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45화
29장 프리미어 리그
“그럼 자카르타에서 바로 맨체스터로 가는 거야?”
“아마 중간에 경유를 한다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먼저 집에 가있어. 아마 라이올라가 공항에 사람을 준비시켰을 거야.”
“알았어. 조심해서 와요.”
오솔은 민주의 목소리를 들으며 공항에 들어섰다. 다른 선수들은 간단한 축하연을 하러 갔으나 그는 쉴 틈도 없이 곧장 영국으로 떠나야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제 시즌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2주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감독님과 대면조차 못했다니, 경험치도 좋지만 준비할 시간이 너무 없어서 큰일이야.’
데샹 감독과 전화 통화는 이미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나 따로 전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다치지 말고 좋은 성과를 거두고 오라는 응원만 들었다.
“부담을 안주는 건 고마운데, 이래가지고 선수들끼리 호흡이나 제대로 맞을지 걱정이네.”
그때 안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렸다. 라이올라였다.
“어, 라이올라. 어떻게 됐어?”
“결국 협회에서 양보했어. 이제 벌금을 낼 필요는 없을 거야.”
“없던 일로 한다고? 조금 의왼데? 나는 액수를 좀 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네가 그럴거면 차라리 출전 금지를 때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 취소하는 수밖에 없지. 단, 이런 내용을 언론에 흘리지는 않을 거야. 징계 결정을 번복했다는 소리가 나오면 그쪽에서도 권위에 손상이 가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어. 나도 닥치고 있을게.”
“그럼 너무 고맙지. 괜히 성질난다고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영국으로 오라고. 참, 가족들은 언제 와? 시간 맞춰서 직원을 내보낼 게.”
“거의 새벽에 도착할 텐데. 괜찮겠어?”
“내가 나가는 거 아니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집은 좀 어때?”
오솔은 아시안컵에 참가하느라 계약을 끝내놓고도 아직 영국의 집에 가보지 못했다.
듣기로는 구단주가 최고급 펜트하우스를 무상으로 빌려줬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들은 모두 라이올라가 도맡아서 처리한지라 잘 몰랐다.
“집이라면 걱정 마. 내가 확인해 보니까 기본적인 건 다 있더라.”
“기본적인 거?”
“명품 가구와 최고급 식재료, 전문 영양사와 관리인 그리고 최신형 자동차 같은 것들이지.”
“내가 그동안은 너무 근본 없이 살았나보다. 그게 기본이라니…….”
“익숙해지라고. 이제는 이런 거에 일일이 놀라면 안 되니까. 그리고 지내면서 불편하다 싶은 건 바로바로 말해줘. 필요한 것도 바로 준비해줄게.”
“어이쿠 라이올라 선생께서 상당히 공손해 지셨네요.”
“이제 네가 주는 돈이 내 전체 수입의 40%를 차지하는데 그럼 공손해져야지.”
“돈이 좋긴 좋구나.”
“내가 말했잖아. 빅 머니라고.”
함부르크에 있을 때와 대우가 달라졌다는 건 비행기를 타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만수르 가문이 소유한 항공사에서 무료로 퍼스트클래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는 일은 석유 사업과 항공사 운영, 부동산 투자 그리고 현실 FM이라…… 이 정도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게 아니라 거의 금수저 풀장에서 헤엄치는 수준이잖아.’
오솔은 어쩐지 시스템의 존재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진정한 치트키의 맛을 살짝 봤다고 해야 하나?
‘됐어. 나 정도면 자수성가한 거야. 나올 거라곤 눈물방울밖에 없는 땅에서 이 정도면 성공한 거지!’
오솔은 자꾸만 초라해지려는 기분을 다독이며 승무원을 찾았다.
“여기 땅콩 좀 까줘요!”
* * *
오솔은 새로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곧장 훈련장을 찾았다. 적당히 넓은 공간과 푸른 잔디 그리고 축구공은 어딜 가나 똑같았다. 일단 잔디를 밟고 숨을 한껏 들이키자 뒤숭숭했던 마음이 단번에 편안해졌다.
물론 맨시티의 훈련장은 함부르크와는 조금 달랐다. 한쪽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장비와 훈련 도구들이 들어오고 있었고, 상시 대기 중인 의료진과 전문적인 코치진의 숫자도 훨씬 많았다. 맨시티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는지 피부로 와닿을 정도였다.
“훈련장은 평범하죠?”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오솔이 고개를 돌리니 옅은 회색빛 눈동자가 빙그레 웃는다.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와 M자 탈모가 걱정되는 넓은 이마도 시야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전설, 디디에 데샹 감독이었다.
“아, 감독님.”
“반가워요. 디디에 데샹입니다.”
데샹은 오솔의 손을 잡으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는데, 가벼운 제스쳐에도 친근감이 흘러 넘쳤다. 악수를 할 때도 남는 손으로 괜히 오솔의 팔뚝을 가볍게 친다거나 만지는 식의 스킨십을 계속해댔다.
확실히 프랑스인이라 그런지 토마스 돌 감독과는 확연히 다른 타입이었다. 데샹 감독과 비교하면 돌 감독은 거의 군인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좋았다.
“아시안컵은 어땠습니까? 아! 경기는 봤으니 오해하지 말아요. 그저 컨디션이 어떤지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괜찮은데, 자세한 건 검사를 받아봐야 확실히 나오겠죠.”
“좋군요!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검사부터 받아 봐요. 만약 이상이 없다면 내일 내 사무실로 와줘요. 우리 같이 이번 시즌에 대해 구상해 봅시다.”
오솔은 데샹에게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땡글땡글한 두 눈이 계속해서 시선을 맞춰오는 탓에 부담스러워도 시선을 피하기 힘들었다.
‘꼭 간식을 달라는 강아지 같군.’
때때로 개들은 이 세상에 자신과 주인,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건 데샹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이 가득한 눈빛이 오솔에게서 떠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
감독이란 선수와 스태프를 포함해 서른 명이 훌쩍 넘어가는 인원을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끌어야 한다. 그것도 무려 10달 동안.
이 서른 명의 사람은 각자가 원하는 것도 다르고 불만사항도 제각각이었다. 심지어는 언어와 문화까지 완전히 다른 경우도 빈번했다.
감독은 중간에서 그 모든 것을 조율하는 역할이었다. 괜히 감독을 ‘전술가(Tactician)’가 아니라 ‘관리인(Manager)’라고 부르겠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저건 큰 장점이지.’
선수의 시선을 잡고, 정신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줄 안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었다. 상대를 설득하기에도 좋았고, 질책을 하거나 용기를 북돋울 때도 훨씬 효과적이다.
‘과연 명성을 날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오솔은 새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체력 측정실로 향했다. 몸 상태가 정상이라는 확신은 있었으나 구단 입장에서는 알지 못하니 귀찮더라도 검사를 받아야 했다.
‘궁금하네. 과연 같이 해보자던 시즌 구상이 어떤 건지 말이야…….’
왠지 모르게 성공적인 시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다음날, 팀닥터는 보고를 위해 데샹 감독을 찾았다.
“오솔의 신체 검사는 문제없이 끝났습니다. 당장 경기에 출전해도 된다는 소견입니다. 다만, 위험 요소는 있었다.”
“그게 뭡니까?”
데샹 감독이 급히 묻자, 팀닥터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우려를 나타냈다.
“분데스리가와는 달리 EPL은 겨울 휴식기도 없고, 심지어 박싱 데이에는 경기가 잔뜩 몰려 있어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설혹 잘 버틴다고 해도 어쩌면 후반기에는 컨디션 난조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당장은 문제없다는 말이죠?”
“네, 지금은 오히려 경기 감각도 최고조로 올라와 있고, 컨디션도 아주 좋습니다.”
“아시안컵으로 체력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후반기 컨디션 문제는 어쩔 수 없죠. 그건 오솔 선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수들이 겪는 문제니까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면밀히 살펴봐 주세요. 이상한 점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시고요.”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팀닥터가 나가고, 잠시 후 오솔이 들어왔다.
데샹은 오솔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오솔을 자리에 앉히더니 작은 전술판을 챙겨 바로 옆에 앉았다.
‘나란히 앉는군.’
오솔은 흥미롭다는 듯이 데샹을 관찰했다.
토마스 돌 같은 경우는 커다란 전술판을 두고 강의하듯이 설명했는데, 데샹을 옆에서 과외를 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 팀의 기본 전술로 생각하는 건 4-2-3-1 시스템입니다. 함부르크의 전술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익숙해지면 아마 전보다 더 편하게 경기할 수 있을 겁니다.”
원톱에 오솔을 넣고 그 뒤로 처진 공격수와 양 날개를 운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는 형태이기 때문에 중앙에 위치한 두 명의 미드필더 조합과 구성이 가장 중요한 전술이었다.
“제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스트라이커의 제 1목표는 득점이었죠. 골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선수니까 당연히 골을 넣어주길 바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데샹이 AS 모나코를 진두지휘할 무렵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은 원톱으로 뛰고 있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였다.
기본적으로 모리엔테스가 뛰어난 공격수였기에 가능한 기록이었겠으나, 다른 선수들의 헌신적인 지원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기록이기도 했다.
“즉, 이때까지의 4-2-3-1은 득점원과 조력자가 철저히 분업된 시스템이인 것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경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의 AS 로마가 선보이고 있는 가짜 9번이 바로 그것이죠.”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인 2005-06시즌, 스팔레티 감독은 주전 공격수인 몬텔라의 기량이 하락하자 토티를 4-2-3-1의 원톱 자리에 세우게 된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격수 자리에 서게 된 것인데, 재밌게도 토티는 전방에서 골을 노리는 게 아니라 이전처럼 밑으로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시도했다.
이처럼 원톱이 밑으로 내려오자 로마는 중원에서 수적인 우위를 잡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공격을 보다 손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이 전술은 공격수 자리에 선수가 없다고 하여 제로 톱(4-6-0)이라고 부르고, 해당 역할을 하는 선수를 가짜 9번(폴스 나인)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가짜 9번의 시작은 궁여지책에 가까웠으나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 움직임이 기존의 4-2-3-1에서 생겼던 문제들의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일본전이 기억나죠? 저도 그 경기는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정확히는 일본팀이 선보였던 공격 방법을요.”
“기억납니다. 일본은 측면 공격에 집중하는 것으로 공격을 풀어나갔죠.”
“맞습니다. 일본은 그 경기에서 4-2-3-1을 꺼내들었고, 측면 돌파에 집중했죠. 미드필더진의 호흡과 패스 플레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성과를 얻지 못했죠.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원톱의 고립을 말하시는 겁니까?”
“역시…… 맞습니다. 그들은 원톱이 고립되는 것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앙으로 공이 연결되지 못해 찬스를 놓치곤 했죠.”
기존의 4-2-3-1의 문제점은 바로 이것, 원톱의 고립 현상이었다.
원톱에게 골을 넣으라는 주문은 그를 적진 깊숙한 곳에 머물게 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선수들과의 연계를 힘들게 만들었다.
“반면 오솔 선수는 적극적으로 연계를 시도했었죠. 그건 감독의 주문이었습니까?”
“아니라는 걸 알고 물으시는 거죠?”
“하긴, 공격수의 연계를 중시하는 감독이었다면 그렇게 헐거운 전술을 만들지도 않았겠죠.”
한국의 문제는 지나치게 뒤로 물러나있는 미드필더진이었다. 중앙에서 연결고리가 되어줄 선수가 없다보니 공격이 외곽을 따라 빙빙 돌기만 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오솔이 밑으로 내려가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려 했으나, 2선 침투가 없는 상황에서는 제로 톱 전술이 힘을 낼 수 없었다.
덕분에 오솔의 연계 플레이도 별 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데샹 감독은 그 플레이를 보며 오솔의 활용법을 하나 더 깨우치게 되었다.
“제가 원하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제 원톱에게 골만 요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믿습니다. 이제는 원톱도 투톱처럼 적극적으로 연계에 참가해야하는 시대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만들어갈 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음. 연계에도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2선의 지원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전방을 비운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쩌면 저에게 골을 집중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곧 도와줄 선수들이 도착할 겁니다.”
디디에 데샹의 호언장담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오솔의 합류와 동시에 그간 추진하고 있던 이적들이 차곡차곡 마무리된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옛 스승과 재회하는 뤼도비크 지울리!]
[AS 모나코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디디에 데샹, 모나코에서 야로슬라프 플라실 영입!]
데샹 감독은 메시의 성장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지울리를 8백만 파운드라는 저렴한 가격에 데려온데 이어, 여전히 AS모나코에 남아있던 플라실까지 3백만 파운드를 주고 사오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모두 데샹이 모나코에 있을 때 연이 닿았던 선수들로 지울리는 오른쪽 날개로서 이미 정상급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플라실은 활동량이 좋은 중앙 미드필더로 데샹의 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선수였다.
물론 선수 영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