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47화
마이카 리차즈는 오솔보다 한 살 어린 88년생 수비수로 마치 갑주를 차려입는 것처럼 탄탄한 근육이 인상적인 선수다.
단순히 몸만 놓고 본다면 오솔과도 붙어볼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그는 몸싸움도 뛰어나고 점프력이나 스피드도 남달랐다.
경험이 많고 리더십이 있는 리차드 던과 파이터형 수비수의 모든 것을 갖춘 마이카 리차즈의 조합은 이론상 완벽했다.
정확히는 이론만…….
‘실제로는 폭망 조합이네.’
실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리차드 던의 지휘는 생각보다 빠르지 못했고, 리차즈 역시 상황 판단이 느린 편이었다. 그래서 방금과 같은 역습 상황에서는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상대에게 돌파를 허용하곤 했다.
‘사실 이건 온전히 수비진의 잘못만은 아니지.’
이번 실점은 사실 빌드업을 진행하면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에 더 가까웠다.
이전에 원톱의 고립을 막기 위해 가짜 9번처럼 연계에 치중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원톱을 중심으로 한 연계 플레이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먼저 중앙에 선수들이 밀집할 필요가 있었다.
지울리가 안으로 좁혀오고, 그렇게 해서 생긴 공간으로 보싱와가 침투하는 방식은 전술상 당연한 움직임인 것이다. 즉, 빌드업 단계에서 맨시티 선수들의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오솔
LW―일라누―지울리―보싱와
조이 바튼
LB―CB―CB―★플라실
맨시티의 중앙 수비수들은 시야와 패스가 좋지 않아서 빌드업을 맡을 수 없다. 그래서 중앙 미드필더인 플라실이 보싱와의 자리까지 내려와서 빌드업의 시발점이 된다.
즉, 플라실이 빠지면서 중앙에 공간이 생기는 것은 빌드업 과정에서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중앙의 넓은 공간을 조이 바튼 혼자서 막아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데샹 감독은 바튼으로 하여금 상대 선수를 막아서는 1차 저지선 역할을 맡겼다.
그 틈에 일라누가 중앙으로 커버를 하도록 시켰다. 지울리는 나이가 많아 활동량을 많이 가져가지 못했기에 일라누에게 전담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판단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바튼은 홀로 상대를 저지하는 역할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고, 일라누도 수비에 가담하는 타이밍이 계속해서 늦고 있었다.
‘일라누와 조이 바튼, 리차즈가 각각 33%씩 책임이 있는 거지.’
아니, 완전하지 못한 전술을 들고 나온 감독의 책임도 있었다. 그러나 오솔은 이렇게 책임소재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는 게 아니야. 어떻게 하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느냐지.’
오솔은 한참을 고민해봤으나 딱히 방법이 없었다. 당연했다. 훈련으로도 수습하지 못한 걸 경기 도중에 고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역시 공격으로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 오솔이 각오를 다질 때였다. 바튼이 리차즈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고개 들어, 새끼야. 넌 잘못한 거 없어.”
바튼은 이런 놈이었다. 격려를 해도 꼭 손부터 나가는 녀석이다.
“잘못은 이놈이 했지.”
바튼은 일라누의 멱살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내가 빨리 커버오라고 했지. 이 새끼야.”
바튼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차라리 훈련 때처럼 언성을 높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달려드니 일라누도 감정이 팍 상할 수밖에 없었다.
“씨바. 그러다 치겠다?”
“내가 못할 것 같냐?”
“야야! 그만해!”
바튼의 볼살이 부르르 떨린다 싶을 때, 간신히 선수들이 다가와 둘을 떼어냈다.
바튼은 뒤로 끌려가면서도 살벌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데샹 감독은 선 자세 그대로 이마를 짚고 눈을 감았다. 자칫하면 역대 최악의 개막전이 될 뻔했다. 아니, 벌써 최악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 * *
수비를 책임지는 두 사람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맨체스터 시티의 리그 개막전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꼬오올! 또다시 골을 허용하고 맙니다. 케빈 놀란의 놀라운 중거리 슛이었습니다.]
[측면에서 생긴 균열이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옮겨갔습니다. 맨시티로서는 좋지 않은 연쇄작용이에요.]
이제 바튼과 일라누는 아예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팀이 중원 싸움에서 패배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아, 데샹 감독. 결국 보싱와 선수를 뒤로 물리네요.]
[지금은 이게 맞습니다. 당장은 어떻게든 수비를 안정화 시키는 게 중요해요. 역전은 후반전에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문제는 중원인데요…….]
[으음. 확실한 건 후반전에는 바튼과 일라누 선수를 동시에 기용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바튼과 일라누의 호흡은 전반전 내내 어긋났고, 상대에게 중원을 고스란히 내주고 말았다. 아무리 수비를 강화해도 중원의 구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러한 사실은 누구보다 데샹 감독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일라누를 빼고 그 자리에 기존 맨시티 선수인 아일랜드를 집어넣었다.
‘이것으로 잡음이 조금 줄어들겠지.’
과연 아일랜드가 들어가자 바튼의 불만이 사그라들었다. 아일랜드는 일라누보다 더 패스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적극적인 수비 가담에도 공수 전환에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앙에서 드리블을 쳐줄 선수가 빠지면서 공격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차라리 4-3-3으로 갈 걸 그랬나? 아니야. 그렇게 되면 공격이 너무 오른쪽 측면에만 집중되고 말아. 그럼 당연히 상대도 대처하기 수월하겠지. 하아. 바튼이 조금만 더 성장해준다면 로이 킨 못지않은 선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데샹 감독은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바튼의 공격성과 투쟁심을 두고 문제라고 말했지만, 이런 것들도 적절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후반전에 들어서 맨시티의 중원이 안정감을 찾았네요.]
이후 경기는 다소 지루하게 이어졌다. 볼튼은 어차피 2 대 0으로 앞서가는 상황이니 공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맨시티는 일단은 수비 조직력을 가다듬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소강상태가 이어진 것이다.
‘휴우. 그나마 수비는 제대로 되고 있구나.’
2 대 0까지 벌어졌음에도 데샹 감독은 아직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중앙에서의 드리블 돌파는 힘들어졌지만, 패스를 통한 콤비 플레이는 아직도 쓸만했다.
[맨체스터의 진형이 4-4-2 같은데요?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지역 방어를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수비 시에는 4-2-3-1에서 4-4-2로 변환하는 것 같습니다. 위로 올라선 아일랜드 선수와 오솔 선수가 많이 뛰어주면서 압박에서 협력 수비까지 많은 기여를 하는 형태로군요.]
맨시티가 수비 시 보여주는 4-4-2는 제법 완성도가 높았다. 시즌 초반에는 주로 수비 훈련과 빌드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역습 대비까지 끝냈으면 지금처럼 고생하는 일은 없었겠으나 아쉽게도 그건 선수들의 호흡 문제로 쉽지 않았다.
“걷어내! 걷어내! 좋았어, 리차즈!”
수비위치 선정에 애를 먹었던 마이카 리차즈도 앞에서 1차적으로 막아주는 선수가 생기자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좋아. 이제 그럭저럭 수비는 완성됐어. 문제는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만 의존해서 공격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데샹 감독이 공격 전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중앙까지 내려왔던 오솔이 공을 탈취하는데 성공했다.
“다시 줘!”
오솔은 공을 바튼에게 넘기고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바튼은 습관처럼 리턴 패스를 하려다 오솔의 얼굴을 확인하고 멈칫했다.
‘이 자식은…….’
남들은 오솔을 두고 몸값 3천만 파운드, 주급 13만 파운드의 초특급 유망주라고 평가하지만, 조이 바튼은 그 같은 평가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명백한 패닉 바이(Panic buying)지.’
그가 봤을 때 오솔은 잘 쳐봐야 주급 5만 정도의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 실력은 인정하지만 EPL 탑급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시즌 엄청난 활약을 펼쳤던 베르바토프가 받는 주급이 4만 5천 파운드였다.
바튼은 오솔이 딱히 베르바토프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패스해!”
오솔의 재촉에 바튼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누구한테 명령이야? 네가 진짜로 월드클래스라도 되는 줄 알아?’
알 수 없는 반발심이 바튼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단순히 동료들끼리 합을 맞추는 것인데도 왠지 오솔이 말하는 것은 따르기 싫다고 해야 하나?
한시라도 빨리 역습을 펼쳐야할 순간에 그렇게 주춤하고 있으니 당연히 오솔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뭐해 새끼야, 패스안하고?”
오솔은 한참을 뛰어도 패스가 오지 않자 얼굴을 와락 구겼다. 겨우 잡은 역습 찬스가 바튼 때문에 무산되게 생기자 짜증이 왈칵 솟구쳤다.
바튼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오솔에게 공을 넘겼다. 그러나 이미 한참은 늦은 타이밍이었다. 오솔이 공을 잡으며 돌아섰을 때는 벌써 볼튼의 수비진이 본진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장난 똥 때리나 새끼가! 경기 중에 딴 생각이나 해대고, 진짜 짜증나게.’
그러나 오솔은 짜증을 내는 것도 잠시, 왼쪽 측면을 따라 빠르게 침투하는 선수를 발견하고, 바로 패스를 시도했다.
오래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였다간 패스 타이밍을 놓칠 것 같았다.
파아앙!
오솔의 공이 좌측 깊숙이 들어갔다. 그대로 나가나 싶은 순간, 누군가 휙 하고 나타나 공을 채갔다.
‘미친 놈. 연습 때도 빠르다 싶었는데, 실전에서는 더 빠르네.’
프리미어 리그에는 발이 빠른 공격수가 많이 있지만 현재 가장 각광받는 선수는 아스톤 빌라의 아그본라허와 아스날의 시오 월콧, 이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부로 거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맨시티의 왼쪽 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마르틴 페트로프가 그 주인공이었다.
타다다닷!
이 불가리아산 폭주전차는 리그 첫 경기에서부터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솔의 패스를 잡자마자 터치 라인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려간 것이다.
볼튼의 오른쪽 수비수, 니키 헌트는 페트로프를 놓치고 말았다. 계속 집중하고 있어도 따라잡을까 말까한 스피드였는데, 계속되는 고착 상태에 방심까지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맨시티의 역습입니다! 공을 몰고 돌진하는 페트로프! 전방에 아무도 없어요!]
[일라누와 지울리도 빠르게 중앙으로 합류하고 있습니다. 맨시티! 절호의 기회예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수비수가 더 많아요. 어, 어?]
해설자가 수비수가 더 많다고 말하기 무섭게 화면 밖에서 거대한 덩치의 선수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짐작했듯이 그 남자의 정체는 오솔이었다.
파바바박!!
오솔은 앞서가는 지울리와 일라누가 느림보로 보일만큼 빠르게 전진했다. 그는 몸무게와 속도가 반드시 반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오솔, 빠릅니다!]
[이건, 이건 진짜 너무 빠른데요?]
페트로프는 빠르게 달리면서도 동료들의 위치를 다 확인하고 있었는지, 수비수가 붙어있는 일라누와 지울리를 피해 오솔에게 패스를 보냈다.
파앙!
그의 패스는 상당히 빨랐다.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른 패스. 하지만 그렇기에 수비수나 골키퍼가 반응하기도 힘든 공이었다.
[오솔!!]
중계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솔도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고, 공도 상당히 빨라서 자칫하면 실수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각종 능력치가 한계까지 상승하고, 원래부터 슈팅 감각만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던 오솔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팡!
오솔은 달리던 자세 그대로 발을 툭 갖다 댔고, 공은 수비수와 골키퍼를 피해 정확하게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아아아!
맨시티 원정팬들의 함성이 오솔에게 쏟아졌다. 오솔은 코너로 달리며 특유의 세리머니로 흥을 돋웠다.
관중석이 들썩였다. 너도나도 조금이라도 더 오솔을 가까이에서 보고자 몸을 잔뜩 기울인 덕에 관중석이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진정들 해. 이제 시작이니까.”
오솔은 여유로웠다. 당연히 넣을 골이었다는 태도가 막 EPL에 발을 디딘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현지 중계진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도전자’가 아닌 ‘정복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나이스 패스!”
“좋아, 따라가자!”
맨시티의 동료들이 오솔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주로 새로 이적해온 선수들이었고, 드물게 기존 선수들도 섞여있었다. 하나 그 속에서 바튼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 패스를 건넸던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박혀 있었다.
‘이게 대체…….’
오솔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제압당한 것은 볼튼 원더러스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삐딱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던 바튼 역시 자신의 생각이 산산조각 나는 걸 경험해야 했다.
이래 보여도 바튼은 어렸을 때부터 EPL무대를 겸허해온 선수였다. 이런 플레이를 직접 목도한 이상, 오솔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길!’
그러나 실력을 인정하는 것과 상대를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짜증이 났다.
홀로 골을 만들어낸 오솔과 패스 타이밍이 늦어버린 자신. 이처럼 비교되는 모습이 하나의 플레이에서 나왔다는 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