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48화
30장 답답해서 내가 뛴다
[오솔 선수의 EPL 데뷔 골입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시죠!]
[자신의 진가를 이 한 번의 플레이로 그대로 보여주네요. 패스부터 침투, 슈팅까지 무엇 하나 손색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화면으로 오솔의 절묘한 패스가 재생됐다. 캐스터는 방송이라는 것도 잊고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야, 정말 정확한 패스였습니다. 오솔 선수는 아시안컵에서 뛸 때도 패스를 상당히 잘한다 싶었는데, 프리미어 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들도 굉장히 위협적이네요.]
[오솔 선수가 괜히 주급을 13만 파운드나 받는 게 아닙니다. 골은 기본이고, 패스면 패스, 돌파면 돌파, 무엇하나 부족한 점이 없어요. 게다가 매년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선수입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솔직히 제공권 외에는 별다른 장점이 없는 선수였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장기가 하나씩 생깁니다. 무슨 카드 뽑기 하는 것 마냥 쑥쑥 성장해요.]
해설자는 초창기부터 오솔을 봐왔었는지 그의 성장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정말 굉장한 재능이네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힘듭니다. 이건 노력이에요. 지독한 노력! 아마 초창기부터 오솔 선수를 보아온 분들이라면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이 선수, 정말 매 순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해설자의 목소리에는 사심이 듬뿍 담겨있었다. 오솔이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동안 중계하지 못했던 한을 이참에 다 털어버리려는 생각 같았다.
그렇게 칭찬이 이어지는 사이 페트로프의 돌파와 빠르게 올라오는 오솔의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정말 총알처럼 빠르네요. 전성기의 티에리 앙리나 반 니스텔로이 선수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겠는데요?]
[저희가 반 니스텔로이 선수가 달리는 걸 두고 말처럼 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솔 선수도 만만치 않네요. 정말 뛰는 모습이 경주마처럼 빠르고 힘이 넘칩니다.]
[이제 마수걸이 골을 넣었으니 앞으로도 반 니스텔로이 선수처럼 많은 골을 넣어줬으면 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솔 선수의 영입을 두고 패닉 바이라는 둥, 거품이 끼었다는 둥 말이 많은데, 제 생각에는 이 한 번의 플레이로 그런 말들이 싹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활약은 시즌 말미까지 보여준다면 3천만 파운드가 아깝지 않을 겁니다.]
중계진이 오솔을 말에 비유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오솔의 속도가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일까, 이후 한국에서는 오솔과 말을 합성한 일명 켄타‘오’로스 짤들이 돌아다니게 된다.
* * *
1점을 따라잡은 맨시티로서는 이대로 기세를 살려서 동점, 그리고 역전까지 노리고 싶었다. 그러나 볼튼 원더러스는 더 이상 틈을 내주지 않았다.
‘실점 이후로 볼튼 녀석들의 운영이 수비적으로 변했어.’
오솔은 일정 위치를 지키고 있는 볼튼 수비진을 확인하며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했다. 페트로프와 오솔의 속도를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뭐, 나쁠 것은 없지. 우리에게는 속공 외에도 많은 공격 수단이 있으니까.’
만약 맨시티가 함부르크처럼 몇몇 사람에게 의존하는 팀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난감하기만 했을 것이다.
동료들은 오솔과 반 더 바르트만 바라볼 것이고, 마찬가지로 상대도 두 사람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후우. 상상만 해도 답답하네. 도대체 지난 2년을 어떻게 뛰어왔던 거지?’
오솔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돌이켜보면 공격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에 항상 한발씩 더 뛰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당장 왼쪽을 담당하고 있는 페트로프는 오솔 못지않게 빠른 선수였고, 일라누는 반 더 바르트보다 발재간이 더 뛰어난 선수였다. 또 일라누를 대신해 들어온 아일랜드도 패스 센스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팀에는 지울리가 있어.’
오솔은 안쪽으로 접어 들어오는 지울리는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뤼도비크 지울리.
현재 맨시티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으나, 오솔은 그중에서 이 선수가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외관만 본다면 그다지 위협적인 선수 같지 않았다. 키도 164㎝밖에 안 되고, 서른한 살의 나이라 발도 느렸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면 이 베테랑 선수야말로 현재 오솔과 가장 합이 잘 맞는 선수이자 가장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하는 이였다.
파앙!
그런 지울리가 오솔에게 패스를 건네고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간단한 2 대 1 패스였으나 패스의 방향과 세기, 움직이는 동선이 수비진의 틈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결정적인 위치에서의 패스가 아주 정확해.’
오솔은 공에 발이 닿기가 무섭게 원터치고 바로 돌려줬다. 역시나 지울리는 이곳이 좋겠다 싶은 곳으로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연계 플레이에 도가 텄구나.’
지울리가 이전까지 있던 팀이 어딘가. 티키타카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아닌가.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간을 찾는 일은 지난 3년간 그가 밥 먹듯이 해왔던 것들이었다.
게다가 지울리는 주 포지션인 오른쪽 날개 외에도 최전방 공격수나, 처진 공격수의 위치에서도 자유자재로 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그만큼 전술적인 이해도가 뛰어나다고 봐야겠지.’
오솔이 리턴 패스를 보내고 다시 움직인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지울리라면 중앙에 몰린 수비진을 피해 다시 한번 패스를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파앙!
‘역시!’
오솔은 지울리의 패스가 수비진을 뚫고 날아오는 걸 보며 히죽 웃었다. 수비진을 피하느라 조금은 깊게 들어간 패스였으나, 오솔의 다리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공을 잡는데 성공한 오솔! 아! 각이 없습니다!]
골대가 오솔의 코앞에 있었다. 반대편 골대조차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슈팅 각도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오솔은 중앙지역을 힐끗 바라봤다.
반대편으로 빠르게 쇄도하는 페트로프와 패스를 중앙에서 잘라먹고자 하는 아일랜드 그리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울리의 모습이 보였다.
‘흐흐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단언컨대 함부르크에서는 이렇게 선택지가 많았던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후반전 35분. 스코어는 2 대 1로 지고 있는 상황. 영웅이 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골을 넣는 게 더 중요한 순간이었다.
‘확률이 가장 높은 쪽은…….’
오솔의 발이 공을 살짝 찍어 올렸다.
툭!
골키퍼는 오솔의 강슛을 의식하고 자세를 한껏 낮춘 상태. 공은 그런 골키퍼의 키를 사푼히 넘어갔다.
칩슛이었다.
골키퍼는 완전히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강슛으로 유명한 오솔이 설마하니 칩슛을 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것으로 2골 째.’
오솔은 출렁이는 골망을 확인하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마무리하는 게 가장 성공확률이 높다.’ 이는 공격수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이 생각은 지독한 착각으로 밝혀진다.
‘역시 제일 믿을만한 건 내 발이지.’
물론 오솔은 아직까지 한 번도 그 생각을 바꾼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감에 찬 걸음으로 공을 잡고 돌아섰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EPL 데뷔전을 무승부로 끝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 * *
결국 그날의 경기는 맨시티의 3대 2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지울리가 적극적인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그걸 오솔이 성공시킨 덕분이다.
그러나 마냥 기분 좋은 시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플레이메이커 일라누와 중원의 핵심인 조이 바튼의 불화가 경기를 치르며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훈련장에서 두 사람의 기싸움을 보는 건 흔하디흔한 장면이 되었다. 주로 바튼이 일라누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일라누는 욕을 하며 자리를 피하는 식이었다.
‘이제는 당사들은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되었어.’
데샹 감독은 훈련을 지켜보며 고개를 저었다. 선수들의 불화는 모든 전술적인 움직임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요소였다.
만약 그가 국가대표로 뛸 때 지단과 사이가 안 좋았다면 과연 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곧장 추가 면담을 가져야겠군.’
데샹 감독은 바튼과 일라누를 각각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으나, 딱히 성과는 없었다.
바튼은 여전히 일라누의 수비 가담을 욕하면서 지금의 전술에 불만을 토로했고, 일라누도 마찬가지로 온전히 공격에만 집중하기를 바랐다.
서로가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상황. 결국 데샹은 주장인 리차드 던과 이번에 부주장이 된 지울리에게 각각의 선수들을 설득하는 임무를 주었다. 베테랑이자 나름 권위가 있는 두 사람이니 잘 다독일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4-3-3이라…… 강팀을 상대로는 4-3-3을 꺼내야 하겠지만, 약팀에게서 승점을 뺏으려면 4-2-3-1을 포기할 수 없어.’
데샹이 4-3-3을 꺼리는 이유는 그들이 보유한 선수들의 성향상 4-3-3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먼저 4-3-3 체제에서는 지울리의 활용이 힘들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4-3-3에서는 좌우 날개의 공수에 걸친 폭넓은 활동량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지울리의 체력으로는 그러한 움직임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메시처럼 그를 공격으로만 쓰기도 힘든 게, 그렇게 되면 우측 윙백인 보싱와의 공격력을 완전히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반대편 윙어가 페트로프라는 점도 문제였다. 페트로프는 정통파 윙어에 가까운 선수라 중앙으로 접고 들어오는 플레이에는 익숙히 않았고, 왼발잡이라 그런 플레이를 펼친다 해도 위력적이지 않았다.
좌우 공격수들이 이런 상황이니, 자연히 중앙에서의 파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쓸 거면 다리우스 바셀을 써야 하는데.’
데샹이 생각하기에 4-3-3에 가장 효과적인 선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다리우스 바셀 – 오솔 – 스테판 아일랜드
마이클 존슨 – 조이 바튼 – 야로슬라프 플라실
마이클 볼 – 리차드 던 – 마이카 리차즈 – 주제 보싱와
문제는 이중에 새로 이적해온 선수는 오솔과 플라실 그리고 보싱와 뿐이라는데 있었다. 기껏 선수들을 잔뜩 사와 놓고 기존 선수만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후우. 답답하군.”
팀을 맡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언제나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였다.
인간관계에 비하면 전술이나 훈련, 리그 운영 같은 것은 오히려 쉬운 편에 속했다.
“그나마 다음 경기는 리그컵이구나. 이 사이에 잠시 숨을 돌려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감독실을 찾아왔다. 또 누가 사고를 친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데샹은 들어온 인물을 보고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찾아온 이는 팀의 대들보인 오솔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별 건 아니고 그저 이번 리그 컵 경기에 출전하고 싶어서요.”
“응? 겨우 4부 리그 팀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 굳이…… 차라리 그 시간에 쉬는 게 낫지 않습니까?”
“4부 리그 팀이라서 하는 말입니다. 혹시…… 제가 일라누의 자리에서 뛸 수 있을까 싶어서요.”
“……네?”
데샹 감독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누가 봐도 대형 공격수인 오솔이 처진 공격수 자리에서 뛰겠다니, 4부 리그 팀과의 경기에 자진해서 나가겠다고 할 때보다 더 황당했다. 그러나 오솔은 그러한 반응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당황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리더는 말로 떠드는 자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리라고. 저는 팀의 리더이자 상징이 되고 싶습니다. 맨시티의 성공과 영광을 제 손으로 이루고 싶어요. 그래서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솔은 알고 있었다. 바튼이나 일라누 같은 선수들은 말로는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무력시위를 벌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처진 공격수로 뛰는 거라면 문제없습니다. 플레이 메이킹은 조금 어설플지도 모르지만, 수비가담이나 활동량만은 팀에 있는 누구보다 더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아니요. 제가 진짜로 걱정하는 건 체력입니다. 리그 컵은 그렇게 중요한 대회가 아닙니다. 상대는 4부 리그 팀에 불과하고요. 후보 선수들이나 뛰는 경기인데 굳이 출전할 필요가 있을까요?”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이런 도전을 하기 힘들잖아요.”
“후우. 미안합니다. 괜히 제가 못나서 부담을 지우는 것 같네요.”
데샹 감독은 안도인지 미안함인지 모를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오솔을 손을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무례한 부탁인데, 들어주신다니 제가 더 감사하죠.”
“그런데 그건 누가 해준 말입니까? 리더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리라니. 제가 대표팀에서 뛸 때 자케 감독님이 해주신 말씀이랑 같군요.”
그 말에 오솔은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리더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야. 자!’
여민주는 밝게 웃으며 음식물 쓰레기를 내밀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