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2화
오솔이 휴식을 취하며 아스날전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마치고 온 마이카 리차즈가 옆자리에 앉았다.
오솔은 최근에 선수단의 융합을 위해 젊은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큰 반발 없이 섞여 드는 데 성공했다.
아니, 반발은커녕 오솔을 마치 아이돌이나 롤 모델처럼 여기고 따르려는 녀석들이 있을 정도였다. 여기, 마이카 리차즈도 그런 선수 중 하나였다.
“오솔. 이번 주에 경기 끝나고 갈래?”
“가긴 어디를 가?”
“에이. 알잖아.”
“설마 클럽에 가자고?”
“응, 어차피 경기 끝나고 하룻밤 자고 올 거잖아. 이참에 런던 밤거리를 한번 불태워 보자고.”
오솔은 클럽에 가자는 소리를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리차즈를 보며 혀를 찼다. 친해진 건 좋은데, 그 덕분에 가끔씩 이런 철없는 제안을 듣기도 했다.
“이 자식이…… 너는 아스날전보다 클럽에 가는 게 더 중요하냐?”
“물론 아스날전이 더 중요하지. 그러니까 경기 끝나고 가자는 거잖아. 그리고 네가 아직 런던 클럽을 몰라서 그래. 거기 정말 끝내준다니까? 맨체스터나 리버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VIP 세션에 가면 유명한 모델들도 쉽게 만날 수 있고, 또…….”
오솔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그가 전생에 굴렀던 곳이 어딘가. 런던 소재의 첼시 FC 아닌가.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고 있네.’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혈기왕성한 20대였다면 솔깃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오솔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인의 남편이다. 지금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그가 해왔던 노력 그리고 품어왔던 염원을 생각하면 클럽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오솔이 계속해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자 리차즈가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밝혔다.
“솔직히 내가 가면 잘 어울리지도 못해. 톱모델들은 마찬가지로 정상에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거든. 헤헤. 그러니까 나도 네 덕에 톱모델들 좀 만나보자.”
“……결국 그게 목적이었냐. 어휴. 정신 좀 차려라 이놈아.”
“야. 내가 괜히 그러냐? 말했잖아, 런던이라고. 유럽 최고의 모델들을 만날 수 있단 말이야. 솔직히 나도 노던 쿼터에 가면 좋다는 여자는 많아. 하지만 나정도 급이면 유명한 모델을 만나야지 아무나 만날 수는 없잖아.”
그렇게 열심히 항변하던 리차즈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조이 바튼이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리차즈는 혹시나 방금 한 말을 그가 들었을까 봐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들었나? 못 들은 것 같지?”
“그런 것 같네.”
“휴우. 다행이다. 잘못하면 욕을 된통 얻어먹을 뻔했네.”
오솔은 리차즈가 바튼의 눈치를 보는 걸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튼은 군기반장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딱히 후배들에게 터치하는 것도 없고, 선배라고 우대하는 것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고독한 늑대나 들개 스타일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물론 하만과 친해지면서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바튼은 기본적으로 남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리차즈가 클럽을 가든, 거기서 여자를 만나든 남자를 만나든 신경 쓰지 않을 확률이 컸다.
“몇 년 전에 구단에서 개최한 파티에서 큰일이 벌어진 적이 있거든.”
“큰일?”
“바튼이 2군 선수의 얼굴에 담배를 비벼 끈 일이 있었어. 그 일로 벌금은 물론이고 팀 자체적으로 출전 정지까지 시켰었지. 사람들은 그 일을 두고 바튼이 술에 취해서 난동을 부린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바로 옆에서 봐서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어.”
리차즈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속닥거렸고, 오솔도 덩달아 목소리를 죽였다.
“어쩌다 생긴 일인데?”
“그 녀석이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듯한 말을 했었거든. 자기는 금방 1군으로 올라갈 거라고, 2군은 수준이 떨어져서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이야.”
“겨우 그것 때문에 담뱃불로 얼굴을 지졌다고?”
오솔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바튼이면 이미 데뷔 때부터 1군 붙박이로 있던 선수였다. 딱히 2군을 욕하는 말에 화가 날 것 같지도 않은데 그것 때문에 폭행까지 하다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바튼이 빈민가 출신인 건 알고 있지? 그래선지 사람을 배경이나 출신으로 무시하는 말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곤 해.”
오솔은 바튼이 화를 내지 않는 순간이 있기는 한지 궁금했으나 굳이 묻지 않았다. 돌아올 대답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자기 가족들한테는 잘 한다는데, 솔직히 그것도 못 믿겠어.”
바튼이 가정에 충실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빈민가 출신이라 외부인을 쉽게 믿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반대로 가족들에게는 모든 것을 내줄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이 바튼이었다.
전형적인 내 편에게만 잘하는 타입이다. 문제는 같은 팀 동료라고 해서 무조건 내 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바튼은 조금만 마음이 안 맞으면 설사 팀 동료라고 해도 적으로 간주하곤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오솔은 리차즈의 어깨를 툭 치며 일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하냐? 나도 가정이 있는 몸인데. 클럽은 혼자 가야겠다.”
“클럽에 가는 게 뭐 어때서 그래. 그냥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뿐인데. 또 설사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우리만 입 다물면 되잖아. 집에서 어떻게 알겠어?”
“진짜 알 수 없는 게 뭔 줄 아냐? 바로 네 앞날이다 이 자식아. 계속 그런 식으로 밤새 놀고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 줄 몰라서 그러냐?”
“어쩌다 한 번씩만 가는 건데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해.”
“정신 차려 인마. 지금은 젊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것 같겠지만, 이게 습관이 되면 어느 순간 훅 간다. 클럽 간지 이제 1년 됐다고 했지? 내가 장담하는데 하루라도 빨리 끊는 게 좋다.”
술과 유흥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단순히 경기력이 떨어지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육체의 피로가 쌓이고, 근육이나 뼈, 인대 등이 약해져서 부상의 위험도 높아진다.
특히나 리차즈처럼 근육이 발달된 선수는 근육의 힘을 뼈와 인대가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 오히려 남들보다 컨디션 조절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물론 이런 말 한두 마디로 변할 리는 없겠지.’
오솔은 말을 하면서도 상대가 변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개인의 선택을 다른 사람이 강제할 방법도 없는데다가, 쉬는 날 클럽에 가는 것은 엄연히 사생활이라 구단에서도 제재하지 못하는 사항이었다.
“후우.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한눈팔 생각 없어. 이번 생의 첫 번째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자랑스러운 가장이 되는 거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단지 자랑스러운 가장이 되려면 먼저 사랑할 여자를 찾아야 하니까 클럽에 가는 것뿐이지.”
“한마디도 안 지네. 알았으니까 경기 전에는 조심해. 네 클럽 사랑 때문에 경기에서 지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 거야.”
“Yes, Sir!”
역시나 리차즈는 그저 오솔이 안 간다는 말에 아쉬워할 뿐, 그의 충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파브레가스보다 이 녀석이 더 걱정이네.’
오솔은 한숨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 * *
아스날과의 4라운드 경기가 있는 날.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은 경기 시작 세 시간 전에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었는데, 그 속에 오솔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오솔은 필드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는 소리가 꼭 소낙비가 내리는 듯했다.
“기자들이 많이 왔네요.”
“부담스러운가요?”
“아니요. 재미있어서요.”
오솔은 대답과 함께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는 현재 데샹 감독과 함께 경기 전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상태였다.
“경기 후 인터뷰와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뭐, 분데스리가에서 많이 해봤으니까 잘 알겠죠.”
“걱정 마세요. 오히려 영어라서 더 편하니까요.”
데샹 감독은 오솔의 듬직한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즐기는 듯한 모습에 안도했다.
원래 데샹 감독은 기자회견장에 주장 리차드 던이나 부주장 지울리처럼 관록이 있는 선수를 주로 대동했었는데, 최근에는 오솔을 대동해 달라는 요청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오늘 경기에는 오솔을 데려왔다.
‘활약이 너무 뛰어나서 곤란할 때도 있구나.’
프리미어리그 세 경기, 다섯 골. 대부분이 동점골이거나 결승골인 만점짜리 활약.
이것이 오솔의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표현하는 문장이었다. 그러니 기자들이 오솔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이 3천만 파운드짜리 선수가 어떤 성격을 가졌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일거수일투족까지 알고 싶었다.
인터뷰는 홈팀인 아스날 먼저 진행했다. 기자 하나가 손을 들어 벵거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월드 풋볼의 프랑키 번입니다. 올해 초, 벵거 감독님은 오솔 선수를 데려오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국은 이렇게 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감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빼애…… 흠흠. 먼저 오솔은 좋은 선수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9번의 교과서와 같은 선수죠. 그러한 선수를 팀에 품는다는 건 누구나 꿈꾸는 일이죠. 하지만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표현은 사실과 다릅니다.”
“예? 하지만…….”
“제 기억에 마지막까지 경쟁에 붙었던 팀은 맨유와 리버풀이었던 것 같은데요? 속이 쓰린 것은 그들이지 제가…… 아니, 아스날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아데바요르가 있습니다.”
어째 벵거 감독의 목소리가 많이 젖어있었다. 오솔에게 변변찮은 제의조차 못했다는 사실에서 가난한 구단의 수장이 느꼈던 비애가 전해졌다.
기자들의 다음 타깃은 시즌 초반 오솔과 더불어 미칠 듯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였다.
“아데바요르 선수. 오솔 선수와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만난 적이 있으시죠? 그때는 오솔 선수에게 세 번째 골이 먹히면서 결국 팀도 지고 16강 진출에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그 빚을 갚아줄 수 있을 것 같나요?”
오솔이 듣기에도 기분이 나쁠만한 질문이었다. 역시나 아데바요르는 거칠어진 숨을 감추지 못했다.
“토고는 작은 나라입니다. 물론 저는 조국을 사랑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토고는 축구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걸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16강 진출 실패요?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말은 팀 전력에서 밀렸을 뿐, 오솔 선수 개인에게 진 건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오늘 경기도 마찬가집니다. 저희가 이긴다고 해서 그게 제가 오솔 선수보다 낫다는 증거가 될까요? 아스날은 강팀입니다. 맨시티에 비하면 훨씬 더 강한 팀이죠. 선수 개인을 놓고 비교하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아스날이 이긴다는 걸 전제로 한 대답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쪽 기자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을 때였다. 아데바요르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물론 해트트릭에 성공한다면 어느 정도 우위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요.”
아데바요르의 해트트릭 선언에 여기저기서 불빛이 터져 나왔다. 급하게 글을 써내는 기자들도 있었고, 오솔에게 할 질문을 고치느라 손이 바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벵거와 아데바요르가 물러나고, 데샹 감독과 오솔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데샹 감독님, 감독님과 벵거 감독님은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같은 프랑스인이시고, 이전에 AS모나코를 맡았던 적이 있다는 점도 같죠. 그래서 사람들은 데샹 감독님을 두고 제2의 벵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하. 엄청난 칭찬이군요. 한 팀에서 10년 넘게 감독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감독으로서 굉장한 영광이자 업적입니다. 잉글랜드 무대에 온 지 겨우 두 달밖에 안된 제가 듣기에는 지나치게 과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샹 감독님은 모나코에 있던 마지막 시즌에 아데바요르 선수를 지도하신 적이 있죠. 아데바요르 선수와 오솔 선수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누군가의 돌발적인 질문에 회견장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기자들은 데샹 감독이 과연 어떻게 대답할지 귀추를 지켜보았다.
가장 좋은 대처는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것이었다. 어차피 기자도 진심을 듣고자 한 질문이 아니었으니, 적당히 넘기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현재 팀의 에이스인 오솔을 띄워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건 아데바요르를 자극할 수 있어서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제일 피해야 하는 모습은 변변찮은 대처도 하지 못하고 대답을 질질 끄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답은 뭐가 되었든 신뢰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데샹은 바로 입을 열었다. 최악의 대처는 피한 셈이다.
“제가 뭐라고 그 두 선수를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궁금하다고 하시니 그냥 제가 느낀 점들만 말하겠습니다. 아데바요르 선수를 처음 만난 게, 어…… 그러니까 벌써 4년 전이군요.”
아데바요르가 AS 모나코에 들어온 것은 데샹이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이룬 2003-04 시즌이었다. 그때 아데바요르는 아직 열아홉의 어린 선수였다.
“제가 본 아데바요르는 재능이 넘치며 습득 속도도 굉장히 빠른 선수였습니다. 조만간 빅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겠다 싶었고, 예상대로 몇 년이 지나 그는 아스날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게다가 벵거 감독님처럼 좋은 분을 만났으니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겠죠.”
“그럼 오솔 선수는요?”
“흐음. 애석하게도 전 오솔 선수에게 도움이 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누구도 쉽사리 답을 묻지 못하는 가운데 데샹 감독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눈에는 오솔 선수의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거든요. 부끄럽지만 그래서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도 오솔 선수는 계속 성장하고 있죠.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저는 그저 그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도록 돕는 일만 할 뿐이죠.”
오솔은 옆에서 그 얘기를 듣다가 저도 모르게 이마를 감싸 쥐었다.
‘으윽! 오그라들어 죽겠다. 왜 날 옆에다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오솔은 길거리 한복판에서 고백 받는 여자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동시에 거절 확률이 왜 그렇게 높은 지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