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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0화 (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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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0화

오솔은 바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하만과 내가 하는 것 봤지? 상대의 전진만 막아줘. 그럼 내가 바로 합류할게.”

“너는 제대로 뛸 생각이나 해. 힘들다고 늦게 합류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바튼은 말투에서부터 날이 서 있었다. 실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는 모습이 역시나 그라운드의 악동…… 아니, 악당다웠다.

‘역시 그동안 수비가 안 된 이유를 그저 커버가 늦어서라고 생각하는구나.’

자신만만한 표정과 태도만 봐도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전성기가 지난 하만도 막아냈으니 자신은 더 쉽게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흐흐흐. 그렇게 자신만만해도 될까 모르겠네.’

오솔은 브리스틀 로버스의 9번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리키 램버트.

지금은 4부 리그를 전전하는 그런저런 공격수로 알려졌지만, 오솔은 그가 루카 토니처럼 뒤늦게 빛을 보는, 이른바 대기만성 선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램버트는 2014년에 서른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리버풀로 이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기도 한다.(A팀 소집은 2013년 8월이다.)

비록 전성기의 대부분을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서 보내느라 1부 리그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지만, 램버트는 바튼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만이 쉽게 수비하는 걸로 보였겠지. 하지만 직접 겪어보면 느낌이 다를 거다.’

램버트의 장기는 188㎝의 큰 덩치로 인한 몸싸움과 제법 정교한 드리블이었다. 힘과 기술이 그럭저럭 조화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파아앙!

그런 램버트에게 패스가 도달했다. 몇 번이고 나왔던 역습 장면이 다시금 재현된 것이다. 아니,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바튼은 하만처럼 길목을 잡고 기다리는 대신, 상대에게 달려드는 쪽을 택했다.

‘4부 리그쯤이야 적당히 붙어서 몸싸움만 해줘도 꼼짝 못 하지.’

그러나 램버트는 그러한 생각을 비웃듯 헤딩으로 동료에게 패스를 함과 동시에 전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튼은 방심 때문에 한 박자 늦게 따라붙었고, 리턴 패스를 받은 램버트에게 몸싸움도 밀리고 말았다.

‘뭐야? 이 자식. 생각보다 드리블을 잘하잖아?’

램버트는 바튼을 옆에 달고서도 한참을 달리다 중거리 슛을 시도했다.

형편없이 빗나가는 슛. 그러나 바튼의 얼굴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1초다. 단 1초면 오솔이 합류할 수 있는데, 그 시간을 벌지 못해서 기어이 슈팅까지 허용하고만 것이다.

“후우. 다음번엔 제대로 막아줘.”

오솔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당부의 말을 전했다. 덕분에 바튼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차라리 원색적인 비난이 낫지, 방금처럼 한심하다는 반응은 참을 수 없었다.

‘건방진 놈!’

바튼은 다음번 수비에서는 아까보다 더 거칠게 밀어붙였다. 얼핏 반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하게 말이다.

그러나 램버트는 그러한 방해에도 성공적으로 돌아섰고,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있었던 바튼은 손을 뻗어 그를 막아섰다.

퍽!

아니, 단순히 손을 뻗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거의 손등으로 상대의 얼굴을 후려치는 동작에 가까웠다.

“악!”

램버트가 얼굴을 감싸 쥐고 쓰러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황한 바튼은 되레 쓰러진 상대에게 윽박을 질러댔다.

“일어나, 이 새끼야! 제대로 맞지도 않았잖아!”

“바튼! 물러나!”

“하지만 저 새끼 엄살이라고요!”

심판은 바튼을 떼어내고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휘두르는 과정에 상대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램버트가 손가락을 벌려 카드 색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개새끼!”

바튼은 그 모습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조금은 얄밉게 느껴지는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바튼의 반응은 조금 심했다.

“조심해, 바튼! 너에게 이미 카드가 한 장 있다는 걸 잊지 마!”

“망할! 다음부턴 제대로 봐요! 반칙 같지도 않은 것에 불지 말라고요!”

“후우. 알았으니 조심해.”

끝까지 지지 않는 바튼의 모습에 결국 심판이 먼저 물러나고 말았다. 심판도 바튼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듯했다.

엄살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램버트가 프리킥을 준비하며 바튼에게 윙크를 보냈다.

‘저 자식이…….’

평소라면 가볍게 넘어갔을 도발이었으나, 바튼은 오늘따라 저런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렸다. 아마 하만과 직접적으로 비교가 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두고 보자. 다음에는 진짜 제대로 막아주마.’

뻐엉! 철썩!

그러나 얄밉게도 램버트는 바튼 덕분에 얻은 프리킥을 직접 차서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있던 바튼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득점이었다.

* * *

“와아! 넣었어요! 램버트가 넣었다고요!”

카일 베넷의 목소리가 한껏 살아났다. 후반전 25분이 지날 때까지 동점을 유지하고 있어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긴 했는데, 설마 하니 진짜로 그들이 골을 넣을 줄은 몰랐다.

“드디어 한 방 먹였다고요!”

“그렇게 좋아할 때가 아니야, 베넷. 저길 봐. 주전 선수들이 대거 몸을 풀기 시작했어.”

확실히 맨체스터 시티 측 벤치에서 지울리와 일라누 등이 몸을 푸는 장면이 나왔다. 쉼 없이 삽질 중인 스터리지와 음펜자를 빼고 저들을 넣을 생각 같았다.

“괜찮아요. 전 그래도 대등한 싸움을 했다는 것에 만족해요. 무엇보다 우리를 우습게보던 녀석들에게 한 방 먹였잖아요.”

베넷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오솔을 관찰했다. 포지션 변경이 대실패로 돌아갔으니 과연 얼마나 좌절할지 기대가 되었다.

“어라?”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오솔은 멀쩡했다. 슬퍼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웃는다고?’

의아함에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어느새 오솔은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뭘 잘못 본 모양이네.’

베넷은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상식적으로 팀이 지고 있는데 웃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흐흐흐. 잘난 척 오지게 하더니 꼴좋다. 이제 정신 좀 차렸겠지?”

여기 있었다. 팀이 지고 있는데 웃는 사람이.

오솔은 뒤로 돌아서는 한국말로 바튼을 시원하게 비웃고는, 앞에서는 감정을 절제하고 꼭 필요한 말만 전달했다.

“바튼. 내가 금방 커버할 수 있으니까, 길목을 잡고 시간을 좀 끌어줘. 하만이 하던 것처럼 해주면 돼. 알았지?”

“네가 뭘 안다고 지적질이야? 수비는 내가 알아서 하니까 넌 커버나 제 때 오라고!”

돌아온 것은 역시나 짜증이 가득 담긴 말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솔도 그냥저냥 넘어가지 않았다.

“야.”

“뭐, 뭐?”

묵직한 목소리에 바튼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지금 오솔이 풍기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수비를 지휘하고 싶으면 먼저 네 일이나 똑바로 해. 그게 안 되겠으면 씨X 다른 사람 말도 좀 따르라고.”

조이 바튼이 비록 마약과 폭력이 얼룩진 험한 동네에서 자랐다곤 하지만 오솔도 따지고 보면 어디 가서 절대 꿀리지 않았다.

“나보곤 빨리 수비하러 오라고 해놓고 먼저 덤벼들다가 돌파당하는 건 뭐냐?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네 지시에 따르려고 해도 말과 행동이 서로 안 맞잖아?”

“이런 씨…….”

바튼은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오솔이 하는 말들이 다 맞았으니까, 괜히 상대를 쉽게 봤다가 돌파당하고 결국 실점까지 한 것은 모두 그의 잘못이었다.

“네가 연습 때마다 그랬지? 일라누의 커버가 늦어서 못 막은 거라고. 플라실이 측면으로 빠져서 공간이 생긴 탓이라고. 그럴듯한 변명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봤을 땐 온통 핑계일 뿐이야. 넌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인정하지 못하는 놈이라고. 그러면서 상대방의 잘못만 지적하니 누가 네 말을 듣겠어?”

“정말 잘난 듯이 떠들어대는구나. 그래, 네가 나보다 몇 배나 더 번다 이거지?”

뜻밖의 소리에 오솔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주제가 돈으로 옮겨가다니, 무슨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단 말인가.

“여기서 돈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난 지금 네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돈이 아니라. 설마 넌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냐?”

“웃기지 마! 너희가 우리를 무시하는 건 사실이잖아. 우리보다 돈을 더 받는다고 실력까지 그렇게 차이가 나는 줄 알아? 천만에! 내가 봤을 때, 너희는 모두 거품이야. 실력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도 않으면서 돈 많은 구단주 덕분에 떵떵거리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잘난 듯 떠들어 대는 거겠지!”

기가 막혔다.

“하! 그래. 그게 문제였구나. 넌 그동안 새로 온 선수들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야. 그러니 호흡이 맞을 리 없지. 그런데 제발 부탁이니까 ‘우리’나 ‘너희’라는 표현으로 편 가르기 하지 마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돈 때문에 누구를 무시하고 그런 경우는 없으니까. 아니, 있다고 해도 선수 개인의 문제지, 그렇게 편을 나눌 일은 아니야.”

물론 주급 체계가 무너진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바튼과 오솔의 주급은 3배 차이였으나, 후보 선수와 오솔의 차이는 최대 스무 배까지 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은 과도기니까. 상대적 박탈감? 바보도 아니고, 이건 기회야.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서 남으면 그만큼 받을 수 있잖아!’

당장 오솔이 받는 돈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다른 구단의 선수들에 비하면 그가 받는 돈은 확실히 과했으니까.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고치면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대우가 곧 자신들에게도 돌아온다는 것을.

“돈이 적어서 억울해? 그럼 구단에 직접 따져 멍청아! 네 실력에 비해 너무 적게 받고 있다고. 그런데 그만한 실력을 보여주긴 했어? 감독이 요구한 대로 혼자서 중원을 지켜낸 적이 있냐? 어! 말해봐.”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바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국 그가 계속 화를 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도 오솔이나 다른 선수들 못지않게 많은 돈을 받고 싶은데, 감독이 요구하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짜증 났던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계속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핑계를 댔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달라지는 대신 편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인정하고 고쳐. 그러면 달라질 거다. 너도, 사람들의 시선도.”

오솔은 그 말과 함께 전방으로 돌아갔다. 설교는 이쯤 했으면 됐고, 이제는 경기를 이기는데 집중해야 했다.

‘인정하고 고치라고? 내가 잘못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야?’

경기는 계속 진행됐으나 조이 바튼은 한동안 오솔이 던진 화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 * *

그날 경기는 결국 맨시티의 승리로 끝이 났다. 후반전 85분부터 약 5분 동안 펼쳐진 오솔의 원맨쇼에 브리스틀 로버스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오솔은 네 명을 연달아 제치는 단독 돌파로 한 골, 32m 거리에서 무회전 프리킥으로 또 한 골 넣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덕분에 브리스틀의 어린 서포터 카일 베넷은 불쌍하게도 멘탈이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들리는 말로는 집에 돌아간 베넷이 한동안 ‘우릴 갖고 놀았어.’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고민에 빠져있던 바튼에게 하만이 찾아갔다.

바튼은 자신을 놀리러 왔냐고 대꾸했다가 ‘한두 가지 재주밖에 남지 않은 뒷방 늙은이가 어떻게 널 비웃겠냐.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날 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하만의 말에 되레 고개를 숙이고 사과해야 했다.

웃으며 사과를 받아들인 하만은 말했다.

“내게 남은 재주는 말했듯이 고작 한두 가지 정도야. 아니, 재주라고도 할 수 없지. 나는 길목을 막고 상대를 한쪽으로 모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니까. 하하. 생각해보면 그마저도 제대로 못해서 나중에는 돌파를 당하기도 했지.”

이에 바튼은 자신은 두 번이나 돌파 당했다고 투덜거렸고, 하만은 허허 웃었다.

“그럼 상대가 잘한 것이겠지. 나야 은퇴를 앞둔 사람이지만 너는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를 꿈꾸는 사람이잖아.”

바튼은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며 닭살을 거부했다.

“알았어. 어쨌든! 느리고 많이 뛰지도 못하는 내가 괜찮은 활약을 보일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오솔이 많이 뛰었기 때문이야. 아아. 오솔을 칭찬하려는 건 아니니까 욱하지 말라고. 진짜 중요한 건 내 약점을 동료의 장점으로 상쇄했다는 사실이니까.”

실제로 지난 경기에서는 하만에게 부족한 활동량을 오솔이 대신했듯이 오솔에게 부족한 수비 위치 선정을 하만이 대신했다.

오솔이 익숙지 않은 자리에서 뛰면서도 괜찮은 활약을 선보였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지? 맞아. 너도 알고 있는 내용이야. 그저 잠시 잊었을 뿐이지.”

하만은 다 이해한다는 듯 바튼을 다독였다. 그는 마치 오솔과 짠 것처럼 착한 경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동료와 합을 맞추려면 먼저 동료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야. 물론 그전에 서로를 인정하는 게 선행되어야겠지만 말이야.”

이것도 모두 오솔이 했던 말이었다. 태도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셈이다. 그제야 바튼은 깨달았다. 자신이 얼마나 꽉 막힌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시야가 얼마나 좁아졌었는지 말이다.

하만은 바튼의 표정이 변한 것을 읽고 자리를 벗어났다. 오솔이 빗장을 열었다면, 하만이 그 뒤를 이어받아 문까지 활짝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바튼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의 꼬마 대장에게 보고를 하러 가보실까?’

하만은 여유롭게 웃으며 라커룸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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