가스가 바닥을 뒹굴었다. 심판이 다가와 카드를 내밀었다. 뒤에서 허벅지 쪽을 걷어차는 듯한 동작이었으니 카드를 받는 게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바튼은 쓰러져있는 파브레가스에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비록 공을 못 차도 너 같은 놈들 차는 데는 도가 텄지! 그러니 또 까불어봐! 다음에 어딜 얻어맞는지 알려줄 테니까.”

“이런 미친 새끼! 내가 뭘 했다고 저러는 거야?”

파브레가스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먼저 욕을 해서 대응 좀 했다고 발길질이라니 어느 나라 셈법이 이렇단 말인가.

‘저건 미친놈이야. 진짜 미친놈!’

파브레가스 쪽은 한동안 문제없을 것 같았다.

* * *

‘좋아. 이제 수비는 그럭저럭 되는구나.’

오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흘렙과 사냐가 돌파할 때마다 휘청거렸으나, 어찌어찌 막아내고는 있었다.

‘마이클도 제법 잘 버티고 있네. 생각보다 근성이 있는 친구였잖아?’

마이클 볼은 비록 실력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편이었으나, 그래도 정신력만은 남부럽지 않은 선수였다.

‘그래도 경기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슬슬 우리도 반격을 시작해야 돼.’

처음 데샹 감독은 중원 장악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주된 전략으로 삼았다. 역습을 이끄는 것은 오솔과 페트로프였고, 그들의 1차 목표는 상대 진영까지 빠르게 돌파해서 슛을 하거나 혹은 상대의 반칙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그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중원은 상대와 대등한 싸움을 하는 것에 그쳤고, 페트로프는 수비에 집중하느라 역습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었다. 역습을 오솔 혼자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연스럽게 지공(遲攻)을 펼쳐야 했다.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내려앉아 있어. 이대로는 고립되고 만다.’

공격형 미드필더도 없고, 좌우 윙어가 합류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전방에 박혀 있어봐야 기회를 잡을 수도 연계를 할 수도 없었다.

판단을 끝낸 오솔은 슬금슬금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패스를 이어가며 공을 점유하고 공격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

이렇게 밀릴 때는 숨 돌릴 틈부터 만들 필요가 있었다.

‘지금 자유로운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내가 중심이 돼서 공을 점유하고 공격을 전개해야 한다.’

마침 포메이션도 전문적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는 4-5-1이었다. 공격의 시작점이 원톱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흐흐흐. 어디 나도 토티처럼 한번 해볼까?’

제로톱의 대명사, 프란체스코 토티의 플레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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